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4년 영화이야기

[그녀를 믿지 마세요] - 진심은 거짓보다 어렵다.

쭈니-1 2009. 12. 8. 16:42

 



감독 : 배형준
주연 : 김하늘, 강동원
개봉 : 2004년 2월 20일
관람 : 2004년 2월 21일


지난 1월... 회사에 사표를 내고 그야말로 대책없이 집에서 빈둥빈둥 놀았었습니다. 저야 백수 생활에 익숙하기에(총각때도 종종 장기적인 백수 생활을 스스로 즐겼었답니다.) 별 문제가 없었지만 제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살림을 해야했던 구피에겐 그 쥐꼬리마저 없어질 위기에 처하자 그야말로 막막했겠죠. 철없는 총각때엔 '이왕 이렇게 된거 몇개월 푹 쉬자'라고 룰루랄라 놀았지만 한가정의 가장이 된 지금은 그럴수만은 없었죠. 결국 실업에서 탈출하기위해 몸부림을 쳐야 했답니다.
정말로 막막했던 그때 만난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저와는 단지 '맥스무비'라는 사이트의 회원이라는 공통점만을 가진 tolkin님이 절 위로하며 일자리를 구해주겠다고 나서시더군요. 그 마음이 얼마나 고맙던지... 그 덕분인지 전 그 다음날 지금의 직장에 취업을 하게되었고 전 제게 마음을 써주신 tolkin님에게 첫 월급날 영화로 한턱 쏘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가 바로 제가 tolkin님에게 한턱 쏜 영화입니다. 사실 처음엔 [콜드 마운틴]을 보려했지만 약속 장소인 목동 CGV에서 [콜드 마운틴]이 상영하지 않는 바람에 어쩔수없이 [그녀를 믿지 마세요]를 봤습니다. 물론 김하늘의 열렬팬인 저는 내심 [그녀를 믿지 마세요]를 보게 된 것이 기뻤지만... ^^
그날 tolkin님과 같이 자리를 해주신 석봉님과 함께 토요일 아침부터 영화를 보고나온 우리는 영화보다 비싼 모닝 커피를 마시며(그건 tolkin님이 쏘셨답니다. ^^)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저는 원래 영화를 보고나서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했었는데 이렇게 영화를 좋아한다는 한가지 공통점만으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영화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익하고 재미있었답니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이런 자리를 자주 만들어야 겠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것도 좋더군요. 물론 그 자리에 사랑하는 사람도 함께 있어 준다면 금상첨화겠죠? ^^;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또 코미디? 지겨워!'라며 보기전부터 정색을 하실 분들도 분명 계실테지만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흔하디 흔한 코미디 영화로 치부해 버리기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뻔하지만 유쾌하고, 배우들은 오버연기를 펼치지만 다른 코미디 영화처럼 유치하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코미디에서 로맨스로 전환되는 그 시점이 아주 절묘하여, 가볍디 가벼운 코미디 영화에서 갑자기 진정한 사랑을 논하는 가증스러운 영화를 싫어하는 제게도 이 영화의 로맨스만은 그 진심을 믿고 싶을 정도로 감동스러웠답니다. 암튼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심각한 영화들이 극장가를 휩쓸고 있는 요즘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하나의 편안하고 유쾌한 휴식과도 같은 영화였습니다.

1. 김하늘의 코믹 연기가 물이 오르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의 절반의 재미는 바로 김하늘이 책임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능청스러운 연기로 청순가련형의 여인네에서 뻔뻔스러운 시기꾼으로 극단적인 양면의 얼굴을 동시에 보여주며 그녀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더니만 급기야는 마치 물만난 고기만약 스크린을 종횡무진 활약하며 영화의 분위기를 단숨에 휘어잡아 버립니다.
[바이준]으로 데뷔한후 [동감]으로 스타 배우가 된 그녀는 분명 멜로 영화의 주인공으로 적합한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최고 히트작인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볼 수 있듯이 코미디 연기에도 상당한 내공을 가지고 있습니다. 멜로 연기와 코미디 연기... 이 극단적인 두 얼굴을 가진 그녀는 2004년들어서 [빙우]라는 멜로 영화와 [그녀를 믿지 마세요]라는 코미디 영화를 동시에 개봉시키며 자신의 진짜 얼굴을 찾기 위한 시험에 들어갔습니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은 [빙우]보다는 [그녀를 믿지 마세요]에 더 후한 점수를 줌으로써 결국 코미디 영화의 승리로 끝나 버렸지만...
하지만 앞으로도 김하늘의 양면적 연기는 계속 될듯이 보입니다. [그녀를 믿지 마세요]는 김하늘식 코미디 연기의 진수를 보여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의 멜로 연기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후반부에 코미디에서 멜로로 자연스럽게 전환되게끔 했으니 말입니다. 암튼 김하늘의 연기가 물이 올랐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2. 가장 한국적인 로맨틱 코미디...

