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안재훈, 한혜진
더빙 : 박신혜, 송창의, 오연서
개봉 : 2011년 6월 23일
관람 : 2011년 6월 24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저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영화, 그 일상의 향기속으로...'를 자주 방문해 주시는 분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을 좋아합니다.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급 애니메이션과 일본의 세계적인 거장의 명품 애니메이션이 개봉할 때마다 항상 아쉬웠던 것은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부재였습니다.
하지만 [소중한 날의 꿈]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제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원더풀 데이즈], [천년여우 여우비] 등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이 개봉할 때마다 설렌 가슴을 안고 극장으로 달려갔었지만, [소중한 날의 꿈]은 '흥행에 성공해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맹맥을 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만 들 뿐, 정작 극장으로 달려가고픈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 취향 탓입니다. 저는 현실적인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벗어난 환상을 맛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SF, 판타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고, 현실에선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죽음을 뛰어 넘는 사랑을 담은 멜로, 현실에선 불가능할 것 같은 유쾌한 코미디를 선호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소중한 날의 꿈]은 다분히 현실적으로 보였습니다. 영화가 표현할 수 있는 상상의 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70년대의 풍경을 담아 낸 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함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죠.
하지만 금요일 저녁,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보기로 했던 제 마음은 결국 [소중한 날의 꿈]으로 바뀌었습니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 놓았다는 어느 영화 평론가(혹은 기자? 요즘은 평론가들이 기자처럼 글을 써대서...)의 글을 읽은 후였습니다. 예고편만으로는 발견하지 못한 뭔가 특별함을 기대하며 저는 금요일 밤 10시에 목동 CGV로 향했습니다.
왜 굳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웬만하면 [소중한 날의 꿈]에 좋은 평을 담은 리뷰를 써주겠다고 다짐했지만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제 눈엔 자꾸만 이 영화의 단점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고질적인 부분인 더빙이 가장 눈에 거슬렸는데, 애니메이션의 캐릭터 입 모양과 더빙 소리가 엇박자가 나며 저를 실망시키더군요. 분명 그림과 더빙을 완벽하게 맞춘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심하게 엇박자가 나면 영화에 몰입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게다가 저는 영화의 중반에 심한 졸리움을 느꼈습니다. 분명 늦은 시간대에 영화를 봤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진짜 피로회복제는 약국이 아닌 극장에 있다고 주장하는 제게 [소중한 날의 꿈]은 전혀 제 피로회복제가 되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졸리움의 원인은 스토리 라인입니다. 70년대를 배경으로 어느 평범한 여고생의 순수한 첫사랑 이야기라는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특별함이 없이 잔잔하게 물 흐르듯이 흘러만 갑니다. 애초에 제가 [소중한 날의 꿈]을 기대하지 않았던 이유였는데, 제 우려가 현실이 된 셈입니다.
[소중한 날의 꿈]을 보며 들었던 생각은 굳이 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을까? 입니다.
이 영화는 제작기간이 무려 11년이나 들었다고 합니다.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이기에 작화만 무려 10만장이 소요되었다고 하네요. 분명 안재훈, 한혜진 감독의 셀 애니메이션에 대한 애정과 노력은 높이 평가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애니메이션이 아닌 일반 영화로 만들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길어봐야 6개월 정도의 촬영 기간이 소요되었을 것이며, 제작비도 크게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소중한 날의 꿈]이 애니메이션으로서 가치를 드러낸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 이랑(박신혜)이 철수(송창의)와 땅끝마을에 가서 공룡 꿈을 꾸는 장면이 전부입니다. 실사로 영화를 촬영했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만 애니메이션화했다면 될 일입니다. 제 취향 탓이긴 하지만 안재훈, 한혜진 감독이 이 영화를 위해 투자한 11년이라는 세월이 아깝게 느껴집니다. 그 시간에 다른 영화를 준비했다면 최소한 5편 정도는 만들고도 남았을텐데 말입니다.
