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맥조휘, 장문강
주연 : 견자단, 강문, 손려
무궁무진한 컨텐츠... '삼국지'
초등학생 시절, 막내 삼촌이 제게 5권짜리 '삼국지'라는 소설을 읽어보라며 주셨습니다. 처음엔 그림 하나 없이 글씨만 빡빡하게 채워진 이 대하 소설에 질렸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 속으로 빠져드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특히 유비, 관우, 장비가 천하통일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에선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리곤 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기억을 가지신 분들이 한 두명은 아닐 것입니다. '삼국지'는 살아가면서 꼭 읽어야할 필수 도서였고, 소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끈임없이 재생산되며 익숙한 컨텐츠가 되었습니다.
참 부러운 일이죠. 고구려, 백제, 신라가 통일을 위해 자웅을 겨루던 우리나라의 삼국 시대 이야기도 매력적인 이야기가 많습니다. 하지만 '삼국지'는 어쩌면 흔한 중국의 영토 전쟁을 영웅들의 이야기로 채워 놓음으로써 세계적인 이야기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나관중 같은 뛰어난 이야기꾼이 있었다면 연개소문, 계백, 김유신 등이 유비, 관우, 장비 처럼 세계적인 영웅으로 포장될 수 있었을텐데...
관우... 유비에게로 돌아가라.
'삼국지'자체가 많은 캐릭터들이 난무하는 워낙 방대한 이야기이다보니 이 영화는 비록 '삼국지'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지만 부제에서 '명장 관우'를 명시함으로써 '삼국지'의 영웅 캐릭터중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관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음을 밝힙니다.
하지만 조자룡을 심층적으로 그렸던 [삼국지 : 용의 부활]과는 달리 오히려 오우삼 감독의 [적벽대전 2부작]처럼 특정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이 영화가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은 바로 '오관돌파'입니다.
'오관돌파'는 조조(강문)에게 사로잡힌 관우(견자단)가 자신의 사람이 되어 달라는 조조의 간청을 뿌리치고 유비의 처인 기란(손려)과 함께 유비에게 돌아가기 위한 기나긴 여정을 담고 있는데, 관우의 뛰어난 무공을 두려워한 조조의 부하들이 관우를 죽이려 하고 관우는 다섯 관문을 뚫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기란을 결국 지켜내지는 못합니다.
관우의 사랑 VS 조조의 사랑
[삼국지 : 명장 관우]에서 흥미로운 점은 관우와 조조의 캐릭터 재해석입니다. 물론 제가 '삼국지'를 읽은 것이 워낙 오래 전 일이고, 어린이를 위한 5권짜리 요약본을 읽어서인지 몰라도 이 영화 속의 관우와 조조 캐릭터는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특히 형수인 기란을 마음에 두고 있던 관우의 사랑이 파격적으로 그려졌는데, 의형제인 유비에 대한 의리와 기란에 대한 사랑으로 심적 갈등을 겪는 모습은 관우라는 캐릭터를 좀 더 비극적인 영웅 캐릭터로 만들기 위한 맥조휘, 장문간 감독의 장치일런지 몰라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삼국지'를 선과 악의 단순한 대결로 나눈다면 언제나 악으로 표현되었던 조조의 캐릭터 역시 새로웠는데, 걸출한 인재인 관우를 잡기 위한 조조의 눈물나는 노력은 비열함이라는 조조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소인배라고 칭했지만 적장인 관우에 대한 그의 사랑을 보면 그야말로 대인배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늑대의 시대, 양은 과연 영웅인가?
'삼국지'는 한나라 왕조가 몰락하기 시작한 시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혼란의 시기에 여러 영웅들이 천하를 통일하겠다며 일어서고 중국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립니다. 이러한 피 튀기는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것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영웅의 등장입니다. 위나라의 조조, 촉나라의 유비, 오나라의 손권은 스스로 자신이 바로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영웅이라 우기며 패권을 위한 전쟁을 벌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쟁 속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것은 일반인들입니다. 전쟁에 차출되어 이름 없는 병사가 되어 죽음을 강요받고, 땅은 황폐해지고, 먹을 것은 없어집니다. 그들에겐 조조, 유비, 손권 그 누가 되어도 좋으니 빨리 천하를 통일해서 평화가 오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삼국지 : 명장 관우]는 바로 그러한 상황을 그려냅니다. 훗날 관우는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살려 보내주는데, 유비에겐 반역 행위와도 같았던 관우의 선택은 어쩌면 조조에게서 천하를 통일할 수 있는 유일의 인물임을 알아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관우는 순진한 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천하 통일을 위해 온갖 음모가 난무하는 늑대의 시대에서 홀로 순진한 양. 과연 그는 조조를 살려 보냄으로써 천하를 통일하게 하는 결정적인 기여를 하는 영웅이었을까요? 아니면 늑대인 조조의 꾐에 넘어가 의형제인 유비를 곤경에 빠트린 멍청한 바보였을까요?
견자단이었기에 가능했을지 모를 만족스러운 액션
분명 [삼국지 : 명장 관우]는 그 동안 제가 알고 있던 관우와 조조 캐릭터를 뒤집음으로서 색다른 재미를 안겨줬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기대한 대부분의 관객들이 원한 것은 관우, 조조 캐릭터의 재해석이 아닐 것입니다. 현재 중국 액션 영화의 대세인 견자단이 펼치는 시원 시원한 액션과 스펙타클이었을 것입니다.
일단 [삼국지 : 명장 관우]에는 [적벽대전 2부작]과 같은 스펙타클은 없습니다. 그 점은 아쉽지만 '오관돌파'를 위한 관우의 액션은 꽤 만족스럽습니다. 특히 각 관문마다 각기 다른 스타일의 액션을 펼치는 부분이 마음에 들었는데, 좁은 골목에서 펼치는 창과의 대결, 그리고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방패의 방어, 뽀죡한 공모양의 유성추 등 각기 다른 개성을 담은 액션을 담고 있습니다. 자칫 반복되는 액션에 지루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러한 부분을 보완한 셈이죠.
[삼국지 : 명장 관우]는 처음엔 [삼국지 : 용의 부활]처럼 무턱대고 영웅가를 부를 액션 영화일 것이라 생각하며 영화를 감상하다가 캐릭터의 새로운 면모와 견자단의 개성 넘치는 액션을 보며 꽤 만족했던 영화입니다.
'아주짧은영화평 > 2011년 아짧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웨이 백] - 그들의 여정은 험난했지만 영화는 평온했다. (0) | 2011.07.18 |
---|---|
[타임코드] - 이제부터 당신은 추억의 특수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0) | 2011.07.12 |
[수상한 고객들] - 그래도 희망은 가족이다. (0) | 2011.06.30 |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정의의 변호사로 변신할 준비가 된 속물 변호사. (0) | 2011.06.28 |
[옥보단 3D] - 15년전보다 진부해진 에로영화의 주제의식 (0) | 2011.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