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제이크 캐스단
주연 : 카메론 디아즈, 루시 펀치, 저스틴 팀버레이크, 제이슨 세걸
어느 연예인의 잠정 은퇴
최근 국민 MC로 인기를 모았던 씨름선수 출신 연예인 강호동이 탈세 혐의로 온 국민의 비난을 한 몸에 받고 결국 잠정 은퇴 선언을 했습니다. 강호동의 은퇴 이후 뒤늦게 탈세가 아닌 과소 납부에 의한 추징이라고 국세청이 해명했지만 강호동에 대한 비난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수년간 회계직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강호동 입장에서는 굉장히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예전에 다닌 회사도 세무조사를 받았었습니다. 설립한지 채 1년이 되지 않아 재고 확보 차원에서 매입이 많고 매출이 적어 부가세를 몇 번 환급받은 것이 문제가 된 것이죠. 당시 세무조사를 나온 국세청 직원은 세금계산서 날짜가 며칠 뒤로 밀린 것을 꼬투리로 몇 억의 추징금을 물렸고, 결국 그 회사는 폐업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비용 인정 문제도 사실 국세청에서 꼬투리를 잡으려고 한다면 한도 끝도 없는 문제입니다. 이걸 탈세로 몰고 가는 일부 언론도 문제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비난부터 하는 일부 네티즌들도 문제입니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는 연예인을 공인이라며 일반인보다 몇 배는 강력한 도덕심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예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일반인보다 몇 배, 아니 몇 십배는 더 강력한 도덕심을 강요당하는 직업이 몇 있습니다. 선생님도 그 중 하나입니다.
[배드 티처]가 우리나라에 개봉할 수 없는 이유
[배드 티처]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지난 6월 미국에서 개봉하여 [카 2]에 이어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른 이 영화는 미국에서만 1억 달러에 육박하는 흥행을 기록했고(참고로 제작비는 고작 2천만 달러입니다.) 월드 와이드로는 2억 달러가 넘는 흥행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하지만 여름이 되어도, 가을이 되어도 [배드 티처]의 국내 개봉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카메론 디아즈라는 우리나라에서도 꽤 인기있는 배우가 주연을 맡은 흥행 대박 영화인데 왜 국내 개봉이 되지 않는걸까요?
제가 보기엔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우리나라의 정서와는 맞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인보다 몇 십배는 강력한 도덕심이 요구되는 선생님이 부자 남자를 만나기 위해 온갖 추잡한 짓을 골라서 하는 이 영화, 과연 우리나라 관객들이 본다면 가볍고 웃고 지나갈 수 있을까요?
만약 이 영화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카메론 디아즈)의 직업이 선생님이 아니라면 아마 문제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웃자고 만든 코미디 영화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냐는 반응이 대부분일테죠.
정말 나쁜 선생님 이야기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는 정말 나쁜 선생님입니다. 돈 많은 남자 친구에게 차인 이후 어쩔수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버리지 못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열의도, 의무감도 전혀 없습니다.
수업시간은 아이들에게 영화나 보여주며 시간을 떼우는 그녀, 그녀의 관심사는 오로지 유방확대수술비 마련입니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교내 세차 행사에서 번 돈을 가로채고, 학부모에겐 대놓고 촌지를 요구하고, 급기야 시험 문제지를 빼돌리는 범죄까지 저지릅니다. 마약은 기본이고, 동료 교사의 애인 빼앗기는 애교입니다.
혹시 [선생 김봉두]를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일단 'NO!'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김봉두는 나쁜 선생님이었지만 나중엔 시골 아이들의 순수함에 감복하여 착한 선생님으로 환골탈태하지만 엘리자베스는 그러지도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악역으로 나오는 에이미(루시 펀치)가 오히려 우리 정서로 본다면 좋은 선생님입니다. 교육에 대한 열의도 있고, 엘리자베스와는 달리 정상적인 방법으로 아이들의 성적도 내게 하니까요. 하지만 [배드 티처]는 좋은 선생님이지만 얄미운 에이미보다는 나쁜 선생님이지만 귀여운 엘리자베스의 손을 들어줍니다.
선생님이라는 굴레를 벗고 본다면?
일단 저는 [배드 티처]를 보며 꽤 웃었습니다. 코미디 영화로는 괜찮았던 셈이죠. 특히 엘리자베스가 돈을 모으기 위해 교내 세차 행사에서 섹시한 옷을 입고 물쇼를 하는 장면은 카메론 디아즈의 섹시함이 아직 녹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최고로 웃긴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대한민국의 보수적인 남자이기에 영화를 보고나서는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엘리자베스의 행동이 도를 넘어서고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모든 잘못을 에이미가 뒤집어 쓰고 마무리됩니다. 어찌보면 에이미가 불쌍하게 느껴졌습니다.
만약 이 영화의 엘리자베스에게 선생님이라는 굴레를 벗긴다면 저 역시 영화의 마지막까지 웃고 즐길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얄미운 에이미에게 한방 먹인 엘리자베스의 마지막 모습에 쾌감을 느낄 수도 있었겠죠. 그런 면에서 저도 강호동을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단순한 추징금에도 비난을 퍼부어 대는 분들과 같을지도 모르겠네요.
만약 강호동이 일반인이었다면 아마도 '에이 똥 밟았네. 국세청 이 못된 놈들'이라며 마무리될 수도 있었을텐데, 만약 엘리자베스가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배드 티처]는 카메론 디아즈의 매력이 빛나는 섹시 코미디로 일찌감치 국내 개봉이 되었을텐데... 어찌보면 강호동도, [배드 티처]도 참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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