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트랜스포머 3] - 나의 로망은 끝나지 않았다.

쭈니-1 2011. 7. 4. 11:14

 

 

감독 : 마이클 베이

주연 : 샤이아 라보프, 로지 헌팅턴 휘틀러, 패트릭 뎀시, 프란시스 맥도먼드

개봉 : 2011년 6월 29일

관람 : 2011년 7월 2일

등급 : 12세 이상

 

 

온통 [트랜스포머 3] 천지이다.

 

올 여름 여러분이 가장 기대하는 블록버스터는 무엇인가요? 아마 대부분 [트랜스포머 3]와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 경우는 [트랜스포머 3]였는데, 어린 시절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 '그랜다이저', '로보트 태권 V'를 보며 자란 제게 만화의 세계에서만 가능할줄 알았던 거대 로봇이 생생한 실사 영화로 탄생한 것을 보며 느꼈던 희열은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입니다.

저와 같으신 분들이 많은지 [트랜스포머 3]는 개봉하자마자 국내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우며 흥행 열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 영화가 개봉한 6월 29일 수요일에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서 그 실체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주말에 9살난 아들 웅이와 함께 보기로 약속을 해놓은 상태라서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였죠.

상황이 이러하니 온통 [트랜스포머 3] 천지의 세계에서 저 혼자 뒤떨어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화를 좀 본다 하는 블로거들은 모두 [트랜스포머 3]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고, TV를 틀어도 [트랜스포머 3]에 대한 이야기 뿐이었습니다. 영화 블로거인 제가 얼마나 답답했을런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_-

 

문제는 이 영화를 본 주위의 반응이 그다지 썩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트랜스포머 3]의 리뷰는 혹평이 대세였고, 어떤 분은 '소년들의 판타지는 깨졌다'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도대체 왜 그 분이 소년들을 대표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회사 모임에서 [트랜스포머 3]를 먼저 본 구피가 '생각보다는 별로인데...'라고 말하는 그 순간 제 불안감은 극한 상황에 처해버렸습니다. 2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의 실사 영화를 어린 웅이와 함께 보기로 한 것도 모자라, 중학생, 고등학생인 조카들을 극장으로 초대했고, 게다가 그 비싸다는 3D로 예매를 마쳤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 기대감이 조금 꺾여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상당히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물론 3D 효과에 둔감한 탓인지 3D 효과를 그다지 느끼지 못했지만 영화 자체는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리고 2시간 30분 동안 화장실도 가지 않고, 떠들지도 않으며 영화에 집중하던 웅이도(그런 면에서 철 없는 어른들보다 웅이가 극장 예절을 훨씬 잘 지키는...) 재미있었다는 반응을 보였고, 중학생인 조카는 최고였다며 열광했으며, 고등학생인 조카 역시 재미있었다며 손가락을 치켜들더군요. 초딩, 중딩, 고딩, 직딩의 감상평이 일치하는 순간입니다.

 

 

[트랜스포머 3]는 샘 윗익키의 성장 드라마이다.

 

2시간 30분이라는 기나긴 [트랜스포머 3]가 끝나고 제가 제 조카들과 웅이에게 가장 먼저 한 것은 '영화 어땠어?'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모두 한결같이 재미있었고, 3D 효과는 별로 느끼지 못했으며, 영화의 초반 부분은 지루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어봐도 대부분 영화의 초반 부분은 지루했다는 분들이 많네요.

하지만 저는 그러한 초반이 꽤 흥미로웠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대란 속에서 백수 신세를 면치 못한 샘(샤이아 라보프)은 지구를 두 번이나 지킨 자신이 왜 백수 신세냐며 한탄합니다. 흥미롭지 않나요? 사람들에게 영웅 칭송을 받으며 당당하게 지구를 지키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야 마땅한 샘은 능력있는 여친 칼리(로지 헌팅턴 휘틀러)에게 얹혀살고, 어렵게 직장을 구하지만 그가 맡은 임무라고는 우편물을 전달해주는 단순 노무직입니다.

