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후지모리 마사야
더빙 : 최재호, 정선혜, 안경진, 시영준
개봉 : 2011년 7월 7일
관람 : 2011년 7월 9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트랜스포머 3]의 세상 속에 보물을 찾아내다.
2011년을 맞이하며 제가 내세운 첫 번째 계획은 '2011년동안 100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보자!'입니다. 그러한 계획은 2011년 상반기동안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는데, 2011년 6월 30일까지 딱 50편의 영화를 극장에서 봤으니 정확하게 제 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7월이 되며 첫 번째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트랜스포머 3]가 상영관을 독점하는 바람에 극장에서 볼 영화가 없는 것입니다. 매주 새로운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최소한 기대작 두 편을 정하고 기대작은 웬만하면 극장에서 보는 편인데, 7월이 되고 나서는 기대작 두 편을 정해도 상영하는 극장을 찾을 수가 없어 포기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올 여름에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기대작 중 한 편인 [고 녀석 맛나겠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찌감치 웅이와 보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극장에서 상영을 하지 않거나 낮에만 상영하는 바람에 영화를 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공룡 박사를 꿈꾸는 웅이를 위해 일산 킨텍스에서 하는 '2011 Hi Dino 공룡엑스포'를 관람하러 가는 길에 킨텍스 메가박스에서 [고 녀석 맛나겠다]도 보고 왔습니다. 그날 웅이는 일기장에 '공룡으로 시작해서 공룡으로 끝난 날이었다.'라고 쓰더군요.
사실 제가 [고 녀석 맛나겠다]를 기대한 것은 단순히 소재가 공룡이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유난히 공룡을 좋아했던 웅이에게 공룡 영화를 많이 보여주고 싶었지만 공룡 소재의 영화를 좀처럼 찾을 수가 없어서 애 먹었던 저는 이렇게 공룡 소재의 영화가 나오면 영화 자체가 어떻던 웅이와 함께 가슴이 설랩니다.
[고 녀석 맛나겠다]는 요즘 대세인 정교한 3D 애니메이션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아름다운 그림체를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매우 단순한 공룡 그림과 육식 공룡이 우연히 초식 공룡의 아버지다 되며 벌어지는 사건이라는 다분히 동화적인 내용 전개까지... 저는 그저 웅이만 만족한다면 저 역시 [고 녀석 맛나겠다]를 만족하겠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하지만... 웅이보다 더욱 영화에 빠져 드는 저를 발견할 수 잇었으며 후반부에서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맛나 귀여워.'를 연발하는 웅이와 함께 저 역시 '하트도 귀여워.'를 연발했으며, 맛나 인형이라도 있으면 하나 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답니다.
단순한 그림이 가져다준 대단한 감동.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고 녀석 맛나겠다]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오랜만에 개봉한 공룡 소재의 영화라는 것과 웅이가 좋아한다면 저 역시 아무리 유치해도 좋게 좋게 봐줄 것이라 다짐했을 뿐입니다.
제가 이 영화를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한 그림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애니메이션은 실사보다 더욱 정교하거나 아니면 실사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 녀석 맛나겠다]에는 그러한 매력적인 그림이 없습니다. 주인공인 하트는 그저 동그라미에 대강 그려 놓은 것 같았고, 맛나 역시 뾰족 뾰족함만 강조한채 최대한 단순하게 그려졌습니다. 그 동안 너무 아름답고, 너무 정교한 애니메이션에 익숙했던 저로서는 [고 녀석 맛나겠다]의 이런 단순한 그림이 너무 낯설고 유치하게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 선입견에 불과했습니다. 그림이 단순하다고 해서 영화 자체도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 녀석 맛나겠다]는캐릭터를 단순한 그림체로 그려냈지만 그러한 단순한 캐릭터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완벽하고 감동스러웠습니다.
[고 녀석 맛나겠다]에는 본능을 무시한 두 개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강가에 떠내려 온 예쁜 분홍 알을 발견한 마이아사우라(모성애가 강하기로 유명한 공룡입니다.)와 그 분홍알을 태어난 티라노사우르스인 하트의 이야기인데, 포악한 육식 공룡을 키우면서도 하트에 대한 모성애를 버리지 못하는 마이아사우라의 이야기는 저희 어머니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자신이 포악한 육식 공룡임을 알고 엄마의 폼에서 벗어난 하트가 우연히 안킬로사우르스의 알을 발견하게 되고 그 알에서 태어난 맛나(이름 그대로 하트의 입장에선 상당히 맛나게 생긴 녀석)의 아버지가 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두 개의 이야기는 분명 본능을 무시한 서로 같은 이야기인데, 육식 공룡을 키운 초식 공룡의 이야기와 초식 공룡을 키운 육식 공룡의 이야기는 이 영화가 그저 단순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했던 제 선입견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영화를 보며 저를 키우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 저희 부모님이 생각났고, 또 공룡 박사가 꿈이고, 내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며, 내가 그려준 그림에 열광하는 웅이를 끌어 안고 싶어집니다. 하트가 엄마에게 받은 사랑을 맛나에게 베풀어주듯이 저 역시 저희 부모님에게 받은 사랑을 웅이에게 베풀어줘야 겠죠. 이건 단순하지만 가장 위대한 이야기였던 셈입니다.
