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전재홍
주연 : 윤계상, 김규리
개봉 : 2011년 6월 23일
관람 : 2011년 6월 23일
등급 : 18세 이상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나와 취향이 맞지 않다.
저와 김기덕 감독과의 인연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96년 2월에 방위 해제를 하고 다니던 대학에 2학기 복학하기 전까지 닥치는대로 영화를 보던 시절입니다.
당시 김기덕 감독은 [악어]라는 영화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데뷔를 했고, 닥치는대로 영화를 보던 저 역시 [악어]를 비디오로 보게 되었습니다.
뭐랄까 김기덕 감독과의 첫 만남의 느낌은 낯설음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스스로 영화광이라고 자부하지만 상업 영화에만 익숙해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그런 익숙한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영화였습니다. 영화 속에서 뭔가 강렬한 카리스마가 느껴지지만 불편함도 함께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파란 대문]과 [나쁜 남자]를 보고나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그 불편함의 진실을... 그의 영화에 등장하는 남성의 성적 폭력에 희생당하는 여성의 비극과 남성의 성적 폭력에 굴복, 혹은 적응 당하는 여성의 모습에서 저는 제 여성관이 무너지는 불편함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안봤습니다. 결국 그의 영화는 제 취향에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나영이 주연한 [비몽]이 개봉하기 전까지 저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의도적으로 외면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영화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은 그가 제작을 맡은 [영화는 영화다]에서 부터였습니다.
물론 [영화는 영화다]는 김기덕 감독이 직접 메가폰을 잡은 영화는 아닙니다.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영화는 영화다]가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분명 폭력적인 남성 캐릭터인 강패(소지섭)와 수타(강지환)라는 캐릭터는 다른 김기덕표 영화와 비슷했고, 그런 남성에게 성적 폭력을 당하는 여배우(홍수현)까지 등장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폭력적인 남성에 희생 당하는 여성보다는 폭력성에 스스로 몰락하는 두 남성 캐릭터를 비극적으로 담아내며 그동안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느꼈던 제 불편함을 최소화 시켰습니다.
그리고 [풍산개]가 개봉했습니다. [아리랑]이라는 자전적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국 영화계와 [영화는 영화다]의 장훈 감독를 비난하며 김기덕 감독이 다시 대중의 관심 속에 들어온터라 [풍산개]에 대한 관심은 이전 김기덕 감독의 영화와는 달리 폭발(?)적입니다. 저 역시 김기덕 감독의 영화(그가 연출을 했건, 제작을 했건) 중 최초로 극장에서 [풍산개]를 관람했습니다.
분명 김기덕 감독의 영화 중 최고의 흥행을 거둘 것이다.
평일 오후 시간대, 그것도 한산하기로 소문난 목동 메가박스에서 영화를 봤습니다. 저는 당연히 한산한 극장에서 여유롭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티켓을 끊기 위해 매표소에 섰을 때 그런 제 기대는 무너졌습니다.
관객이 꽤 많았습니다. 저처럼 혼자 영화를 보러 온 남성 관객에서부터, 연인들끼리 손을 잡고 영화를 보러 온 커플 관객까지... 제가 영화를 볼 때 선호하는 좌석이 스크린 왼쪽 통로에 있는 좌석인데... 좌석이 없어서 뒤쪽 가운데에 앉아야 했을 정도로 극장 안은 왁자지껄했습니다.
김기덕 감독은 해외에선 그 작품성을 인정받지만 국내 관객들에겐 언제나 외면을 받는 감독이었습니다. 그의 영화에 불편함을 느낀 관객이 비단 저뿐이 아니라는 이야기죠. 그러한 거듭된 흥행 실패는 거대 배급사의 외면으로 돌아왔고, 결국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한국에 개봉시키지 않겠다는 폭탄 선언을 하기에 이릅니다.
