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프리스트] - 이런 평범함을 위해 우리나라의 원작를 가져갔는가?

쭈니-1 2011. 6. 10. 11:02

 

 

감독 : 스콧 찰스 스튜어트

주연 : 폴 베터니, 매기 큐, 칼 어반, 캠 지갠뎃, 릴리 콜린스

개봉 : 2011년 6월 9일

관람 : 2011년 6월 9일

등급 : 15세 이상

 

 

우리나라의 원작을 할리우드에서 영화화했다고?

 

제가 SF영화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프리스트]는 사실 제 관심을 끌만한 것들이 현저하게 부족한 영화입니다.

일단 소재부터가 그렇습니다.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인간과 뱀파이어 종족의 대결을 그린 이 영화는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되고 있는 뱀파이어 영화들 틈 속에서 오히려 평범해 보였습니다.

훈남 뱀파이어와 인간 여자의 로맨스를 그린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비롯하여, 아예 뱀파이어 사회를 다룬 [데이브레이커], 뱀파이어 소녀와 인간 남자 아이의 순수하지만 섬뜩한 사랑을 담은 [렛 미 인] 등. 뱀파이어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관객들을 찾고 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뱀파이어 영화에 길들여진 제게 평범한 뱀파이어 영화라니...

감독을 맡은 스콧 찰스 스튜어트도 [리젼]이라는 판타지 액션 영화를 감독한 경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제겐 거의 듣보잡 수준이고, 주연을 맡은 폴 베터니도 주연보다는 조연에 더 잘어울리는 배우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가 개봉날 [모비딕]을 제쳐두고 [프리스트]를 먼저 챙겨본 것은 전적으로 이 영화의 원작자인 형민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영화계가 할리우드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년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다양한 방식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엽기적인 그녀], [시월애], [거울 속으로]으로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었고, 이병헌, 정지훈 등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 조연으로 인지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박찬욱, 김지운 감독은 할리우드 영화를 직접 감독할 예정이며, 심형래 감독은 아예 자신의 영화를 가지고 직접 미국에 개봉시키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아직 이렇다할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영화를 리메이크한 [마이 쎄시 걸], [레이크 하우스], [미러]등의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고, [지. 아이. 조 : 전쟁의 서막]에서 조연을 맡은 이병헌을 제외하고는 할리우드에 진출한 한국 배우들의 성적 역시 눈에 확 띄지 않습니다. 특히 심형래 감독은 [디 워]와 [라스트 갓파더]가 미국 개봉에서 흥행 참패를 기록하며, 미국 개봉이라는 떡밥으로 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하고 그 돈을 미국 개봉으로 날려 먹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형민우의 원작 만화 '프리스트'가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들어 진다는 것은 제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할리우드 진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프리스트]를 기대한 이유는 바로 그 결과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원작 만화도 이렇게 평범해?

 

하지만 [프리스트]는 그런 제 기대와는 달리 평범함 그 자체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평범함은 영화의 대략적인 스토리 라인만 읽고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할리우드가 머나먼 나라인 우리나라에서 원작을 차용한 만큼 뭔가 차별화된 영화가 만들어지 않았을까 내심 기대했는데, 영화는 그런 제 기대감을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솔직히 형민우의 원작 만화를 읽어보지 못했고, [프리스트]의 제작 소식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만화가 있는지도 몰랐던 저로써는 원작 자체가 이런 평범함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예상해 볼 수 있는 것은 철저한 산업 원칙과 거대한 자본으로 움직이는 할리우드가 선택한 원작이니만큼 이렇게 막무가내로 평범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작의 비범함을 영화를 통해 약간이나마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긴 합니다. 신의 이름으로 인간 사회를 통제하려는 종교의 권력화 (이미 종교가 권력화 되었을 때 벌어지는 참사를 우리는 중세시대의 역사를 통해 충분히 배웠습니다.) SF와 서부극의 미묘한 조합 (황량한 사막, 그리고 열차)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싸웠지만 막강한 힘으로 인해 오히려 인간들에게 배척당하는 프리스트의 고뇌 (마치 [엑스맨]처럼...) 등은 원작이 지닌 철학과 비장함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원작이 지닌 철학과 비장함을 예상할 수는 있지만 영화에서는 그러한 것들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평범함에 매몰됩니다.

방대한 원작을 영화에 모두 담을 수 없다는 것은 원작이 있는 영화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고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는 방식은 각기 다른데, 스콧 찰스 스튜어트 감독은 생략이라는 가장 쉽지만 가장 위험한 방법을 택합니다.

뱀파이어와 프리스트의 전투는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처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싸웠지만 오히려 인간들에게 배척당하는 프리스트(폴 베터니)의 고뇌는 한마디의 나레이션과 아주 짧은 한 장면으로 마무리해버립니다.

