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바비 패럴리, 피터 패럴리
주연 : 맷 데이먼, 그렉 키니어
개봉 : 2004년 2월 27일
관람 : 2004년 2월 18일
예전엔 시사회 당첨되는 것조차 힘이 들더니 요즘은 하루에 두편의 시사회가 당첨이 되어 절 곤란하게 하는 일이 벌써 세번이나 발생하는 군요. [베이직]과 [말죽거리 잔혹사]가 동시에 당첨되었던 지난 1월 6일엔 두편의 영화를 보느라 눈썹이 휘날리도록 뛰어다녔고, [러브 미 이프 유 대어]와 [스쿨 오브 락]이 동시에 당첨이 되었던 1월 28일엔 [스쿨 오브 락]을 결국 포기했야하는 엄청난 시련(?)을 겪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베른의 기적]이라는 독일 영화와 [붙어야 산다]라는 헐리우드 영화가 동시에 시사회에 당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어떤 영화를 봐야할지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베른의 기적]이 아무리 슈뢰더 독일 총리를 세번이나 울린 영화라고는 하지만 헐리우드의 소문난 재주꾼 패러리 형제의 코미디보다 재미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 저는 이번엔 조금 수월하게 [베른의 기적]을 포기하고 [붙어야 산다]를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이떤 영화를 포기하느냐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시사회표를 누구에게 주느냐하는 양도의 문제가 제 발목을 잡았습니다. 공짜 영화라고하면 모두들 좋아했지만 '근데 독일 영화야'라는 한마디에 모두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거절을 하더군요. 공짜로 영화 시사회표를 준다고해도 싫다고하니... 제 친구들은 물론이고 제가 알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양도를 시도하다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안가버리자니 앞으로의 시사회 당첨에 걸림돌이 될것같고...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중 드디어 구세주가 나타났습니다. 회사 동료가 흔쾌히 시사회에 가겠다고 나서더군요. 시사회권을 주면서도 그 동료에게 어찌나 고맙던지... ^^;
[붙어야 산다]를 보면서도 [베른의 기적]이 재미없으면 그 회사 동료에게 미안해서 어쩌나 계속 걱정했답니다. 다행히 다음날 회사 동료는 [베른의 기적]이 너무너무 재미있었다며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 순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튼 시사회에 많이 당첨되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하루에 두편의 시사회가 당첨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선택의 문제이건, 양도의 문제이건, 암튼 영화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제겐 곤욕이니까요. (행복한 고민인가요? ^^;)
P.S. 방금 'SBS 접속 무비월드'의 접시꽃 2차 시사회가 발표되었는데 하필 [붙어야 산다]더군요. 젠장할... 이럴줄 알았다면 [베른의 기적]을 보고 [붙어야 산다]를 양도할껄...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없겠죠? ^^
[붙어야 산다]는 샴쌍둥이 이야기입니다. 성격도 외모도 180도로 다르지만 몸이 붙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어 단짝이 되어버린 밥(맷 데이먼)과 월트(그렉 키니어). 연기자가 꿈인 피터는 소극적인 밥을 설득하여 헐리우드로 향하고 그곳에서 그들은 성공과 좌절을 맛봅니다.
얼핏 스토리만 놓고 본다면 이 영화는 장애인을 소재로한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나의 왼발]처럼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는 언제나 사회의 편견을 딛고 일어서는 장애인들의 성공과 죄절을 감동적인 드라마로 치장하여 호평을 받곤 했습니다. 요즘 신문에서 샴쌍둥이의 분리 수술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만큼 샴쌍둥이 형제가 헐리우드에서 성공하는 이야기는 [나의 왼발]의 2004년 버전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의 감독이 패럴리 형제라는 사실입니다. 패럴리 형제가 누굽니까? 화장실 코미디로 악명이 높은 형제 감독이죠. [덤 앤 더머]로부터 시작하여 [킹핀],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등등 패럴리 형제의 코미디는 언제나 유쾌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질 코미디라는 수식어도 항상 따라다녔습니다. 그러한 패럴리 형제의 영화인 만큼 [붙어야 산다]는 [나의 왼발]의 2004년 버전이 아닌 쌈쌍둥이를 화장실 코미디 소재로 전락시키는 패럴리 형제의 또다른 화장실 코미디 영화가 될 가능성도 컸습니다.
그러한 우려는 사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라는 영화에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외형상으로는 '진정한 사랑은 외면의 아름다움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뚱녀를 화장실 코미디 소재로 전락시킨 우스꽝스러운 영화에 불과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붙어야 산다]가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젠 패럴리 형제가 도를 넘어서려고 하는군'이라는 성급한 평가가 나올만 했죠.
