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퍼스트 어벤져] - 말라깽이에게 희망을...

쭈니-1 2011. 7. 29. 11:28

 

 

감독 : 조 존스톤

주연 : 크리스 에반스, 휴고 위빙, 헤일리 앳웰, 토미 리 존스, 도미닉 쿠퍼

개봉 : 2011년 7월 28일

관람 : 2011년 7월 28일

등급 : 12세 이상

 

 

말라깽이한테 희망을...

 

지금은 똥배가 두둑하게 나온 전형적인 ET형 중년 아저씨의 포스를 풍기지만 젊은 시절 저는 너무 마른 몸 때문에 걱정이 많았답니다.

특히 사춘기 시절에는 몸무게가 50kg를 넘지 않아 용돈만 생기면 콜라 마시고(그래서 콜라 중독도 걸려봤습니다.) 초콜릿 먹고, 잠자기 전에 라면 하나씩 끓여 먹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그래도 살은 안 찌더군요.

그런 제게 한가지 희망이 있었답니다. 그것은 군입대였습니다. 너무 말라서 고민하는 제게 친구들은 위로하듯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군대에 가면 규칙적인 생활과 반복적인 운동으로 말라깽이도 건장한 남자가 되어 제대한다고... 사실 군대에 가는 것은 무서웠지만 나도 건장한 몸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은 제겐 희망을 갖게 했었답니다.(그냥 운동을 하면 될 걸... 그땐 그런 생각은 왜 못하고 군입대에 희망을 가졌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희망은 신체검사를 받는 날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신체검사 받는 날, 군의관은 제게 '군대 안가려 일부러 살을 뺀 것은 아니냐?'며 무섭게 쏘아 보더군요. 신체검사 당시 제 몸무게는 45kg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현역이 아닌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그리워진 말라깽이 시절을 갑자기 이야기한 이유는 어제 구피와 함께 본 [퍼스트 어벤져]에서 제 추억 속의 군입대 신체검사가 연상되는 장면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너무 왜소한 체격으로 번번히 군 입대를 거부당하는 스티브(크리스 에반스). 물론 저는 스티브와는 달리 군대에 입대하겠다는 간절함은 별로 없었지만(저는 4급 보충역 판정을 받고는 또 그런대로 만족했습니다.) 삐쩍 마른 몸으로 건장한 남자들 사이에서 신체검사를 받는 그의 모습은 20년 전의 제 모습과 겹쳐졌습니다.

사실 [퍼스트 어벤져]를 보러 가며 다른 히어로 액션 영화를 보러 갈 때와는 달리 약간의 걱정을 했습니다. 아무리 히틀러의 만행으로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치를 떨던 세계 2차 대전이 배경이라고는 하지만 군대에 입대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영웅병에 걸린 전쟁광 청년이 주인공인 영화라니...

그러나 제 예상과는 달리 스티브는 모든 젊은 남성들이 세계 2차 대전에 참전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신만은 그럴 수 없다는 자괴감과 자신의 나약한 몸에 대한 콤플렉스을 이겨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가련한 말라깽이였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스티브의 모습 덕분에 저는 영화 초반부터 그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감정이입을 하며 영화를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미안하다. 내가 오해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퍼스트 어벤져]는 다른 코믹스 히어로 영화와는 달리 너무 강한 미국색 때문에 영화를 보기 전부터 거부감이 드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수입사도 그러한 사실을 정확히 인지했고, 그래서 이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라는 제목 대신 [퍼스트 어벤져]라는 부제로 국내 개봉명을 정했습니다.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대부분의 히어로 영화들은 영웅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캡틴 아메리카'라는 영웅의 이름 대신 '퍼스트 어벤져'를 개봉명으로 정했습니다. 그만큼 이름에서부터 미국색을 강하게 띈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국내 관객에게 거부감을 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던 것이죠.  

