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1년 아짧평

[스트리트 파이터 : 춘리의 전설] - 추억을 팔은 댓가가 고작 이거란 말인가?

쭈니-1 2011. 8. 19. 11:08

 

 

감독 : 안드레이 바르코비악

주연 : 크리스틴 크룩, 닐 맥도노프, 마이클 클라크 던컨, 문 블러드 굿

 

 

추억의 오락실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를 기억하는가?

 

저는 정말 오락을 할줄 모르는 아이였습니다. 친구들은 몇 백원만 있으면 오락실에서 몇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저는 몇 분을 넘기지 못했고, 결국은 친구들이 오락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으로 남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인데, 당시엔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오락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버튼이 두개만 있어도 당황하던 제게 '스트리트 파이터'는 무려 여섯 개의 버튼으로 저를 놀라게 했고, 그런 버튼들을 능수능란하게 조작하며 갖가지 기술들을 선보이던 친구들의 손놀림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었습니다.

물론 가끔 저도 '스트리트 파이터'를 하곤 했는데 친구들이 류(원래는 일본 캐릭터인데 동네 오락실에서 한국 캐릭터로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와 켄을 많이 했지만 저는 주로 춘리를 했습니다. 그 이유로 류와 켄의 현란한 기술을 사용할줄 몰랐던 저는 친구들과 맞서 조금이라도 버틸려면 동작이 빠른 캐릭터가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춘리도 현란한 기술이 많았지만 저는 발차기 기술 밖에 사용할줄 몰랐습니다.

나중에 게이머가 4대 천왕도 플레이할 수 있게 되었을 땐 춘리 대신 베가를 주로 사용했지만(춘리와 같은 이유) 그래도 춘리는 제겐 오락 캐릭터 중에서 최초이자, 최고의 파트너였습니다.

 

1994년 [스트리트 파이터]

 

'스트리트 파이터'가 워낙 높은 인기를 구가하다보니 1994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B급 액션 영화의 스타 장 끌로드 반담을 기용하여 만든 [스트리트 파이터]는 게임에서 미공군 장교 캐릭터였던 가일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게임에서도 4대 천왕 중 최고의 악당이었던 바이슨 장군을 악당으로 설정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춘리는 복수심에 불타는 방송국 기자로, 류와 켄은 가일의 동료로, 달심은 바이슨 장군에게 붙잡힌 박사로 등장하며 게임에 열광하던 당시 관객들에게는 좋은 선물을 제공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영화는 별로였습니다. 장 끌로드 반담 주연의 영화가 거의 그러하듯이 단순한 스토리 라인과 선과 악의 명확한 이분적 구분, 그리고 권선징악이라는 예측 가능한 결말로 그저 킬링타임용 B급 액션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무려 15년이 지나 '스트리트 파이터'의 두 번째 영화 [스트리트 파이터 : 춘리의 전설]이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트리트 파이터 : 춘리의 전설]은 흥행적으로나, 영화의 재미 면으로나 망작 판정을 받고 말았습니다.

국내에서도 미국에서 개봉한지 2년이 지난 후에야 개봉 소식이 들리지만 상영관을 거의 찾기 어려울 정도이며, 아마도 극장 개봉은 미끼일뿐, 곧바로 다운로드 시장으로 직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 춘리의 전설]은 왜 환영받지 못하는가?

 

1994년 만들어진 [스트리트 파이터]는 킬링타임용 B급 액션 영화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확실한 장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당시 오락실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기에 영화의 인지도가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었고, 가일이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게임 속 다양한 캐릭터들을 영화 속에 넣어둠으로서 게임을 즐기던 관객들에게도 자신이 주로 플레이하던 캐릭터를 영화로 볼 수 있다는 흥미를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스트리트 파이터 : 춘리의 전설]은 다릅니다. 일단 원작 게임의 인기는 이제 시들해졌습니다. 사람들은 더 복잡하고 자극적인 게임을 찾게 되었고, '스트리트 파이터'는 그저 추억의 게임으로 남겨졌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관객의 추억을 자극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도 못했습니다. 장 끌로드 반담의 [스트리트 파이터]가 게임 속 여러 캐릭터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영화에 등장하던 것과는 달리 [스트리트 파이터 : 춘리의 전설]은 춘리(크리스틴 크룩)와 바이슨(닐 맥도노프)을 주 캐릭터로 하여 베가가 잠깐 등장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나마도 바이슨은 게임 속 모습과 너무 달랐고, 베가는 왜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허무하게 쓰러지며, 춘리는 배우의 매력과는 달리 게임 속 캐릭터를 회상하기엔 부족했습니다.(딱 한장면, 클럽에서의 액션씬에서 춘리의 머리 모양과 게임 속 춘리의 필살기로 싸우는 장면만 게임 속 춘리를 추억하게 했습니다.)

원작의 인기가 시들해진 상황에서 추억을 되살리지도 못한 이 영화를 보며 저 역시 이럴거라면 뭐하러 '스트리트 파이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지 궁금하더군요.

 

[스트리트 파이터]의 시리즈화? 너나 잘하세요.

 

영화 내내 아리송하던 안드레이 바르코비악 감독의 의도는 영화의 마지막에 드러납니다. 춘리에게 일본에서 열리는 '스트리트 파이터' 대회에 참가해 보라고 권유하는 젠. 그는 그 경기를 통해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라고 말합니다.

만약 [스트리트 파이터 : 춘리의 전설]이 흥행에 성공했다면 바로 다음 단계는 일본에서 열리는 '스트리트 파이터' 경기와 춘리가 게임 속 캐릭터들과 경기를 하며 새로운 히어로 팀을 구성하는 것으로 진행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의도가 성공했다면 이건 또 하나의 프랜차이즈 시리즈를 위한 거대한 첫 출발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드레이 바르코비악 감독이 한가지 착각한 것이 있습니다. 첫 단추가 잘못 맞춰진 옷은 절대로 제대로 입혀질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각종 개성이 다르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지닌 '스트리트 파이터'는 분명 액션 영화 시리즈로 기획을 한다면 매력적일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선 첫 단추를 잘 맞췄어야 했습니다.

결국 [스트리트 파이터 : 춘리의 전설]은 15년 전 나왔던 [스트리트 파이터]의 재미에도 미치지 못한채 [스트리트 파이터]가 새로운 프랜차이즈 액션 시리즈로 이어나가길 원하던 올드팬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영화에 불과했습니다. 아! 한가지... 춘리를 연기한 크리스틴 크룩은 그래도 매력적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