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최종병기 활] - 치욕의 역사를 관통하는 강함의 쾌감

쭈니-1 2011. 8. 12. 06:30

 

 

감독 : 김한민

주연 : 박해일, 류승룡, 문채원, 김무열

개봉 : 2011년 8월 10일

관람 : 2011년 8월 10일

등급 : 15세 이상

 

 

여름휴가 특선 영화감상 제 2탄

 

여름 휴가 첫 날부터 늦잠을 포기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블라인드]를 본 저는 아침 겸 점심으로 롯데리아 햄버거를 후다닥 먹어 치우고 두 번째 영화인 [최종병기 활]을 봤습니다.

제가 스릴러 영화는 좋아하지만 웬만해선 스릴러 영화를 보고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런 이유로 [블라인드]는 꽤 만족스러운 영화였지만 스릴러 자체만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스릴러 영화와는 반대로 저는 역사극에 상당히 너그러운 편입니다. 굉장히 엉망진창인 영화가 아니라면 웬만하면 만족하는 편이죠. 이처럼 저는 장르에 대한 리뷰의 편차가 큰 편인데, 하필 휴가 첫 날 본 두 편의 영화가 하나는 제 평이 짠 편인 스릴러 영화였고, 또 다른 한 편은 제 평이 너그러운 편인 역사극이었네요.

 

제가 역사극을 좋아해서인지 몰라도 [최종병기 활]을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병자호란이라는 우리나라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바탕으로 가족애와 활이라는 무기가 가져다주는 액션의 쾌감을 잘 살려냈습니다.

특히 병자호란 당시 백성을 버리고 피난갔다가 치욕스러운 항복을 하고 마는 인조에 대한 냉소와 못난 임금, 약한 나라의 백성인 탓에 고난의 세월을 겪어야 했던 민초들의 모습이 잘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역사극의 힘인데,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역사의 소용돌이와 그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인물들은 언제나 제게 감동과 영화적 재미에 의한 쾌감을 안겨줬습니다.

비록 [최종병기 활]은 실존 인물을 소재로한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적 상황과 역사적 사실을 잘 배치함으로서 영화의 사실감을 높이고, 역사극의 재미를 최대화시켰습니다.

 

 

약한 나라에 태어난 백성들의 고초

 

우리나라는 기나긴 역사 동안 끊임없이 외적의 침입을 받았던 나라입니다. 특히 조선 시대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통해 남쪽으로는 일본과 북쪽으로는 중국에게 능욕을 당하고 크나긴 상처를 입었었습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에 대해서는 수 많은 TV 역사 드라마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위인전 등을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병자호란에 대해서는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잠깐 배웠던 것이 전부입니다. 왜일까요? 임진왜란은 결국엔 승리한 전투이지만 병자호란을 인조가 무릎을 끓고 치욕을 당한 철저하게 패배한 전쟁이었기 때문일까요?

[최종병기 활]은 바로 그러한 병자호란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인조가 광해군을 몰아내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르며 광해군의 측근들을 축출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하고, 인조의 부실한 외교 정책으로 인하여 병자호란이 일어나는 것을 중심으로 영화는 진행되며, 병자호란이 끝난 후에도 청나라에 끌려간 백성들을 소환하려는 외교적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자막으로 영화를 끝맺음합니다. [최종병기 활]은 병자호란이라는 치욕의 역사를 영화 전반에 걸쳐 꿰뚫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한 [최종병기 활]의 역사관은 활이라는 무기를 매개체로한 액션 영화이면서 동시에 약한 나라의 백성인 탓에 청나라의 포로로 끌려갔으나 고향을 잊지 못하여 목숨을 걸고 스스로 도망쳐 조국으로 돌아와야 했던 백성들의 고난이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힘들고 무서웠을까요? 조국의 왕조차 그들을 구하려 하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 치욕적인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던 그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렇게해서 조국으로, 고향으로 어렵게 돌아온 사람들은 결국 환영받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은 환향녀(환향녀는 화냥년이라는 욕으로 발전합니다.)라고 불리우며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고 합니다.

비록 [최종병기 활]은 그러한 불편한 진실까지는 그려내지는 않았지만, 인조는 청나라로 끌려간 50만명의 백성을 구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고, 몇몇 백성만이 스스로의 힘으로 고향으로 돌아왔을 뿐이었다는 마지막 자막으로 영화가 끝내며, 영화가 끝난 후에도 묘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극의 힘입니다. 가상의 공간이 아닌, 우리들의 조상들이 걸어 왔던 고난을 통해 전해주는 여운과 감동. [최종병기 활]은 그러한 역사극의 여운과 감동을 잘 활용한 셈입니다.

 

 

조선 시대의 스나이퍼... 활에게서 쾌감을 찾다.

 

어린 시절 저는 역사 과목을 좋아했습니다. 역사 교과서는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사 시간에 수업을 들을 때마다 '우리나라는 왜이리 국력이 약했던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반만년의 역사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침략을 당했던 나라. 그렇기에 우리 민족의 역사 중에서 유일하게 중국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약할수록 강한 것을 동경하게 됩니다. 그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최종병기 활]은 바로 그러한 점을 정확히 인지한 듯이 보입니다. 인조가 청나라에 무릎을 꿇고 치욕적인 항복을 했던 병자호란. 이렇게 약한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최종병기 활]은 강함을 내세웁니다. 바로 남이(박해일)의 활입니다.

