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패트릭 루시에
주연 : 니콜라스 케이지, 앰버 허드, 월리엄 피치너, 빌리 버크
개봉 : 2011년 8월 25일
관람 : 2011년 8월 25일
등급 : 18세 이상
이 영화가 그렇게 엉망이었어?
솔직히 여름 막바지에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드라이브 앵그리 3D]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 첫 반응은 '또?'였습니다. 우리나라 관객들에겐 케서방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사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영화는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그다지 좋은 흥행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보고 니콜라스 케이지의 팬이 된 제 입장에서는 이제 그가 속빈 강정같은 액션 영화 출연은 조금 자제하고 예전처럼 연기력으로 승부를 거는 영화에 출연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제 바람과는 달리 니콜라스 케이지의 최근 필모그래피는 [마법사의 제자], [시즌 오브 더 위치 : 마녀 호송단], [드라이브 앵그리 3D], 그리고 개봉 예정작인 [고스트 라이더 2]까지... 엇비슷한 상업영화 라인업으로 꽉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는 역시 니콜라스 케이지의 영화를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의 영화가 연달아 관객의 외면을 받으며 흥행에 실패했고,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을 받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하며, 최근에는 사생활 문제로 안좋은 이미지까지 덧붙이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드라이브 앵그리 3D]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나섰습니다.
그런데 정말 깜짝 놀랬습니다. [드라이브 앵그리 3D]가 미국 흥행에 완전 망했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영화의 제작비는 많으면 7천5백만 달러, 적어도 4천5백만 달러가 투입되었다고 하는데, 2월 25일 미국에서 처음 개봉하였으나 개봉 첫 주 흥행 성적은 5백만 달러를 기록하며 9위에 그쳤고, 현재까지 이 영화의 미국내 흥행 수입은 고작 1천만 달러입니다. 이건 뭐 망해도 보통 망한 것이 아니죠.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해도 이렇게 우리나라의 개봉관에서 천대를 받을줄 몰랐습니다. 그래도 여름 대목시즌 끝물에 찾아온 시원스러운 액션 영화인데 저희 동네 멀티플렉스 극장인 목동 CGV에서는 아예 상영조차 하지 않고 있으며, 목동 메가박스의 경우는 [행오버 2]와 교차 상영 중입니다.
아무리 평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관객의 10명 남짓한 상영관에 들어가며 구피와 저는 깜짝 놀랬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영화에 대한 기대를 거의 접었습니다. '영화가 얼마나 엉망이길래 이 정도로 관객이 없지?'라는 생각이 드니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이 영화가 얼마나 엉망인지 확인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난 뭐 그냥 즐길만 했다.
상영관의 텅빈 의자를 보며 구피가 제게 나즈막히 묻습니다. '솔직히 고백해. 이 영화 무지 재미없는 영화지?' 구피와 함께 영화를 보고 싶어서 '올 여름의 마지막을 장식할 초대형 블록버스터야!'라고 거짓말을 했던 저는 뜨끔... 그래서 고백했습니다. '미국에서도 흥행에 참패했대. 그냥 기대하지 말고 봐.'라고...
그래서일까요? 영화가 끝나고나서 구피도 저도 그냥 즐길만한 영화였다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액션 영화의 걸작이라고 하기엔 한참 부족하고, 그렇다고 전혀 즐길거리도 없는 쓰레기같은 영화라고 하기에도 조금 무리가 있는, 정리하자면 킬링타임용 영화의 전형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킬링타임용 영화답게 내용은 간단합니다. 한 남자가 지옥에서 탈출합니다. 그의 이름은 밀턴(니콜라스 케이지). 그는 자신의 딸을 죽이고, 갓 태어난 손녀를 납치한 악마 숭배자 조나 킹(빌리 버크)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늘씬한 미녀 파이퍼(앰버 허드)와 동행하게 되고, 지옥에서 탈출한 밀턴을 잡기 위한 회계사(윌리엄 피치너)가 밀턴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밀턴은 회계사의 추격을 피해 조나 킹에게서 손녀를 구하고 조나 킹에게 복수를 해야 하며, 그의 옆에서 파이퍼는 늘씬한 각선미를 자랑함과 동시에 여전사의 면모까지 유감없이 발휘하며 영화의 재미에 한 몫합니다. 이렇게 단순한 캐릭터 구조 속에서 이 영화는 그저 즐기라고 제게 속삭입니다.
