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04년 영화이야기

[빙우] - 그 산에 가고 싶다.

쭈니-1 2009. 12. 8. 16:36

 



감독 : 김은숙
주연 : 이성재, 송승헌, 김하늘
개봉 : 2004년 1월 16일
관람 : 2004년 1월 17일


설날 흥행을 노리며 1월 16일에 개봉되는 영화들은 모두 한결같이 제겐 기대작들이었습니다. 그 중에서 제 기대작 1위는 단연코 [빙우]였죠. 제가 김하늘이라는 배우를 좋아하기에 [빙우]를 기대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하얀 눈이 뒤덮힌 설산의 아름다움을 잡아낸 예고편이 제 마음을 잡아 끌었습니다.
하지만 16일에 개봉되는 다른 영화들은 개봉전에 모두 볼 수 있었지만 [빙우]는 그리 쉽사리 볼 수 없었습니다. [말죽거리 잔혹사]와 [피터팬]은 시사회로, [브라더 베어]는 컴으로, [내사랑 싸가지]는 개봉전 유료 시사회로 미리 감상을 했지만, [빙우]만큼은 그렇게 호락호락제게 볼 기회를 주지 않은 겁니다. 돈내고 영화를 볼 수 없었던 하지만 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많았던 백수시절 아마 [빙우]의 시사회 신청만 10군데 정도는 했을 겁니다. 취직 후 처음으로 영화를 보러 갈때도 [내사랑 싸가지]보다는 [빙우]가 보고 싶어 예매사이트를 돌아다녔지만 목요일에 [빙우]의 유료 시사회를 여는 곳은 없었습니다. 이 영화 개봉후엔 회사때문에, 설날이기에, 더욱 영화보기가 힘이 들것 같기에 제 마음은 더더욱 조급해 졌죠. 결국 [빙우]가 개봉된 그 다음날인 토요일은 웅이가 예방 주사를 맞기위해 병원에 가는 날이었지만 병원에 가기전에 조조로 영화를 보고 가면 어떻겠냐고 구피에게 조심스럽게 묻고 의외로 그러자는 명쾌한 대답을 얻어냈습니다.
그렇게 [내사랑 싸가지]에 이어 [빙우]도 조조로 받지만 [빙우]는 영화를 보는 그 순간까지도 상당히 정신이 없었습니다. 텅빈 극장에서 끊임없이 진동이 울리던 구피의 핸드폰, 급기야 전화를 받기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던 구피, 극장에서 제가 제일 협오스러워하는 짓을 바로 내 평생 인생의 파트너이자 영화 파트너인 구피가 태연스럽게 자행하는 것을 보고 편안하게 영화를 보기 보다는 내 마음속에서 짜증만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급한 일이라 할지라도 단 2시간 조용히 영화를 보는 그 시간을 방해받는 것은 정말 용서하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인연이 닫지 않는 영화를 억지로 봤던 것이 문제였나 봅니다. 16일 오전이 가장 바쁠 구피를 억지로 극장으로 끌고 왔던 것이 문제였나 봅니다. [빙우]를 보는 그 순간만큼은 구피는 제게 정말로 창피한 존재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 앉아있던 열명도 채 안되는 관객들에게 일어서서 정말 죄송하다고 인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다음부턴 무슨 일이 있어도 극장에 가기전엔 구피의 핸드폰을 빼앗아야 겠습니다. 다시는 구피가 창피하게 느껴지는 것은 싫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그녀가 내가 가장 혐오스러운 짓을 하는 것을 다시는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겁니다.


 



[빙우]는 국내 최초로 산을 배경으로한 영화입니다. 산을 배경으로한 영화는 우리나라에선 처음이지만 헐리우드에선 이미 [K2], [클리프행어], [버티칼 리미트] 등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화들은 한결같이 산의 웅장함을 잡아내며 그 웅장함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펙타클을 이끌어내는 블럭버스터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여러가지 기술적인 문제로 분명 흥행 요소가 다분함에도 불구하고 시도를 하지 못한 겁니다.
그런데 그 일을 신인인 김은숙 감독이 해낸겁니다. 게다가 김은숙 감독이 여성 감독이라는 점에서 저는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성 감독을 비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베테랑 남성 감독도 감히 시도하지 못한 영화를 이제 겨우 첫번째 장편 영화를 찍는 신인 감독이 그 데뷔작으로 산을 배경으로한 영화를 선택했다는 것은 정말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엔 여성 감독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물론 그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헐리우드나 영화 산업이 발전한 그 어떤 나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선 간혹 정말 괜찮은 여성 감독이 관객에게 선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여성 특유의 감수성과 미묘한 감정을 잡아내는 작고 아기자기한 작품성 짙은 영화를 만드는데에 그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질투는 나의 힘]의 박찬옥 감독,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이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하지만 김은숙 감독은 우리나라의 지금까지의 여성 감독과는 전혀 다른 출발점을 보여준 겁니다. [폭풍속으로], [K-19] 등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액션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헐리우드의 여성 감독인 캐서린 비글로우를 김은숙 감독과 비교하는 것은 아직은 섣부른 판단인지는 모르지만 [빙우]는 충분히 김은숙 감독에게 한국의 캐서린 비글로우라는 평가를 내려도 좋을만한 영화입니다. 그만큼 [빙우]는 헐리우드 영화와 비교해도 좋을 만큼 완벽한 스펙타클을 보여줍니다. 캐나다 록키 산맥에서 찍었다는 이 영화의 아시아크씬은 그동안 우리나라의 블럭버스터 영화들이 선보였던 인의적인 스펙타클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자연적인 웅장함을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스펙타클로 승화시켰습니다. 영화의 초반부터 화면을 가득 메운 아름답지만 자연의 위용이 느껴지는 설산은 극장의 화면이 작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김은숙 감독은 신인 감독답지않은 대담함으로 이 영화의 스펙타클을 잡아 냈으며 이 영화의 흥행과는 별도로 우린 정말 상업 영화에 기대할만한 재능을 보인 괜찮은 여성 감독을 얻은 셈입니다.


