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오성윤
더빙 : 문소리, 유승호, 최민식, 박철민
개봉 : 2011년 7월 28일
관람 : 2011년 7월 30일
등급 : 연소자 관람가
여러모로 우리 가족에겐 특별한 영화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영화를 즐기고 싶다는 제 오랜 소원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게는 한가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것은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즐길 수 있는 영화의 대부분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고보니 웅이와 함께 극장에서 본 영화 중 우리 영화는 고작 [로보트 태권 V]와 [빼꼼의 머그잔 여행] 뿐이었습니다.
[로보트 태권 V]를 웅이와 함께 보며 내 어릴적 추억을 웅이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이 너무나도 컸었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웅이에게 우리나라의 감성이 듬뿍 담긴 애니메이션을 보여 주고 싶었지만 우리나라의 영화계 사정상 그러한 제 바람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랜만에 개봉하는 우리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 소식을 듣고 저는 '그래, 이거다!'를 외쳤답니다. 그리고 당장 황선미의 원작 동화를 구입했고, 주말을 이용하여 온 가족이 모여 앉아 함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었습니다.
원작 동화를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읽은 효과는 금새 나타났습니다. 웅이는 [마당을 나온 암탉]이 개봉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고, 결국 영화가 개봉하던 주의 주말을 이용하여 저희 가족 모두 극장으로 총 출동하여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그동안 매끈한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캐릭터를 내세운 일본 애니메이션에 익숙했던 웅이는 묵직한 감동을 지닌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고 처음으로 '감동'이라는 단어를 일기장에 썼답니다.
지금까지 영화를 보고 일기를 쓰면 항상 '재미있었다'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는데 [마당을 나온 암탉]은 '감동적이었다'라는 표현을 쓴 것이죠. 정말 뿌듯했습니다. 웅이가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재미 뿐만이 아닌 감동을 느낀 것이 뿌듯했고, 원작 동화를 함께 읽고,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며 우리 가족이 함께 감동을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이 생겼다는 것도 뿌듯했습니다.([로보트 태권 V]의 경우는 구피가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여러모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저희 가족에게 특별한 의미로 기억될 영화입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웅이와 제가 함께 감동을 공유할 수 있는 우리 애니메이션이 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네요.
원작 VS 영화
사실 원작 동화를 읽으며 약간은 걱정을 했습니다. 동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황선미의 원작 동화는 어두웠고, 철학적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슬프면서 충격적이었죠.
[마당을 나온 암탉]이 원작에 충실하게 만들어진다면, 아이들의 입맛에 맞게 밝고 희망적인 해피엔딩이 대부분인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는 사뭇 다른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가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걱정은 예고편을 보며 어느정도 해소되었고, 영화를 보면서 제겐 아쉽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꽤 영리하게 각색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성윤 감독은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원작의 어두운 분위기 만큼은 확 바꾸었습니다. 그 결과 코믹한 캐릭터인 달수(박철민)와 참새 짹이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추가되었고, 마당의 가축들 역시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던 원작과는 달리 상당히 우스꽝스럽게 변하였습니다.
그 중 가장 많이 변한 것은 역시 주인공인 잎싹(문소리)인데, 아들인 초록(유승호)을 위한 헌신은 변함이 없지만, 저수지라는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서 초록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원작의 잎싹 대신, 호기심이 많은 조금은 밝은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나그네(최민식)가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로 변모시킨 것 역시 원작과는 다른 점입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원작에서 캐릭터만 변한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장면도 많이 추가되었고, 원작의 장면도 많이 생략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초반의 양계장 장면과 마당 장면은 대부분 생략되었습니다. 저수지에서의 족제비와 잎싹의 치열한 공방전도 생략되었고, 무엇보다 족제비들의 청둥오리 사냥 장면 역시 생략되었습니다.
족제비의 청둥오리 사냥 장면은 원작에서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는데 영화는 그러한 원작의 클라이맥스를 생략하는 대신 청둥오리들의 파수꾼 대회가 새로운 클라이맥스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이렇게 원작과 비교해서 생략되어지고, 새로 추가된 캐릭터와 장면들의 이유는 명확합니다. 좀 더 아이들 취향에 맞게 밝아지고, 재미있어지겠다는 굳은 의지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오성윤 감독의 의지는 어느 정도 먹혀 들어갔습니다. 책을 읽을 땐 시종일관 심각한 표정으로 잎싹과 초록을 걱정하던 웅이가 영화를 보면서는 걱정은 어느새 잊고 영화를 즐기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분명 영화는 원작에 비해 재미있어 졌지만 그 대신 잃은 것도 있습니다. 원작 동화는 어른인 저도 읽고나서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을 정도로 깊은 여운과 감동이 있었는데, 영화는 분명 재미있어졌지만 감동의 깊이가 아무래도 원작에 비해 얕았습니다.