하지만 성급한 평가는 아직 이릅니다. [붙어야 산다]는 패럴리 형제도 화장실 코미디가 아닌 가슴 따뜻한 진정한 코미디에서도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대단한 영화입니다. 패럴리 형제의 완벽한 변신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붙어야 산다]가 패럴리 형제의 이전 영화들과 다른 점은 그 어디에도 지저분한 화장실 코미디는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패럴리 형제의 최고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경우에도 패럴리 형제 특유의 화장실 코미디는 그 강도를 더해 갔습니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에선 화장실 코미디의 정도가 조금 덜해졌지만 소외 계층에 대한 비꼬는 웃음이 오히려 절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악동 이미지의 패럴리 형제가 정작 소외 계층에 대한 화장실 코미디 소재 전락으로 적합한 샴쌍둥이 이야기에선 자신들의 스타일을 싸그리 던져 버립니다. 이 영화엔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정액 무스처럼 화장실 코미디의 지저분한 소품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밥과 월트가 벌이는 코미디는 여전히 유쾌하지만 그 어디에도 패럴리 형제의 주특기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썀쌍둥이를 일반적인 사회의 잣대인 동정하거나 아니면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모습에 감동을 받으며 노골적으로 박수를 보내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비록 몸은 붙었지만 일반인들과 하나도 다를것이 없는 보통 사람이라는 점을 이 영화는 강조합니다. 아니 오히려 서로 붙었기 때문에 그들은 불행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행복하다고 이 영화는 말합니다. 이건 대단한 발전입니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에서도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시도하긴 했지만 실패에 멈춘 패럴리 형제는 결국 [붙어야 산다]는 통해 소외 계층을 단순한 코미디적 소재가 아니라 그 이상을 넘어서는 가슴 따뜻한 코미디적 소재로 만드는 법을 배운 겁니다.
[붙어야 산다]는 샴쌍둥이인 밥과 월트가 불쌍하기는 커녕 오히려 둘이기에 남들보다 더욱 뛰어난 갖가지 재능들을 펼칠 수 있다는 점을 유쾌한 소동과 더불어 재미난 코미디 영화로 만들어 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며 정신없이 웃는 동안 어느사이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처음 밥과 월트의 몸이 서로 붙은 장면에서 불편한 표정을 짓던 관객들도 영화를 보며 그들의 그러한 모습에 오히려 따뜻한 웃음을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이제 [붙어야 산다]는 패럴리 형제가 코미디 영화의 악동에서 진정한 코미디 영화의 달인이 된겁니다.
[붙어야 산다]에서 변신을 한 것은 패럴리 형제뿐이 아닙니다. 반듯한 이미지의 맷 데이먼도 이 영화를 통해 패럴리 형제만큼이나 대변신에 성공을 하였습니다.
사실 [굿 윌 헌팅]에서 맷 데이먼이 벤 애플렉과 함께 출연했을때 스포트라이트는 맷 데이먼에게 쏟아졌습니다. 그의 평범한 외모에서 품어져나오는 폭발적인 연기력은 얼굴은 잘생겼지만 평범한 연기를 보여준 벤 애플렉보다 휠씬 스타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굿 윌 헌팅]이후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은 맷 데이먼이 아닌 벤 애플렉이었습니다. [진주만], [썸 오브 올 피어스], [데어 데블], [페이첵]등 블럭버스터에 주로 출연을 해온 벤 애플렉은 제니퍼 로페즈와의 스캔들을 거치며 확고부동한 헐리우드의 스타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맷 데이먼은 [레인 메이커], [라운더스], [리플리], [파인딩 포레스트] 등 큰 영화보다는 작고 아기자기한 영화들에서 재능을 착실하게 쌓아갔습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오션스 일레븐]과 같은 대형 흥행 영화에도 출연을 하긴 했지만 그들 영화에서 맷 데이먼은 주연이라기 보다는 조연에 가까운 비중으로 그리 눈에 뛸만한 활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본 아이덴티티]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스파이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그는 절친한 친구인 벤 애플렉처럼 헐리우드의 주류 인기 배우로 발돋음하기로 결심을 한것처럼 보입니다. 반듯한 이미지의 그가 샴쌍둥이가 되어 펼치는 그 포복절도할 코미디는 작은 영화에서 착실하게 실력을 쌓은 그가 이젠 헐리우드의 대스타로 발돋음할때가 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제니퍼 로페즈와의 결별과 연이은 출연 영화들의 흥행 실패로 인기전선에 이상이 생긴 벤 애플렉의 행보를 생각하다면 정말 이상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암튼 [붙어야 산다]는 패럴리 형제와 맷 데이먼의 대변신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가슴 따뜻한 코미디로 패럴리 형제 특유의 화장실 코미디를 기대하고 갔던 제겐 정말로 행복한 배신감을 안겨준 영화입니다. 배신감이 이렇게 행복할줄이야 누구 알았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