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김지훈
주연 : 하지원, 안성기, 오지호, 박철민, 송새벽
개봉 : 2011년 8월 4일
관람 : 2011년 8월 4일
등급 : 15세 이상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올해 여름에는 유난히 100억의 제작비가 들어갔다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많이 개봉했습니다. [고지전], [퀵], 그리고 [7광구]와 다음 주에 개봉할 [최종병기 활]까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좋아하는 만큼 한국형 블록버스터도 선호하는 저는 물론 네 편의 영화를 모두 챙겨 보겠다고 일찌감치 마음을 정했습니다.(아직 [고지전]은 못봤지만 조만간 꼭 볼겁니다.)
사실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대한 우리 관객들의 평가는 냉정한 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매끈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자꾸 비교하게 되고, 무분별한 홍보로 인하여 영화에 대해 과도하게 기대를 하다보니 실제로 영화를 보게 되면 만족도가 기대도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전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대해서 상당히 너그러운 편입니다. 우리나라의 특수효과 기술의 수준을 알고 있기에 애초부터 할리우드 블로버스터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특수효과가 짜증이 날 정도로 유치하거나, 스토리와 캐릭터가 너무 엉망만 아니라면 극장에서도 제법 재미있게 즐기는 편입니다. (남들이 욕하던 [디 워]도 저는 무지 무지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저라도 [7광구]는 조금 불안했습니다. 언론 시사회 이후부터 터져나온 끊임없는 혹평과 급기야 후반 재작업을 위해 개봉일의 상영 시간을 오전이 아닌 저녁 시간대로 변경하는 해프닝까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7광구]가 언론의 집중 포화를 당하고 있을 때 저는 '도대체 영화가 얼마나 별로였길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광구]의 관계자는 후반 재작업을 통해 영상, 음향, 내용이 모두 변경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만큼 이 영화의 특수효과는 물론 영화의 스토리까지 엉망이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고작 몇 일의 재작업으로 과연 엉망인 영화가 바뀔 수 있을까요?
비록 [7광구]의 개봉날 구피와 함께 [7광구]를 보러 갔지만 제 불안감은 가시질 않았습니다. 제가 아무리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너그러운 편이라 할지라도 영화의 후반 작업을 다시 해야할 정도의 엉망인 영화까지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무감각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생각들 때문인지 영화 초반부는 제게 상당히 엉망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괴물이 등장하는 중반부 부터는 완벽하게 만족할 수는 없지만 꽤 즐길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의 불안감을 감안한다면 제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로 만족합니다.
하지원... 길라임과 호러퀸의 사이에서.
자! 이제 [7광구]에 대해서 하나씩 차근 차근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일단 제가 영화의 초반부를 엉망으로 느낀 점부터 이야기하죠.
첫 오프닝 장면에서 해준(하지원)의 아버지가 석유 시추 작업 도중 사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심해에 잠수해서 작업을 하던 그의 곁에 거대한 고래가 지나가고, 작고 아름다운(마치 반딧불같은) 물고기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물고기의 공격과 불의의 사고로 해준의 아버지는 죽음을 당합니다.
대부분의 오프닝 장면이 그러하듯 [7광구]의 오프닝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하여 '7광구'의 석유에 집착하는 해준의 캐릭터가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장면에서 어이없는 대사가 튀어 나옵니다. 아름다운 심해의 물고기를 본 해준의 아버지가 '아름답다, 귀엽다'라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그 순간 제 팽팽한 긴장감을 탁 하고 풀려 버렸습니다. 심해 물고기의 아름다움을 굳이 위기에 빠진 캐릭터의 입을 통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관객이 느껴야 하는 부분입니다. 관객이 느껴야 하는 부분까지 캐릭터의 입으로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7광구]가 그러했습니다.
첫 오프닝 장면부터 이렇게 삐걱거린 이 영화는 하지원의 어색한 연기로 제게 결정적인 카운트 펀치를 날립니다.
영화의 초반 하지원은 마치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처럼 연기합니다. 마침 해준의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도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 아버지를 연기했었고,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캐릭터의 완성이라는 부분도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과 곁칩니다.
그래서인지 차해준은 보이쉬한 매력을 지녔으면서도 자꾸 귀여운척 합니다. 영화의 초반, 시추선의 문제를 해결하고 두 눈을 찡긋하며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우는 장면을 보며 저는 오글거림을 느꼈습니다. 뭔가 가식적인 느낌... 그런 느낌은 본사의 철수 명령으로 안정만(안성기)이 '7광구'에 오는 장면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나는데 전 왜 정만에게 '아저씨~'라고 외치며 귀엽게 뛰어 가는 해준의 모습에서 거부감이 드는 걸까요?
기대했던 하지원의 연기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이 영화에 대한 불안감은 점점 커져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본격적인 괴물이 등장하는 부분부터 하지원의 연기는 길라임의 귀여움을 벗어 버리고 왕년 호러퀸의 카리스마를 내뿜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다행스러운 변신이었습니다.
