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푸른소금] - 경배하라! 영상미의 대가가 돌아왔다.

쭈니-1 2011. 8. 31. 06:00

 

 

감독 : 이현승

주연 : 송강호, 신세경, 천정명, 김민준

개봉 : 2011년 8월 31일

관람 : 2011년 8월 16일

등급 : 15세 이상

 

 

손가락이 근질거려 못 참겠다.

 

제 여름휴가가 아쉽게 끝난 8월 16일... 하지만 저는 여름휴가가 끝이 났다는 아쉬움보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그 이유는 CJ에서 주최하는 블라인드 시사회에 초청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블라인드 시사회란... 시사회에 초청된 사람들에게 영화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시사회입니다. 절대 김하늘 주연의 영화 [블라인드] 시사회가 아닙니다. 실제 시사회장에서 제 옆에 앉으신 20대로 보이는 남자분은 [블라인드]를 기대하고 왔다가 다른 영화가 상영되니 당황해하시더며 '오늘 [블라인드] 시사회 아니예요?'하며 제게 묻더군요.

이렇게 영화사에서 블라인드 시사회를 하는 이유는 이제 막 크랭크업된 영화에 대해서 불특정 관객들에게 영화에 대한 진솔한 판단을 얻기 위함입니다. 블라인드 시사회의 반응에 따라 언론에 공개 되기 이전에 영화가 재편집이 될 수도 있으며, 영화의 홍보 방향을 정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CJ 영화 마케팅 패널 자격으로 블라인드 시사회에 초청이 되었는데, 사실 시사회 전부터 이번 블라인드 시사회는 [푸른소금]일 것이라 확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알았냐하면 8월 중순에 블라인드 시사회를 한다는 것은 9월 정도에 개봉될 영화라는 것을 뜻하고, CJ에서 배급되는 9월 개봉 예정작 리스트를 통해 CJ에서 추석 시즌 개봉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영화가 [푸른소금]이라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블라인드 시사회를 다녀오자 마자 영화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습니다. 블라인드 시사회에 참가를 해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시사회 참가자들에게 비밀 유지 서약을 받습니다. 저 역시 영화를 보기 전에 비밀을 유지하겠다는 서약서에 자필 사인을 하였으니 함부로 [푸른소금]의 영화 이야기를 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0년 간이나 제가 본 모든 영화의 리뷰를 영화에 대한 여운이 사라지기 전에 즉각적으로 썼던 저는 손가락이 근질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영화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는데, [푸른소금]의 개봉일인 8월 31일에나 제 영화 이야기를 공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일찌감치 비공개로 [푸른소금]의 영화 이야기를 쓰는 이유입니다. 

 

 

90년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이현승이 돌아왔다.

 

블라인드 시사회라면 당연히 영화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없고, 그로인한 선입견도 없는 상태에서 영화를 봐야 함이 마땅한데, 저는 이미 시사회 영화가 [푸른소금]일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엄청난 기대감을 갖고 시사회에 참가했습니다. 제가 [푸른소금]을 기대한 이유는 바로 이현승 감독의 귀환작이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들어서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하신 분이라면 이현승 감독에 대해서 잘 모르실 겁니다. 그는 1992년 [그대안의 블루]로 감독 데뷔를 했고, 1995년 [네온 속으로 노을 지다]를 거쳐 2000년 [시월애]를 마지막으로 대중의 관심 속에서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월애] 이후에도 몇 편의 단편 영화들을 연출했고, 인권 영화인 [다섯 개의 시선] 프로듀서, [여섯 개의 시선]의 총제작을 맡으며 활발하게 활동을 했지만, 상업 영화에서 멀어진 그의 이름은 대중들에겐 잊혀진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그가 무려 10년 만에 [푸른소금]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어쩌면 그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영화계에 머물며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10년 만에 돌아왔다.'라는 표현에 불만을 표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제 입장에선 [시월애] 이후 제 기억에서 잊혀진 그가 돌아왔다고 밖에 표현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현승 감독의 특징이라면 아름다운 화면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이력을 영화에 맘껏 발휘했는데 그가 미술을 맡았던 여균동 감독의 [맨?], 그리고 그가 연출했던 영화들에서 그 실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푸른소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에서 대부분의 캐릭터는 조폭과 킬러이고,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은 조폭 세계의 음모와 배신입니다. 딱 느와르 영화에나 어울릴 듯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스토리 라인이 펼쳐집니다. 당연히 영화도 어둡고 암울해야 마땅한 셈입니다. 하지만 [푸른소금]은 놀라울 만큼 아름답습니다.

부산의 아름다운 바다, 서울의 빌딩 숲, 그리고 마지막 클라이맥스가 펼쳐지는 푸른 빛이 감도는 염전까지... 이 영화의 배경은 무엇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추악한 음모와 배신, 그리고 무시무시한 범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아름답다니... 영화와 영상이 서로 부합되지 못하고 겉돌 위험성도 있었지만, 이현승 감독은 충무로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답게 그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아름다움으로 [푸른소금]의 재미를 창출해 냅니다.

 

 

캐릭터의 구축의 부족함... 하지만 아름다움으로 메꾸다.

 

이현승 감독이 이룩해 놓은 아름다움은 [푸른소금]에서 많은 것을 해냅니다. 단지 영화를 보며 '우와! 멋지다.'라는 탄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 구축에도 많은 역할을 해낸 것입니다.

