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노트/1996년 영화노트

은행나무 침대 ★★★★★

쭈니-1 2011. 8. 25. 13:31

 

 

감독 : 강제규

주연 : 한석규, 심혜진, 진희경, 신현준

 

 

* 해설

 

우후죽순으로 제작되던 한국 영화에 기획의 중요성을 일깨우며 90년대 초반 로맨틱 코미디를 히트시킨 것이 '신씨네'라는 젊은 기획 집단이다. '신씨네'는 [결혼 이야기]의 기획을 맡아 관객 40만 동원이라는 성공을 거두었으며, 강우석 감독의 [미스터 맘마]를 기획 제작까지하여 역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신씨네'가 의욕을 갖고 제작한 영화는 박헌수 감독 고소영, 정우성 주연의 [구미호]. 우리나라의 고전 설화에 할리우드의 SF 기술을 선보여 큰 화제가 되었던 이 영화는 그러나 시나리오의 미숙과 주연 배우들의 엉터리 연기로 기대이하의 흥행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신씨네'는 주저앉지 않았고 다시 시도했다. 이번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명연기자들을 캐스팅했다. 그것이 바로 [은행나무 침대]이다.

감독인 강제규는 시나리오 작가 출신.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장미의 나날], [게임의 법칙] 등의 각본을 쓴 그는 이 영화가 감독 데뷔작이다. [은행나무 침대]에서는 감독과 각본을 맡아 탄탄한 스토리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이 영화의 악역이면서도 가장 돋보이는 연기를 해낸 신현준. 그의 데뷔작은 [장군의 아들]이다. 이 영화로 대종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한 그는 그 후 [장군의 아들 2, 3]와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 [화엄경], [태백산맥] 등에서 연기력을 다졌다.

패션모델 출신인 진희경의 영화 데뷔작은 [커피 카피 코피]. 그러나 이 영화는 철저한 실패를 거두었고, 그녀에게 연기자라는 인식을 남긴 작품은 김성홍 감독의 스릴러 [손톱]이다. [손톱]에서 섬찟한 악녀역을 해낸 그녀는 대종상 신인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에선 가냘픈 미단공주로 다시 연기 변신을 했다.

최고의 여자 연기자로 자리 잡은 심혜진은 94년 한 해동안 [결혼 이야기 2], [손톱], [세상 밖으로]에 출연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은행나무 침대]에서는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이지적인 현대 여성 선영 역을 맡아 무리 없이 해내었다.

[덕터 봉]으로 성공적인 영화 데뷔를 한 한석규. 그는 [은행나무 침대]를 통해 코믹 연기뿐 아니라 멜로 연기에도 소질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 줄거리

 

32세의 석판화가이자 대학강사인 수현. 그의 일상은 안정적이고 평범했다. 우연히 노천 시장에서 은행나무 침대를 만나기 전까지는... 수현(한석규)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침대를 자신의 집에 옮겨 놓고, 그때부터 믿을 수 없는 사건이 계속 이어진다. 그에게는 그 자신도 알지 못한 전생의 사랑이 존재했다. 궁중악사와 공주의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이.

이들의 사랑은 이웃나라 황장군(신현준)의 미단공주(진희경)에 대한 일방적인 사랑으로 인해 갈라지고 결국 황장군에게 죽음을 당한 수현과 뒤따라 죽은 미단 공주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로 환생하여 몇 백년동안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뿐. 매로 환생한 황장군의 저주로 인해 미단이 환생한 은행나무는 번개를 맞아 쓰러지고 다시 은행나무침대가 되어 사람으로 환생한 수현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황장군의 추격 또한 만만치 않다. 그는 사람의 정기를 흡수하여 R로 환생, 수현을 위협하고 미단 공주는 수현에게 위험을 알리기 위해 수현의 애인이며 외괴외사인 선영(심혜진)의 환자의 몸을 잠시 빌린다.

선영은 환자가 죽은줄 알고 그의 유언대로 안구를 기증하지만 그는 다시 살아나고 선영은 돌팔이 의사로 매도되어 병원에서 쫓겨난다. 수현 역시 알수 없는 인물인 R로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결국 미단 공주는 수현을 살리기위해 R에게 마지막 제의를 한다. 월식 기간동안 단 한번만 수현을 만나게 하는 것. R은 할 수 없이 이를 승낙하지만 담보로 선영의 목숨을 가져가고 선영은 이것이 자신의 오명을 씻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 여러 동료 의사 앞에 월식기간동안 숨을 멈춘다.

드디어 수현과 미단 공주는 짧은 재회를 하고 질투심에 휩싸인 R은 수현을 공격한다. 그러나 월식이 끝나고 다시 살아난 선영은 은행나무 침대를 불살라 버리고 R은 미단 공주를 쫓아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 감상평

 

[사랑과 영혼]에서 보여주었던 사람과 죽은 영혼과의 안타까운 사랑.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자 소재이다. 관객은 이들의 이룰 수 없는 안타까운 사랑에 슬퍼하며 영화 속으로 몰입한다.

영화 초반 번개에 맞아 쓰러지는 은행나무를 보여주는 컴퓨터 그래픽 장면은 환상적으로 느껴졌고, 신현준과 한석규의 불꽃같은 연기는 관객을 사로 잡았다. 심혜진의 연기는 평범했고, 진희경의 연기는 기대이하라는 것이 이 영화의 약점. 그러나 진희경의 대사가 별로 없어 이 악점은 영화에 큰 손상을 주지는 못했다.

 

1996년 3월 28일

MOVIE

 

 


 

 

2011년 오늘의 이야기

 

한국형 블럭버스터의 가능성을 열어준 의미있는 영화가 바로 [은행나무 침대]입니다. 이 영화의 성공은 2년 후 [쉬리]로 이어지며 본격적으로 한국 영화 시장을 확장시켰었습니다.

그것 외에도 [은행나무 침대]는 제게 참 기억에 남는 영화인데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SF기술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영화이며, 한석규를 90년대 국민 배우로 등극시켰고, [은행나무 침대],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로 연출하는 영화마다 빅히트를 기록하고 최근 다국적 프로젝트 [마이웨이]를 통해 한국을 넘어선 국제 시장을 노리고 있는 명감독 강제규를 탄생시켰습니다.

그 중 가장 의미있는 것은 제 개인적으로는 신현준이 연기한 황장군이라는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악당은 그냥 악당에 불과했지만 [은행나무 침대]를 통해 악당도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시켰습니다. 실제로 [은행나무 침대] 상영 당시 주인공인 수현보다는 악역인 황장군의 인기가 훨씬 높았답니다. 암튼 이래저래 [은행나무 침대]는 참 대단한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