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조범구
주연 : 이민기, 강예원, 김인권, 고창석
개봉 : 2011년 7월 20일
관람 : 2011년 7월 20일
등급 : 15세 이상
위기의 순간, [고지전]보다 [퀵]을 선택하다.
지난 6월, SK 주유소를 이용한 후 SK 무비플러스 이벤트에 당첨되어 CGV 영화 예매권 2장을 획득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제게 딱 알맞은 선물이었지만 구피가 선물해준 메가박스 영화 예매권이 많이 남아 있어서 SK 무비 플러스 예매권은 제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았답니다.
그리고 한 달후, 메가박스 영화 예매권을 어느덧 다 쓴 저는 그제서야 '아! 맞다. 내게 CGV 영화 예매권이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SK 무비 플러스 예매권의 사용 기한은 7월 16일. 제가 CGV 영화 예매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것은 7월 18일이었습니다.
아마 저를 아는 분이라면 제가 얼마나 좌절을 했을런지 상상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영화 예매 날짜를 잘 못 기억해서 결국 영화를 못 본 초유의 사건 이후로 저는 이렇게 제 자신의 저주 받은 기억력을 원망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다른 것도 아닌... 공짜 영화 예매권 사용 기한을 잊어버릴 수 있단 말입니까? 그건 제게 있어서는 안될 최악의 실수였습니다.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었습니다. 사용 기한을 넘겼기 때문에 안될 것을 알면서도 저는 무작정 CGV 사이트에 들어갔고, SK 무비 플러스 예매권 번호로 영화 예매를 시도했습니다.
안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영화를 볼까? 언제 볼까? 몇 시에 볼까?'라는 고민 따위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보고 싶은 영화 아무거나 골라서 그 영화가 개봉하는 날짜인 수요일을 선택했고, 예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되는겁니다. 순간 마음 속으로는 '만세!'를 불렀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매가 된 것이 확실한지 확인하고 또 확인했습니다. 일단 예매를 취소하고 구피와 상의해서 볼 영화와 날짜, 시간대를 조정해야 했지만 차마 예매 취소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예매 취소 버튼을 누르고 다시 예매를 시도하면 이번엔 안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구피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구피도 막상 극장에 갔는데 예매가 되지 않았다고 하면 어쩌냐고 걱정은 했지만 일단 저와 함께 극장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예매를 한 영화가 바로 [퀵]이라는 점입니다. 정상적인 예매라면 [고지전]과 [퀵]을 고민했어야 하지만 예매할 당시에는 고민할 여유가 없었고, 그냥 마음이 가는대로, 손이 가는대로 영화를 골랐는데, 제 마음과 제 손은 무의식 중으로 [퀵]을 선택한 것이죠.
한국형 도심 난장 액션의 역사는 이제 제대로 시작된다!!!
구피와 함께 영화 티켓을 받은 그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결국 영화 티켓을 뽑고, 무비 플러스 콤보까지 덤으로 얻고 나니 그제서야 안심이 되더군요.
공짜로 영화도 보고, 콤보 세트도 먹었기 때문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고, 그런 기분 덕분인지 [퀵] 역시 상당히 유쾌하게 보았습니다.
[퀵]은 오토바이 폭주족으로 인하여 도심 도로가 난장이 되는 상황으로 영화는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런 난장 상황은 영화의 오프닝씬으로 잠시 맛뵈기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펼쳐집니다. 특히 서울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다는 명동 한 복판에서 펼쳐지는 오토바이와 차량의 추격씬은 정말 입이 딱 벌어지더군요.
제가 [퀵]에게 놀란 것은 바로 이런 도심 난장 액션입니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는 자주 펼쳐지는 도심 난장 액션은 영화의 현장감을 높여줌으로서 영화를 보는 관객을 더욱 긴장시키는 효과를 얻어냅니다. 하지만 우리 영화에서 도심 난장 액션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기술의 부족도 있지만 시 당국의 허가를 받아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한 까닭에 우리나라의 액션 영화들은 거의 대부분 세트 촬영이거나, 한적한 곳에서 액션을 펼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제 기억에 처음으로 본격적인 도심 난장 액션을 시도했던 것은 김성수 감독의 [런어웨이]였습니다. 이전의 액션 영화와는 다르게 관객에게 익숙한 서울의 도심을 배경으로 하여 주인공의 쫓고 쫓기는 액션을 펼쳐 보임으로서 당시엔 신선한 충격을 안겨줬었습니다.
하지만 [런어웨이]도 한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주요 장면들은 야간에 찍음으로서 할리우드 도심 난장 액션 영화에 비해 현장감이 현저하게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런어웨이]의 한계라기 보다는 우리나라 영화 제작의 한계였죠.
그 이후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의 각본으로 유명한 박정우 감독이 야심차게 도심 난장 프로젝트 3부작 발표를 하기에 이릅니다. 그는 [쏜다], [난다], [간다]를 통해 제대로된 한국형 도심 난장 액션을 선보이겠다고 선언했지만 [쏜다]의 흥행 실패로 이 프로젝트 역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쏜다]는 분명 [런어웨이]보다 한단계 높은 도심 난장 액션을 펼쳤습니다. 이는 영화의 도시로 알려진 부산시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입니다. 하지만 [쏜다]의 도심 난장 액션은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도심 난장 프로젝트 첫번째 영화라는 타이틀과는 다르게 [쏜다]의 도심 난장은 무늬만 도심 난장이었던 것입니다.