블라인드 시사회가 끝나고 제가 CJ에 써낸 설문지에 이 영화에 대해 유일하게 아쉽다고 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윤두헌(송강호)과 조세빈(신세경)의 관계가 설명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푸른소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윤두헌과 조세빈의 관계입니다. 전설적인 조폭이었지만 이젠 은퇴하고 음식점 사장을 꿈꾸는 두헌과 그런 두헌을 감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두헌에게 접근하는 세빈. 그런데 영화가 진행되다 보면 세빈을 향한 두헌의 헌신이 도가 지나치다고 느껴질 정도로 일방적입니다.

두헌이 세빈에게 사랑을 느낀다고 하기엔 그 둘의 나이차가 너무 컸고, 그렇다고 다른 이유를 대자니 그 어떤 단서도 이 영화에선 제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서 세빈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두헌 딸이 있었는데 두헌으로 인해 안타깝게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면 조금은 뻔하지만 세빈에 대한 두헌의 헌신이 이해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엔 그런 뻔한 설정조차 없습니다. 

그러한 두헌과 세빈의 관계는 후반부가 되면 될수록 심해지는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세빈을 위해 모험을 하는 두헌의 모습에서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데?'라는 의문이 떠오를만 했습니다.(세빈은 후반부에 눈물을 흘리며 두헌에게 묻습니다. '내가 뭔데?' 그건 관객인 제가 이현승 감독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었습니다.)

 

이현승 감독은 캐릭터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미흡함을 드러냈습니다. 두헌과 세빈의 관계는 물론이고, 두헌과 애꾸(천정명)의 관계, 세빈과 은정(이솜)의 관계, 세빈과 K(김민준)의 관계 등등... 이현승 감독은 이 영화 속 캐릭터 간의 관계 설명을 모두 생략해 버렸습니다.

그것은 상당히 위험한 모험입니다. [푸른소금]의 캐릭터 간의 관계는 대부분 극단적인 헌신으로 표현되는데, 그들에게 어떠한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목숨을 내걸고 상대방에게 헌신을 하는지 이현승 감독은 설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다른 영화였다면 저는 그러한 부분가지고도 이 영화가 그저 80년대 홍콩 느와르의 비장함만을 내세운 캐릭터 부재의 영화라고 혹평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현승 감독은 이렇게 캐릭터 간의 관계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자신의 주특기인 영상미로 캐릭터를 설명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줍니다.

이현승 감독의 영상미는 배경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를 찍을 때도 다른 영화와는 다른 선명함과 빛과 색의 조화로 최대한 아름답게 담아냅니다. 그러한 이현승 감독의 능력은 세빈을 잡아낼 때 두드러집니다. 물론 신세경은 아름다운 배우입니다. 하지만 저는 신세경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아니 솔직히 출연작이 별로 없기에 별 관심이 없는 배우였습니다.) 그런데 [푸른소금]을 보다보면 신세경이 연기한 세빈이 너무 아름다워 그녀를 보호해주고 싶은 욕망이 생겨납니다. 이현승 감독이 캐릭터 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방식은 그런 식입니다.

 

 

세빈... 그녀를 보호하고 싶다.

 

촉망받던 국가대표 사격 선수였지만 불의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은 세빈. 그녀는 너무 어린 나이에 모든 것을 잃었고 세상의 어두운 면에 갇혀 살아야 했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두헌은 아마도 살아남기 위해 강한 척하지만 사실은 연약하기만한 세빈의 내면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미 세상에 그 어떤 미련도 없어 보이는 두헌이 아직 세상에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아야할 세빈에게 헌신하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그건 남녀간의 사랑이라 표현하기엔 미흡하지만, 어찌보면 앞날이 창창한 딸을 지키고 싶은 아버지의 사랑과 비슷한 감정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세빈과 두헌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세빈이라는 캐릭터가 매력적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현승 감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세빈을 꾸몄습니다. 냉혹한 킬러 세빈의 보이쉬한 스타일을 통해 청순한 이미지로 브라운관을 누비던 신세경에게 지금까지 없었던 매력을 이끌어 냈고, 후반부에는 두헌이 사준 원피스를 입고 귀엽게 투정을 부리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관객의 보호본능을 자극시키기도 합니다. 

 

냉혹한 킬러 K가 세빈에게만큼은 너그러웠던 이유는 총에 대해서 K보다 더 잘아는 세빈에 대한 킬러로서의 존경심, 혹은 동질감으로 보이고, 그와는 반대로 위험할 정도로 은정에게 집착하는 세빈의 모습은 아직은 소녀인 세빈의 내면과 맞닿아 있습니다. 세빈의 매력을 극대화시킨 영상미만으로 이현승 감독은 세빈과 두헌, 세빈과 K,  세빈과 은정의 관계를 모두 설명해낸 셈입니다.

이렇게 최대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 간의 관계 설명을 이현승 감독의 주특기인 영상미로 인한 세빈 캐릭터의 매력으로 캐릭터 간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해낸 [푸른소금]은 이후 영화의 오프닝에서 보여줬던 두헌에게 총을 겨누는 세빈의 장면으로 영화를 마무리짓습니다. 세빈의 향한 두헌의 헌신적 사랑, 그리고 두헌으로 인한 세빈의 변화를 알기에 정말 인상깊은 명장면이었습니다.

솔직히 [푸른소금]의 재미를 글로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글로 표현하기엔 이현승 감독이 이 영화에 펼쳐 놓은 영상미가 너무 강렬하기 때문입니다. 글 만으로 [푸른소금]을 펼쳐놓으면 캐릭터 간의 관계 부실과 비장미를 내세운 홍콩 느와르의 아류작으로 밖에 느껴지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푸른소금]은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현승 감독만의 강렬한 영상미가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저는 영상미의 대가의 귀환에 환호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 세상엔 글로 표현이 안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푸른소금]도 그 중 하나인데...

이현승 감독의 영상미는 정말 내 미약한 글로는 전혀 표현이 되지 않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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