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그린랜턴 : 반지의 선택] - 두려움이라는 심각한 주제에 대한 가벼운 영웅담.

쭈니-1 2011. 6. 17. 11:20

 

 

감독 : 마틴 캠벨

주연 : 라이언 레이놀즈, 블레이크 라이블리, 피터 사스가드

개봉 : 2011년 6월 16일

관람 : 2011년 6월 16일

등급 : 12세 이상

 

 

이제 내 자신에게 보상을 할 시간이다.

 

지난 월요일, 여느 월요일처럼 평범한 하루를 시작한 제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저희 회사의 자회사가 사무실 이전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일 당장.

회사를 다니시는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회사가 사무실을 이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행정 처리를 해야 하는 부분도 많고, 일반 가정집보다도 이삿짐도 많고...

게다가 저희 자회사 상품이 고가 만년필인 까닭에 윗분들은 포장 이사가 아닌 저희 직원이 하나 하나 소중하게 박스에 상품을 담으라고 명령까지 내리시니 저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월요일엔 이전할 사무실 계약을 마치고 자회사 직원들과 함께 이삿짐을 꾸렸습니다. 화요일엔 화물차 2대를 불러 이삿짐을 옮기고, 이전할 사무실에 상품들을 새롭게 정리했습니다. 수요일, 목요일엔 인테리어 및 행정 처리 때문에 이리 저리 뛰어 다녀야 했습니다. 금요일인 오늘도 아직 자회사는 사무실 이전이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무엇하나 쉽게 처리되는 것이 없어서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중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이번 주 내내 저는 지쳐 있습니다. 사무실 정리를 하다보니 집에 늦게 들어가기 일쑤이고, 웅이는 아빠가 안 온다며 잔뜩 삐쳐 있습니다.

날씨는 왜이리도 더운지 집에 들어가면 온 몸이 땀에 쩔어 있어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곧바로 침대로 직행, 쓰러져 자는 것을 이번 주 내내 반복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목요일이 되었고, 자회사의 사무실 이전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서 저는 오늘 밤은 이번 주 내내 고생한 나를 위한 시간 임을 선언했습니다. [그린랜턴 : 반지의 선택], [슈퍼 에이트],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까지... 나를 위해서 이번 주에 개봉하는 이 모든 기대작들을 한 편도 빠짐없이 보기로 결심하고, 그 첫번째로 D.C 코믹스의 영웅 '그린랜턴'을 소재로한 SF액션 영화 [그린랜턴 : 반지의 선택]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 선택은 적중했습니다. 시원 시원한 액션이 시종 일관 터지고, 코믹스의 영웅답게 적절한 고뇌와 그러면서도 전혀 심각하지 않은 가벼운 이야기를 펼쳐낸 [그린랜턴 : 반지의 선택]은 심신이 피곤한 제게 딱 알맞는 영화였습니다.

 

 

진지함과 장난끼 적절한 조화

 

요즘 할리우드는 코믹스 영웅물의 최고 전성기입니다.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가 서로 앞다퉈 자사의 영웅들을 스크린에 데뷔시키고 있으며, 관객들 역시 그러한 코믹스 영웅물에 환호하고 있으니까요.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전성기를 맞이한 코믹스 영웅물의 스타일이 다른 액션 블록버스터와는 다르게 가벼움, 유쾌함보다는 심각함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배트맨] 시리즈의 결과 때문으로 보입니다. 처음 '배트맨'을 스크린으로 데뷔시킨 팀 버튼 감독은 영화 자체를 심각하게 만들었었습니다. 하지만 제작사는 그러한 심각함이 액션 블록버스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조엘 슈마허 감독을 기용하여 가벼운 '배트맨'을 만들어 냈고, 결과적으로는 그것은 최악의 실수가 되었습니다. 결국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나서서 '배트맨'을 심각한 영웅으로 되돌려 놓았으며, 관객은 [다크 나이트]의 엄청난 흥행으로 보답했습니다.

[배트맨] 뿐만이 아닙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엑스맨]과 [수퍼맨 리턴즈]도 그러한 심각함에 동참하였고, 샘 레이미 감독은 [스파이더맨]으로 아예 영웅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 보여줬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코믹스 영웅물은 당연하게 심각한 고뇌를 가져야 마땅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경향이 최근에 와서는 다양함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최근 개봉한 코믹스 영웅물 [토르 : 천둥의 신]은 세익스피어의 비극을 연상시키는 심각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가벼움으로 관객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습니다.

