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블라인드] - 두려움을 이기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편견을 깨는 것이다.

쭈니-1 2011. 8. 11. 06:30

 

 

감독 : 안상훈

주연 : 김하늘, 유승호, 조희봉, 양영조

개봉 : 2011년 8월 10일

관람 : 2011년 8월 10일

등급 : 18세 이상

 

 

와! 여름휴가다.

 

드디어 드디어 여름휴가입니다.(감격해서 눈물을 흘리는 중) 처음엔 이번 여름 휴가는 제주도로 놀러 가려고 했으나 비용 문제로 무산되고, 경주로 가기로 했으나 흐지부지 무산되며, 결국 금요일에 1박 2일 코스로 양평의 중미산 천문대에 가는 것으로 계획이 전면 수정되었습니다.

이렇게 여름 휴가 계획이 축소 변경되다 보니 제게 뜻하지 않은 여유 시간이 많이 남아 버렸네요. 구피는 여름 휴가 전에 끝내야 할 일이 있다며 휴가 일정을 하루 미루고 회사로 정상 출근했고, 웅이도 학원에, 방문 교사 수업으로 바쁜 수요일. 전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아침 일찍 극장으로 출근(?)하여 개봉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블라인드]와 [최종병기 활]을 보고 왔습니다.

평일 오전이라 한산한 극장에서 홀로 여유롭게 영화를 감상하며... '그래, 이것이 진정한 여름 휴가의 맛이지.'라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사람들이 바글바글하고 바가지 요금이 판친다는 해변가, 워터파크에 가는 것보다 역시 저는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주는 극장에서 편안하게 재미난 영화를 보는 것이 훨씬 좋답니다.

 

좋은 기분으로 영화를 봐서인지 여름 휴가의 첫째날 본 두 편의 우리 영화가 모두 만족스러웠답니다. 그 중에서 [블라인드]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시각 장애인 여성과 껄렁한 10대 소년의 진술이 엇갈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스릴러로 담고 있는 영화입니다.

사실 제가 스릴러 영화에는 평이 좀 짠 편입니다. 그래서 한때 한국형 스릴러 영화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을 때에도 그들 영화에 대부분 만족하지 못했었습니다.

[블라인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스릴러라고 하기엔 헛점이 많이 보이는 영화이지만 스릴러 영화의 긴장감을 중간까지 잘 살려냈으며, 시각 장애인인 수아(김하늘)가 느끼는 공포와 사람들의 편견을 과하지 않게 적절하게 제게 선보였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쭈니의 여름휴가 영화 제 1탄... [블라인드]를 낱낱이 파해쳐 보기로 하겠습니다.  팍팍~ (앗! 이건 무릎팍 도사 잖아~ 휴가 중이라 제 정신이 아닌 쭈니... ^^;)

 

 

무난한 출발, 흥미로운 초반

 

[블라인드]는 상당히 무난하게 영화를 출발시킵니다. 학교는 안가고 비보이에 빠져 있는 고아원 동생을 잡으러 다니기 바쁜 예비 경찰관 수아. 그날도 수아는 비보이 공연을 하기 위해 학교를 빠진 동생을 잡아 집으로 끌고 가던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불의의 교통사고가 나고, 수아는 시력을 잃고 동생은 목숨을 잃고 맙니다.  

이러한 이 영화의 오프닝은 영화의 시작부터 충격적인 사고를 배치함으로서 주인공의 캐릭터를 완성시킴과 동시에 관객이 주인공과 감정이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입니다. 최근에 봤던 [7광구]도 그러한 장치를 이용했었죠. 그러나 [7광구]와는 달리 [블라인드]는 꽤 성공적으로 오프닝을 완성합니다.

수아가 시각 장애를 겪게 된 이유를 설명함과 동시에 그녀가 예비 경찰관이었다는 점을 통해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 범인의 세세한 사항을 날카롭게 파악하고 경찰보다 범인잡기에 열의를 보이는 이유도 간단히 설명해냅니다. 게다가 그녀의 동생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통해 수아와 죽은 수아의 동생과 비슷한 나이 또래인 또 다른 목격자인 기섭(유승호)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진행시킵니다.