김하늘과 더불어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은 바로 한국적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에게 모든 스토리를 집중시켰던 이전의 로맨틱 코미디와는 달리 이 영화는 떠들썩한 주변 인물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노망든 할머니부터 시작하여 엄격한 아버지, 푼수같은 누나와 의심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고모등 이 영화는 대가족 코미디를 표방하고 나섭니다.
사실 이러한 대가족 코미디의 열풍은 헐리우드에서 먼저 불었었습니다. 작년 스타급 배우는 단 한명도 나오지 않으면서 깜짝놀랄만한 흥행 성적을 보여준 [나의 그리스식 웨딩]의 대성공으로 대가족 코미디의 재미를 깨달은 헐리우드는 급기야 12명의 아이들로 인하여 하루하루가 거의 전쟁터로 변해버린 한 가정을 소재로한 [12명의 웬수들]로 또다시 짭짤한 재미를 보았었습니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대가족의 원조격인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영화들이 그리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것은 똑같은 대가족을 소재로 한 코미디라고 할지라도 서양과 동양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그리스식 웨딩]과 [12명의 웬수들]이 대가족 코미디로 조금 부족했다면 [그녀를 믿지 마세요]가 적격일겁니다. 마치 포근한 고향집에 내려온 듯한 느낌이 드는 용강 마을에서부터 시작하여 이 영화속 대가족들은 정말로 고향의 큰집 식구들처럼 유쾌하면서도 편안합니다. 영주(김하늘)가 가방만 되찾고 돌아가려하다가 가족의 포근함을 느끼고 계속 용강마을에 머무르는 것처럼 영화를 보던 저 역시도 복잡한 서울에서 벗어나 시끄럽지만 마음만은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용강 마을같은 시골에서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이들 정도입니다.
김하늘이 한창 물오른 연기력으로 영화속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동안 용강 마을의 포근한 풍경과 순박한 시골 캐릭터들은 너무 들떠버리기 쉬운 영화의 분위기를 편안하게 잡아줍니다. 그것이 바로 배우들의 오버 연기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이 영화를 유치하지 않게 잘 균형을 잡아준 원동력임과 동시에 '한국적인'이라는 단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입니다.


 


    
3. 코미디와 멜로의 사이에서...

김하늘과 강동원의 연기가 코미디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면 용강마을의 풍경과 순박한 시골 캐릭터들은 멜로의 축을 맡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의 후반부까지 이 멜로의 축은 노골적으로 이 영화가 멜로로 나갈 것임을 암시하지 않고 오히려 김하늘과 강동원의 오버 연기를 유치하지 않게 뒷받침해주며 코미디의 한축인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이 되면 될수록 용강마을의 멜로적 힘은 서서히 발휘되기 시작합니다. 영화속 영주가 그랬듯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까지도 용강마을의 포근함에 젖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용강 마을과 사랑에 빠져버립니다.  
여기에서 로맨틱 코미디에 익숙한 분이라면 강동원이 연기한 희철에게 사랑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용강 마을이라는 영화적 배경에 사랑에 빠진다는 것에 의아해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솔직히 희철은 사랑에 빠질만한 매력이 없습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는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멍청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영주에게 사사건건 당하기만 하는 이 캐릭터는 강동원의 망가짐을 토대로 영화의 코미디적 요소에 한 몫을 하지만 멜로적인 부분에선 전혀 제 몫을 해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희철씨는 용강마을과 너무나도 닮았어'라는 영주의 대사가 의미하듯 희철의 멍청함은 고추 총각 경연대회를 거쳐 용강 마을의 순박함과 겹쳐집니다. 고추 총각 경연 대회에서 희철이 설운도의 '여자 여자 여자'를 부르는 장면은 강동원과 용강 마을을 겹쳐지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결국 영주도 그렇고 관객도 그렇고 마지막에 사랑에 빠지는 것은 희철이 아니라 바로 용강 마을의 순박함입니다. 하지만 희철이 용강 마을의 순박함과 너무나도 닮았기에 용강 마을에 대한 사랑은 자연스럽게 희철에게로 옮겨지는 것이죠. 배형준 감독이 과연 이것까지 염두에 두고 영화를 찍었는지, 아니면 용강 마을이라는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삼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러게 된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벼운 코미디에서 가슴 뭉클한 멜로로 변환되는데 아무런 거부감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은 도시인들에겐 언제나 짝사랑의 대상인 시골의 포근함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기 때문입니다.


