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낸시 마이어스
주연 : 잭 니콜슨, 다이앤 키튼, 키아누 리브스, 아만다 피트
개봉 : 2004년 2월 13일
관람 : 2004년 2월 12일
[사랑할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은 2004년들어서 제가 7번째로 초대된(그리고 6번째로 참가한) 시사회 영화입니다. 이제 겨우 2월 중순인데 1개월하고 2주동안 제가 평생 가보았던 시사회 횟수보다 몇배나 많은 시사회에 초대되었던 겁니다. 이거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공짜 영화에 대한 저의 간절한 마음을 하늘도 알아준 것인지...
암튼 이번 시사회는 '씨네통'이라는 사이트에서 초대되었습니다. [베이직]에 이어 '씨네통' 시사회에 두번째 초대이지만 솔직히 정식으로 시사회에 초대된 것은 아닙니다. '씨네통'에서 실시하는 설문조사에 글을 남겼다가 그 글이 당첨되어, '씨네통'에서 실시하고 있는 시사회중 보고 싶은 시사회를 하나 선택하라길래 [사랑할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을 선택한 것입니다.
정식으로 시사회에 초대된 것이 아니어서인지, 아니면 운이 안좋았는지 [사랑할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의 극장 좌석은 정말 최악이었습니다. 예전에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보았을때 영화표가 없어서 앞에서 3번째 좌석에 앉아 목이 아파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때와 [중독]을 보았을때 하필 출구쪽 좌석에 앉아 영화가 시작하고도 몇십분동안 왔다갔다하는 관객들때문에 영화에 집중하지 못했던 때를 제외하곤 아마도 제가 앉았던 극장 좌석중 최악의 좌석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맨뒤에서 두번째 그것도 맨 구석 끝자리에 앉아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지는 극장 화면과 영화가 시작하고 한참동안이나 어수선 했던 주위의 시끄러움을 억지로 참고 영화를 봐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은 정말로 유쾌하고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아마도 올해 본 영화중에서 최고로 재미있었으며, 지금까지 봐온 그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 중에서 최고로 꼽아도 결코 손색이 없는 그런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오며 이 영화가 건네준 소중한 행복감에 흠뻑 젖어 있었으니까요.
[사랑할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은 놀랍게도 중년(아니 노년이라고 해야하나???)의 로맨스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로맨틱 코미디라면 당연히 젊고, 멋진, 서있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되는, 그런 배우들이 펼쳐내는 환상적이고 로맨틱한 행복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사랑할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은 정말로 이상한 로맨틱 코미디인 겁니다. 60대의 사랑이라는 소재로 처음에서부터 로맨틱 코미디의 장르적 특성을 철저하게 파괴하면서도 로맨틱 코미디의 재미는 전혀 잃지 않고 오히려 다른 로맨틱 코미디가 가지고 있는 식상함도 가볍게 떨쳐냈으니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고스람히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이 됩니다. 솔직히 정상적인 로맨틱 코미드를 만든다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키아누 리브스와 아만다 피트였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관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탄성을 질렀을 정도로 키아누 리브스와 아만다 피트의 젊음은 그 자체가 아름다웠으니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는 더할 나위없이 적합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젊은 그들이 아닌 늙은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입니다. 다른 로맨틱 코미디였다면 잘해봐야 영화의 양념 역활인 주인공의 부모님 정도였을 그들이 당당하게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된 겁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정작 로맨틱 코미디에 적합한 배우들은 조연급으로 돌려버리고 다른 로맨틱 코미디에서는 당연히 조연급 취급을 받았어야 마땅할 배우들은 당당하게 주연이 되어 진정한 사랑을 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대담한 선택을한 여성 감독 낸시 마이어스의 능력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전혀 로맨틱 코미디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배우들을 이용해서 다른 로맨틱 코미디보다도 더욱 상큼한 영화를 만들어 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낸시 마이어스 감독의 능력만큼이나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의 놀라운 연기도 톡톡히 한 몫을 해냈다는 사실을 결코 부인할 수는 없을 겁니다.
로맨틱 코미디인 이 영화에서 주연 배우의 캐스팅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만큼 배우들의 매력에 기대는 영화는 없을테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잭 니콜슨이라는 배우가 없었다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었던 영화입니다. 60대라는 나이에 접어든 노년의 배우이면서도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남성적 매력을 함께 지닌 배우로 잭 니콜슨만한 적임자는 없었을테니 말입니다.