 

단 몇 분에 불과한 오프닝 장면을 효과적으로 이용함으로서 세세하게 설명해야 하는 부분들을 효과적으로 처리한 이 영화는 이후 범인과 두 목격자인 수아와 기섭의 쫓고 쫓기는 장면들을 통해 영화의 재미를 완성합니다.

그런 면에서 안상훈 감독은 꽤 영리한 연출력을 보여줬습니다. 너무나 간단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캐릭터를 완성하고 캐릭터 간의 관계까지 진행시킨 그는 이후 느긋하게 관객이 공포를 느낄만한 요소들을 중간 중간에 배치합니다.

특히 지하철에서 범인과 수아의 쫓고 쫓기는 장면은 요근래 봤던 그 어떤 스릴러 영화보다 긴장감으로 넘쳐난 명장면인데, 눈이 보이지 않는 수아와 영상 통화를 통해 수아에게 길을 알려주는 기섭, 그리고 수아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범인의 삼각 구도로 숨이 멎는 듯한 스릴을 제게 선사했습니다.

긴장감이 넘쳐나는 영화의 분위기를 가끔 부드럽게 조절하는 조형사(조희봉)라는 캐릭터도 꽤 만족스러웠는데, 시골 출신이라는 이유로 서울의 엘리트 경찰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그의 모습은 시각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진술을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 수아의 상황과 교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완벽한 파트너를 완성해냅니다.

 

 

안일한 중반부, 2% 부족한 범인의 정체 (스포포함)

 

하지만 저는 [블라인드]가 완벽한 스릴러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분명 영리한 연출력이 돋보이고, 긴장감도 팽팽하게 살아 있는 잘만든 스릴러 영화임에는 분명하지만 안상훈 감독은 중반부터 조금 안일한 전개를 해나갑니다.

[블라인드]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시각장애인인 수아와 기섭의 목격이 엇갈린다는 부분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 다른 감각(촉각, 후각, 청각)으로 사건을 목격한 수아와 다른 감각보다는 시각만으로 사건을 목격한 기섭. 이 둘의 목격이 엇갈린다는 것을 통해 안상훈 감독은 사람이 가장 많이 의존한다는 시각과 그러한 시각의 불확실성을 이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두 캐릭터의 엇갈린 증언으로 인한 섬뜩한 마지막 반전도 마련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안상훈 감독은 바로 이 중요한 부분을 놓칩니다. 서로 엇갈린 두 캐릭터의 증언은 그저 수아의 착각이었다는 너무 허무한 결론으로 대충 마무리됩니다.

그렇다면 왜 기섭이라는 존재가 필요한 것일까요? 기섭이 수아의 곁에 있음으로서 오히려 영화의 긴장감은 떨어집니다. 생각해보세요. 마지막 장면에서 보육원에 혼자 있는 수아와 그런 수아를 찾아오는 범인이 더 무서운지, 아니면 기섭과 함께 있는 수아와 그들을 찾아오는 범인이 더 무서운지... 수아와 기섭의 엇갈린 증언이 이 영화의 스릴러적 재미에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과감하게 기섭이라는 캐릭터를 빼버리는 것이 영화의 긴장감을 증폭시키기 위해서 더 나았을 뻔 했습니다.

 

범인의 존재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누가 범인인지 밝혀내는 영화는 아닙니다. 그렇기에 범인을 꽁꽁 숨겨두기 보다는 범인의 존재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대신 범인의 잔혹한 범죄로 관객을 겁주고, 그런 잔혹한 범인이 주인공을 위협하는 장면들로 관객들에게 공포심과 긴장감을 안겨줍니다. 

