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1년 아짧평

[헤드] - 너 정말 제 정신이 아니구나!

쭈니-1 2011. 7. 28. 11:11

 

 

감독 : 조윤

주연 : 박예진, 백윤식, 류덕환, 오달수, 데니안

 

 

정신나간 폭우 때문에...

 

26일부터 내리기 시작한 폭우로 중부 지방은 거의 아수라장 상태입니다. 특히 서울은 그야말로 어이가 없을 지경으로 피해가 막심합니다. 그래도 한 나라의 수도가 단 하룻밤의 폭우(물론 기록적인 폭우라고는 하지만)로 이렇게 도시 기능이 마비될 정도로 허술하다는 사실에 놀랍고 창피했습니다.

사실 저희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천 공장 지대에 있는 저희 회사는 그 동네 건물들이 거의 대부분 그러하듯이 지은지 족히 몇 십년은 된 오래된 건물입니다. 그래도 몇 번의 보수 공사를 통해 이 동네 건물 중에는 가장 튼튼하고 새 건물이라고 자부했건만, 이번 폭우로 인하여 사무실 여기 저기 비가 새고 난리가 아닙니다. 무슨 6, 70년대 달동네를 소재로한 영화도 아닌데 비 새는 곳에 바가지, 쓰레기통으로 천장에서 떨어지는 비를 받아내며 하루를 보냈답니다.

회사에서는 특단의 조치로 퇴근 시간을 1시간 정도 앞 당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는 것을 보고 결국 오후 6시를 꽉 채우고 퇴근했습니다. 원래는 저녁에 [고지전]을 보러갈 계획이었지만 이 비속을 헤쳐 나가며 극장으로 운전할 용기가 나지도 않고, 여기 저기 비 피해로 아우성인데 태평하게 극장에서 영화를 즐기는 것도 좀 그렇고 해서 집에서 간단히 [헤드]라는 영화를 보며 영화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였습니다.

 

왜 하필 너였니?

 

밤 9시. 그친 듯 했던 비가 다시 거새지기 시작했습니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제 마음도 비 피해 걱정 때문에 편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헤드]는 요근래 본 영화 중에서도 최악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정도로 제겐 아주 엉망인 영화였습니다.

[헤드]는 줄기세포의 권위자인 김상철 박사(오달수)가 자살을 하고, 시체에서 머리가 사라지는 기상천외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이 사라진 머리는 오토바이 퀵서비스맨인 홍제(류덕환)에 의 손에 들어가고, 홍제는 방송국 기자인 누나 홍주(박예진)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하지만 김상철 박사의 머리를 노리는 장의사 백정(백윤식)에 의해 홍제는 납치되고, 홍주는 동생을 구하기 위한 모험을 시작합니다.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을 펼쳐보면 이건 딱 전형적인 스릴러 영화입니다. 음모, 납치, 모험 등. 그런데 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헤드]는 소재와 그러한 소재를 표현하는 방법에서 제게 상당한 불편함을 안겨 줬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꿀꿀했는데 이 영화를 보며 '내가 왜 하필 [헤드]를 선택했을까?'라는 후회가 강하게 들 만큼 그 불편함은 컸습니다.

 

신체훼손, 그리고 가벼운 분위기

 

제가 [헤드]에 불편함을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신체훼손이라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소재 때문입니다. 오랜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생활해온 우리나라에서는 부모님이 물려 주신 몸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뿌리깊게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장기 기증이 우리나라에선 활성화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헤드]는 그러한 것들을 정면으로 거슬립니다. 김상철 박사의 목이 든 아이스박스를 들고 주인공들은 뛰어 다녀야 하고, 백정은 죽은 사체를 화장품 회사, 성형병원 등에 거래하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소재로만 따진다면 장기 거래의 충격적인 실상을 영화화했던 [아저씨]와 버금갑니다. 그런데 시종일관 심각한 분위기로 장기를 거래하는 악당들과 맞서 싸웠던 [아저씨]와는 달리 [헤드]는 최대한 가벼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보면 이 영화가 스릴러인지 코미디인지 헷갈릴 정도로 [헤드]는 가벼운 스릴러 영화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죽은 이들의 사지를 절단해서 정육점 고기를 팔듯 포장해서 파는 백정 일당의 범죄는 최대한 우스꽝스럽게 표현되었고, 시체훼손, 사체거래라는 무시무시한 범죄의 현장에 뛰어든 홍주와 홍제 남매는 분노보다는 여유로운 농담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이끕니다.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영화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 있나?'라며 이 영화의 가벼운 분위기를 즐기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소재가 소재인 만큼 가볍기만한 이 영화의 분위기가 불편하고 짜증났습니다.

그래서인지 배우들의 연기도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한심해 보였는데, 박예진의 경우는 원래 그렇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영화에서는 심하다 할 정도로 제게 감정이입이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승완(데니안)에게 눈물을 흘리며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에서 뭔가 절박함이 느껴져야 할텐데, 절박함 대신 눈물로 다른 이들을 이용하려는 얄팍함만 느껴졌습니다.

영화의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일부러 저렇게 연기하는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심각하게 한심했는데, 이대로라면 앞으로 그녀가 주연을 맡은 영화는 꺼리게 될 것 같습니다.

가수에서 연기자로 변신한 데니안의 연기도 보는 내내 헛웃음이 나왔는데 뉴스 앵커 장면에서 일부러 딱딱한 모습으로 연기를 하는 그를 보며 연기하려면 연기 공부를 해도 한참은 더 해야 겠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 뿐만 아니라 간혹 등장하는 액션씬은 허술하게만 보였고, 요양원의 환자들을 좀비처럼 표현한 장면, 반전이라며 형사를 범인과 공범이라고 공개하는 후반부, 홍주와 승완의 짜증날 정도로 멍청한 캐릭터 구축, 멋지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은 악당 백정의 존재 등등. 영화를 보고 하루가 지났건만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드는 구석을 찾을 수가 없네요.

아! 한가지는 있네요. 백정의 부하로 등장한 용이(박영서)의 독특한 캐릭터. 그래, 용이만큼은 인정해줘야 겠네요. 감정이라고는 없는 순박한 살인마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