잎싹의 간절함, 처절함이 부족했다. (스포포함)
원작 동화는 철저하게 잎싹의 시선으로 표현됩니다. 잎싹이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동화를 읽는 독자들에게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양계장에서 잎싹이 느꼈을 좌절이 이해되었고, 양계장을 나와서 마당의 가축들과 함께 살고 싶은 잎싹의 불쌍한 외침이 가슴 아팠습니다. 양계장 안에서 언제나 마당을 동경하며 살았던 잎싹. 하지만 양계장을 나와 마당에 왔지만 아무도 잎싹을 반기지 않습니다. 그때 느꼈을 잎싹의 막막함이 영화에선 대부분 생략되었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저수지에서 잎싹이 초록을 족제비로 부터 보호하기 위해 벌인 처절한 사투가 영화에선 전혀 표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양계장에서 사람의 보호와 사람이 주는 먹이만을 먹으며 편하게 살았던 잎싹. 하지만 양계장을 벗어나 초록의 엄마가 된 잎싹은 저수지라는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닭이라는 나약한 동물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처절한 사투를 벌입니다.
그러한 처절함이 부족했기에 마지막 잎싹의 충격적인 선택이 가져다주는 감동도 원작의 깊이를 따라가지 못한 것입니다.
원작에서 잎싹은 이미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어 초록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입니다. 하지만 초록은 철새입니다. 동료들을 따라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나 날 수 없는 잎싹은 초록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과연 초록이 떠난 이후에도 잎싹은 이 치열한 생존의 사투를 벌일 수 있을까요? 아뇨. 잎싹은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철새인 초록의 떠나는 길을 막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잎싹이 족제비의 먹이가 되겠다고 스스로 결심한 이유입니다.
족제비도 새끼들을 키워야 하는 엄마였고, 자연의 법칙은 먹이 사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에는 악도 선도 없습니다. 단지 살기 위한 사투가 있을 뿐이죠. 잎싹은 스스로 그 자연의 법칙에 따르며 몸은 갈 수 없지만 영혼만이라도 초록을 따라 간 것이죠.
영화가 끝나고 아이들이 '그런데 왜 잎싹은 족제비의 먹이가 된거야?'라고 묻습니다. 영화만으로는 이 충격적인 결말이 이해되지 않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원작을 읽은 웅이는 원작과는 달리 눈물을 흘리는 족제비의 모습이 더욱 감동적으로 느껴져었나봅니다. '아빠, 족제비도 잎싹의 마음을 이해했나봐.'라고 말하더군요. 원작을 읽은 이만이 느낄 수 있는 감동의 깊이란 바로 이런 것이죠.
아름다운 도전이 제발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기를...
저는 [마당을 나온 암탉]이 저희 가족에게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에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제대로된 기술력과 애니메이션화될 만한 원작이 부족했던 우리 애니메이션은 고스란히 그관객층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과 일본의 캐릭터 애니메이션에 빼앗겨 왔습니다. 가끔 국산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지만 부실한 내용과 매력적이지 못한 캐릭터로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당을 나온 암탉]은 그 해답을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동화입니다. 이미 [호튼],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과 같이 할리우드는 동화의 애니메이션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탄탄한 스토리 라인을 갖추고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와 인지도 역시 확보하고 있는 동화는 애니메이션화되기에 더 없이 알맞은 조건인 셈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고전 설화의 애니메이션화를 몇번 시도를 했을뿐(8월에 '홍길동'을 소재로한 [홍길동 2084]라는 국산 3D 애니메이션이 개봉한다고 하네요.) 동화의 애니메이션화는 [마당을 나온 암탉]이 첫 시도인 셈입니다.
제가 [마당을 나온 암탉]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동화를 읽고 자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읽은 동화가 애니메이션화 되어 그림과 글이 아닌 영상으로 구현된다고 하면 아무래도 어린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입니다.
웅이가 그랬습니다. 아빠, 엄마와 함께 재미있게 읽은 동화가 애니메이션화 되어 극장에서 상영한다고 하니 큰 기대를 갖고 영화 개봉을 기다리더군요.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이미 확보되었습니다. 방학이면 극장으로 몰려오는 아린 관객들은 극장에서 애니메이션을 보며 환호하고 있고, 덤으로 부모들 역시 아이들과 함께 극장으로 오고 있습니다.
더이상 할리우드의 기술력과 일본의 캐릭터를 이길 수 없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동화의 애니메이션화를 통해 할리우드 애니메이션과 일본 애니메이션에 빼앗긴 관객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당을 나온 암탉]의 아름다운 도전이 일회성에 끝나지 않고 앞으로 계속되어야하는 이유입니다.
웅이에게 농담처럼 한 이야기이지만
앞으로 [마당을 나온 수탉], [저수지를 나온 달수]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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