예술 영화 전용관이 없는 국내 극장가의 현실에서 일부 매니아 취향의 김기덕 영화의 어쩔 수 없는 슬픈 현실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다]가 흥행에 성공함으로서(물론 이 영화는 다른 의미로 김기덕 감독에게 아픔을 안겨줬지만) 김기덕 감독에 대한 그런 인식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풍산개]는 흥행에 성공을 거둘 것입니다. 흥행을 위한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깐느 영화제에서 [아리랑]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시기 적절하게 공개되며 화제를 불러 일으킨 것은 좋은 징조입니다.
비록 [아리랑]의 국내 개봉은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아리랑]에 대한 관심은 [풍산개]로 이어졌고, [영화는 영화다]이후 거의 잊혀지다시피 했던 김기덕이라는 이름 석자가 다시금 화제가 되었습니다. [풍산개]는 그러한 화제성을 고스란히 물러 받은 것입니다. 어쩌면 김기덕 감독의 고도의 흥행 전략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모든 것이 [풍산개]를 위해 딱딱 들어 맞고 있습니다.
게다가 TV 미니시리즈 '최고의 사랑'으로 연기자로서의 전환기를 맞이한 윤계상이 주연을 맡은 것 역시 호재로 작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윤계상은 2004년 [발레 교습소]이후 꾸준히 배우로 활동하고 있지만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드물어 아직도 가수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풍산개]의 개봉에 맞쳐 '최고의 사랑'이 성공하고 덩달아 윤계상이 포근한 이미지로 인기를 얻으며 [풍산개]에 대한 여성 관객들의 관심이 높아진 것입니다. 실제로 극장 안에는 윤계상의 팬으로 보이는 듯한 여성 관객들이 많았는데, 윤계상이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보여줄 때마다 조용힌 탄성이 흘러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풍산개]는 불편한 김기덕표 영화이다.
분명 [풍산개]는 [영화는 영화다]의 흥행 성적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습니다. 흥행을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어, 개봉 첫 주 바짝 벌어 들이고 영화의 화제성만 유지한다면 충분히 [영화는 영화다]가 기록한 전국 관객 1백3십만 명을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불안 요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채웠던 관객의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대사가 한마디로 없는 윤계상을 향해 '제발 말 좀 해라.'라고 불만을 터트리는 여성 관객의 목소리가 영화 중간 중간에 들려 왔고, 영화를 보고 밖으로 나가는 관객들의 입에서 '이게 뭐야?'라는 불만도 터져 나왔습니다.
[풍산개]의 문제는 김기덕 감독의 색깔이 영화에 너무 많이 묻어났다는 점입니다. 장훈 감독이 [영화는 영화다]에서 장르 영화의 재미를 살리며 김기덕 감독의 색깔을 최소화하려 노력했다면, 전재홍 감독은 장르 영화의 재미도 살리지 못했고, 김기덕 감독의 색깔을 너무 고스란히 드러냈습니다.
[풍산개]를 보며 '이건 전재홍 감독의 영화다.'라는 생각보다는 '역시 김기덕 감독의 영화답네.'라는 생각이 더 들었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여전히 불편한 저로서는 그런 점만 가지고도 [풍산개]에 대한 개인적 만족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풍산개]의 어떠한 점이 그렇게 김기덕 감독의 영화다웠을까요?
가장 큰 이유는 인옥이라는 캐릭터입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언제나 등장했던(최소한 제가 봤던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는 항상 등장했던) 폭력적인 남성에 의해 희생당하는 여성 캐릭터가 인옥을 통해 고스란히 재현된 것입니다.
북한의 고위 관리였지만 남한으로 망명한 망명자를 위해 평양에서 남한으로 배달(?)되어 온 인옥(김규리). 인옥을 사랑한다며 매달리지만 인옥을 섹스의 도구로 밖에 생각하지 않으며, 질투심으로 툭하면 인옥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망명자의 행동을 보며 김기덕 감독의 그림자를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사랑은 곧 폭력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영화는 영화다]에서도 그러한 설정이 나옵니다. 하지만 액션 느와르 형식의 영화로 진행된 [영화는 영화다]는 그러한 설정의 불편함이 장르의 재미로 금새 해소되었습니다.
