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존 우 (오우삼)
주연 : 벤 애플렉, 우마 서먼, 에론 에크하트
개봉 : 2004년 1월 20일
관람 : 2004년 1월 31일
목요일, 금요일에 밤늦게까지 야근하고 휴일인 토요일마저 늦은 밤까지 일을 하더니만 결국 일요일엔 밤을 꼬박 새고 회계 감사를 받았습니다. 며칠을 야근했지만 이젠 입사한지 일주일밖에 안된 저로써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회계 감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벅찬 일이었습니다. 물론 직장 상사이신 김흥문 차장님이 제 옆에 계셔주셨지만 '진정한 가르침은 혼자 고생해서 깨우치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신념을 가지신 김차장님은 회계 감사날이 코앞으로 다가오던말던 저혼자의 힘으로 회계 감사 준비를 하도록 내버려 두시더군요.
결국 어렵사리 회계 감사 준비는 대강 마치었지만 실수투성이인 저때문이 회계 감사가 시작된 오늘까지도 준비해야 할 것은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전날 잠한숨 자지 못하고 꼬박 밤을 지새운 저는 눈을 뜨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힘이 들었습니다. 몇년전만해도 밤을 지새우며 놀아도 끄덕없었는데 이젠 저도 늙었나봅니다. 단 하룻밤을 지새워놓고 이렇게 비실거리다니... 일주일간 계속되는 회계 감사. 사실은 오늘도 밤늦게까지 남아서 하다못한 일을 끝마쳐야하지만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어쩔수없이 일찍 퇴근을 했답니다.
하지만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집에 들어오자마자 피곤이 싹 풀리고 그렇게도 무겁던 눈꺼플은 다시 한없이 가벼워 졌답니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컴퓨터에 앉아 한동안 바빠서 쓰지 못한 '영화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정말 웃기죠? 회사에선 그렇게 피곤했었는데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 피곤이 싹 풀리다니... 아마도 제 몸속엔 저도 모르고 있는 꾀병쟁이가 숨어있나 봅니다. 암튼 그 꾀병쟁이 덕분에 일찍 퇴근하고, 밀려있던 '영화 이야기'도 쓰게 되었군요. 이거 꾀병쟁이한테 고마워해야 할지... 저대신 남아서 일하고 있을 김차장님한테 미안해해야 할지... 난감하군요. ^^;
[페이첵]은 제가 좋아할만한 요소들을 완벽하게 갖춘 영화입니다. 오우삼이 연출을 맡았으며, 벤 애플렉과 우마 서먼이 주연을 맡았고, 필립 K. 딕의 공상과학소설을 영화한 이 영화는 SF영화와 스릴러,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제겐 딱 알맞은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물론 [페이첵]은 제가 2시간동안 흥미진진하게 즐길만한 오락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오우삼, 벤 애플렉, 우마 서먼, 필립 K.딕이라는 제가 너무 기대한 이름들이 즐비했기 때문인지 제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오우삼의 능력이라면... 필립 K. 딕의 탄탄한 원작이라면... 벤 애플렉과 우마 서먼의 매력이라면... 더 잘만들수도 있었을텐데하는... 암튼 사람의 욕심은 한도 끝도 없나봅니다. 2시간동안 재미있게 영화를 즐겨놓고 이제와서 딴소리를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
1. 필립 K.딕 원작소설의 영화치고는 아쉽다.
필립 K. 딕. 언제부터인지 저에겐 상당히 매력적인 이름이 되어버린 공상과학소설가입니다.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이 개봉되었을때만해도 필립 K. 딕은 낯선 이름에 불과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를 재미있게 보기엔 전 너무나도 어렸으며, [토탈 리콜]은 필립 K. 딕이라는 이름보다는 폴 버호벤과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이름이 더욱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톰 크루즈가 조우한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개봉되었을때 저는 필립 K. 딕의 이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를 발견하게 된 저는 [블레이드 러너]의 진정한 재미도 느낄 수 있었으며, 폴 버호벤과 아놀드 슈왈제네거라는 헐리우드의 스타급 감독과 배우의 그늘뒤에서 든든하게 버티고 있는 그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임포스터]를 보았을때는 어린 시절 제가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단편 공상 과학 소설을 쓴 사람이 바로 그였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뒤늦게 저는 그가 어린 시절의 꿈을 함께 해준 소중한 친구였었음을 깨닫게 된겁니다.
그런만큼 필립 K. 딕의 원작을 영화화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페이첵]은 제게 엄청난 기대작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단언컨데 [페이첵]은 그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중에서도 가장 평범한 영화입니다. [블레이드 러너]의 그 암울한 미래도 없으며, [토탈 리콜]의 화려한 특수효과도 없고,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세련된 영상과학도 없으며, [임포스터]의 충격적인 반전도 없습니다. 물론 [페이첵]은 다른 헐리우드 영화와 비교해서 결코 뒤지지않는 재미를 갖추고 있지만 필립 K. 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상 단순한 재미 그 이상을 저는 기대하고 있었던 겁니다. 필립 K. 딕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저에게 너무나도 커다란 존재가 되어버린 겁니다.
2. 우마 서먼의 영화치고는 아쉽다.