사실 [트랜스포머]는 샘의 영화였습니다. 멋진 차를 갖고 싶었던 찌질한 고딩이었던 그가 범블비를 만나며 영웅이 되기도 했고, 영웅의 길을 포기하고 평범한 대학생이길 원했던 그가 또 다시 사건에 휘말리며 지구를 구했습니다. 이제 그는 사회인이 되었고, 영웅이 되고 싶었지만 사회는 그를 평범하게 살라고 강요합니다.

 

제게 이러한 전개는 샘을 위한 거대한 성장 영화같았습니다. 샘이 고등학생, 대학생이었던 학창 시절을 거쳐 성인이 된 후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그러한 모습이 제 모습과 흡사하더라는 것입니다.

막연히 튀고 싶었던 꿈 많던 고등학생 시절, 학생이라는 신분을 갖고 있지만 곧 사회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성공적인 사회인이 되기 위해 꿈을 잠시 접어 두어야 했던 대학 시절, 하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자괴감에 빠져야만 했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이 샘에게 고스란히 투영되었습니다.

IMF 시절, 취업을 하지 못했던 저는 과학기술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던 당시 사귀던 여친에게 열등감을 느꼈고,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대쉬하던 과학기술부의 총각 공무원을 보며 질투심에 사로 잡혀 그렇게 불안한 나날을 보냈었습니다. 이러니 제가 샘의 상황에 감정이입을 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러한 의미에서 저는 샘의 여친이 미카엘라(메간 폭스)에서 칼리로 변경된 것 역시 적절한 조치였다고 생각합니다. 미카엘라는 도발적인 매력이 돋보였습니다. 학창 시절이라면 그런 도발적인 미녀와의 화끈한 연애를 꿈 꿀만 하죠. 하지만 사회인이 된다면? 결혼을 전제로 생각하고 미카엘라와 칼리 중 한 명을 선택하라면 답은 나와 있습니다. 미카엘라는 연애하기 좋은 여자라면, 칼리는 결혼하기 좋은 여자인 셈입니다.

게다가 백수 신세인 샘의 현 상황을 표현하는데에도 칼리는 제 역활을 하는데, 섹시하지만 앨리트적인 면이 전혀 보이지 않는 미카엘라와는 달리, 덜 섹시하지만 앨리트의 면도 지니고 있는 칼리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백수 신세인 샘의 비참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표현해냅니다.

 

 

음모 이론의 효과적인 대입

 

제게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샘의 성장 드라마라고 했지만 역시 이 시리즈의 볼거리는 거대 변신 로봇들의 화끈한 액션이죠. 하지만 무작정 거대 변신 로봇들이 등장한다면 그것 역시 문제입니다. 요즘 관객들은 단순하지 않아서 단순한 볼거리보다는 뭔가 앞 뒤가 딱딱 맞는 스토리 전개 속에서 펼쳐지는 볼거리에 더욱 환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트랜스포머]에 도입된 것이 음모 이론입니다. 1편에 우리의 생활 속에 익숙한 기계들이 사실은 머나먼 외계에서 온 생명체일지도 모른다는 그럴 듯한 음모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실제로 [트랜스포머]를 본 이후 저는 길거리의 차들이 어느 순간 로봇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으니 [트랜스포머]의 이러한 설정은 꽤 성공적이었던 셈입니다.

2편 역시 음모 이론에 기대는데...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인간이 아닌 외계 생명체가 건설한 것이라는 기본 설정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인 피라미드를 영화에 대입시킨 좋은 예입니다. 실제로 지금으로부터 무려 4,500년 전에 건설된 것으로 보이는 피라미드가 당시 인간들이 건설하기엔 너무 거대하고 정교해서 인간이 아닌 고도의 문명을 지닌 외계 생명체가 무언가 다른 목적을 위해 건설했다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음모 이론 중 하나입니다.