그러나 [풍산개]는 다릅니다. 폭력에 희생당하는 인옥은 [풍산개]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이며, 인옥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망명자의 행위는 폭력과는 어울리지 않게 관객에게 웃음을 안져줬습니다. (키스와 인공호흡에 대한 집착)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희생당하는 여성 캐릭터와 그러한 폭력을 통해 관객의 웃음을 유도한(의도적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이 영화의 전개가 저는 여전히 불편했습니다.
김기덕 감독이 [의형제]를 만들었다면 이러지 않았을까?(스포 포함)
김기덕 감독과 장훈 감독의 사제간의 불화는 [의형제]라는 영화에서 비릇된 것으로 압니다. 전국 관객 5백4십만을 돌파하며 장훈 감독에게 흥행 감독의 명성을 안겨준 [의형제]는 원래 김기덕 감독이 기획했던 영화라고 하네요. 하지만 장훈 감독이 거대 배급사인 쇼박스와 손을 잡으며 상당 부분이 각색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의형제]는 매끈하게 잘 빠진 상업 영화였습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의 상황을 코미디와 액션으로 엮어낸 이 영화는 관객이 좋아하는 해피엔딩으로 잘 마무리되며 관객의 기대에 부흥한 영화였습니다.
어쩌면 [풍산개]는 [의형제]와 닮아 있습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의 현실을 소재로 했다는 점도 그렇고, 남도 북도 아닌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처지 역시 그러합니다.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활용한 것 역시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의형제]와 [풍산개]는 서로 180도 다른 영화입니다. 소재는 같지만 그러한 소재를 표현하는 형식은 완전히 다릅니다. [의형제]가 매끈한 상업 영화라면 [풍산개]는 독특한 블랙 코미디입니다. [의형제]가 관객이 좋아할만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다면 [풍산개]는 관객이 불편해할만한 비극으로 끝을 맺습니다.
특히 잔인하게 신체가 훼손된 인옥의 최후와 그러한 인옥의 복수를 위해 인옥과 자신을 배신한 남한과 북한의 요원들을 방 하나에 몰아 놓고 서로 싸우게끔 하는 장면은 시사하는 바가 크지만 상업 영화의 장면치고는 지나치게 독특합니다.
남과 북이 서로가 서로를 믿고 힘을 합치면 더 이상의 불행은 없을 것이라는 [풍산개]의 주제는 블랙 코미디의 형식 속에서 독특함을 자랑합니다.
매끈한 상업 영화지만 남과 북이 서로 형제임을 관객 앞에 호소했던 [의형제]와는 달리, 독특한 블랙 코미디 속에서 남과 북의 화합을 주장하는 [풍산개]의 주제 의식은 관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결국 [풍산개]는 김기덕식 [의형제]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영화입니다. 전재홍 감독이 김기덕 감독의 색깔을 지우고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전재홍 감독의 색깔도 김기덕 감독과 비슷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풍산개]는 흥행을 위한 지금 현재의 좋은 분위기와는 달리 관객의 반응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일부 매니아와 저처럼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불편한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 극과 극의 평가를 받아낼 것으로 보입니다.
뭐 어쩌면 각자의 색깔을 내는 감독이 많다는 것은 한국 영화의 다양성 면에서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모든 감독이 상업성을 가질 필요는 없을테니까요. 그리고 일반 상업 영화를 기대하며 [풍산개]를 본 관객들의 당혹감 역시 고스란히 관객의 몫일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위해 일반 관객과 소통하지 못하는 것 역시 누구의 탓도 아닌 김기덕 감독과 전재홍 감독의 몫임도 잊지 말아 주세요.
확실한 것은 결코 매끈한 상업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김기덕표 독특한 블랙 코미디를 보고 싶다면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라.
그리고 그에 대한 결과는 오로지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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