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 인간의 오만방자함에 돌을 던져라!

쭈니-1 2011. 8. 18. 11:19

 

 

감독 : 루퍼트 와이어트

주연 : 제임스 프랭코, 프리다 핀토, 앤디 서키스

개봉 : 2011년 8월 17일

관람 : 2011년 8월 17일

등급 : 12세 이상

 

 

인간은 정말 지구의 지배자로 적합한가?

 

지구라는 거대한 생태계에서 각자의 생물들은 생존의 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초식 동물들은 대부분 빠른 발을 가지고 있고, 육식 동물들은 날카로운 이빨과,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학창 시절 저는 적자생존과 진화론을 배우며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인간은 도구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서 신체적으로 나은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빠른 발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털이 없어서 다른 동물의 가죽이 없다면 추운 환경에 적응하기 부적합하고, 꼬리가 퇴화함으로서 인간의 조상이라 일컬어지는 유인원과는 달리 맹수의 공격을 피해 나무로 올라갈 수도 없습니다. 제가 배운대로라면 인간은 지구의 환경에 적응할 완벽한 신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 마땅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죠.

 

물론 인간이 결국 다른 동물들을 제치고 지구의 주인이 된데에는 뛰어난 지능이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서 약한 신체의 결합을 인간들은 인위적으로 메꿔나갈 비상한 두뇌가 있었던 것이죠.

인간은 그런 비상한 두뇌를 통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신체적 능력을 지닌 동물들을 몰아내고 지구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과연 올바른 일이었을까요?

제가 평소와는 달리 이렇게 심각한 질문으로 영화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을 봤기 때문입니다. 1968년 만들어진 프랭클린 J. 샤프너 감독의 SF 걸작 [혹성탈출]의 프리퀼인 이 영화는 인간과 유인원, 그리고 우리 인간들이 지구를 지배하는 타당한 근거로 제시한 진화론에 대해서 관객에게 진지한 질문을 하는 SF 블록버스터였습니다. 

 

 

지구의 생태계를 뒤흔든 인간의 지구 지배

 

지구의 생태계는 각 개체의 조화로 이루어졌습니다. 먹이사슬로 인한 개체의 조절... 이것이 지구의 생태계가 가진 놀라운 능력이죠.

하지만 인간이 그런 지구의 생태계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먹이 피라미드로 따진다면 중간 정도에 위치해야 마땅할 인간이 최상위 자리를 꿰찬 것입니다.

먹이 피라미드의 최상위 개체는 대부분 포식자이기 때문에 개체수가 조절되어야 합니다. 포식자의 개체수가 너무 많아지면 먹이 피라미드는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하지만 인간은 폭발적인 번식력으로 그 개체수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려나갔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맹수들을 멸종시키고, 기계를 발명함으로서 인간에게 없는 신체의 부족함을 메꿔 나갔습니다. 인간에게 유일한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바이러스 역시 의학의 발전으로 정복해 나갔습니다. 이렇게 지구상의 그 무엇도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번식력은 결국 지구 환경 파괴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늘어난 인간의 개체수는 보금자리를 위해 다른 동물들의 삶의 터전을 파괴해 나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의 유일한 무기인 뛰어난 지능이 과연 인간에게 한정되지 않는다면?

이미 우리는 1968년 [혹성탈출]을 통해 유인원이 지배하는 지구를 보았습니다. 그러한 지구에서 인간은 미개한 존재로 취급되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다른 동물들을 그렇게 취급했던 것처럼...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여기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갑니다. 자연의 섭리를 무시한 인간의 오만방자함이 어떻게 인간을 지구의 지배자 위치에서 추락시키는지 너무나도 섬뜩하게 표현해냈습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정말 저럴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에 저는 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이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다른 점은 바로 이러한 점입니다. 다른 영화들은 영화를 보며 '우와 재밌다'라는 감정에 멈춥니다. 하지만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영화를 보고나서 '우와 재밌다'라는 감정과 함께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불과 몇 달 전에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를 보며 '이보다 완벽한 비기닝은 없었다'라고 단정지었는데,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을 보고나니,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보다 완벽한 비기닝이 바로 여기에 있었네요.

 

 

뛰어난 지능이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면?