 


  
하지만 아직 신인 감독의 경험 부족 탓인지 [빙우]는 산을 배경으로한 블럭버스터의 장점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영화의 또다른 한축의 재미를 담당하고 있는 중현(이성재)과 우성(송승헌) 그리고 경민(김하늘)으로 이어지는 삼각 멜로 부분에선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캐릭터들의 감정 표현을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그려낸 다른 여성 감독들과는 반대로 김은숙 감독은 남성 감독들도 감히 해내지 못한 자연스러운 스펙타클을 잡아내는데에는 성공했지만 오히려 캐릭터의 섬세한 감정을 잡아내는데엔 실패를 한겁니다.
이 영화의 멜로는 우성의 첫사랑과 중현의 마지막 사랑이 겹치며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경민을 남몰래 짝사랑했다는 우성은 대학생이 되어 우연히 경민을 만나며 사랑과 우정사이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산악부의 후배인 경민과 금지된 사랑에 빠진 유부남 중현 역시 가정과 사랑 사이에서 경민과의 아슬아슬한 사랑을 유지합니다. 이 두 사랑은 청춘 드라마의 흔하디 흔한 설정 혹은 불륜을 아름답게 포장한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정도로 차별성이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영화속 사랑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이 두사랑중에 어느것 하나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관객들은 우성과 경민의 사랑은 '어린 시절부터 사랑한...'이라는 편리한 명제아래 별다른 감정선없이도 이해해야 하며, 중현의 사랑은 한 콘도에서 벌거벗은채로 누워있는 중현과 경민의 씬만으로 선후배 관계에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다는 것은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사랑이라는 가장 미묘한 감정을 제대로 잡기보다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몇몇 장면만으로 처리하다보니 이 영화의 멜로씬은 평범하면서도 관객이 감정이입을 하는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잡기엔 이 영화의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했을 겁니다. 산의 웅장함도 잡아야하고, 그 산에 갇힌 중현과 우성의 화해도 잡아야하고, 우성의 첫사랑도 잡아야하고, 중현의 마지막 사랑도 잡아야하는 김은숙 감독의 입장에선 캐릭터의 섬세한 감정을 잡아내기엔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러한 악조건에서도 관객이 캐릭터속에 동화되게끔 유도하는 것이 바로 감독의 능력입니다.


 


  
자연의 스펙타클을 잡아낸 김은숙 감독의 능력과 그와는 반대로 캐릭터의 감정을 섬세하게 잡아내지 못한 김은숙 감독의 미숙함은 영화의 초반부터 자꾸 부딪힙니다. 아시아크의 웅장함을 보여주다가도 갑자기 과거의 회상씬으로 넘어가며 중현과 우성, 경민의 사랑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하지만 과거 회상씬이 현재의 아시아크씬과 잘 융합이 되지 않고 오히려 자연의 스펙타클에 빠질때쯤이면 별안간 밋밋한 과거 회상씬으로 넘어가버려 절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어느 영화 평론가의 리뷰를 보니 이 영화의 가장 커다란 패착은 산의 웅장함보다는 주인공들의 삼각관계를 비중을 둔 것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 의견이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설산의 그 눈부신 스펙타클만으로도 영화는 충분히 관객에게 어필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 스펙타클을 영화의 주요한 재미로 삼고 주인공들의 사랑을 부수적인 재미로 삼았다면 휠씬 볼만한 영화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스펙타클은 물론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도 포기할 수 없다는 듯이 무리하게 스펙타클과 사랑 이야기를 동등하게 대접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영화는 스펙터클에 동화될때쯤이면 별안간 사랑 이야기로 넘어가버리는 영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빙우]는 정말 괜찮은 영화이며 걸쭉한 여성 감독의 등장만으로도 제게 흥분되는 영화입니다. 아직 신인 감독의 경험 부족탓인지 절반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했지만 많은 능력있는 감독들이 신인 시절에는 넘치는 과욕으로 인하여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데뷔작을 실패했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이 절반의 실패는 실망보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전 김은숙 감독의 그 다음 상업 영화가 너무나도 기다려집니다.

P.S. 16일에 개봉된 영화들을 제 나름대로 순위를 메겨 보았습니다. 이것은 단지 제 개인의 생각뿐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1. 말죽거리 잔혹사, 2. 피터팬, 3. 빙우, 4. 브라더 베어, 5. 내사랑 싸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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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피의꿈
푸헐~ 누군 핸펀 안끄고 싶남...아줌마 되보라지...조용히 사는게 쉬운지 말야...일요일 아침마다 약속이나 한듯이 돌아가면서 한번씩 우리의 단잠을 깨는 두분 어머님만 보더라도 말이야...-.-
내핸펀 꺼놓으면 자기핸펀이 더 난리날껄....
 2004/01/19   
쭈니
그래서 난 아예 놓고 오잖아.
핸드폰 안받아서 난리나는 것은 영화를 본후에 처리하자고. ^^
 2004/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