사실 이 영화가 정교한 액션 영화가 되려면 밀턴과 그의 딸의 관계부터 진지하게 설명했어야 했습니다. 어쩌다가 밀턴과 그의 딸이 갈등을 겪었는지 설명이 되어야만 조나 킹의 꾐에 빠진 밀턴 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그로인해 느꼈을 밀턴의 죄책감과 조나 킹에 대한 극단적인 분노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드라이브 앵그리 3D]는 이 모든 것을 아예 생략합니다. 밀턴이 조나 킹에게 느꼈을 분노는 스토리 전개를 통해 관객에게 이해시키기 보다는 영화의 처음부터 아예 전제로 깔고 시작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저는 밀턴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보다는 그저 제 3자의 입장에서 그의 복수극을 구경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한 이 영화의 선택은 스스로 '난 액션 영화의 걸작이 될 생각이 없어. 그냥 킬링타임용 영화로 만족할래.'라고 선언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영화는 그런 선택의 길을 걷습니다.
저는 밀턴의 분노가 공감이 되지 않다보니 오히려 영화를 감상하는데 편안했습니다. 밀턴의 극한의 분노가 공감이 되었다면 영화를 보며 저 역시도 조나 킹의 능글맞은 미소에 분노를 느꼈을텐데, 그럴 필요없이 단순히 액션만 감상하면 되었으니까요. 어쩌면 그것이 킬링타임용 영화의 장점일지도 모르겠네요.
전혀 하드코어적이지 않은 몇몇 인상적인 액션씬
[드라이브 앵그리 3D]를 보기 전에 과연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할지, 말아야할지 잠깐 고민했었습니다. 그래서 네티즌 영화 리뷰를 찾아서 몇몇 리뷰를 읽었는데 어떤 분이 [드라이브 앵그리 3D]의 액션이 하드코어적이라고 평을 하셨더군요.
하드코어? 나이가 들어서인지 심장이 약해져 젊었을 때는 즐겼던 공포 영화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제 입장에서 하드코어적이라는 [드라이브 앵그리 3D]의 액션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밀턴의 분노가 공감되지 않아서인지 몰라도 저는 이 영화의 액션이 전혀 하드코어적이라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피가 난무해도 '잔인하다'라는 생각보다는 그냥 무덤덤했습니다. 액션이 하드코어적이라는 그 분의 리뷰에 잔뜩 겁을 먹어서인지 영화가 끝나고 '도대체 뭐가 하드코어적이라는 거야?'라는 안도(?)의 투덜거림이 밀려 오더군요. 저보다 겁많은 구피도 '이게 무슨 하드코어?'라고 반문할 정도였습니다.
하드코어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내고 나니 이 영화의 액션씬 중 몇몇은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중에서 밀턴이 자신을 에워싼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예고편에서도 등장했던 이 장면은 사실 제가 수많은 악재에도 불구하고 [드라이브 앵그리 3D]를 극장에서 보겠다고 결심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모텔 방에서 밀턴이 술집 여종업원과 섹스를 나누며 자신을 급습한 조나 킹 일당과 한바탕 난도질 액션을 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섹스 도중 질러되던 술집 여종업원의 과도한 신음소리와 조나 킹 일당과의 난도질 액션 와중에 술집 여종업원의 비명소리는 교묘하게도 비슷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조나 킹이 급습한 와중에도 술집 여종업원과의 섹스 체위를 유지한채 총질을 하는 밀턴의 기술이 놀랍고 우스웠습니다.