 

지구상의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서 신체적으로 열등한 인간이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지능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뛰어난 지능이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아버지의 알츠하이머(치매)를 치료하기 위해 윌(제임스 프랭코)은 뇌 기능을 증폭시키는 실험을 유인원에게 합니다. 그러한 실험의 성공으로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유인원 시저(앤디 서키스)가 태어납니다. 한동안 윌과 시저는 한 집에서 잘 지냅니다. 하지만 성장한 시저는 의문점을 갖게 됩니다. 우리가 왜 인간의 보호를 받으며 애완 동물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인간이 유인원보다 나은 것은 뛰어난 지능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유인원에게 뛰어난 지능을 선물합니다. 이제 인간과 유인원의 전투에서 인간이 나은 점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발생되는 금문교 위에서의 유인원과 인간의 전투. 인간이 믿을 것이라고는 그들이 발명한 기계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유인원에게는 그러한 기계의 성능을 능가하는 신체적 능력이 있습니다. 이 전투는 애초에 유인원이 뛰어난 지능을 가짐으로서 유일한 무기를 잃어버린 인간이 패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오만방자함 때문입니다. 맹수들을 멸종시키고, 온갖 질병을 정복했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마치 죽지않는 불사의 몸이 되기를 원하는 것처럼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천적들과 싸워 나갑니다.

시저가 인간보다 월등한 지능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인간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병을 정복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에 의한 결과입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것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인간의 오만방자함은 그들의 유일한 무기인 지능을 유인원에게 선물함으로서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은 것이죠. 자연의 힘만이 할 수 있는 진화라는 신의 영역을 침범함으로서 인간은 스스로 진화의 희생물이 된 것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만약 호랑이가 인간의 지능을 가졌다면 우리 인간은 단순히 호랑이의 사냥감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은 지구의 자연에 적응하기엔 너무나도 열등적인 신체적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중인 '진진돌이 에볼루션'도 같은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만약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이 인간처럼 뛰어난 지능을 가졌다면 인간은 그들 중에서 가장 열등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참으로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인간을 제외한 지구의 모든 동식물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한 이치일 수도 있겠네요. 인간만이 그러한 자연의 섭리에서 벗어나 지구의 지배자라는 권력을 맘대로 휘둘렀으니 말입니다.

 

 

인간의 진정한 천적은 바로 인간의 오만방자함이 아닐까? (스포포함)

 

하지만 시저가 단숨에 인간을 몰아내고 지구를 점령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은 지구의 곳곳에 그들의 문명을 심어 놓았고, 무한 번식을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인간이 발명해낸 기계들도 유인원들에겐 버거운 적이었을 것이고, 수적 열세 역시 유인원들의 발목을 잡았을 것입니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이 대단한 점은 그러한 사실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루퍼트 와이어트 감독은 인간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바이러스를 등장시킵니다. 이미 [12 몽키스] 등 수 많은 SF 영화들이 만약 인간이 멸망한다면 바이러스 때문일 것이라 경고했습니다.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바로 그러한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인간은 수 세기 동안 바이러스를 점령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인간의 천적인 만큼 바이러스는 수 없이 변종 진화되며 끊임없이 인간을 괴롭혔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인간이 마지막으로 넘어야할 거대한 적인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의 바이러스를 정복하기 위해 스스로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를 만들어냅니다. 그러한 변종 바이러스는 인간이 스스로의 편의를 위해 개척해낸 세계 곳곳으로 뻗어있는 항공로를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에 퍼집니다. 그렇게 인간은 자멸합니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꽤 공감이 되었습니다. 인간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천적은 바이러스이고, 그러한 바이러스의 확산에 기여하는 것은 인간의 교통망이입니다.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죠.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다른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달리 대규모 액션씬이 없습니다. 금문교에서의 인간과 유인원의 전투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그 대신 시저의 변화를 통해 다른 블록버스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섬뜩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귀여운 침팬지에 불과했던 그가 인간의 지능을 가지고 인간이 창조해낸 부조리한 세계를 바라보는 장면은 정말 섬뜩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인간의 진정한 적은 시저가 아니었습니다. 시저는 그저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금문교 너머 삼나무 숲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을 뿐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적은 바로 인간의 오만방자함입니다. 인간의 유일한 무기를 스스로 유인원에게 내주고, 자신의 천적을 이기겠다는 생각에 더 강력한 새로운 천적을 만들어낸 그들의 오만방자함. SF 영화를 보며 인간을 위협하는 온갖 존재들을 보아왔지만 이 영화가 그려낸 인간의 오만방자함만큼 강력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제겐 굉장히 충격적인 SF 블록버스터였습니다.

 

 

인간의 오만방자함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엇인줄 아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오만방자함을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이다.

과연 자연의 섭리를 따라 맹수의 먹이가 되고,

질병에 스스로 목숨을 내던질 인간이 누가 있겠는가?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그것이 멸망의 길이라 할지라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