감독 : 자코 반 도마엘
주연 : 제어드 레토, 사라 폴리, 다이앤 크루거
수 많은 선택의 기로 위에서...
우리는 살다보면 참 많은 선택의 기로 위에 섭니다. 아주 작은 선택에서부터 인생을 바꿀지도 모를 큰 선택까지... 어찌되었건 우리는 선택을 해야하고, 가끔은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자책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과연 우리가 지금의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아무도 모릅니다. 더 행복했을수도 있고, 어쩌면 더 불행했을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르바이트를 했던 비디오방의 사장님이 제 대학 졸업 때 자동 세차장 점장을 맡아볼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을 했었습니다. 당시는 IMF 때였고 지독하게도 취업이 되지 않을 때였죠. 하지만 저는 'YES'와 'NO' 중에서 'NO'를 선택했고, 그러한 선택 때문에 2년간 백수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백수 생활을 하며 참 많은 후회를 했습니다. 만약 'YES'를 선택했다면 저는 세차장의 점장이라는 어엿한 직업을 갖고 있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당장은 "YES'라는 선택이 좋아보였을지 몰라도 나중에 그러한 선택에 대한 후회가 없었을까요? 아마도 만약 'NO'를 선택했다면... 이라는 후회가 여전히 남아 있을지도 모르죠.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인생이 어떨지 모르고 있기에 우리는 현재의 삶에 불만이 생길 때마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선택하지 못한 삶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모든 선택에 대한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는 아이 (스포 조금)
[미스터 노바디]는 자신의 미래를 볼 수 있는 9살 소년 네모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을 했고, 어머니는 마을을 떠나려 합니다. 네모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떠날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와 함께 남을 것인가?
순간 네모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미래를 보기 시작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떠날 경우의 미래, 아버지와 함께 남았을 때의 미래. 그러한 미래에서 네모(토비 레그보, 제어드 레토)는 애나, 엘리스, 진을 만나고 결혼합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미래에 후회와 아쉬움이 남습니다. 애니(주노 템플, 다이앤 크루거)와의 금지된 사랑으로 인한 아픈 이별과 재회,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엘리스(클레어 스톤, 사라 폴리)와의 결혼으로 인한 불행한 결혼생활, 자신이 전혀 사랑하지 않는 진(오드리 지아코미니, 린 당 팜)과의 무미건조한 결혼과 죽음. 어린 네모는 이 모든 미래를 본 후 선택을 거부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떠나지도, 아버지와 함께 남지도 않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자신의 미래를 미리 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자신이 미래에 할 후회를 미리 경험한다는 것. 과연 행복한 일일까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후회를 합니다. 그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만족스러운 인생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린 네모에게 그러한 미래의 후회는 어쩌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2092년 네모
사실 [미스터 노바디]를 보고 곧바로 이 영화를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자코 반 도마엘 감독은 상당히 복잡하게 이 영화를 꼬아 놓았는데, 2092년 118세가 된 노령의 네모를 화자로 삼으면서 영화를 보는 저를 헷갈리게 만든 것이죠.
세포 재생을 통해 늙지도 죽지도 않는 미래. 고령으로 죽는 마지막 인간이 된 네모. 하지만 그는 34살 이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미래의 사람들은 네모의 상황을 생중계하며 관심을 보이고, 미래의 기자는 몰래 네모를 찾아와 그의 이야기를 들으려 합니다.
하지만 기자가 네모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듯이 영화를 보는 저 역시 네모의 이야기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118세 네모의 이야기는 9살 네모의 선택에 대한 여러 갈래의 이야기들이 뒤죽박죽이 되어 섞여 있기 때문이죠. 어머니를 선택한 네모와 아버지를 선택한 네모가 시간의 순서와 상관없이 마구잡이로 보여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영화 중간 중간에 여러 과학 이론들이 설명되고, 초현실적인 장면들이 뜬금없이 등장하며 그렇지않아도 복잡한 제 머리 속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제가 겨우 이 이야기를 희미하게나마 이해한 것은 118세의 네모가 이 모든 것을 9살 꼬마의 상상이라고 기자에게 고백하는 부분입니다. 아마도 2092년 118세의 네모는 9살 네모가 선택할 어느 인생의 미래일 것이고, 9살 네모가 그 모든 선택을 거부함으로서 2092년 118세의 네모 역시 존재하지 않는 존재(노바디)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정답이 하나 뿐이라는 생각은 버려라.
내 결말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미스터 노바디]를 본 후 여러 네티즌 리뷰를 읽어 봤는데 어떤 분은 2092년 2월 12일 5시 50분에 Big Cunch가 일어나 시간이 거꾸로 가는 것이라 설명했고(실제로 이 영화에서 설명한 수 많은 과학 이론 중에는 Big Crunch 이론에 대한 설명도 있었습니다.), 다른 어떤 분은 9살 네모가 선택에 의한 시간의 흐름을 거부했기 때문에 그러한 흐름이 무너진 것이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것이 정답인지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가 설명한 과학 이론 중에서 '비둘기 미신'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20초마다 먹이 문을 열리는 상자에 갇힌 비둘기는 어떻게해야 먹이 문이 열릴지 의문을 품게 됩니다. 그때 만약 날개를 퍼덕일때 먹이 문이 열린다면 비둘기는 날개를 퍼덕여야 먹이 문이 열린다고 믿게 되고 먹이를 먹기 위해 날개를 퍼덕이게 되는 것이죠.
그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생에는 A 또는 B라는 선택만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비둘기 미신'을 뿐입니다. 영화의 결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에 무조건적인 정답을 찾는 것은 자신의 고정관념일 뿐입니다. 자기 스스로 찾아낸, 그리고 이해한 결말이 바로 정답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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