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소스 코드] - '소스 코드'의 진짜 기능에 대해서...

쭈니-1 2011. 5. 11. 08:36

 

 

 

감독 : 던컨 존스

주연 : 제이크 길렌할, 미셸 모나한, 베라 파미가, 제프리 라이트

개봉 : 2011년 5월 4일

관람 : 2011년 5월 9일

등급 : 12세 이상

 

 

[소스코드]를 보기 위한 마지막 기회

 

어쩌면 지난 5월 6일이 제겐 [소스 코드]를 보기 위한 최적이 기회였는지도 모릅니다. 분명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면 저는 [써니], [체포왕]뿐만 아니라 [소스 코드]도 볼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그날 늦잠을 잤고, [소스 코드]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는 초조함의 연속이었습니다. 중간 중간 휴일이 끼어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일정은 다른 약속들로 인하여 [소스 코드]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갈 시간이 도저히 나지 않게끔 만들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폭풍을 동반한 폭우가 목요일까지 내린다고 하고, 목요일에는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는 만큼 저는 점점 [소스 코드]를 못 볼 위기에 처하고 있었습니다.

[소스 코드]에 대한 네티즌의 평이 꽤 좋은 편이었고, [인셉션]처럼 복잡한 스토리 구조를 가진 영화라는 소문까지 접한 저는 이대로 [소스 코드]를 놓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제게 남은 마지막 기회는 5월 9일 밤이었고, 저는 피곤하다는 구피를 혼자 남겨두고 무작정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평일 밤이었는대로 불구하고 극장에는 사람이 많더군요. 앞 좌석을 제외하고는 거의 꽉 찬 극장 안에서 저는 그토록 보고 싶어서 안달해야 했던 [소스 코드]를 드디어 봤습니다.

스토리 전개가 복잡하다는 소문을 들은 터라 처음부터 영화에 최대한 집중하며 단 한 장면이라도 빠뜨리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스크린을 응시했습니다. 제 옆 좌석에는 습관적으로 손가락 관절 꺾기를 하는 10대 소녀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를 열심히 째려본 덕분에 다행히 영화를 보는 환경은 좋았던 편이었습니다.

확실히 [소스 코드]는 잘만들어진 영화더군요. 솔직히 영화 자체는 그다지 복잡하지는 않았지만 던컨 존스 감독은 약간의 트릭으로 관객을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그것은 던컨 존스 감독의 전작인 [더 문]에서도 드러났던 특징인데, 제한된 공간과 제한된 등장인물을 통해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더 문]의 독특한 전개는 [소스 코드]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특히 던컨 존스 감독은 '소스 코드'의 진짜 기능을 마지막 반전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소스 코드'의 진짜 기능이 잘 숨겨져 있습니다. 이번 '영화 이야기'에서는 영화에 대한 전체적인 리뷰보다는 '소스 코드'의 진짜 기능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중심으로 진행될 것이며, 따라서 다수의 스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미 죽은 남자의 8분간의 기억을 통해 범인을 밝혀 내겠다고? (이후 다수의 스포 포함)

 

[소스 코드]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생각보다는 꽤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어느 무정부주의자에 의해서 열차폭탄테러사건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할뿐, 범인은 이제 시카고 전역을 폭파하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군 당국은 이에 '소스 코드'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여 콜터 대위(제이크 길렌할)를 투입합니다. '소스 코드'는 열차폭탄테러사건의 희생자인 션이라는 남자의 사망 8분 전의 기억에 접속하여 열차에 타고 있는 범인을 밝혀 내겠다는 발상에서 시작된 군 당국의 기밀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콜터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8분입니다. 그는 8분 안에 션이 되어 기차의 어딘가에 타고 있을 범인을 알아내 그가 시카고 전역을 폭파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이 영화에 몰입한다면 이러한 '소스 코드'의 기능은 꽤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첫번째 함정이 있습니다. '소스 코드'의 창시자인 닥터 러틀리지(제프리 라이트)는 '이것은 시간 여행이 아닌 이미 죽은 션의 기억일 뿐이다.'라고 강조하지만 그렇다면 이 영화 자체가 논리적인 허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러틀리지의 말대로 '소스 코드'가 그저 션의 기억일 뿐이라면 콜터가 그 안에서 그렇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션은 분명 죽기 8분 전, 기차 안에서 크리스티나(미셸 모나한)와 좌석에 앉아 있었을 것이고, 콜터가 '소스 코드'를 통해 접속한 것이 션의 기억이라면 콜터의 행동 반경 역시 기차의 좌석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기억력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은 배제됩니다. 같은 열차 안이라고 할지라도 션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콜터가 접속해서 경험한다는 것을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콜터는 자유롭게 기차 안를 활보하고, 급기야는 분명 션은 보지 못했을 화장실 천장에 숨겨진 폭탄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션의 기억 속에는 분명 존재하지 않았을 폭탄을 콜터가 발견한다는 것 자체가 '소스 코드'를 통해 콜터가 접속한 것은 션의 기억 뿐이 아니라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러틀리지와 콜린(베라 파미가)은 그러한 것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콜터에게 '당신이 경험하는 것은 한 남자의 기억 뿐이므로 크리스티나를 구할 수 없다'고 조언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러틀리지의 주장은 관객들은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죠.

