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토르 : 천둥의 신] - 이제 신화의 영역까지 넘보는가?

쭈니-1 2011. 4. 29. 11:59

 

 

감독 : 케네스 브래너

주연 : 크리스 헴스워스, 나탈리 포트만, 안소니 홉킨스, 톰 히들스턴

개봉 : 2011년 4월 28일

관람 : 2011년 4월 28일

등급 : 12세 이상

 

[어벤저스]를 위한 중요한 한 걸음.

 

마블 코믹스와 DC 코믹스 원작의 슈퍼 히어로 영화들이 서로 경쟁하며 극장가를 평정하는 것은 이제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엔 DC 코믹스의 대표 슈퍼 히어로 '슈퍼맨'과 마블 코믹스의 대표 슈퍼 히어로 '배트맨' 위주로 시리즈 영화를 만들더니, 이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까지 속속 스크린에 데뷔시키고, 급기야 여러 영웅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영화들까지 기획하며 그들의 경쟁은 점입가경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와중에 2011년 블록버스터 시즌의 개막을 알린 [토르 : 천둥의 신]은 마블 코믹스에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토르(크리스 헴스워스)는 마블 코믹스가 야심차게 준비한 [어벤저스]의 일원으로 이미 [인크레더블 헐크]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이언 맨'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등장했고, [아이언 맨 2]의 엔딩 크레딧이 끝난 후에는 '토르'의 힘의 원천인 해머 묠니르가 발견되는 장면을 넣음으로써 마블 코믹스는 그들의 필생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어벤저스]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토르'가 [어벤저스]의 다른 영웅들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는 점입니다. '헐크'는 이미 여러번의 TV 시리즈와 영화로 잘 알려져 있고, '아이언 맨'은 영화의 폭발적인 흥행으로 단숨에 인지도를 확보했습니다. [어벤저스]의 또 다른 한 축인 '캡틴 아메리카' 역시 최소한 미국 관객에겐 인지도가 높은 슈퍼 히어로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토르 : 천둥의 신]마저 흥행에 성공하여 그 인지도를 높인다면 [어벤저스]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흥행에 실패한다면 [어벤저스]는 시작부터 삐거덕거리게 되는 셈이죠.

상황이 이러하기에 마블 코믹스가 [토르 : 천둥의 신]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먼저 감독을 할리우드의 블럭버스터 전문 감독이 아닌 케네스 브래너에게 맡긴 것부터가 마블 코믹스의 영특한 기획이 돋보입니다. 거기에 토르 역에 새로운 얼굴 크리스 헴스워스를 캐스팅했지만 연기력이 탄탄한 안소니 홉킨스와 나탈리 포트만에게 크리스 헴스워스를 보좌하게 함으로서 부족한 부분을 완벽하게 메꾸었습니다.

 

 

케네스 브래너가 이 영화에 적합한 이유

 

그렇다면 저는 왜 일반 관객들에겐 감독이 아닌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사기꾼 길데로이 록허트 교수 역을 맡은 배우로 더 유명한 케네스 브래너가 [토르 : 천둥의 신]의 감독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했을까요?

그 해답은 케네스 브래너의 필모그래피에 있습니다. 그는 1989년 세익스피어 원작으로 유명한 [헨리 5세]의 감독, 주연으로 유명세를 탔으며, [헛소동], [오델로], [햄릿] 등을 출연, 연출하며 유난히 세익스피어 원작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러한 케네스 브래너의 경력은 [토르 : 천둥의 신]과 교묘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토르 : 천둥의 신]은 비록 마블 코믹스의 슈퍼 히어로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북유럽의 신화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완성된 시나리오는 마치 세익스피어의 비극을 보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망나니인 토르가 점차 진정한 신의 왕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헨리 5세]에서 망나니 왕자였지만 점차 진정한 영국의 군주로 성장하는 헨리 5세의 성장담을 보는 것만 같았고, 아버지인 오딘(안소니 홉킨스)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형인 토르를 질투하여 음모를 꾸미는 로키(톰 히들스턴)는 [오델로]에서 오델로와 데스데모나의 사랑을 질투하여 그들의 사이를 갈라 놓는 이야고를 보는 듯 했습니다.

왕위를 빼앗기 위해 자신을 위기에 빠뜨린 로키를 향한 토르의 마지막 결투는 [햄릿]에서 햄릿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삼촌 클라디우스와 벌이는 마지막 결투와 교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마블 코믹스는 [토르 : 천둥의 신]이 특수효과만 난무하는 슈퍼 히어로 영화가 아닌 비장미 넘치는 세익스피어의 비극과 닮길 원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그들이 정말 그것을 원했다면 케네스 브래너만큼 적합한 인물도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마블 코믹스가 원하는대로 [토르 : 천둥의 신]을 신화와 세익스피어 풍의 비극이 어우러진 영화로 완성해 냈습니다.

 

 

이제 신화의 영역까지 넘보는가?

 

[토르 : 천둥의 신]이 다른 슈퍼 히어로 영화와 비교해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점입니다. 기존의 슈퍼 히어로 영화와는 달리 [토르 : 천둥의 신]은 신화를 바탕으로 두고 다는 점입니다. 

[토르 : 천둥의 신]을 보기 전에 저는 이 영화가 바탕으로 두고 있는 북유럽 신화를 대강 읽고 갔습니다.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이 북유럽 신화 역시 세상의 창조에서 신의 탄생, 선과 악의 대결로 이루어져 있더군요.