가장 큰 문제는 프리스트였지만 뱀파이어에게 사로 잡히고, 오히려 인간의 사악함과는 달리 뱀파이어의 순수한 본능에 매료된 인간 뱀파이어 블랙 햇(칼 어반)의 캐릭터는 거의 대부분 삭제되었는데, 그렇게 대부분의 캐릭터 자체를 생략하고 스콧 찰스 스튜어트 감독이 선택한 것은 프리스트의 활약을 담은 잔인한 액션입니다. 하지만 그런 액션이라면 차라리 [블레이드]를 다시 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프리스트]의 액션 또한 매력적이지 못합니다.

 

 

통째로 날려 먹은 캐릭터의 아쉬움

 

물론 복잡한 캐릭터 따위 집어 치우고 시원 시원한 액션에 집중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라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하지만 요즘 관객의 성향은 그런 킬링타임용 액션영화에 만족하지 않고 짜임새 있는 스토리 라인을 원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갈구합니다. [프리스트]는 그러한 관객의 성향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분명 이 영화의 캐릭터는 복잡합니다. 주인공인 프리스트의 내면을 관객에게 공감시키려면 어쩌면 2시간 가지고는 부족할 것이라 생각될 정도입니다. 사랑하는 여인과 딸은 형에게 맡기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프리스트가 된 사나이. 하지만 임무를 마쳤건만 돌아온 것은 냉대와 배척, 그리고 강요당하는 희생 뿐입니다. 신에 대한 믿음으로 이 모든 부당한 처사를 꾹꾹 참고 견뎠지만 가족들이 뱀파이어에게 습격 당하고 자신의 딸인 루시(릴리 콜린스)가 뱀파이어에게 납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결국 프리스트는 폭발하고 맙니다.

[프리스트]가 재미있으려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프리스트의 분노에 공감하고 응원해야 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공감하고 응원할 시간 따위를 이 영화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뭐가 그리도 바쁜지 '빨리 빨리'를 외치며 영화를 마구 진행시킬 뿐입니다.

 

주인공 캐릭터가 이렇게 마구 생략당하니 다른 조연 캐릭터들 역시 생략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배신한 프리스트를 붙잡기 위해 뒤쫓지만 오히려 그를 돕는 프리스티스(매기 큐) 역시 그러한 생략의 희생자 중 하나인데 프리스트와 같은 내면의 고통을 지니고 있으며, 프리스트를 남몰래 짝사랑하고 있었음을 은근히 내비치는 그녀는 결국 그러한 애틋한 캐릭터를 드러낼 기회조차 박탈당한채 흔한 여전사 이미지로 영화를 마무리지을 뿐입니다.

어쩌면 이 영화의 캐릭터 중 가장 복잡할 블랙 햇의 캐릭터 난도질은 앞에서 이미 설명했고, '내가 네 아빠다'라는 고백에 충격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루시, 루시를 구하기 위해 프리스트와 길을 떠난 풋내기 보안관 힉스(캠 지갠뎃) 역시 캐릭터 설명이 부실한 빈 껍데기에 불과했습니다.

분명 이 모든 캐릭터를 설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스콧 찰스 스튜어트 감독은 캐릭터를 설명할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노력이 없이 속이 빈 캐릭터로 액션을 전개시키니 이 영화는 평범한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2편보다 시급한 것은 비기닝이다.

 

영화는 2편을 예고하며 88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으로 끝을 맺습니다. 하지만 6천만 달러라는 적지 않은 제작비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개봉 4주차에 벌어들인 흥행 수입이 아직 3천만 달러가 되지 않음을 감안한다면 이 영화가 2편이 제대로 제작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그럴바엔 차라리 [블레이드 4]를 만드는 것이 더 나아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진정 할리우드가 형민우 원작의 '프리스트'의 매력을 발견했고, 영화로 제대로 표현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시급한 것은 캐릭터 구축을 위한 비기닝, 또는 아예 리부팅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이 되어 생략된 프리스트와 뱀파이어의 전쟁을 그려 냄으로써 프리스트가 안고 있는 고뇌와 분노를 먼저 관객에게 공감시킨다면 평범한 이 영화도 매력적인 영화로 탈바꿈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아예 좀 더 능력있는 감독이 러닝타임을 늘려 캐릭터 구축과 액션을 병행하는 리부팅도 괜찮은 선택일 듯 보입니다.

 

하지만 비기닝과 리부팅을 하려면 영화 자체가 어느정도 인지도를 확보해야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프리스트]는 그대로 할리우드의 실패한 영화로 남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타깝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고작 이런 평범한 킬링타임용 액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의 원작 판권을 확보하고, 6천만 달러라는 제작비를 투입한 것은 아닐텐데... 이런 평범한 스토리 라인이라면 얼마든지 B급 액션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에게 맡겨도 금방 써내려갈 수 있었을텐데...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 영화계가 다양한 방식으로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있지만 아직 그 성과는 미비합니다. [프리스트]마저 할리우드의 실패작으로 낙인 찍힌 지금 이제 우리가 믿을 것은 박찬욱,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감독 데뷔 밖에 없어 보이네요.

[프리스트]는 그런 쓸쓸한 현실만을 재확인시켜준 안타까운 영화였습니다. 그렇기에 늦은 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제 발걸음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프리스트]를 본 후 내가 유일하게 건진 것은

형민우의 원작 만화 '프리스트'에 대한 호기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