'캡틴 아메리카'의 무기는 미국의 성조기를 연상하게 하는 무늬를 가진 방패입니다. 게다가 미국이 승리로 이끈(덕분에 세계 최강국이 된) 세계 2차 세계 대전이 배경이고, 군입대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청년이 주인공입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이거 좀 위험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가벼운 히어로 영화라도 성조기를 휘날리며 손발이 오글거리게 영웅짓을 하는 영화는 미국인이 아닌 이상 보기 불편한 것은 당연하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제 오해였습니다. 영화의 초반 제 사춘기 시절의 콤플렉스와 같은 문제로 고민에 빠진 스티브의 인간적인 모습을 비춰주더니 영화의 중반부에도 '캡틴 아메리카'의 영웅적 활동에 그다지 큰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그 대신 이 영화가 비중을 둔 것은 말라깽이 청년에서 점점 영웅이 되어 가는 스티브의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자신의 나약함을 경험했기에 강력한 힘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스티브. 그는 수 많은 좌절 속에서도 결코 포기할 줄 모르는 인내심을 가졌습니다. 그것이 그가 다른 영웅들과 다른 점입니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대로 영웅이 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동물원의 원숭이 같은 영웅쇼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그가 항상 갖고 다니는 무기가 총이나 칼이 아닌 방패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물론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는 가끔 강력한 살상용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상대의 공격을 막는 역할을 해냅니다. 그는 공격형 영웅이 아닌 방어형 영웅인 것이죠. 

영웅병에 걸린 청년? 전쟁광? 아니, 스티브는 시대 정신에 휩쓸린 평범한 남자에 불과합니다.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당시의 미국 상황에 휩쓸려 자신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자 발버둥쳤던, 어쩌면 너무 순박한 평범한 남자. 그것이 바로 '캡틴 아메리카'의 본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캡틴이 되어야 하는 이유

 

물론 '캡틴 아메리카'는 영화의 후반에 들어서며 자신의 절친한 친구가  요한 슈미트(휴고 위빙)에게 포로로 잡혔다는 사실을 알게되며 본격적인 영웅 활동에 들어갑니다.

아무리 슈퍼 솔져 프로그램으로 인하여 완벽한 육체와 신체 능력을 지니게 된 스티브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펄펄 날으며 영웅 행세를 하는 것은 분명 뜬금이 없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공개될 [어벤져스]에서 대장으로 활동할 '캡틴 아메리카' 캐릭터를 어서 빨리 완성하려면 그가 평범한 청년에서 점점 영웅이 되는 훈련 과정을 차근 차근 설명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오락 영화에서 이 정도의 생략은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그렇다면 과연 그가 [어벤져스]에서 그 수 많은 쟁쟁한 영웅들을 거느릴 대장 자격이 있느냐? 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분명 능력치만 보자면 다른 영웅들에 비해서 '캡틴 아메리카'의 능력이 가장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헐크'는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고, '아이언맨'은 최첨단 무기를 가졌으며, 심지어 '토르'는 인간이 아닌 신이기까지 합니다. 그런 그들에 비해 '캡틴 아메리카'는 슈퍼 솔져 프로그램에 의해 가공된 영웅에 불과하니까요.

 

분명 힘에 의해서 대장을 정한다면 '캡틴 아메리카'는 후보 순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밀릴 것입니다. 하지만 대장의 조건이 무조건 힘은 아니죠.

'헐크'는 자신의 무시무시한 힘을 조절할 능력이 아직 부족하고, '아이언맨'은 자기 과시형 인간이며, '토르'는 지능 부족입니다.

그에 비해 '캡틴 아메리카'는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희생 정신, 그리고 임무 수행을 위해 인내할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힘은 딸려도 팀을 이끌어나갈 능력 만큼은 다른 영웅들과 비교해서 우위인 셈입니다.

