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트로이 닉시
주연 : 케이티 홈즈, 가이 피어스, 바일리 매디슨
난 이빨 뽑는 날이 가장 무서웠다.
요즘은 어린 아이들이 치과에 가서 이빨을 뽑더군요.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땐 주로 부모님들이 이빨을 뽑아 줬었답니다. 흔들리는 이빨에 실을 묶고 힘을 줘서 뽑아 버렸죠. 사실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포스러웠답니다. 특히 이빨을 뽑고 나서 입 안에 고이는 핏물는 아프지 않아도 제 눈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제 이빨을 지붕 위에 던지시며 '까치야, 까치야, 헌 이빨 줄테니 새 이빨다오.'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러면 그런 어머니의 행동이 신기해서 제 눈에 고였던 눈물은 어느새 멈춰버렸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어렸을 적의 일을 상세하게 기억하냐고요? 사람의 기억력이라는 것이 무서웠던 기억은 쉽게 지우지 못하나봅니다. 어렸을 적 이발소에서 이발사의 실수로 귀의 살점이 떨어져 나간 기억과 더불어 이빨을 뽑을 때의 기억과 그 느낌이 이렇게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우리나라에 까치가 있다면 서양엔 이빨요정이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빨 뽑을 때의 두려움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닌가 봅니다. 어떨땐 동양이나 서양이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바로 이빨요정이 그러합니다. 까치가 헌 이빨을 가져가서 새 이빨을 준다는 우리나라의 오래된 믿음처럼 서양에도 이빨요정이 헌 이빨을 가져간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네요. 아마도 이빨 뽑기를 무서워하는 어린 아이들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서양의 이빨요정은 우리나라의 까치와는 달리 가끔 공포 영화의 소재가 되곤 합니다. 길레르모 델 토르 감독의 [헬 보이 2 : 골든 아미]에 나왔던 작은 이빨 요정들의 섬뜩함을 혹시 기억하시나요? 재미있는 것은 바로 그 길레르모 델 토르 감독이 각본과 제작을 맡은 공포 영화 [돈비 어프레이드 : 어둠 속의 속삭임]은 [헬 보이 2 : 골든 아미]에서 조연(?)에 불과했던 이빨 요정을 정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판의 미로] + [오퍼나지]
[돈비 어프레이드 : 어둠 속의 속삭임]은 굳이 영화의 정보를 알고 가지 않아도 길레르모 델 토르 감독의 향기가 풀풀 나는 공포 영화입니다. 오래된 고풍스러운 저택을 공포의 공간으로 삼은 것도 그렇고, 어린 아이가 대상이었던 것도 그렇고, 초현실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도 그런 식이었죠.
샐리(바일리 매디슨)는 모든 것이 불만스럽습니다. 자신을 떠나보낸 어머니도 밉고, 젊은 여자와 재혼한 아버지(가이 피어스)도 싫습니다. 게다가 자신에게 잘 해주려고 노력하는 아버지의 애인 킴(케이티 홈즈)은 더욱 꼴도 보기 싫습니다.
이렇게 혼자 고립된 아이는 어둠 속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친구를 찾아냅니다. 바로 이빨 요정이죠. 어린 아이의 현실 부정과 자신 만의 세계에 대한 집착은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에 맞닿아 있습니다.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킴의 존재입니다. 샐리의 아버지인 알렉스의 무관심과는 달리 킴은 샐리의 말을 믿어주고, 샐리 만의 공포 세계에 적극적으로 발을 들여 놓습니다. 그럼으로서 이 영화의 후반은 자연스럽게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과 연결되는 것이죠.
악역 이빨요정의 정체
사실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을 재미있게 본 저로서는 그런 [돈비 어프레이드 : 어둠 속의 속삭임]의 진행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공포의 소재로는 2% 부족한 이빨 요정의 존재 때문인지 후반이 되면 될수록 점점 욕심을 부립니다. 관객에게 공포감을 안겨줘야 한다는 이 영화의 욕심은 후반부를 조금 억지스럽게 끌고 나가더군요.
킴에게 그냥 이빨요정의 존재를 이야기하고 빨리 샐리를 데리고 나오라고 이야기해도 될 듯한 정원사는 그 대신 블랙우드의 그림을 보관한 도서관의 보관 번호를 대며 시간을 끌고, 알렉스와 킴은 넘어지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정신을 잃습니다. 발로 차면 부숴질 듯한 문인데 열쇠 찾느라 시간을 끄는 등 후반부는 약간은 답답한 장면들이 연이어 나옵니다.
영화의 마지막 반전도 더 설명이 필요할 듯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설명이 없었던 탓에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인 이빨요정의 정체만 모호해져 버렸습니다. 그런 까닭에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영화임에는 분명하지만 길레르모 델 토르 감독이 제작한 이전 영화들과 비교한다면 조금은 아쉬운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아주짧은영화평 > 2011년 아짧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퍼씨네 펭귄들] - 아빠가 되고나니 이런 영화가 좋아지더라. (0) | 2011.10.13 |
---|---|
[스톤] - 달콤한 코코아를 기대했는데, 쓰디쓴 커피였다. (0) | 2011.10.06 |
[리미트리스] - 그래, 네 적성은 딱 정치인이더라! (0) | 2011.09.21 |
[미스터 노바디] - 아름답지만 복잡하게 꼬인 선택에 대한 이야기. (0) | 2011.09.20 |
[배드 티처] - 우리 정서로는 용서할 수 없는 선생님 (0) | 2011.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