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닐 버거
주연 : 브래들리 쿠퍼, 로버트 드 니로, 애비 코니쉬
알약 하나로 천재가 될 수 있다면?
에디 모라(브래들리 크퍼)는 작가입니다. 출판사와 계약을 했지만 아직 단 한줄의 글도 쓰지 못한 게으르고 한심한 작가죠. 그런 그가 길에서 우연히 이혼한 부인의 남동생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뇌의 기능을 혁신적으로 증가시켜 준다는 알약을 하나 선물받게 됩니다. 의심반, 기대반으로 알약을 먹은 에디. 그런데 정말 그는 천재가 됩니다. 스치듯 지나쳤던 온갖 정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글도 순식간에 완성시킵니다. 하지만 알약의 효능은 단 하루 뿐. 에디는 알약이 더 필요합니다.
[리미트리스]는 알약 하나로 천재가 될 수 있다는 설정을 가진 스릴러 영화입니다. 소재 자체는 꽤 신선한 편이지만 이를 이끌어 나가는 전개는 매우 전형적입니다. 알약으로 인하여 에디는 보통의 사람이라면 결코 이룰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순식간에 이루어 내며 승승장구하지만 알약과 중독성과 부작용, 그리고 알약의 존재를 알고 그를 위협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위기를 맞이하고, 결국 그 위기를 잘 헤쳐나갑니다.
신선한 소재를 전형적인 스릴러로 탈바꿈시킨 [리미트리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영화는 빠른 편집과 넘쳐나는 에너지를 자랑하고 있으며, 알약을 사이에 둔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진부하지 않게 그려내고 있고, 마지막 에디의 선택에서는 현실에 대한 풍자까지 엿보입니다.
에디의 욕심은 어디까지?
먼저 알약을 사이에 둔 인간의 끝없는 욕심부터 보면... 에디에게 처음에 필요한 것은 글을 완성시킬 수 있는 창작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알약은 그것을 충족시킵니다. 알약의 힘으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 에디. 그런데 그는 더이상 글을 쓰지 않습니다. 그 비상한 능력으로 돈을 벌기 위해 주식 시장에 뛰어든 것입니다.
주식 시장에서도 승승장구를 하며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던 그는 좀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며 갱단의 돈을 빌리고, 그 돈으로 수억의 수익을 내지만 역시 만족하지 않고 거물 기업인 칼 반 룬(로버트 드 니로)과 손 잡고 사상 최대 기업합병을 추진합니다.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애초에 에디의 꿈은 작가였고, 알약은 그런 에디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혁신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알약의 효능으로 인하여 에디는 자신의 애초의 꿈을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그저 돈.... 돈.... 돈에 매달립니다.
에디의 꿈을 이루어줄 것이라 생각했던 알약은 오히려 에디를 꿈에서 멀어지게 하는 역할을 하고, 에디가 돈에 집착할수록 에디에겐 점점 더 막강한 적들이 생겨납니다. 그저 약을 적당히 섭취하며 베스트셀러 작가의 자리에 오르는 것에 만족한다면 별 문제없었을텐데... 에디의 욕심은 에디를 점점 위기에 빠뜨립니다.
에디의 종착점은? (스포 포함)
천재가 되는 알약. 그리고 만족하지 못하고 과한 욕심을 부리면서 점점 파멸의 길을 걷는 에디. 그런데 여기에서 정말 재미있는 것은 에디의 종착점이 바로 정치인이라는 것입니다. 주식 투자로 많은 돈을 벌었다면 연인인 린디(에비 코니쉬)와 편안한 삶을 살아도 될터인데... 그는 상원의원이 되어 아슬아슬한 스릴의 한 가운데에 여전히 서있습니다.
그러고보니 인간의 욕심의 종착역 또한 권력욕이 아닐까요? 에디는 작가라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돈에 대한 욕심으로 포기했고, 아무리 벌어도 끝이 없는 돈이 욕심 뒤에 그는 권력을 움켜 잡으며 새로운 욕심의 향연을 펼쳐 나갑니다.
천재적인 두뇌로 그가 좋은 정치인이 될수도 있지 않겠냐고요? 아뇨. 영화 내내 보여준 에디의 행각은 좋은 정치인이기 보다는 부패한 정치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결말은 에디에겐 해피엔딩일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또 한 명의 부패 정치인의 탄생기를 보는 씁쓸함만 느껴졌습니다.
에디의 적성은 딱 정치인이더라.
그럼 다시 필름을 앞으로 되감아보죠. 에디가 정치인으로 자신의 적성을 찾은 것은 알약의 부작용으로 기억을 잃고 폭주하는 장면부터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자신과 함께 있던 모델이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물론 에디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요. 그런 상황에서 에디는 잠시 괴로워합니다. '내가 그런 인간이었던가?' 하지만 괴로움은 잠시 그는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려 합니다. 바로 돈의 힘이죠. 그리고 '기억 안납니다.'로 일관하며 자신의 죄를 덮으려 합니다.
어디에서 많이 본 행태가 아닌가요? 자신의 잘못에 '기억 안납니다.'로 일관하고 능력있는 변호사를 기용해서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 나가는 돈 있고, 권력있는 인간들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죽은 여인에 대한 죄책감은 아주 잠시 뿐이고, 자신에게 불리할지도 모를 진실 따위에는 애초부터 관심도 없습니다. (영화 속 에디는 자신이 정말 그 모델을 죽였는지 알아내려 하지도 않습니다.)
돈의 위력입니다. 돈만 있다면 살인 따위의 범죄는 언제든지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에디. 그가 다음 목적지로 정치인을 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돈 다음은 권력이 현실의 정치인들이 지나온 엘리트 코스가 아니던가요.
[리미트리스]는 천재가 되는 알약이라는 독특한 소재의 영화이고, 영화의 전개 방식은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릴러의 길을 따릅니다. 하지만 그 뒤에 감춰진 현실 정치의 씁쓸함은 그것이 닐 버거 감독의 의도이건, 아니건 평범한 이 영화를 꽤 흥미롭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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