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슈퍼 에이트] - 나와 다른 것에 대한 당신의 적대심을 조심하라.

쭈니-1 2011. 6. 20. 10:51

 

 

감독 : J.J. 에이브람스

주연 : 조엘 코트니, 엘르 패닝, 카일 챈들러

개봉 : 2011년 6월 16일

관람 : 2011년 6월 18일

등급 : 12세 이상

 

 

회사 동호회 두번째 영화

 

지난 일주일간 저희 회사의 자회사가 갑자기 사무실 이전을 하는 바람에 제가 눈코 쉴새없이 바빴었다는 이야기는 '영화, 그 일상의 향기속으로...'를 자주 방문해주시는 분이라면 지겹도록 보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바쁜 일주일을 보내고 맞이한 주말. 공교롭게도 한달에 한번 모임이 있는 저희 회사 동호회의 정기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바쁜 저 대신에 회원들은 이번 모임의 주제는 '영화 보기'로 결정을 해놓았더군요.

하지만 몸도, 마음도 너무 지친 저는 이번 토요일 만큼은 집에서 늦잠을 자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동호회 모임에는 나갈 수 없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동호회가 생긴지 1년하고 몇 개월이 지났지만 제가 동호회 모임에 빠지는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기에 동호회 회원들은 모두들 의아해했습니다. 그래도 이번 토요일은 쉬어야 겠다는 제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구피에게 이번 동호회에는 안나가겠다고 이야기했더니 냉큼 그럼 집안 청소좀 하라고 일을 시키더군요. 이런 제길슨... 애초에 늦잠을 자고 싶다는 제 바람은 이뤄질 수 없는 헛된 꿈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저는 동호회에 나갔습니다. 어차피 늦잠을 자지 못할 것이라면 청소를 하느니 동호회 모임에 나가 영화를 보는 것이 낫다는 어쩌면 당연한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동호회의 첫 영화 관람 때는 [해결사]를 보자는 회원들과 [아저씨]를 보자는 회원들이 갈라져서 결국 3:8로 나눠 영화를 관람했습니다.(저는 [해결사]를 봤습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인데 대부분의 회원들은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를 보자고 했지만 이미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를 본 저는 [슈퍼 에이트]를 고집했습니다. 이번에도 5:1로 갈라져(저 혼자 [슈퍼 에이트]입니다.) 영화를 볼 위기에 처했지만 하필 그날 역곡 CGV 근처 고딩들의 단체 관람이 있는 날이어서 저희들도 뭉치기로 결심(뭉친 고딩들은 무섭습니다.) 회원 모두 [슈퍼 에이트]를 관람했습니다.

 

 

만족 3, 불만족 2, 아무 생각 없음 1 (이후 스포 포함)

 

그렇다면 영화를 보고 난 후, 저희 동호회 회원들의 [슈퍼 에이트]에 대한 만족도는 어땠을까요? 참고로 이번 모임에 참가한 여섯 명의 회원들은 모두 남성이며, 30대가 저를 포함해서 두 명, 나머지는 4, 50대였습니다.   

일단 영화가 만족스러웠다는 의견(여기에서 만족스럽다는 것은 볼 만했다라는 의견도 포함됨)은 저를 포함해서 세 명이었고, 뭔 영화가 이러냐며 투덜거린 회원은 두 명, 그리고 침묵으로 일관하며 아무런 의견도 제시하지 않은 회원은 한 명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재미없었다는 의견을 제시한 회원 두 명은 '외계인이 너무 늦게 등장한다.', '마지막 외계인이 아이들을 살려두고 떠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하더군요. 영화의 초반에는 엄마를 잃은 조(조엘 코트니)와 영화광인 그의 친구들의 조금은 따분한 일상을 담아 내는 바람에 졸았다는 회원도 있었습니다.

 

사실 그러한 불만은 당연합니다. 요즘 액션 영화들은 처음부터 터지고, 부수고, 달립니다. 관객들이 심심해할 여유를 주지 않죠. 게다가 점점 자극적인 것을 찾는 관객을 위해서 스토리 라인도 극으로 밀어 부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열차 탈선 사고, 마을 사람들의 실종, 미해군의 마을 점령, 거대한 괴물 등장... 이라는 대강의 줄거리만을 들은 회원들은 당연히 처음부터 괴물이 등장하며 사람들을 마구 잡아 먹고, 미해군과 주인공인 아이들이 괴물을 처치하고 마을을 구하는 스토리 라인을 상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 있으니, 이 영화의 감독은 J.J. 에이브람스이며, 총제작은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영화가 어떤 경향을 띄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알고 있었다면 [슈퍼 에이트]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충분히 예상 가능했을 것이며, 헛된 기대감으로 실망을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긴 저를 제외하고는 이번 모임에 나온 회원 모두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횟수가 1년에 다섯 손가락을 꼽으시는 분들이니 그들을 탓할 수도 없겠죠.

 

 

할리우드 최고의 낚시꾼 J.J. 에이브람스

 

그렇다면 J.J. 에이브람스의 영화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부터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J.J. 에이브람스를 낚시의 대가라고 말합니다. 인터넷 신조어에 의하면 '낚시'는 그다지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기대했지만 막상 본론에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들로 채워져 있을 때 사람들은 '낚였다'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J.J. 에이브람스의 낚시는 조금 다른 의미입니다. 그가 최고의 낚시꾼 명성을 얻은 것은 TV 시리즈 [로스트]인데, 시청자들은 [로스트]가 펼쳐 놓은 수 많은 수수께끼들이 풀릴 것을 기대하며 [로스트]를 시청하지만 정작 [로스트]는 그러한 시청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수수께끼들을 확장시켰습니다. 결국 시청자들은 J.J. 에이브람스의 낚시에 걸려 [로스트] 방영시간만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J.J. 에이브람스의 낚시는 할리우드에 새로운 홍보 전략을 제시하였습니다.

