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영화노트/1996년 영화노트

동사서독(東邪西毒) ★★★★★

쭈니-1 2011. 7. 5. 10:34

 

 

감독 : 왕가위

주연 : 임청하, 장국영, 장만옥, 양조위, 장학우, 양가휘, 유가령, 양채니

 

 

94년 베니스 영화제 예술성취상, 촬영상 수상

이미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은 세계 영화팬들을 열광시켰다. 그의 감독 데뷔작인 [열혈남아]는 89년 깐느 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되어 많은 주목을 받았고, 60년대 홍콩의 향수를 그린 [아비정전]은 저주받은 걸작으로 평가되어 90년 홍콩금상장에서 5개 부문을 휩쓸었다. 그가 우리 관객의 주목을 받게 된 영화는 [중경삼림]이고, [동사서독]은 제작기간이 무려 3년이나 걸린 대작이다.

이 영화는 무협소설의 대가 김용의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가. 그러나 왕가위 감독은 각색하여 상당 부분을 수정했고 무협영화라기 보다 8명의 등장 인물의 사랑과 아픔을 노래하듯 그린 기괴하고 아름다운 영화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동사서독]은 다른 무협 영화에서 흔히 택하는 선과 악의 대결 그리고 선의 승리라는 전통적인 방식을 배제했다. 이 영화엔 악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승리하는 자도 없다. 간단명료한 무협 영화를 기대한 관객에겐 무척당황스러운 영화이다.

8명의 인물이 제각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보니 영화는 산만해지기 쉽고, 그래서 그들의 기본틀이 서독 구양봉 역을 맡은 장국영이다. 최고의 검객이 되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 자애인을 버린 그는 삭막한 사막에 움막을 지어놓고 살인 청부를 직업으로 살아간다.

구양봉의 친구로 나오는 동사 황약사 역은 양가휘가 맡았다. 그는 사랑을 얻기 위해 떠도는 검객. 어느날 자애인을 사랑하게 되고 그녀가 사랑하는 구양봉의 소식을 전해준다는 핑계로 구양봉과 친구가 된다. 그러나 그녀가 병으로 죽자 취생몽사라는 과거를 잊는 술에 젖어 버린다.

그 외에는 낮에는 여자, 밤에는 남자가 되는 이중성격자 모룡연 역의 임청하, 친구에게 아내를 빼앗긴 비운의 검객 맹무살수 역의 양조위,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자애인 역의 장만옥, 맨발의 검객 홍칠공 역의 장학우, 복사꽃 여인 도화삼량 역의 유가령, 순진한 처녀 완사녀 역의 양채니 등 홍콩 최고의 스타들이 펼치는 아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영화 전편에 펼쳐진다. 지금 보아온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이다.

 

1996년 2월 17일

VIDEO

 

 


 

 

2011년 오늘의 이야기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하는 이야기인데... 제가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에서 최고로 꼽는 영화는 바로 [동사서독]입니다. 이 영화가 너무 보고 싶어서 혼자 극장에서 봤는데(요즘은 혼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흔한 일상이지만 당시만해도 제겐 굉장히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만큼 저는 이 영화가 보고 싶었습니다.) 다른 관객들이 '이게 뭐야!'라며 투덜거리는 가운데 저 혼자 눈물을 흘리며 영화 속에 푹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이 글은 VIDEO 출시 후 영화를 두번째 보고 쓴 리뷰입니다.) 

8명의 등장 인물 하나하나에 묻어나는 슬픈 감성, 그리고 그들을 표현해내는 아름다운 화면과 처량한 나래이션. 특히 맹무살수가 죽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베인 목에서 터져나오는 피와 그러한 가운데 담담하게 울려 퍼지는 양조위의 나래이션은 정말 눈물을 한바가지 흘리고도 남을 명장면이었습니다.

제겐 홍콩 영화 중에서 꼭 DVD로 소장하고 싶은 영화인데, 양가위 감독의 영화 중에서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영화라서 그런지 몰라도 DVD를 찾기가 어렵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