제가 [어벤져스]를 너무 기대하고 있고,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 영화에 대한 평가에 지나치게 관대한 면이 있긴 하지만 [퍼스트 어벤져]는 분명 잘 만들어진 오락 영화입니다. 스티브라는 캐릭터 구축도 마음에 들었고, 영화 중반에 펼쳐지는 웃음 코드 역시 적절했으며, 영웅의 이름에서부터 내포된 너무 과한 미국색을 시대 상황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패러디(영웅쇼 장면)로 적절히 피해갑니다. 

특히 저는 다른 히어로 영화와는 달리 페기 카터(헤일리 앳웰)와는 로맨스가 잘 표현된 점이 좋았는데, 그래서 더욱 그녀와의 데이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그의 마지막 표정에 여운이 남기도 했습니다. 악당인 레드 스컬이 조금 약하긴 했지만 이 영화가 [어벤져스]로 가는 길목임을 감안한다면 이 정도면 대 만족입니다.

 

 

[어벤져스]에 대한 기대감이 이제 도를 넘어섰다.

 

마블이 [어벤져스]에 대한 원대한 계획을 선포하고 [어벤져스]의 일원들을 하나씩 영화로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어벤져스] 계획을 선포하기 이전에 만들어진 이안 감독의 [헐크]는 루이스 리터리어 감독에 의해 [인크레더블 헐크]로 리뉴얼되었고, [아이언 맨], [토르 : 천둥의 신]의 마지막 히든 영상에 [어벤져스]에 대한 영상을 조금씩 숨겨놓으며 관객들의 기대감을 조금씩 부풀려 놓았습니다.

그러한 마블 코믹스의 전략은 맞아 떨어졌는데 [어벤져스]에 크게 관심이 없던 저 역시도 히든 영상들을 보며 [어벤져스]를 향한 퍼즐 맞추기에 재미를 느꼈고, 결국 [어벤져스]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퍼스트 어벤져]에도 기나긴(거의 10분 이상을 기다려야 합니다.) 엔딩 크레딧 이후 [어벤져스]에 대한 히든 영상을 보여줍니다. 이번 히든 영상의 경우는 [어벤져스]에 대한 예고편 형식을 띄고 있는데 그러한 히든 영상을 보며 제 가슴은 마구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조금씩 [어벤져스]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던 저는 [퍼스트 어벤져]의 히든 영상으로 그 기대감이 도를 넘어서기 시작한 셈입니다.

 

이렇게 기대감이 커져 버려서는 왠만하면 [어벤져스]에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아 불안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가 없네요.

그러한 기대감은 [퍼스트 어벤져]도 크게 한 몫했는데 [어벤져스]의 일원 중에서 가장 기대가 안되던 '캡틴 아메리카'의 활약과 캐릭터에 크게 만족하고 나니 [어벤져스]가 더욱 완벽해 보이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을 조절하지 못하는 '헐크', 틈만 나면 자기 자신을 과시하는 '아이언맨' 그리고 인간 세계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막무가내 천둥 신 '토르'를 통제하며 사상 최강의 영웅 군단을 이끌어나갈 '캡틴 아메리카'. 말라깽이라는 콤플렉스를 이겨내고 영웅이 된 그를 보며 한때 말라깽이였던 제가 희열을 느끼는 것은 과도한 감정이입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속으로 '말라깽이에게 희망을...'이라고 외치며 '캡틴 아메리카'의 활약을 흐뭇하게 즐긴 것을... 아! 저처럼 말라깽이가 아니었던 분들은 이 희열을 이해못할 것입니다. ^^

 

 

 

말라깽이였던 내게 누군가 찾아와 슈퍼솔져 프로젝트로

근육질 영웅이 될 수 있게 해준다고 제안을 한다면... 아마도 나는 수락했을 것이다.

그만큼 근육질 영웅은 당시 내겐 동경의 대상이었으니까.

아마 그런 어린 시절을 갖고 있기에 더욱 [퍼스트 어벤져]에 열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