 

[슈퍼 에이트]의 전개 방식을 이해하는데 가장 적절한 예는 J.J. 에이브람스가 제작을 맡았던 [클로버필드]입니다. 정체 불명의 괴물이 뉴욕을 공격하고, 주인공들은 그러한 상황들을 캠코더로 찍는 형식으로 진행된 이 영화는 거대한 괴물의 실체를 영화의 후반부까지 제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할리우드 영화 중 전무후무하게 관객을 낚은 영화로 기록될만한데, 그러한 그의 낚시꾼 기질은 영화 관계자를, 그리고 관객들을 경악하게 했습니다.

[슈퍼 에이트]는 [클로버필드]처럼 극단적으로 관객을 낚는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저희 동호회 회원의 투덜거림처럼 [슈퍼 에이트] 역시 마을을 공격하는 외계인의 존재를 마지막까지 제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솔직히 [클로버필드]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낚시에 당황했고, 캠코더 장면에 머리가 아파 영화에 대한 만족도가 크지 않았지만, [슈퍼 에이트]에서는 마지막까지 외계인의 존재라는 결정적인 패를 보여주지 않은 J.J. 에이브람스의 낚시를 어느 정도 예상했고, 그래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며 그의 낚시질을 즐길 수가 있었습니다.

 

 

할리우드 최고의 휴머니스트 스티븐 스필버그

 

초반부터 괴물을 존재를 부각시키며 관객을 밀어 부치는 일반적인 영화와는 달리 [슈퍼 에이트]는 J.J. 에이브람스 감독의 영화답게 마지막까지 관객을 안달하게 만들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무시무시한 외계인의 존재를 공개합니다.

그러한 방식은 분명 [클로버필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결정적으로 영화의 결말은 [클로버필드]와 정반대입니다. 그것은 총제작을 맡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최고의 흥행 마술사로 만든 영화는 82년 작인 [E.T.]입니다. 지구에 불시착한 착한 외계인과 순수한 아이들의 우정을 다룬 이 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만의 휴머니티가 느껴지는 걸작입니다.

사실 외계인을 소재로한 할리우드 영화의 대부분은 [에이리언] 식의 공포를 다룬 영화가 대부분입니다.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공포심을 이용한 것이죠. 하지만 [E.T.]는 그런 인간의 원초적 공포심이 오히려 미지의 생명체에게 가한 위협을 다루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외계인 소재의 영화들과는 정 반대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슈퍼 에이트]는 여기에 한발자욱 더 나아갑니다. 이 영화의 외계인은 [E.T.]에서처럼 지구에 불시착했습니다. 그는 인간에게 적대심이 없었습니다. 단지 인간의 도움으로 우주선을 수리해서 고향별로 돌아가고 싶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그를 가두고, 연구하고, 실험합니다. 그러는 동안 외계인은 인간에 대한 적대심을 품게 되고 결국 인간을 공격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E.T.]와 거의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드라마적 요소가 강했던 [E.T.]와는 달리 [슈퍼 에이트]는 외계인의 인간에 대한 공격으로 SF 액션의 모양새를 띄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이 영화를 재미이없게 본 동호회 회원의 질문이 떠오릅니다. 인간을 그렇게 공격하던 외계인이 왜 아이들은 해치지 않고 그냥 순순히 지구를 떠났느냐입니다. 그러한 질문을 하는 것은 [에이리언]식의 외계인을 소재로한 공포 장르의 영화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관객의 머리 속에는 이미 외계인은 위험하다, 죽여야 한다라는 인식이 심어져 있기에 마지막에 인간의 아이들과 정신적인 소통을 하고 지구를 떠나는 장면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죠. 어쩌면 스티븐 스필버그이기에 가능했던 그만의 휴머니티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적대심이 불러 오는 참사

 

[슈퍼 에이트]는 그저 SF 액션 영화로 치부하기엔 영화 속에 담긴 메시지가 꽤 강렬합니다. 스필버그는 왜 이제와서 1982년 [E.T.]에서 이미 했던 주제를 다시 꺼내 들었을까요? 그것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인간의 적대심이 비단 외계인에 국한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지구상에 펼쳐지는 인간의 모든 무력 충돌은 사실 나와 다름에 대한 적대심에 의한 것입니다. 미국의 중동에서의 행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슬람이라는 미국의 종교, 문화와 다른 것에 대한 몰이해는 적대심으로 이어졌고,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와 다른 그들을 나와 같게 만들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적대심은 적대심을 낳을 뿐입니다.

[슈퍼 에이트]의 외계인이 인간에 대한 적대심을 품게 되고, 아내의 죽음에 대한 원망을 루이스에게 했던 잭슨(카일 챈들러)과 그러한 잭슨의 적대심을 딸인 앨리스(엘르 패닝)의 친구인 조에게 푸는 루이스처럼, 이슬람에 대한 미국의 적대심은 미국에 대한 이슬람의 적대심만을 만들 뿐입니다. 여기엔 승자는 없습니다. 모두가 패자일 뿐입니다.

[슈퍼 에이트]는 J.J. 에이브람스의 천재적 낚시꾼 기질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휴머니티를 잘 조합하여 현재 미국, 아니 인간의 원초적 적대심에 경종을 울리는 영화입니다. 

 

 

난 누군가에게 이유없는 적대심을 품은 적이 없었던가?

그로 인해서 그에게 나에 대한 적대심을 심어 주지는 않았는가?

내 주위를 한번쯤은 살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