 

[트랜스포머 3]는 이러한 전작의 전통을 이어 이번엔 1969년 역사적인 미국의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기본 설정으로 제시합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의 우주 전쟁은 달에서 전해진 의문의 충돌 사건을 계기로 촉발되었으며, 아폴로 11호는 비밀 임무를 띄고 달에 착륙한 것이고, 지구에서 볼 수 없는 달의 반대면에서는 외계 문명의 우주선이 불시착해 있다고 설명합니다.

게다가 1972년 이후 인류가 달에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에 도달하면 [트랜스포머 3]의 음모 이론은 더욱 그럴듯해집니다. 정말 기계들이 로봇으로 변신할 것 같고,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고도의 문명을 가진 외계 생명체가 건설한 것 같으며, 지구에서 볼 수 없는 달의 반대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이것이 음모 이론의 묘미이며, [트랜스포머] 시리즈가 단순하게 변신 로봇들이 서로 싸우는 영화가 아닌 현실 세계 속에서 그럴 듯하게 포장된 오락 영화임을 증명합니다.

   

 

당신의 판타지는 깨졌어도 나의 로망은 끝나지 않았다.

 

샘의 성장기, 시리즈를 관통하는 거대한 음모 이론, 하지만 역시 뭐니 뭐니해도 이 영화의 진정한 재미는 거대 로봇들의 화끈한 액션입니다.

시카고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이 무지막지한 로봇들의 한판 대결은 충분히 [트랜스포머 3]를 기다려온 보람을 느끼게 하는데 이전 시리즈보다 한층 거대해지고, 파괴 본능을 앞세운 이번 영화의 액션은 샘의 성장기에 지루해하던 조카들도, 달 착륙 음모 이론을 이해 못하던 웅이도 두 눈이 휘둥그레지게 만들었습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액션에서 느끼는 제 유일의 불만은 누가 디셉티콘이고, 누가 오토봇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인데 사실 그러한 불만은 [트랜스포머 3]에서도 여전합니다. 그렇기에 오토봇의 중요 캐릭터가 죽는 그 순간에도 감정 이입이 잘 되지 않은 약점 또한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굳이 거대 변신 로봇에게 감정 이입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친절한  마이클 베이 감독은 샘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도록 전반부의 지루함을 선물했고, 그 결과 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범블비, 옵티머스 프라임을 제외하고는 아무리 오토봇이라고 할지라도 감정 이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대신 머리 속을 비우고 액션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죠.

 

저는 2시간 30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아직 애니메이션에 익숙한 웅이와 이젠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영화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까지 깨달았으니 제게 [트랜스포머 3] 관람은 3D 관람료가 아깝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꽤 만족스러웠던 셈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느 분이 '소년들의 판타지는 깨졌다'라고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그 소년들에 저는 해당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넌 소년이 아닌 아저씨야.'라고 항변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영화를 볼 때만큼은 소년의 마음으로 영화를 즐기는 제게 [트랜스포머 3]는 거대 로봇에 대한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제 로망이 아직도 유효함을 알림과 동시에, 어린 웅이 역시 그러한 제 로망에 동참하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더이상 마이클 베이도, 샤이아 라보프도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볼 수 없을 것이라 합니다. 저는 그 결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어른으로 성장한 샘의 퇴장은 마땅해 보이고, [나쁜 녀석들], [더 록], [아마겟돈], [아일랜드]([진주만]은 제외... 전 그 영화가 정말 싫습니다.)로 이어지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블록버스터 행진이 [트랜스포머]에 정체되어 있는 것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누가 만들어도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나와 웅의 로망을 이어줄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트랜스포머]에 열광하는 웅이의 모습에서

'마징가 Z', '로보트 태권 V'에 열광하던 나의 유년 시절을 보았다.

그 자체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내게 행복감을 안겨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