한국형 도심 난장 액션은 바로 이런 것이다.
제가 [퀵]에 놀랐던 것은 [쏜다]로 부터 불과 5년이 지났을 뿐인데 도심 난장 액션이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기 때문입니다. 1995년 [런어웨이]는 도심을 무대로 했지만 인적이 드문 소심한 도심 난장 액션이었고, 2006년 [쏜다]는 클라이맥스만 도심을 난장으로 만들었던 무늬만 도심 난장 액션이었습니다.
하지만 [퀵]은 다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는 도심을 무대로 달리고, 터집니다. 우리나라에서 저런 액션 영화가,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서 펼쳐진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특히 앞에서 언급한 명동 거리에서의 추격전은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불끈 쥐게 만들 정도로 생생한 현장감과 그로인한 긴장감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해결사]에서 대전 시청앞 도로를 5일간 통제하며 찍은 자동차 추격씬을 보며 감탄을 했던 것이 불과 1년 전의 일인데, 그 1년 사이에 [퀵]은 한국 영화로는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도심 난장 액션을 완벽하게 구축해 낸 것입니다. 이런 도심 난장 액션이 서울의 한복판에서 찍을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굉장히 뿌듯했습니다.
하지만 [퀵]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제가 [퀵]에게 '한국형'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퀵]의 도심 난장은 할리우드의 그것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한국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우리나라의 장르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코미디를 끼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관객들은 웃음을 갈망하고 있으며, 영화도 그러한 우리 관객들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이 장르 영화의 형태를 띄고 있으면서도 코미디를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 놓습니다.
[해운대]가 대표적인데, 심각해야할 재난 블록버스터에서 김인권이 맡은 오동춘이라는 캐릭터는 끊임없이 관객을 웃깁니다. [해운대]를 코미디 영화라고 하지는 않지만 [해운대]가 전해준 웃음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고, 그 결과 천만 관객이라는 달콤한 열매를 획득할 수가 있었습니다.
한국형 괴수 영화였던 [괴물]도 마찬가지인데, 할리우드식 장르 영화의 외형을 띄고 있으면서도 웃음으로서 차별점을 둔 '한국형' 장르 영화는 [퀵]에서도 이어집니다. [퀵]은 할리우드의 액션 블록버스터 [스피드]를 떠올리는 장르 영화이지만 영화를 보며 끊임없이 웃을 수 있었습니다.
스타 부재? 아니 그들만으로 충분하다.
도심을 난장으로 만드는 액션에 놀라고, 배우들이 펼치는 웃음 코드를 즐기며 만족스럽게 관람을 마친 [퀵]. 하지만 제게 [퀵]의 단점을 굳이 지적해달라고 한다면 두 가지 정도를 지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첫번째는 스토리 라인입니다. 특히 마지막 반전 부분은 누구나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펼쳐지고, 범인과 펼치는 마지막 액션 역시 범인이 굳이 그 열차에 탔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에서 의문점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액션 영화에서 정교한 스토리 라인을 트집잡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죠. 물론 스토리마저 정교한 액션 영화라면 더할 나위없이 완벽하겠지만 액션 영화는 말 그대로 액션을 즐기기 위한 장르 영화입니다. [퀵]의 스토리 라인이 정교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형편없다고 할 수도 없기에 이 첫번째 단점은 최소한 제겐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두번째 단점은 스타의 부재입니다. 지난 주말에 유료 시사회 형식으로 공개된 [고지전]과 [퀵]의 첫번째 승부에서 [퀵]이 [고지전]에 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스타의 부재 탓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민기, 강예원, 김인권은 모두 [해운대]의 조연 출신이고, 네임밸류로 따진다면 아직 주연을 맡기엔 2% 부족한 배우들임에 분명합니다.
10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에서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스타가 부재하다는 것은 초반 흥행 레이스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며 그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습니다. 장르 영화의 영웅답지 않은 이민기의 어눌함(이 어눌함은 연기력 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내겐 오히려 편안했던...), 강예원의 망가짐(액션 영화의 여주인공이 이렇게 망가질 수 있다니...) 그리고 여전한 김인권의 코믹 연기는 [퀵]의 재미를 더욱 풍성하게 했으니까요.
[퀵]은 분명 상업 영화의 재미를 두루 갖춘 잘 만든 액션영화입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에서 지적될 수 있는 단점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상업 영화를 즐겁게 관람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최소한 제겐 상업 영화로서의 할 도리를 다한 셈이니까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오를 때, 이 영화를 찍으며 발생한 사고 영상들이 나온다.
얼굴은 나오지 않지만 온 몸을 불사른 스턴트 배우들의 그 아찔한 사고 영상.
영화 한 편을 위한 몸을 사리지 않는 그들의 노력만으로도
[퀵]은 한국 영화 사상 길이 남을 액션 영화로 내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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