단순한 그림으로도 할건 다 한다.
하지만 [그 녀석 맛나겠다]에는 그런 감동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트와 마을의 대장 공룡 바쿠와의 대결에서는 흥미진진한 액션을 감상할 수 있으며, 가끔 영화에 펼쳐지는 코믹한 장면들로 영화를 보며 유쾌하게 웃을 수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저는 하트와 맛나가 마을을 떠나 만난 에라스모사우르스인 페로페로와의 장면이 좋았는데 몽환적인 페로페로의 목소리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환상을 안겨줬습니다.
바쿠의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는 전문 성우인 시영준이, 페로페로의 몽환적인 목소리 역시 성우인 이소은이 맡았습니다. 관객들에게 영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전문 성우가 아닌 배우들로 더빙을 맡기고 있는 요즘의 추세에서 전문 성우들이 맡은 [고 녀석 맛나겠다]의 더빙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애니메이션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인기 배우들의 목소리가 아닌 그림과 목소리가 맞아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의 경우는 그러한 더빙이 많이 부족한데 꼭 인기 배우의 목소리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진정 그림과 맞아 떨어지는 목소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가 느껴진 것이죠.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깜짝 놀랄 새로운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데, 알의 산에 대한 비밀 부분입니다. 영화가 끝났다고 해서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시고 조금만 더 자리를 지키시길...
그러한 반전은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웅이와 공룡과 UFO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누게 했습니다.
분명 공룡의 갑작스러운 멸종에 대해서는 우리가 확실하게 아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세대가 이 모든 비밀을 벗겨내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다음 세대인 웅이 세대에서는 모든 비밀이 벗겨질지도 모르죠.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에 밝혀진 사실에 대한 안주보다는, 지금은 '말도 완되.'라고 치부되는 것이라도 새로운 가설에 대한 호기심과 그것을 파헤칠 탐구 정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고 녀석 맛나겠다]는 바로 지금은 '말도 안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웅이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가득 채울 수 있는 흥미로운 반전이었습니다.
동화적인 감동의 이야기 외에도 이렇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면들이 있기에 [고 녀석 맛나겠다]는 웅이에게 특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좋은 애니메이션이 되었습니다.
이제 관건은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고 녀석 맛나겠다]를 보고 나서 전 [마당을 나온 암탉]이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조만간 우리에게 공개될 우리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을 저는 한국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입니다. 꾸준히 일년에 몇 편씩 개봉을 하지만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드물었고, 최근에 개봉한 [소중한 날의 꿈] 역시 관객의 선택을 받지는 못했습니다.([소중한 날의 꿈]의 흥행 실패가 [트랜스포머 3] 때문이라는 변명은 하지 맙시다. 이건 작품성과는 별도로 기획의 실패일 뿐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은 황선미의 장편 베스트샐러 동화를 원작으로 하여, 거대 기획사인 명필름이 제작을 했고, 거대 배급사인 롯데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배급망을 확보했습니다. 그야말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인기 원작, 탄탄한 제작사와 배급사까지 확보한 상태이죠.
만역 [마당을 나온 암탉]마저 흥행에 실패한다면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은 흥행성이 없는 것으로 최종 판결이 날 것이고 또다시 기나긴 암흑기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고 녀석 맛나겠다]를 보고 [마당을 나온 암탉]이 떠오른 것은 내용이 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육식 공룡을 키운 초식 공룡의 모성애와 초식 공룡을 키운 육식 공룡의 부성애를 소재로 했던 [고 녀석 맛나겠다]처럼 [마당을 나온 암탉]은 평생이 철조망에 갇혀 계란만을 낳았던 암탉이 자신도 알을 품고 병아리를 키우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고, 우연히 청둥오리를 키우게 되면서 벌어지는 감동스러운 모성애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공룡이 암탉으로 바뀌었을 뿐, 담고 있는 주제는 같은 셈입니다.
과연 [마당을 나온 암탉]도 [고 녀석 맛나겠다]처럼 웅이에게 '너무 귀여워'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할 수 있으며, 제게는 매마른 눈물샘을 자극할 수 있을까요?
[고 녀석 맛나겠다]의 감성은 '남자는 울면 안된다'는 본능을 이겨내고, 제 눈시울을 뜨겁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당을 나온 암탉] 역시 그러한 제 본능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보기 위해 원작 동화도 이미 구입했습니다.) 어쩌면 2011년 최고의 애니메이션 [고 녀석 맛나겠다]를 보고나서 [마당을 나온 암탉]이 더욱 기대되는 것은 비단 저 뿐은 아니길 간절히 바랍니다.
나도 하트 같은 아들이 될 수 있을까?
나도 하트 같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며 부모님이 생각났고,
영화를 보고나서는 웅이를 꼭 끌어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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