코믹스 영웅물은 아니지만 미셸 공드리 감독의 [그린 호넷]은 아예 가벼움이라는 무기를 내세워 오히려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개봉한 [그린랜턴 : 반지의 선택]은 심각함과 가벼움의 중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비행기 조종사인 아버지를 눈 앞에서 비행기 사고로 잃은 할(라이언 레이놀즈)은 다른 코믹스 영웅들과 마찬가지로 내면 깊숙히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할의 두려움을 영화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반지의 선택으로 얼떨결에 영웅이 된 할의 좌충우돌 영웅담으로 가볍게 채워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영웅과도 같은 아버지를 눈 앞에서 잃은 할의 내면의 두려움은 [배트맨]의 브루스 웨인과 비슷하지만 두려움을 무기로 하는 패럴렉스에 맞서 싸우기 위해 금방 극복되고, [스파이더맨]의 피터 파커와는 달리 할은 캐롤(블레이크 라이블리)에게 자신이 영웅임을 속시원하게 밝힙니다. 뭔가 심각해질만 하면 가벼움으로 변환되는 [그린랜턴 : 반지의 선택]의 매력은 그래서 더욱더 별 생각없이 영화를 즐겁게 감상하고 싶었던 제겐 적격이었습니다.

 

 

할과 헥터의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

 

[그린랜턴 : 반지의 선택]은 분명 다른 코믹스 영웅물과 비교해서 상당히 가볍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벼움만으로 영화를 채우지는 않았습니다. 이 영화의 심각함은 흥미롭게도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됩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할은 어린 시절 눈 앞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비행기 조종사가 되지만 결정적인 순간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큰 사고를 당할 뻔합니다. 바행기 조종사인 그에겐 치명적인 내면의 상처인 셈입니다.

그러한 두려움은 헥터(피터 사스가드)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상원의원인 아버지 해몬드(팀 로빈스)에 대한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도 아버지의 기대감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으로 아버지 앞에서 주눅이 들어 있는 모습을 보이고, 그는 그러한 두려움으로 열등감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할과 헥터는 어쩌면 서로 닮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다른 듯 같은 내면의 상처를 갖고 있으며, 그로 인해 괴로워하고, 방황합니다.

 

하지만 결국 할은 영웅이 되고 헥터는 악당이 되는 것은 그러한 두려움에 대한 대처에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 할은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고, 헥터는 못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외모 지상주의적 시각이 있다는 점도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할은 내면의 상처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비행기 조종사가 된 것이 그 증거인데, 남다른 자신감과 무모함을 보이며 모두들 경악하게 하는 비행기 조종술을 보이는 그의 모습은 두려움을 극복하려는 그의 노력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에 비해서 헥터는 두려움을 피해 도망가려합니다. 권위적인 아버지에 맞서 싸울 생각보다는 도망치거나 차라리 그를 죽여 두려움을 없애려합니다. 그러한 둘의 차이는 영웅과 악당으로 극명하게 두 사람의 운명을 갈라 놓는데, 반지가 할을 선택한 이유 역시 그가 두려움을 피해 도망가려 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점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두려움 극복할 것인가? 도망갈 것인가?

 

결국 [그린랜턴 : 반지의 선택]은 두려움에 관한 영화입니다. 비록 영화에선 최대한 가볍게 처리해서 두려움에 대한 진지한 성찰 따위는 할 수 없지만, 할과 헥터를 비교해 보면 우리가 처한 두려움이라는 공포의 대상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주의 평화를 지키는 가디언들과 그들로 인해서 선발된 그린랜턴 군단. 그들이 지니고 있는 힘은 의지의 힘입니다. 그린랜턴 군단의 최대 무기는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낸 상상의 무기입니다. 결국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의지인 것이죠.

하지만 다른 그린랜턴은 두려움을 무기로 내세운 패럴렉스를 이기지 못하지만 나약한 인간에 불과한 할은 혼자의 힘으로 페럴렉스를 이겨냅니다. 그것은 할은 이미 두려움이 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힘으로 우주의 평화를 지배하는 그린랜턴에겐 애초부터 두려움이 없었고, 그렇기에 낯선 두려움 앞에 무너졌지만, 할은 이미 두려움을 갖고 있었고, 그 두려움을 이겨낼 의지가 있었기에 패럴렉스에 맞서 이길 수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헥터에겐 두려움만 있을 뿐, 의지는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헥터는 코믹스 영웅물의 악당 중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악당 짓도 의지가 있어야 할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사람이라면 모두가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난 두려움 따위는 없는 용감한 사람이야.'라는 말은 그야말로 허풍에 불과하죠.

그러한 두려움을 향해 여러분은 어떤 의지를 갖고 계신가요? 한낱 가벼운 SF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하나 가지고 너무 심각한 질문을 하는 건가요?(영화에서도 이런 심각한 질문 따위는 안하는데...) 

영화를 보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스트레스를 확 날려준 가벼운 액션이 있어서 좋았고, 영화를 보고 하루가 지난 오늘에는 두려움을 향한 내 자신의 의지가 무엇인지 뒤돌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P.S. [그린렌턴 : 반지의 선택] 역시 엔딩 크레딧 후에 2편을 예고하는 히든 영상이 있습니다. 성미가 급하신 분이라면 '난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를 외치실테지만, 너무 걱정마세요. 이 영화의 히든 영상은 본격적인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이전에 하기 때문에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처럼 10분 이상을 기다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무실을 이전하는 것은 두렵습니다.

이 두려움은 절대 극복 안 될듯...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