 


  
4. 진심은 거짓보다 어렵다.

거짓말은 하기 쉽습니다. 물론 영주의 말처럼 거짓말은 고도의 두뇌 게임으로 순발력과 기억력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진심을 말하는 것보다는 휠씬 쉽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열고 그 진심을 말하는 것. 마치 자기 자신이 발가벗어진 듯한 창피한 느낌도 들고 그 진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때 겪어야할 상처까지 생각하게 된다면 남에게 진심을 보여주는 것은 더욱더 어려워집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코미디는 쉽지만 멜로는 어렵습니다. 김하늘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만으로도 영화는 얼마든지 관객을 웃길 수 있습니다. 코미디는 단지 웃기는 기발한 상황과 코미디 연기의 능력을 가진 배우들만 캐스팅하면 얼추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관객들에게 영화속 캐릭터들의 진심을 느끼게 해야만 관객들도 영화속 사랑에 빠져 그들의 사랑에 공감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상당히 성공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영주의 거짓말로 관객들을 실컷 웃게 만들면서도 시골 풍경의 순박함으로로 단번에 거짓을 진심으로 바뀌어 놓았으니 말입니다. 물론 그 진심이 다분히 로맨틱 코미디적이라고는 하지만 티격태격 싸우는 영주와 희철의 모습에서 실컷 웃고나서 마지막엔 이 두사람의 사랑에 흐뭇해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이 양면적 배우의 얼굴을 가진 김하늘의 힘이며, 한국적인 시골 풍경의 소박함의 힘이고, 이 둘을 잘 조화시킨 배형준 감독의 힘이기도 합니다. 암튼 오랜만에 제대로 만들어진 우리의 로맨틱 코미디를 보게 된 것 같아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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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ja
아직은 좀 더 외로움이 깃든 영화가 땡깁니다^^  2004/02/24   
쭈니 저런 외로울수록 웃어야하는데...
전 그랬거든요.
 2004/02/25   
namja
아하하하 웃기야 많이 웃죠.
문제는 음 모랄까요 사진쟁이다 보니 영상을 사진으로 보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처음으로 이 구도는 별로야 이런 생각이
전혀 안든 영화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입니다.
장면장면 스틸컷이 아닌 정말 환상적이였거든요.^^;;
영화보면서 배웠죠 쩝
 2004/02/27   
쭈니 흠~ 역시 직업정신이 투철하신 분은 틀리군요. ^^
[사랑도 통역되나요] 분명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믿지 마세요]도 꽤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용강마을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한 그 토속적인 풍경이 전 이국적이고 도시적인 [사랑도 통역되나요]보다 더 마음에 와닿던걸요.
아마 좀 컨츄리틱해서인가??? ^^
 2004/02/27   
이 영화 이뻤습니다.. 추천이라기보단..
제 입맛에 맞는 캐스팅과 시나리오.. 같은거죠
내용도 이쁘고.. 따뜻하고.. Aubrey(주제곡:오브리)도 좋았습니다..

 2008/08/24   
쭈니 네, 정말 예쁜 영화였습니다.
강동원... 김하늘... 참 예쁜 배경을 만들어주는 배우죠. ^^
 2009/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