이미 잭 니콜슨은 [이보다 더 좋을순 없다]라는 로맨틱 코미디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괴짜 소설가 멜빈을 연기하며 헬렌 헌트와의 특별한 로맨스를 이끌어 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순 없다]는 1998년에 개봉되어 흥행에도 대성공을 거둠으로써 잭 니콜슨이 아직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써 손색이 없음을 대외적으로 입증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잭 니콜슨의 진가는 [이보다 더 좋을순 없다]보다는 [성질 죽이기]와 [어바웃 슈미트]에서 잘 드러납니다. [성질 죽이기]에선 허둥지둥하는 아담 샌들러와는 달리 세월에서 묻어나는 여유로운 코미디를 펼침으로써 노년 배우의 노련함을 보여주더니만 [어바웃 슈미트]에서는 귀여운 노년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함으로써 잭 니콜슨만의 매력을 맘껏 뽐내기도 했습니다.
[사랑할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은 바로 이러한 잭 니콜슨 영화들의 총판이기도 합니다. 그가 이 영화에서 연기한 해리 샌본은 [이보다 더 좋을순 없다]에서의 로맨틱함과 [성질 죽이기]의 여유로움, 그리고 [어바웃 슈미트]의 귀여운 이미지를 한데 묶어서 완벽한 노년의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탈바꿈 시켜놓은 겁니다.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여유로움과 젊은 여자들과의 로맨스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나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남성적 매력... 거기에다가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귀여움까지 지녔으니 완벽한 외모를 지닌 키아누 리브스를 조연으로 밀어내고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그에겐 충분히 있는 셈입니다.
잭 니콜슨의 진가는 영화를 보기전부터 그의 이전 영화로 어느정도 예상을 했지만 다이앤 키튼의 완벽한 로맨틱한 연기는 솔직히 예상외였습니다.
이 영화를 보기전엔 다이앤 키튼이 잭 니콜슨의 상대역으로 출연한다는 정보를 듣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의 외모는 [신부의 아버지]에서와 같은 포근한 어머니의 이미지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조강지처 클럽]에서 일탈을 꿈꾸는 중년 여성으로 활약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녀가 배우로써의 매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아야만 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적임자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사랑할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은 다이앤 키튼에게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합니다. 50대를 바라보는 중년의 나이에 걸맞지 않게 사랑에 빠진 귀여운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 그녀는 이 영화가 건져낸 최고의 발견입니다. 눈부신 젊음을 무기로한 아만다 피트도 다이앤 키튼의 귀여움앞에서는 그 빛이 바래질 정도이니 정말 놀랍다는 말밖에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입니다.
해리와의 느닷없는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서는 뒤늦게 찾아온 사랑에 행복해하는 성숙한 여인의 체취가 풍겼으며, 해리와 헤어진 후 시도때도 없이 엉엉 울어대는 모습에서는 첫사랑에 실패한 10대 소녀의 순진한 모습을 연상시켰습니다. 여성 관객들조차도 '우와'라는 환호성을 지르게 하던 줄리안(키아누 리브스)과의 커플 연기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다이앤 키튼은 여성적인 매력도 아직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던 겁니다. 특히 그녀의 전라의 모습이 잠시 비춰지던 장면은 저 몸매가 40대 후반의 몸인지 정말 놀랍더군요. (갑자기 요즘 인터넷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아줌마 몸짱이 생각났답니다.)
결국 이 영화는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이라는 로맨틱 코미디에 적합한 중년 배우들을 만남으로써 중년의 나이에 이루는 사랑 이야기라는 로맨틱 코미디로는 색다른 소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어색함이 없는 그런 특별한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어 냈습니다.
[사랑할때 버려야할 아까운 것들]... 무언가 시사하는바가 큰 듯한 이 영화의 제목은 이 영화의 그 모든 로맨틱 코미디로써의 진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에 빠짐으로써 독신 생활이 가져다 주는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해리처럼... 사랑에 빠짐으로써 냉철하게 지켜온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혼녀의 삶과 젊고 멋진 줄리안의 구애를 버려애 했던 에리카처럼... 이 영화는 사랑에 빠짐으로써 버려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유쾌하게 이야기합니다.
중년의 나이에 빠진 사랑이라는 소재만큼이나 다른 젊고 싱싱한 로맨틱 코미디가 전해주는 달콤하고 순진한 사랑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경험한 넉넉한 중년의 사랑에서 느껴지는 인생에 대한, 사랑에 대한 달관적 자세를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관객들이 잭 니콜슨과 다이앤 키튼의 귀여우면서도 넉넉한 사랑 이야기에 웃고 즐기는 동안 뒤늦게 찾아온 그들의 사랑과 이별에 가슴아파 해야 하며, 마지막에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여유로움, 늘씬한 여성들과의 로맨스를 버리고 가족이라는... 사랑이라는 소중함을 얻어낸 해리의 그 행복한 미소에서 진정한 행복도 발견하게 됩니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특별한... 그리고 완벽한 로맨틱 코미디는 없다'라고 말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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