그러한 시도는 꽤 성공적이었는데, 범인의 범행 대상이 젊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영화의 주관객층인 젊은 여성 관객의 겁을 주는 것은 일단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잔인한 범인을 통해 여성 관객들을 겁주는데엔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상은 이루지 못합니다. [블라인드]가 남성 관객마저 겁먹게 하려면 범인의 캐릭터는 좀 더 치밀해야 합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주인공을 위협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블라인드]의 범인은 잔인하긴 했지만 치밀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골목길에서 기섭을 습격하다가 놓치는 것도 그렇고, 곳곳에 CCTV가 설치된 지하철에서 수아를 쫓는 것도 그렇습니다. 수아에게 전화를 걸어 협박하는 장면에서는 그가 치밀함보다는 자기 과시형 범죄자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마지막 보육원에서의 추격전은 긴장감보다는,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던 [7광구]의 괴물처럼, 오뚜기처럼 자꾸 일어나 주인공을 공격하던 범인의 끈질김만이 돋보였던 장면이 되고 말았습니다.(제가 범인이라면 먼저 기섭을 죽이고 수아를 뒤쫓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범인은 기섭을 죽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질 못합니다.)

 

 

시각장애인이라는 편견을 깨는 것이 주요 목적이었을지도...

 

좋은 소재를 완벽하게 살려 내지 못한 안일한 연출력과 허술한 범인으로 인한 클라이막스 장면에서의 긴장감 부재... 분명 이것만으로도 [블라인드]를 실망스러운 스릴러 영화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실망스러운 스릴러 영화라고 하기엔 [블라인드]는 실망스러운 점보다 좋았던 점이 더 컸습니다.

그 중에서 시각장애인이 느끼는 두려움과 편견을 영화 속에 잘 표현한 부분이 저는 가장 마음에 듭니다.

며칠전 지하철에서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보며 더럽다고 난리를 치던 어느 40대 여성의 이야기가 온라인을 뜨겁게 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아직 장애인에게 냉혹합니다. 횡단보도에서 눈이 안보이는 수아를 향해 막말을 하던 운전자들, '너 같은 것이 왜 그렇게 살려고 애쓰는지 모르겠다'며 냉소를 짓던 범인. 제가 진정으로 이 영화에서 섬뜩한 것은 바로 그러한 그들의 냉혹한 시선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수아의 곁을 지켜주던 안내견 슬기.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슬기였고, 슬기의 활약상이 돋보였던 지하철에서의 추격전이 마지막 클라이막스인 보육원에서의 추격전보다 개인적으로 훨씬 긴장감이 넘쳤습니다.

 

만약 제가 감독이었다면 수아와 기섭의 엇갈린 진술을 최대한 살려내지 못한다면 아예 기섭을 영화에서 과감하게 뺐을 것입니다. 그리고 기섭이 했던 역할을 조형사와 슬기에게 나눠주고 지하철 추격전에서의 슬기의 장렬한 최후를 영화의 클라이막스인 마지막에 배치했을 것입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나오는 부분에서도 영화의 웃음을 안겨주다가 뜬금없이 죽음을 맞이한 조형사를 조명하는 대신 그 자리에 슬기의 죽음을 조명하며 주인을 위해 목숨을 잃은 안내견의 희생을 부각시켰을 것입니다.(그 옆엔 당연히 많이 다치긴 했지만 그래도 멀쩡한 조형사가 수아를 위로하는 장면도 넣어야죠.)

아! 물론 저는 감독이 아니고, 영화는 이미 슬기의 희생은 까맣게 잊고 수아와 기섭의 행복한 모습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래도 이 영화로 지하철을 탄 안내견이 더럽다며 난리를 치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사라진다면 [블라인드]는 충분히 값어치가 있는 영화일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잔인한 범인과 맞서 싸워이겨낸 수아. 그렇게 수아가 두려움을 이겨낸 것처럼 영화를 본 우리들의 장애인에 대한, 안내견에 대한, 편견이 조금이라도 깨졌으면 좋겠네요. 

 

 

장애를 겪어 보지 못한 우리는 그들의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의 두려움을 이해못하기에 그들에 대한 편견도 깨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그들의 두려움을 이해하도록 해보자.

그러면 언젠가는 편견이라는 두터운 벽도 서서히 금이 가고 결국엔 깨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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