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얀 사뮤엘
주연 : 마리옹 꼬띠아르, 기욤 까네
개봉 : 2004년 3월 5일
관람 : 2004년 1월 28일
며칠전 기분 좋은 메일을 받았습니다. [러브 미 이프 유 대어]의 시사회에 당첨되었다는... 독특한 로맨틱 코미디 [아멜리에]를 연상시키는 이 영화는 왠지 끌리는 영화였기에 전 정말 기분이 좋았답니다. 하지만 오후에 또다른 메일을 받았습니다. [스쿨 오브 락]의 시사회에 당첨되었다는...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악마같은 여자]의 엽기남 잭 블랙의 그저 그런 코미디 영화처럼 보였지만 [비포 선라이즈]라는 인상 깊은 로맨스 영화를 만든 리차드 링클래이터가 감독이며, 뉴스 위크에서 2003년 10대 영화로 선정했다는 소식에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라는 호기심이 발동했던 영화입니다.
하루에 시사회 당첨 메일을 두번이나 받다니 당연히 최고의 하루가 되어어야 옳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답니다. 그 이유는 하필 [러브 미 이프 유 대어]와 [스쿨 오브 락]의 시사회 날짜가 같았던 겁니다. 할수만 있다면 예전에 [베이직]과 [말죽거리 잔혹사]처럼 하루에 두탕의 시사회를 뛰고 싶었지만 이번엔 시간대도 같은데다가 시사회 장소는 너무 상이하게 달라 도저히 두편다 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한편의 시사회는 포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바로 눈앞에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놓쳐야만 하는 기분... 아마 모르실 겁니다. 구피는 나중에 돈내고 보면 된다고 위로를 했지만 돈내고 보는 것과 시사회로 남들보다 일찍 보는 것은 제겐 하늘과 땅차이랍니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스쿨 오브 락]의 시사회를 다른 분께 양도를 했지만 양도를 하는 그 순간까지 전 정말로 마음이 아팠답니다.
그래도 [러브 미 이프 유 대어]를 본 후 [스쿨 오브 락]의 시사회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정말 마음아픈 일이지만 [러브 미 이프 유 대어]를 포기하지 않은 것에 대해선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러브 미 이프 유 대어]는 [아멜리에]와 더불어 지금까지 제가 보아온 가장 독특한 사랑 이야기이며 영화를 본 후 작지만 정말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러브 미 이프 유 대어]는 프랑스 영화입니다. 전 항상 영화만큼은 편식을 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지만 헐리우드 영화에 비해서 유럽 영화가 꺼려지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프랑스 영화는 다른 유럽의 영화들보다는 우리 관객들에게 더욱 자주 소개되었고 그만큼 관객과 친해질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지루할 것 같고 어려울 것 같은 편견에 보고 싶지 않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요즘엔 뤽 베송 사단의 액션 영화들이 헐리우드 액션 영화 따라잡기를 선언하며 프랑스 영화의 재미를 추구하기도 하지만 규모면이나 기술면에서 아직은 헐리우드에게 대적 상대가 안되기에 프랑스 액션 영화를 보느니 차라리 헐리우드 액션 영화를 한편 더 보는 것을 저는 택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러브 미 이프 유 대어]는 다릅니다. 확실히 이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선택했으면서도 [정사]나 [루시아와의 섹스], [노보]와 같은 다른 유럽 영화처럼 파격적인 장면이나 난해한 사랑에 대한 질문으로 일관하지도 않습니다. 어렸을적부터 우정을 키워온 한쌍의 남녀가 성인이 되고나서도 티격태격하며 결국은 서로간의 사랑을 발견한다는 다분히 헐리우드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형식을 띄고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헐리우드적이지도 않습니다. 프랑스 영화 특유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무장을 하여 헐리우드에서는 차마 보여 주지 못했던 사랑의 또다른 일면인 엽기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내보입니다. 보편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헐리우드적인 영화적 재미를 획득하면서도 사랑의 아름다운 모습 대신 엽기적인 모습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헐리우드의 흔하디 흔한 로맨틱 코미디와의 확연한 차별성을 획득하여 새로운 재미를 창조하고 있는 겁니다. 마치 [아멜리에]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1. 어린 시절의 깜찍한 내기들.
[러브 미 이프 유 대어]는 8살된 사고뭉치에 말썽쟁이인 줄리앙과 폴란드 촌년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 소피의 귀여운 우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들의 특이한 우정은 내기에서부터 시작하여 학교는 물론이고 소피 언니의 결혼식장 심지어는 줄리앙 어머니의 장례식장에까지 귀여운 내기는 계속됩니다. 줄리앙과 소피의 순수한 동심은 내기로 다져진 그들의 우정을 이루어나가는데 그 어떤 것도 장애물이 되지 않습니다. 고리타분한 선생님의 꾸지람과 무서운 줄리앙 아버지의 벌은 물론이고, 암에 걸려 죽음을 맞이하는 줄리앙의 어머니조차 동심으로 가득찬 줄리앙과 소피에겐 장난스러운 내기의 일부일 뿐입니다.