이야기꾼이 필요해.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실사로 표현하기 어려운 소재를 영화화한 것이거나 아니면 실사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낸 것들입니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 양대 산맥을 이루는 일본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인데... 일본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초속 5센티미터]와 같은 학창 시절의 순수한 사랑을 담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역시 실사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마법과 같은 아름다움을 담아내며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드러냅니다.
그렇다면 [소중한 날의 꿈]은 어떨까요? 앞에서도 설명했지만 이 영화는 실사로 표현하기 어려운 소재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실사로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담고 있을까요? 분명 이 영화의 캐릭터는 아름답다기 보다는 평범합니다. (차라리 박신혜, 송창의가 더빙이 아닌 주연을 맡았다면 이랑, 철수보다 비주얼이 더 잘 나았을지도 모르겠네요.) 70년대를 담은 배경이 성인 관객의 추억을 되살리지만 그것이 만약 실사였다면 애니메이션화된 추억보다 더욱 생생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소중한 날의 꿈]이 애니메이션일 필요가 전혀 없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의 현실은 할리우드, 일본과 비교해서 상당히 뒤떨어집니다. 그렇기에 저는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을 볼 때 기술력보다는 이야기의 힘 위주로 봅니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기술력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지만 이야기 전개면에서 부실함을 보여줬던 [원더풀 데이즈]보다는 이야기가 꼼꼼하게 꽉 채워진 [천년여우 여우비]에 제가 더 환호를 보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소중한 날의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낙후한 제작 환경과 부족한 제작비에도 불구하고 11년이라는 세월동안 이 영화에 매달린 감독과 제작진의 노고는 분명 대단합니다. 하지만 그럴려면 뭔가 특별한 이야기로 영화를 꾸몄어야 했습니다. 실사에선 할 수 없었던 특별한 상상. 애니메이션의 장점이 그런 상상을 쉽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인데, [소중한 날의 꿈]은 그런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진정 이 영화에 필요한 것은 이야기꾼이었습니다.
소녀... 성장하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부활을 간절히 바라면서 [소중한 날의 꿈]에 대해 안좋은 평가만 내리는 것 같아 저도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조금 늦었지만 이 영화에서 만족스러웠던 부분들을 설명하며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일단 70년대를 되살린 배경은 좋았습니다. [러브 스토리]와 [별들의 고향]이 영화 속 영화로 펼쳐지는 것도 좋았고, [러브 스토리]의 라이언 오닐이 신성일의 끈끈적한 목소리를 내는 이랑의 상상 부분은 조금 썰렁했지만 70년대 동서양의 대표 아이콘을 가지고 이랑의 첫사랑을 표현한 부분은 참신했습니다.
특히 저는 음악이 좋았는데, 엔딩 크레딧에서 나온 장소연의 '기억해 둬'는 영화가 끝나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눕고 싶다는 강렬한 제 열망을 잠재우고 잠시 동안 좌석에 앉아 노래를 감상하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이랑이 성장하는 것을 진솔하게 담아낸 것 역시 좋았습니다. 할줄 아는 것이 별로 없는 평범한 소녀, 이랑. 그녀는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다는 특별한 꿈을 가진 철수와의 사랑과 자신과는 다른 자신감과 성숙함을 드러내는 수민(오연서)과의 우정을 통해 평범하다고 해서 하찮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특히 그러한 이랑의 깨달음이 땅끝마을의 공룡 발자국을 통해 전달되는 부분은 분명 새로웠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후세에게 자신의 발자국을 남긴 공룡이 특별한 공룡이 아닌 무리에서 뒤떨어진 조금은 평범한 공룡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는 이랑의 모습은 성장 드라마로서는 성공적이라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분명 [소중한 날의 꿈]은 장점도 많은 영화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장점이 굳이 애니메이션일 필요는 없다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애니메이션을 너무 특별하게 생각하는 탓에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전 여전히 [소중한 날의 꿈]은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영화였을 때 더욱 매력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낡은 추억을 끄집어내는데 필요했던 시간... 11년
하지만 난 그 11년이라는 세월이 아깝다.
6개월 정도면 충분히 이 영화의 낡은 추억을 끄집어낼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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