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1년 아짧평

[옥보단 3D] - 15년전보다 진부해진 에로영화의 주제의식

쭈니-1 2011. 6. 21. 10:23

 

 

감독 : 손립기

주연 : 하화초, 람연, 뢰개흔

 

 

15년이 지났지만 야한 영화를 보는 내 처지는 바꾸지 않았다.

 

1996년 1월... 저는 24살이 되었지만 방위 해제를 앞두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며 집에서 빈둥대고 있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여전히 부모님의 집에 기거하며, 부모님의 용돈을 타서 쓰는 처지였죠. 그러니 당연히 부모님의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제 용돈의 대부분이 비디오 대여료로 들어가던 그 시절, 저는 [옥보단]이라는 영화를 보고 싶었고, 부모님이 출타하기만을 기다려 안방에 있는 비디오 비젼으로 드디어 [옥보단]을 봤습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혹시라도 부모님이 들어오시지나 않는지 조마조마 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지금 제 나이는 이제 39살이 되었지만 사정은 그다지 바뀌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옥보단 3D]가 개봉했지만 중년 아저씨가 혼자 이 영화를 보면 이상한 눈초리를 받을까봐 극장을 찾지도 못하고, 집에서 보려고 하니 구피에게 '변태 남편' 취급당할까봐 구피가 야근하는 틈을 타서 구피가 들어오지나 않는지 조마조마 하며 결국 [옥보단 3D]를 봤답니다.

 

나는 그대로인데 영화는 변했다.

 

생각해보면 재미있습니다. 15년 전에는 내가 나이가 들면 좀 더 자유로워지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책임져야 할 것도 많고, 남의 이목을 신경 써야하는 부분도 많아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야한 영화를 보는 제 처지는 15년 전과 비교해서 별로 바뀐 것이 없는데, 15년 만에 새롭게 만들어진 [옥보단]은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일단 기술적인 부분에서 3D를 도입했습니다. 비록 저희 집 TV가 3D TV는 아니기에 [옥보단 3D]의 3D 기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암튼 15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두고 [옥보단]과 [옥보단 3D]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한다면 역시 기술력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술력의 변화보다 더 큰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스토리의 전개 방식과 주제 의식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너무 크게 바뀌어 [옥보단]과 [옥보단 3D]는 서로 다른 영화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자극적인 시대에 맞게 잔인해졌다.

 

사실 1995년 [옥보단]은 해학적인 측면이 많았습니다. 말의 그것을 달고 뭇여성을 희롱하며 색을 탐하는 미양생은 지난치게 색을 탐하다가 기력이 쇠하고 맙니다. 영화는 철저하게 미양생의 행위를 쫓아가고, 그가 결국 색을 탐하다가 인과응보의 덫에 걸리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줍니다.

하지만 2011년 [옥보단 3D]는 좀 더 자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나봅니다. [옥보단 3D]는 후반에 가서는 잔인하다 할 정도로 성 고문 장면에 집착하는데, 그러한 영왕의 폭주 장면은 눈살을 찌푸릴 정도로 그 수위는 조금 높은 편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후반부 장면은 영화의 섹시함을 죽여 놓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관객이 [옥보단 3D]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무협, 잔인한 고문이 아닌 섹시함임을 감안한다면 손립기 감독은 자극적인 것을 위해서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인 섹시함을 죽여 놓는 자충수를 두고 말았습니다.

 

진부해진 주제의식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1995년 [옥보단]은 인과응보라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의 쾌락을 위해 남에게 피해를 줬던 미양생은 결국 자신의 행동으로 인하여 불행을 맞이합니다. 미양생에게 아내를 빼앗긴 포목집 남자는 미양생의 아내를 강간하고 집에서 쫓겨난 그녀를 기생집에 팔아 버립니다. 지나치게 색을 탐하다가 기력이 쇠한 미양생이 기력 회복을 위해 간 기생집에서 아내를 만났을 때의 그의 절규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옥보단 3D]는 이러한 주제의식도 바꿉니다. 그렇게해서 바뀐 주제의식은 영왕의 폭주 속에 갑자기 개과천선한 미양생과 도저히 그 캐릭터가 이해가 되지 않는 옥향의 진실된 사랑이고, 섹스를 하지 않아도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오히려 15년 전 주제의식보다 진부해진 결론에 도달합니다. 아마도 15년 전 [옥보단]과는 달리 해피엔딩으로 끝내기 위한 장치로 보이는데... 15년 전 [옥보단]의 인과응보라는 주제의식이 더욱 세련되게 보이는 것은 [옥보단 3D]의 주제의식이 지나치게 진부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구피가 야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영화 관람을 마쳤지만 남은 것이라고는 아쉬운 모지이크와 이해가 불가한 영왕의 폭주 장면 뿐이었습니다. [옥보단 3D]는 [옥보단]보다 더 야해졌는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옥보단]보다 덜 섹시하고, 덜 인상적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