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1년 아짧평

[레지던트] - 시대를 역행하는 관음증 스릴러

쭈니-1 2011. 6. 9. 10:01

 

 

감독 : 안티 조키넨

주연 : 힐러리 스웽크, 제프리 딘 모건

 

 

[슬리버]라는 영화를 아는가?

 

1992년 [원초적 본능]으로 샤론 스톤은 세계적인 섹시 스타로 발돋음하게 됩니다. 그 전에는 [토탈리콜]에서 아놀드 슈왈츠네거의 아내역 정도로만 기억되던 배우였지만 한 편의 영화로 전 세계가 그녀의 차기작에 관심을 기울이는 배우가 된 것이죠. 그런 그녀가 차기작으로 선택한 영화가 바로 [슬리버]입니다. 

[슬리버]의 내용은 7년동안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홀로서기를 위해 '슬리버'라는 아파트에 이사온 칼리(샤론 스톤)는 아파트의 주인인 지크(월리엄 볼드윈)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에게 빠져듭니다. 하지만 아프트에선 의문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칼리는 지크가 아파트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입주자들의 사생활을 지켜 보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제 칼리는 지크를 믿을 수 없게 된 것이죠.

갑자기  20여년 전의 영화인 [슬리버]의 이야기를 꺼내든 이유는 간단합니다. [레지던트]를 보다보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슬리버]라는 추억의 영화가 기억났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세입자, 매력적인 집주인, 그리고 관음증

 

[슬리버]와 [레지던트]의 공통점은 기본적인 영화의 설정에서 알 수 있습니다. [슬리버]의 칼리처럼 [레지던트]의 줄리엣(힐러리 스웽크)도 남친인 잭의 바람으로 홀로서기를 선언하고 뉴욕의 어느 넓은 집을 저렴한 비용으로 구하게 됩니다.

이 집엔 [슬리버]의 지크처럼 매력적인 집주인 맥스(제프리 딘 모건)이 있는데, 남친인 배신으로 힘들어 하던 줄리엣은 자연스럽게 잭에게 호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잭은 집 안의 장치들을 이용하여 남몰래 줄리엣을 훔쳐보고 있었죠. 마치 [슬리버]의 리메이크가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레지던트]와 [슬리버]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관음증이라는 소재를 영화의 재미로 삼은 것도 그러하고, 그러한 관음증에 의한 비틀어진 욕망이 수 막히는 스릴로 변환되는 장치 역시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레지던트]는 20년 전의 [슬리버]와 비교해서도 영화적 재미가 상당히 떨어지는 오락 영화입니다.

 

힐러리 스윙크 VS 샤론 스톤... 이거 답이 나오지 않나?

 

[소년은 울지 않는다], [밀러언 달러 베이비]를 통해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2회나 수상한 연기파 배우 힐러리 스웽크. 단순히 연기력만으로 [레지던트]의 그녀와 [슬리버]의 샤론 스톤을 비교한다면 당연히 힐러리 스웽크의 완승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레지던트]는 배우의 연기력보다는 매력을 담보로 해야할 오락 영화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힐러리 스웽크의 칼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누구라도 훔쳐보고 싶은 욕망을 느낄 당대 최고의 섹시 스타 샤론 스톤과 비교해서 힐러리 스웽크는 관객의 관음증을 불러 일으킬만한 섹시한 매력이 현저하게 부족합니다. [레지던트]는 관음증을 소재로 한 영화이기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관음증에 빠뜨릴 치명적인 여 주인공의 매력이 필요했는데 힐러리 스웽크는 연기력과는 별도로 그것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남 주인공인 제프리 딘 모건 역시 마찬가지인데... 달콤한 눈웃음이 매력적인  윌리엄 볼드윈과는 달리 그는 여 세입자가 단번에 빠져들만한 치명적인 매력이 부족했습니다.

 

스릴러 영화의 매력은 빵점에 불과하다.

 

[레지던트]는 명백히 스릴러 영화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스릴을 느낄 만한 여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슬리버]는 지크 외에도 잭(톰 베린져)을 등장시켜 관객들에게 누가 범인인지 헷갈리게 만들었으며, 스토리를 비비꼬아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레지던트]는 한정된 캐릭터와 공간으로 '범인 찾기'라는 스릴러의 재미를 스스로 포기합니다. 줄리엣의 남친인 잭을 이용했으면 좋았겠지만 안티 조키넨 감독은 그럴 의도가 전혀 없어 보였고, 맥스의 할아버지 역시 초반에만 관객을 헷갈리게 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 곧장 퇴장하며 김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범인이 맥스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안티 조키넨 감독은 '범인 찾기'를 포기하고 줄리엣과 맥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으로 영화를 서둘러 마무리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스릴을 느끼기엔 역부족이었죠. 게다가 맥스의 동기 부여도 어정쩡해서 짜임새 마저도 [슬리버]에 비해 느슨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슬리버]보다 시대에 뒤떨어지게 느껴지는...

 

인간의 관음증을 스릴러로 풀어 나가는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걸작 스릴러 [이창]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다리가 부러져 훨체어 신세인 주인공이 무료함을 참지 못하고 건너편 아파트를 몰래 훔쳐 보다가 살인 사건을 목격하며 벌어지는 이 스릴러는 관음증과 스릴러의 장르적 재미가 교묘하게 맞물려 지금까지 히치콕 감독의 영화중 최고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창]에서 관음증의 도구로 사용된 것이 망원경이라면 [슬리버]에선 감시 카메라로 발전되었다는 점입니다. 기술력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관음증 역시 발전하고 있는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죠.

요즘의 관음증 도구는 미디어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더욱 발전되었습니다. 일반인들은 연예인 혹은 유명인들의 사생활을 들여다 보며 관음증의 욕망을 채우고, 유명인들은 SNS를 통해 그런 일반인들의 관음증 욕구를 채워주며 인기를 유지해 나갑니다. 물론 그런 조작된 관음증의 욕구 충족은 가끔 부작용이 발생하여 심각한 문제를 낳기도 합니다. (최근 어느 스포츠 아나운서의 자살도 그런 부작용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레지던트]는 관음증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고 있습니다. 이미 20년 전에 감시 카메라로 인한 관음증이 등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관음증의 도구는 매우 원시적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2011년에 만들어진 영화라는 느낌보다 20년 아니 3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던 것 역시 그런 이유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