얀 사뮤엘 감독은 이 영화가 데뷔작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음부터 노련하게 영화적인 재미를 이끌어 냅니다. 만약 이 영화가 아무리 사랑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엽기적인 내기가 계속되는 영화였다면 분명 관객들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관객들은 사랑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싶어할뿐 이 영화처럼 사랑의 또다른 일면인 엽기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엽기적인 면이 있습니다. 단지 사랑에 빠진 그 당사자는 자신의 사랑이 남들에겐 다소나마 엽기적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이라도 다른 이들의 사랑의 방식엔 엽기적이라며 손가락질을 해대곤 하죠. 이처럼 자신의 사랑엔 관대하지만 남들의 사랑엔 엄격한 관객들에게 로맨틱 코미디가 누구나 꿈꾸는 아름다운 모습보다 누구나 행하고 있는(그러나 이 영화에선 조금 많이 과장된 듯한...) 엽기적인 행위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분명 용납이 되지 못할 일일겁니다. 하지만 얀 사뮤엘 감독은 이러한 장벽을 간단히 넘어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초반부에 펼쳐진 주인공들의 귀여운 어린 시절의 모습입니다.
사실 [러브 미 이프 유 대어]의 엽기적인 사랑은 줄리앙과 소피의 8살 시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줄리앙과 소피의 장난은 오히려 엽기적이라기 보다는 귀엽고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그것이 바로 동심이 가지고 있는 힘이며 얀 사뮤엘 감독은 바로 그 힘을 이용한 것입니다. 줄리앙과 소피의 깜찍하게만 느껴지는 내기들을 자연스럽게 성인이 된 이들의 엽기적인 사랑으로 연결됨으로써 관객의 불편함을 최소화 시키는 겁니다.
2. 젊은 시절의 철없는 내기들.
이제 이 영화는 17살이 된 줄리앙과 소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8살때도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짓궃은 내기를 일삼습니다. 하지만 10여년의 세월이 흐른만큼 이들의 내기 역시도 이젠 귀엽거나 깜찍하지 않습니다. 속옷을 겉옷 위에 입고 가기, 시험 대기중인 여학생을 꼬셔서 귀걸이 빼앗아 오기, 체육 선생의 뺨을 때리기 등등 줄리앙과 소피의 내기는 비로서 엽기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정도로 그 강도가 쎄졌습니다. 만약 어린 시절부터 이들의 내기를 지켜보지 않았다면 아무 죄없는 남들을 괴롭히면서까지 벌어지는 이 엽기적인 내기들이 짜증스럽게 느껴졌을 겁니다.
암튼 17살이 된 줄리앙과 소피는 어린 시절부터 계속해온 내기들을 버리지 못하면서 서서히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성인의 문턱에 서있는 그들은 8살때처럼 그 어떠한 장애물도 없이 사랑을 이루어 나갈 수는 없습니다. 줄리앙은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서 좋은 직장에 취직도 해야하고, 소피를 끔찍히도 싫어하는 아버지의 완고한 고집도 이젠 모르는척 할 수 없습니다. 줄리앙과 소피의 사랑이 바로 현실이라는 장애물에 걸리고 만겁니다.
여기에서부터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진가를 보여줍니다. 헐리우드의 로맨틱 코미디가 그러하듯이 줄리앙과 소피 역시도 사랑하지만 그 사랑을 인식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결국은 현실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헤어집니다.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사랑은 이미 영화의 소재로써 가치가 없음을 잘 알고 있는 얀 사뮤엘 감독의 다분히 헐리우드적인 설정인겁니다. 그리고 그로인하여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의 영화적인 재미를 획득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들의 사랑을 지켜본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서로 사랑하면서도 헤어져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겁니다. 세상 그 무엇도 장애물이 되지 않았던 줄리앙과 소피의 우정이 사랑으로 발전하려는 순간 세상 그 무엇도 전부 장애물이 되어버리다니... (도대체 소피가 폴란드인이라는 것이 뭐가 죄가 된다고...)
3. 성인이 된 그들의 마지막 내기.
도시 설계사가 되어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런 아이들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줄리앙과 촉망받는 축구 선수의 부인이 되어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 소피. 사랑을 버리고 현실을 선택한 댓가로 그들은 평화롭고 단조로우며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 그동안 이루어놓은 그 모든 것을 잃더라도 꼭 차지하고 싶은 이상한 마력이 있나봅니다. 결국 줄리앙과 소피도 자신이 그동안 이루어 놓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랑을 되찾기위한 마지막 내기를 시도합니다.
어린 시절의 우정엔 그 무엇도 장애물이 될 수 없었던 그들에게 젊은 날의 사랑엔 수많은 장애물이 가로 막혀 있었고 이젠 성인이 된 그 순간의 사랑엔 자신의 그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어마어마한 선택의 순간이 가로 막혀 있는 겁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랑을 이루는 것은 점점 어려워 지는 겁니다.
그리고 전 그들의 마지막 선택에 박수를 보냅니다. 원래 사랑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니까요.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만이 보이고 그 누구도 보이지 않는 그런 것. 사랑하는 사람만 곁에 있다면 돈도 사회적인 지위도 전부 하찮게만 느껴지는 것. 사랑하는 사람만 있다면 미안하지만 가족조차도 포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순진한 생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영화에서만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랑을 이루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대리 만족을 하는 저의 다분히 현실적인 모습에 오늘도 희미한 미소를 짓습니다.
쭈글탱이 늙은이가 되어서도 어린 시절했던 내기 장난들을 여전히 하는 줄리앙과 소피의 모습에서 어쩌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저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너무나도 행복한 미소를 보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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