벤 애플렉은 이미 [데어데블]이후 별다른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우마 서먼은 아직도 제겐 그 이름만으로 당장 극장으로 뛰어가고프게 만드는 매력을 갖춘 배우입니다. 2003년에 극장에서 놓친 영화중 제게 가장 아쉬웠던 영화가 바로 [킬빌 vol 1]이었을만큼 우마 서먼은 충분히 매력을 갖추고 있는 배우입니다. 10년전 그녀가 무명이었던 시절 당시 최고의 섹스킴볼이었던 킴 베이싱어의 동생으로 잠시 나왔던 [최종분석]때부터 저는 우마 서먼에게 빠져들었었습니다. 최악의 영화였던 [배트맨 앤 로빈]에서조차 우마 서먼이 연기한 포이즌 아이비는 매력적이었습니다. (물론 [배트맨2]의 캣우먼 미셀 페이퍼보단 못했지만... ^^) [펄프픽션]에서 우마 서먼이 존 트라볼타와 함께 춘 춤을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을만큼 전 우마 서먼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단언컨데 [페이첵]은 우마 서먼이 주연을 맡은 영화중에서 가장 그녀의 매력이 드러나지 않은 영화입니다. [페이첵]을 보며 '이젠 우마 서먼도 늙었구나'라고 느꼈을만큼 이 영화에서 그녀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다른 액션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악당에게 인질로 잡히고 주인공을 궁지에 몰아넣는 그런 짜증나는 캐릭터가 아닌 멋진 액션으로 주인공을 도와주는 당찬 여전사급 주인공이지만 그녀의 늘씬한 발차기만으로는 그녀의 매력이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우마 서먼의 매력이 십분발휘되지 못한 이유는 그녀가 맡은 레이첼이라는 캐릭터가 영화의 비중과는 별도로 스토리 구성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이클 제닝스(벤 애플렉)가 위험을 무릎쓰고 영웅이 되기로 나서는 과정에서 사실 레이첼은 불필요한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영웅에겐 아름다운 여주인공이 옆에서 도와주어야 한다는 헐리우드 영화의 공식을 위해서인지, 액션과 로맨스를 적절히 섞고 싶었던 오우삼 감독의 욕심때문인지, 레이첼의 비중은 한없이 커지고 결국엔 [페이첵]이 흥미진진한 스릴러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데에 방해가 되기에 이르릅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표현하기엔 필립 K. 딕의 원작 소설이 가지고 있는 미래에 대한 풍경과 메세지는 너무나도 복잡했던 겁니다. 오우삼 감독은 약방의 감초같은 사랑 이야기를 위해 SF 스릴러 액션 영화의 재미를 상당부분 스스로 포기를 했으며 결국 그것이 그 어떤 영화에서도 배우로써의 매력을 잃지 않았던 우마 서먼이 주연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웠던 이유입니다.
3. 오우삼 감독의 영화치고는 아쉽다.
저의 철없는 사춘기 시절 동네의 동시 상영 영화관에서 항상 저와 함께 해주었던 오우삼 감독의 암울한 홍콩 느와르 영화는 이젠 성인된 지금도 아련한 추억이 되어 있습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었을때 저는 다시는 홍콩 느와르 영화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 했었고, 오우삼이 헐리우드에 진출해서 [하드 타켓]을 찍을때는 오우삼의 액션 스타일이 헐리우드에 동화되어 사라질지도 모른다며 안타까워 했었습니다.
하지만 오우삼은 [브로큰 애로우]를 거쳐 결국 [페이스 오프]로 헐리우드의 거대한 영화 시스템도 결코 그의 액션 스타일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미션 임파서블 2]에서는 오히려 헐리우드 액션 스타일을 오우삼식 액션 스타일로 변모시키는 능력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윈드 토커]에서 별안간 그의 액션 스타일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오우삼 특유의 비장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헐리우드 전쟁 영화 특유의 휴머니즘으로 포장된 애국주의만이 가득 남아 있었던 겁니다. 물론 미국에서 이방인일수 밖에 없는 오우삼의 입장에서 헐리우드에 더욱 안전하게 안착하려면 [윈드 토커]같은 미국적인 영화를 한번쯤은 만들 수 밖에 없음을 이해했기에 저는 그의 다음 영화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페이첵]을 만난 겁니다.
여러모로보나 [페이첵]은 [윈드 토커]로 실망만을 안겨준 오우삼이 다시한번 자신의 액션 스타일을 맘껏 뽐낼 수 있는 영화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페이첵]이 [블레이드 러너]에 홍콩 느와르를 더한 영화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블레이드 러너]처럼 암울한 미래에 홍콩 느와르와 같은 비장미가 철철 넘치는 영화를 상상했던 겁니다. 하지만 [페이첵]에는 그 어디에도 오우삼 액션의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 총을 겨누는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첩혈가두]의 그 유명한 한장면이 떠오르고 오우삼의 영화엔 언제나 등장하는 비둘기가 이번에도 카메오로 잠시 나오기는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철저하게 헐리우드 액션화된 [페이첵]이 오우삼 액션으로 변모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이젠 자신의 스타일을 버리고 헐리우드 액션 스타일에 철저하게 동화된 모습... 아직 이 한편의 영화로 오우삼을 평가하기엔 이르지만 완벽하게 차려진 밥상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흔하디 흔한 헐리우드 액션 스타일만을 보여준 [페이첵]은 그렇기에 제겐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페이첵]은 분명 제게 아쉬운 점이 많은 영화였지만 그 이쉬움은 어디까지나 필립 K. 딕, 우마 서먼, 오우삼을 좋아하기에 비롯된 겁니다. 그들이 뭉쳤다면 [페이첵]보다 몇배는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분명 있건만 그러지 못하고 평범한 SF 액션 스릴러로 머문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언제 또 이처럼 환상적인 조합을 만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에 [페이첵]에 대한 제 아쉬움 더욱 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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