 

 

시간 여행도, 기억 접속도 아니라면 '소스 코드'의 진짜 기능은 무엇인가?

 

저는 영화의 초반에 러틀리지가 주장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기에 '소스 코드'가 러틀리지의 주장과는 달리 시간을 여행하게 하는 시스템일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션의 기억에 접속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션의 죽기 전 마지막 8분간의 시간을 여행한다는 설정이 훨씬 논리적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러한 제 예상도 보기 좋게 깨졌습니다. 

콜터는 테러범을 잡기 위해 여러 번 션의 죽음을 경험하고, 그 속에서 크리스티나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는 그녀만큼은 구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그녀를 열차 밖으로 데려 옵니다. 만약 '소스 코드'가 시간 여행을 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면 그 순간 현재는 바뀌어 있었어야 했습니다. 다시말해 열차테러 희생자 명단에 크리스티나가 빠졌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크리스티나는 여전히 열차테러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소스 코드]가 러틀리지가 주장하는 션의 기억에 접속하는 시스템도 아니고, 제가 예상했던 션이 죽기 전 마지막 8분이라는 시간을 여행하게 하는 시스템도 아니라면 과연 '소스 코드'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영화를 보며 제가 주목했던 바로 그러한 '소스 코드'의 진짜 기능이었습니다. 하지만 던컨 존스 감독은 다른 미스터리들을 끊임없이 드러내며 가장 핵심적인 '소스 코드'에 대한 관객의 궁금증을 막아섭니다.

던컨 존스 감독이 '소스 코드'의 진짜 기능을 감추기 위해 내세운 것은 콜터의 존재에 대한 미스터리입니다. 솔직히 콜터가 이미 죽은 존재라는 것은 영화의 시작부터 힌트로 제시됩니다.

처음 콜터는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합니다. 만약 콜터가 살아 있다면 그에게 '소스 코드'를 비밀로 하고 시스템에 접속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비효율적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콜터는 임무를 수행하기 보다는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시간을 허비합니다.

콜터는 이미 죽었고, 그의 남아 있는 뇌가 '소스 코드'를 통해 션의 마지막 8분 간의 기억에 접속한다는 것 자체가 이 영화에선 큰 반전입니다. 하지만 던컨 존스 감독은 그러한 반전을 영화의 중반 부분에 살짝 공개하는 것이죠. 관객들이 '소스 코드'의 진짜 기능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을 바로 그 시점에서 말입니다.

 

 

평행우주가 정답이다.

 

그렇게 던컨 존스 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숨겨 둔 '소스 코드'의 진짜 기능은 바로 평행 우주입니다.(영화는 마지막 자막을 통해 짧막하게 평행우주를 설명하기도 합니다.) 왠만한 과학 이론에 대해서라면 SF 영화로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할리우드조차도 평행우주를 소재로 한 영화들은 극히 드물 정도로 평행우주는 영화의 소재로 사용하기에 상당히 까다롭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평행우주를 소재로한 영화는 이연걸 주연의 [더 원]정도 뿐입니다. [더 원]은 125개의 각기 다른 우주에 내가 존재하고, 그렇게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나를 모두 제거하면 우주의 절대자가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액션 영화입니다.

[더 원]에 존재하는 125개의 각기 다른 우주는 평행우주, 혹은 다중우주를 뜻하는 것입니다. 평행우주론에 의하면 우주가 여러 가지 일어나는 일들과 조건에 의해 통상적으로 갈래가 나뉘어, 서로 다른 일이 일어나는 우주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말해 다른 차원의 우주에 우리와 똑같은 세계가 존재하고 내가 독립적으로 그 세계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이죠.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자인 츠츠이 야스타카가 쓴 단편 소설 'The Other World'도 바로 평행우주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소스 코드]는 기억접속, 혹은 시간여행이라는 떡밥을 던져 놓고는 실제로는 평행우주를 이야기하는 영화입니다. '소스 코드'는 다른 차원의 우주를 연결 시켜주는 시스템으로 보이고, 콜터는 션이 되어 각기 다른 차원에서 벌어지는 열차테러 현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콜터가 테러범의 정체를 밝혀내고 테러범이 시카고 테러를 막아내는 것과 콜터가 다시 과거로 접속하여 테러범의 열차테러 자체를 막아내고 션이 되어 크리스티나와 행복한 결말을 맺는 것은 각기 다른 우주에서 벌어지는 것으로 애초의 우주에선 콜터는 콜린에 의해 원했던 죽음을 맞이하지만, 새로운 우주에서는 션이 된 콜터와 '소스 코드' 시스템을 위해 죽었어도 죽지 못하는 뇌의 일부만 살아남은 콜터, 이렇게 두 명의 콜터가 존재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소스 코드]는 영화의 소재가 되기엔 까다로운 평행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색다르게 해낸 던컨 존스 감독의 역량과 제이크 길렌할, 미셸 모나한의 매력이 잘 융합된 영화입니다. [더 문]에 이어 [소스 코드]까지... 분명 던컨 존스 감독은 앞으로 주목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다른 차원의 우주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마 다른건 몰라도 지금의 나처럼 영화를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

내가 SF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는 이러한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