그 외에도 밀턴을 뒤쫓는 회계사의 그 여유로운 손짓도 흥미로웠습니다. 밀턴을 제외하고는 다른 쓰레기같은 인간에게 관심없다는 그의 무표정한 얼굴과 작은 손짓 하나로도 악마의 위엄을 드러내는 장면은 오히려 주인공인 밀턴보다 회계사라는 캐릭터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앰버 허드를 발견하다.
하지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이 영화의 최고 재미는 앰버 허드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가 결국 [드라이브 앵그리 3D]를 극장에서 보겠다고 결심한 것은 예고편에서 보여줬던 시원스러운 액션도 한 몫을 해냈지만 역시 예고편에서 보여줬던 앰버 허드의 매력적인 외모도 한 몫 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고편의 시원스러운 액션은 '예고편이 전부네'라는 투덜거림이 나올만 하지만 앰버 허드의 매력은 예고편에서 보여줬던 것 그 이상입니다. 예고편에서는 섹시한 매력만이 부각되었는데, 막상 영화에서는 여전사적인 매력이 추가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앰버 허드라는 배우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단지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며 이런 류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흔한 눈요기거리 여배우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 배우 꽤 재능이 있어 보입니다.
처음 자신을 추근거리는 식당 주인에게 한 방 날릴때부터, '제법인데.'라고 생각했는데, 남친과 바람을 피우고 있는 여자를 때려 눕히고, 자신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친에게 절대 굽히지 않고 주먹을 날리는 모습은 액션 영화의 여주인공다운 매력을 품어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매력을 영화의 후반부까지 잘 이끌어 나갔습니다.
제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서 예리한 분이라면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왜 니콜라스 케이지에 대한 이야기는 안나와?'라고...
맞습니다. 결국 제가 [드라이브 앵그리 3D]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영화를 비싼 관람료를 들여 극장에서 본 결정적인 이유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고, 구피도 그렇고, 니콜라스 케이지의 팬이거든요. 남들이 모두 재미없다고 욕하던 [시즌 오브 더 위치 : 마녀 호송단]마저 재미있게 볼 정도로...
하지만 아무리 제가 니콜라스 케이지의 팬이라고 해도 이 영화에서 그는 정말 아닙니다. 금발의 훤한 이마도 안타까운데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밀턴이 잘생겼다며 노골적으로 유혹합니다. 파이퍼가 밀턴에게 잘생겼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손발이 오글거려서 '에이 그 정도는 아니지'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조나 킹에 대한 분노도 제대로 연기가 안되었고, 그렇다고 [더 록]의 인간적인 모습, [콘 에어]의 카리스마 넘치는 액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무성의하게 대사를 내뿜었습니다. 그가 B급 액션 영화 전문 배우(예를 들어 스티븐 시걸같은)라면 언급안하고 넘어가겠지만 그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너무 매력적인 연기를 보여줬던 연기파 배우입니다. 이제 그만 예전의 그때로 돌아왔으면 좋겠네요. 그것이 [드라이브 앵그리 3D]를 나름 부담없이 재미있게 관람을 했던 제게 이 영화에 느꼈던 유일한 아쉬움이었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는 지고 엠버 허드는 뜬다.
이것이 어쩔수 없는 할리우드의 이치라고는 하지만...
니콜라스 케이지의 미친듯한 연기력을 기억하는 난,
아직 니콜라스 케이지를 놓을 수가 없다.
'영화이야기 > 2011년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콜롬비아나] - 내겐 너무 섹시하지 않은 그녀. (0) | 2011.09.02 |
---|---|
[푸른소금] - 경배하라! 영상미의 대가가 돌아왔다. (0) | 2011.08.31 |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 인간의 오만방자함에 돌을 던져라! (0) | 2011.08.18 |
[개구쟁이 스머프] - 어른도, 아이도 즐길 수 있는 신나는 스머프의 모험 (0) | 2011.08.16 |
[최종병기 활] - 치욕의 역사를 관통하는 강함의 쾌감 (0) | 2011.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