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1년 아짧평

[워터 포 엘리펀트]- 지나간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쭈니-1 2011. 8. 30. 08:51

 

 

감독 : 프란시스 로렌스

주연 : 로버트 패틴슨, 리즈 위더스푼, 크리스토프 왈츠

 

 

너무 더워서 극장이 그리웠다.

 

일요일 저녁... 일주일간의 일과를 마치고 새로운 일주일의 시작인 월요일을 준비하는 그 시간. 저는 그 시간은 대부분 영화를 보며 일주일간의 스트레스를 푸는 것에 할애합니다. 그날 제가 선택한 영화는 [트와일라잇]의 로버트 패틴슨과 [금발이 너무해]의 리즈 위더스푼이 주연을 맡은 [워터 포 엘리펀트].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 얼굴을 흥건히 적시는 땀... 시원한 음료수를 들이키고, 화장실에 가서 찬 물로 세수를 해도 시원한 것은 그때 뿐... 이번 여름 내내 더위를 잘 넘겼는데(죽도록 내린 폭우 덕분(?)일지도) 지난 일요일은 이번 여름동안 찾아와야할 더위가 한꺼번에 찾아온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극장에 가고 싶어. 시원한 극장이 그리워!'만 연발하다가 더위에 지쳐 쓰러져 일찍 잠이 들었고, 월요일 퇴근 후에야 전날 보지 못한 영화를 마저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늦여름에 찾아온 느닷없는 더위 때문에 영화를 이틀에 거쳐서 봤기 때문인지 [워터 포 엘리펀트]는 제 기대만큼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스토리를 감싸는 감미로운 추억

 

[워터 포 엘리펀트]는 1930년대를 배경으로 모든 것을 잃고 일자리를 찾아 헤매던 제이콥(로보트 패틴슨)이 우연히 서커스단의 열차에 올라타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은 평범하다못해 진부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어느 매력적인 청년이 있고, 독단적이고 폭력적인 그의 보스가 있고, 그리고 그 보스에겐 아름다운 아내가 있고, 당연히 청년은 보스의 아내를 사랑하고, 이를 눈치챈 보스는 화를 내고... 결국 청년은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보스의 아내를 쟁취하고... 이게 전부 다입니다. [워터 포 엘리펀트]의 스토리 라인을 풀어 놓으면...

하지만 이렇게 간단한 스토리 라인만 있다면 제가 이 영화를 선택하지는 않았겠죠. [워터 포 엘리펀트]가 내세우는 것은 단순한 스토리 라인이 아닌 그 속에 담긴 서커스라는 지금은 잊혀진 추억입니다. 우스꽝스러운 삐에로, 묘기를 넘는 맹수들, 그리고 아름다운 미녀... [워터 포 엘리펀트]는 조금 더 자극적인 볼거리들로 인하여 사라진 서커스를 통해 관객들에게 영화적 재미를 안겨주는 영화입니다.

 

서커스의 신비스러움을 좀 더 보여줬어야지.

 

하지만 이 영화는 후반에 갈수록 그러한 볼거리를 지켜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너무 뻔한 제이콥과 말레나(리즈 위더스푼)의 사랑과 질투심에 눈이 먼 서커스 단장 어거스트(크리스토프 왈츠)의 폭력으로 영화를 이끌어 나갑니다.

이 영화의 포스터처럼 조금은 신비로운 서커스 장면으로 분위기를 한껏 돋구고 그들의 관계를 풀어나가도 될텐데, 성질 급한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볼거리인 서커스 장면은 모두 건너 뛰고 서둘러 이 뻔한 삼각관계를 풀어 놓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위해 제이콥과 코끼리 로지의 끈끈한 관계에 더욱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었고, 서커스 단원들이 그렇게 한꺼번에 들고 일어날 정도로 심했을 어거스트의 폭력에 대한 좀 더 심도있는 장면들이 필요했으며, 다른 삼각 로맨스와 차별화된 서커스 장면을 더 삽입시켰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이 없이 그저 뻔한 삼각 로맨스가 펼쳐지니 영화를 보는 저로서는 맥이 풀려 버렸습니다. 

 

지나간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래도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이후 꼬부랑 노인이 되어서 나타난 제이콥이 서커스단에서 벌어진 추억을 회상하며 오히려 서커스단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만약 제이콥이었다면 서커스가 지긋지긋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그토록 좋아하는 동물들을 잡아 채찍을 휘두르며 사람들에게 재롱을 피우도록 훈련을 시키는 곳이 서커스이고,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말레나가 안전 장치도 없이 위험천만한 묘기를 부려야 하는 곳도 서커스입니다.

폭력적인 어거스트를 피해 달아난 제이콥과 말레나... 그들은 지긋지긋한 서커스를 멀리하고 둘이 행복하게 살았을 법도 한데 노인이 된 제이콥은 촉촉한 눈빛으로 서커스단에서의 나날을 회상하며 오히려 아직 일할 수 있으니 서커스 단원이 되게 해달라고 보챕니다.

아마 지나간 추억이었기에 제이콥에게 있어서 서커스는 돌아가고 싶은 아름다움의 순간이었겠죠. 그것은 추억의 힘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 역시도 그러한 추억의 힘을 영화를 보는 제게 발휘했어야 했습니다. 제 어린 기억 희미하게 남아 있는 놀이공원에서 어머니와 봤던 서커스의 추억을 끄집어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이콥은 추억에 젖었지만 영화를 보는 저는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 이 영화의 결정적인 패착이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