남이는 인조 반정으로 인하여 역적이 되어 버린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동생인 자인(문채원)과 함께 아버지의 절친한 친구인 김무선(이경영)의 집에서 숨어 삽니다. 역적의 자식인 탓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그는 망나니의 인생을 살았지만 자인만큼은 끔찍히 아끼고 사랑합니다.

그런 자인이 김무선의 아들인 서군(김무열)과 결혼을 하던 날, 청나라 군사들이 쳐들어 오고, 자인과 서군은 포로로 청나라에 끌려가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최종병기 활]은 시작합니다. 비록 가상 인물의 활약상이지만 약소국의 백성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뚫어 줄만한 강력한 활약상...

 

[최종병기 활]을 보며 '이건 말이 안되. 어떻게 홀로 저 많은 청나라 병사들을 물리칠 수가 있어?'라고 투덜되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애초에 영웅의 이야기는 일당 백은 되어야 제맛이니까요.

남이의 활약 역시 그러합니다. 겉으로는 망나니의 인생을 살았지만 조선 최고의 신궁의 기술을 선보이며 청나라 군사들을 일순간에 무너뜨리는 그의 활약은 약소국 조선, 치욕의 왕 인조로 인한 답답한 상황에서 제 가슴을 뻥 뚫어주게 합니다.

영웅의 활약 뒤에는 강력한 악당이 필요한 법. 김한민 감독은 류승룡을 내세워 청나라의 카리스마 넘치는 장군 쥬신타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냅니다. 이미 [시크릿]에서 냉혈한 조폭 두목 재칼, [평양성]에서는 멸망 직전 끝까지 나당 연합군과 맞서 싸웠던 고구려의 장군 남건, [고지전]에서는 국군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인민군 장교 현정윤을 연기하며 카리스마를 내세웠던 류승룡은 나약하지만 날카로운 이미지인 박해일과 극과 극의 대비를 보여줍니다.

마지막 남이와 쥬신타의 대결은 그래서 흥미로웠습니다. 약소국의 서러움을 단번에 날려준 남이와 영화를 보는 관객 입장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적인 캐릭터였던 쥬신타의 마지막 자존심 대결. 김한민 감독은 남이에게 최강의 적을 선사함으로서 액션의 쾌감을 마무리한 것입니다.

 

 

역사극으로도, 액션극으로도 만족스럽다.

 

병자호란이라는 치욕의 역사와 이러한 치욕의 역사 속에서 맹활약을 했던 영웅의 존재. [최종병기 활]은 역사극으로도, 액션극으로도 제게 만족스러운 영화였습니다.

무능력한 왕에게 화가 나면서도 적을 관통하는 남이의 활에 속이 후련했습니다. 비록 그는 동생을 구하기 위해 나선 것이지만 조선의 왕조차 무릎을 꿇은 청나라 군사들에게 대항하는 그의 활은 영화를 보는 제겐 치욕의 역사를 그나마 위로하는 강함의 쾌감이었습니다.

[극락도 살인사건]으로 완벽한 데뷔를 했지만 [핸드폰]에서 이야기의 폭주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던 김한민 감독은 [최종병기 활]에서는 역사극이 가져야할 미덕과 액션극이 가져야할 미덕을 적당히 섞으며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조절해냈고, 박해일은 [모던보이], [이끼], [심장이 뛴다]에서 처럼 속물적인 외형으로 무언가에 지독하게 집착하는 내형을 완벽에 가깝게 연기해 냈습니다.

 

튀지 않게 적절히 활약해주던 김무열의 연기도 좋았고, [최종병기 활]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문채원의 연기 역시 나무랄데가 없었습니다.

[최종병기 활]에서 굳이 단점을 지적하라고 한다면 마지막 남이와 쥬신타의 대결에서 쥬신타의 머뭇거림 뿐이었습니다. 액션 영화를 보면 냉혹한 악당의 머뭇거림이 클라이막스를 기운 빠지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쥬신타의 머뭇거림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도 약간은 옥의 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아니 그것도 그다지 눈에 뛰는 단점이라고 하기 뭣한...) [최종병기 활]은 제게 완벽한 만족감을 준 영화였습니다.

오늘 인터넷 영화 기사를 보니 지난 10일 국내 박스오피스 1위부터 6위까지 우리 영화가 도배를 하고 있으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여름 방학시즌 세계 극장가를 장악하고 있는 시점에서 지난 주말에 자국 영화로 1위를 달리고 있는 나라는 핀란드와 더불어 우리나라가 유이하다고 합니다.

[7광구]가 개봉 첫 주 흥행 돌풍을 일으켰지만 네티즌 평점이 거의 사망 일보 직전인 점을 감안한다면 [최종병기 활]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맞서 무려 네 편이나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맞불 작전을 편 우리 영화계의 유일한 마지막 희망이 되고 있는 셈입니다. 비록 저는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극장가에 할리우드 영화만 넘쳐나는 상황 만큼은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여름 방학 시즌이라고 할지라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우리나라 블록버스터가 이렇게 공존하는 상황이 마음에 든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서러움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전히 남이의 활처럼 강함을 갈구한다.

그러한 점이 나를 좌절하게 만든다.

영화 속의 영웅을 현실에서 갈구하는 내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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