괴물 영화를 싫어하는 감독의 괴물 영화
다행스럽게 실망스러운 영화의 초반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후반 재작업을 하면서 편집된 것인지는 언론 시사회판 [7광구]를 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암튼 촌스러운 대사와 하지원의 가식적인 연기가 뒤덮힌 초반 부분은 빠르게 지나가고 중반부터는 본격적으로 괴물이 등장하며 영화의 긴장감을 높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가지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김지훈 감독이 인터뷰에서 자신은 괴물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너무나도 당당하게 밝혔다는 점입니다. 뭐 괴물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감독은 괴물 영화를 만들면 안된다는 법은 없지만 [7광구]는 확실히 괴물 영화에 관심이 없는 감독의 손에서 만들어진 영화 티가 팍팍 납니다.
김지훈 감독은 괴물의 정체를 꽁꽁 숨겼던 이전의 괴물 영화 법칙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중반부터 아주 대놓고 괴물을 등장시킵니다. 그러한 김지훈 감독의 선택은 [7광구]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눈에 보이는 괴물보다 눈에 안보이는 괴물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영화 속 캐릭터를 공격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 느끼는 긴장감. 김지훈 감독은 그것을 간과한 셈이죠.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선사하고 싶은 서스펜스가 괴물의 위협으로 인한 공포가 아닌 괴물에게 쫓기는 주인공들의 모습이라면 애초에 괴물의 존재를 숨기는 것보다 아예 이렇게 드러내놓고 주인공들을 도망다니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으니까요.
그럼으로서 이 영화가 획득한 재미는 지긋지긋한 괴물의 존재입니다. 죽여도 죽여도 죽지않는 이 지긋지긋한 괴물은 집요하게(바다로 도망친 사람까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7광구'의 대원들을 하나씩 죽입니다.
이유도 필요없습니다. 이전의 괴물 영화들이 괴물이 사람들을 해치는 이유를 꼼꼼하게 설명했던 것에 비해(종족 번식, 혹은 먹잇감) [7광구]의 괴물은 묻지마 연쇄 살인범처럼 느껴질 정도로 이유없이 집요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게 재미있었습니다. 괴물과 영화 속 캐릭터들의 추격전에 지칠만도 한데 끈질긴 괴물은 총에 맞고, 불에 타고, 고층에서 떨어져 살점이 전부 찢기고 너덜너덜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주인공들을 추격하는 장면이 흥미로웠습니다. '도대체 왜?'라는 질문은 어느 사이 사라지고 '저 지긋지긋한 괴물이 어떻게 죽을까?'라는 궁금증만 남은 채 마지막까지 해준과 괴물의 사투를 즐길 수가 있었습니다.
분명 잘 만들어진 괴물 영화는 아니다.
객관적으로 [7광구]를 평하자면 '정말 괴물 영화 만들줄 모르는 감독의 아마추어적인 괴물 영화'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괴물 영화가 지니고 있어야할 기본적인 재미를 지키지 못한채 마치 초등학생이 자기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고 색칠을 한 것처럼 [7광구]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자기 마음대로 영화를 진행시킵니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은 다른 괴물 영화를 따르는 듯 하지만 그 속내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괴물을 관객에게 실컷 보여줌으로서 관객이 무서워해야할 괴물을 무슨 동물원의 맹수 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김지훈 감독이 괴물 영화를 좋아하지 않다는 것은 [7광구]를 통해 확실히 증명된 셈입니다.
하지만 제 주관적으로 [7광구]를 평하자만 '그런 지긋지긋함이 오히려 흥미로운 영화'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분명 김지훈 감독의 어설픈 연출력은 기존의 괴물 영화의 재미를 잇지 못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만 그럼으로서 기존의 괴물 영화가 갖지 못했던 재미를 획득하는 의외의 결과를 제게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무시무시한 괴물을 실컷 보며 '도대체 쟨 어떻게 해야 죽지?'라는 흥미를 저는 다른 괴물 영화에서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안쓰러울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몸을 이끌고, 힘겹게 해준과 맞서 싸우는 괴물의 모습에서 흥미를 느끼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기에 오히려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화려한 휴가] 와 같은 심각한 영화에서조차 웃음을 유발시키던 박철민과 어눌함이 이젠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버린 송새벽 커플이 안겨다 주는 재미도 좋았습니다. 특히 '박스와 박수' 장면은 제게 포복절도를 안겨주며 긴장감과 웃음의 간격을 무너뜨리는 희안한 경험을 체험하게 하더군요.
일단 [7광구]는 [괴물]과 비교는 불가합니다. 완벽한 캐릭터와 꼼꼼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었던 [괴물]과는 달리 [7광구]는 아무 것도 갖추지 못한채(아니 갖추려 하지 않은채) 지긋지긋하게 죽지 않는 괴물을 만들어 버린 것에 불과하니까요.
하지만 그 지긋지긋한 괴물을 순수하게 즐길 마음이 있다면 8천원(저는 할인받아서 6천원 정도)의 영화 관람료가 그다지 아깝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3D 관람료는 좀 아까울 듯) 한국의 특수효과로 만들어낸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지긋지긋한 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충분히 관람하고 올 수 있는 기회... 이것이 [7광구]의 진정한 재미입니다.
'괴물 영화에서 괴물만 실컷 보면 된거 아니냐?'라는 감독의 외침이 들리는 듯 하다.
그래, 동물원에서 사자, 호랑이를 보며 '와! 무서운 맹수다.'라고 소리치는 것처럼...
영화를 보며 '와! 무서운 괴물이다'라며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을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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