그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의 주인공인 토르와 로키 부분이었습니다. 토르는 신중의 신인 오딘의 아들로 대식가에 술고래로, 다소 지혜가 모자라고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고 하네요. 특히 거인의 왕 우트가르달로키을 찾아 요툰하임에 가서 시합을 벌이지만 결국 패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고 합니다.

로키는 거인족 출신으로 정식 신들 축에 끼이지는 못하나 오딘과 형제의 의를 맺음으로써 아스가르드에서 살고, 신들에게 온갖 못된 장난을 걸다가 결국 신들의 노여움을 사 지하의 큰 바위에 결박당했다고 합니다. 이후 세계 종말의 날에 바위의 결박을 끊고 괴물들과 함께 아스가르드로 쳐들어가서 일대 결전을 치렀으며, 앙숙인 전령과 문지기의 신 헤임달과 싸우다가 함께 죽었다고 합니다.

 

물론 북유럽 신화가 마블 코믹스에 의해 만화화되고, 다시 영화로 만들어 지며 많은 변형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신화에 나타난 토르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영화의 초반 전쟁광으로 날뛰는 토르의 캐릭터에서 잘 나타나고, 토르와 우트가르달로키의 시합은 토르가 요툰하임의 지배자인 라우페이가 평화협정을 깨고 아스가르드를 침략하자 오딘의 명을 거역하고 요툰하임으로 동료들과 처들어갔다가 패하는 장면으로 표현되었습니다.

로키의 캐릭터도 신화와는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것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로키는 오딘의 아들이 아닌 오딘이 거인족과의 전쟁에서 버려진 거인족 아이를 데려와 키운 아이이며, 결국 토르를 배신하고 아스가르드를 위험에 빠뜨리고, 문지기인 헤임달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합니다. 만약 [토르]가 시리즈로 나온다면 로키의 최후는 토르가 아닌 신화에서처럼 헤임달에 의해 맞이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구피와 저는 세상의 탄생에서 최후의 종말까지 이루어진 장대한 북유럽 신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책으로 사서 읽기로 약속했답니다. 그만큼 [토르 : 천둥의 신]은 북유럽 신화를 매력적으로 영화 속에 녹여 놓은 것입니다.

 

 

화려한 특수효과, 완벽한 캐릭터의 완성

 

사실 제가 [토르 : 천둥의 신]을 보러 가며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특수효과였습니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감독으로써의 역량은 충분히 믿지만, 블록버스터 연출 경력이 전혀 없는 그가 과연 이 영화에서 얼마나 특수효과를 매력적으로 펼쳐 보여줄지는 미지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제 우려는 환희로 바뀌었습니다. 요툰하임과 신들의 전쟁을 담은 오프닝은 [반지의 제왕]을 연상하게 만들 정도로 웅장했으며, 황금색으로 호화롭게 이루어진 아스가르도의 풍경은 신들의 왕국에 걸맞는 위용을 품어 냈고, 얼음의 별 요툰하임의 풍경 역시 완벽함을 자랑합니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은 아스가르도 장면과 토르가 지구로 추방당하며 벌어지는 지구 장면을 번갈아 배치시키며 조화를 이룹니다. 아스가르도 장면은 화려한 특수효과로 신화의 분위기를 물씬 풍겼고, 지구의 장면은 인간의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토르의 우스꽝스러운 행동들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한쪽에선 특수효과를, 한쪽에선 토르의 캐릭터 완성을, 동시에 이루어낸 것인데, 마블 코믹스가 케네스 브래너를 감독으로 선택한 것이 결코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인 셈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제인 포스터(나탈리 포트만)의 캐릭터가 조금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영화가 너무 토르에 집중되어 있다보니 제인이 비교적 비중이 낮아 졌으며, 덩달아 토르와 제인의 로맨스도 약간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감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제인과의 사랑을 통한 토르의 각성 장면이 좀 더 설득력을 얻으려면 제인의 캐릭터가 좀 더 강화될 필요가 있었지만 [토르 : 천둥의 신]이 특수효과가 주를 이룬 오락 영화이다보니 그러한 부분이 최대한 생략되어져 버렸습니다.

영화가 끝난 시간은 밤 11시가 훌쩍 넘은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관객들은 서둘러 상영관을 빠져 나가며 집에갈 준비를 서둘렀지만 저와 구피는 기나긴 엔딩 크레딧을 기다린 끝에 히든 장면을 보고 나왔습니다. 스포일러가 되긴 싫기에 히든 장면을 밝힐 수는 없지만 히든 장면대로라면 [어벤저스]의 악당이 그 정체를 드러낸 셈입니다.(2편의 예고일지도 모르지만 [인크레더블 헐크], [아이언 맨 2]의 히든 장면을 생각해 본다면 역시 [어벤저스]에 대한 힌트라고 보는 편이 맞을 듯.)

영화를 보고 집으로 오는 길에 구피와의 대화는 북유럽 신화의 장대함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젠 그러한 신화의 영역까지 넘보는 슈퍼 히어로 영화들을 보며 그들의 진화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 한편으로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신화를 소재로한 판타지 영화는 많았다.

하지만 신화와 슈퍼 히어로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영화는 없었다.

그렇기에 판타지 영화와 슈퍼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는 내게

[토르 : 천둥의 신]은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