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써니] - 내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

쭈니-1 2011. 5. 7. 10:00

 

 

감독 : 강형철

주연 : 유호정, 진희경, 고수희, 심은경, 강소라, 민효린

개봉 : 2011년 5월 4일

관람 : 2011년 5월 6일

등급 : 15세 이상

 

 

5월 5일... 우울했던 어린이날.

 

작년 어린이날은 온 가족이 극장에서 [드래곤 길들이기]를 봤었습니다. 애초의 계획은 놀이 동산에 가는 것이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저와 구피는 '어린이날 놀이 동산에 가면 사람 구경만 하고 재미없을 거야.'라며 일찌감치 놀이 동산을 포기하고 손 쉬운 극장으로 진로를 바꾸었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음 같아선 웅이와 함께 놀이 동산에 가서 맘껏 뛰어 놀고 싶지만 게으른 저와 구피는 역시나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핑계를 대며 다른 계획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목동 야구장에서 KIA 대 넥센의 프로야구 경기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웅이가 두산 베어스 팬인 저를 배신하고 KIA 타이거즈를 좋아하고, 목동 야구장이면 집에서도 상당히 가까운 편이라 손 쉽게 영화 보기로 어린이날을 떼우기 보다는 야구장에 데려가 실컷 KIA를 응원하게 하자는 계획이었습니다.

 

어린이날 야구장 나들이를 위해 KIA 타이거즈의 어린이 야구복과 모자도 샀지만, 예매를 늦게 하는 바람에 지정석이 아닌 비지정석 밖에 사지 못했습니다.

야구 경기는 2시에 시작하지만 비지정석이라 서둘러 12시에 야구장에 도착. 하지만... 가족 단위 팬들로 가득 찬 목동 야구장은 인산인해였고, 결국 우리 가족은 KIA 응원석이 아닌 넥센 응원석에 앉아야만 했습니다.

KIA 응원 막대 풍선도 동이 나서 사지 못하고, 목동 야구장 내에 있는 JFC(KFC 아님 -_-)에서후라이드  치킨을 구입했지만 눅눅해진 기름 덩어리 치킨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KIA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3 대 0으로 경기에서 졌습니다.

뙈양볕 아래에서 무려 5시간(기다린 시간까지 포함해서) 동안 눅눅해진 치킨을 먹으며 넥센 응원석에서 목청껏 응원했지만 너무나 실망스러운 결과만 얻은 웅이는 어깨가 축 쳐진 채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차라리 영화라도 봤다면 기분이라도 좋았을텐데...  암튼 게으른 엄마, 아빠와  KIA 타이거즈의 무기력한 타선 덕분에 웅이 생애 최악의 어린이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5월 6일... 즐거웠던 휴가날.

 

5월 6일과 9일이 샌드위치 데이인 덕분에 저희 회사는 직원들에게 6일과 9일 중 하루를 선택해서 휴가를 내도록 했습니다. 전 6일날 휴가를 냈죠.

KIA 타이거즈가 져서 어깨가 축 쳐진 웅이와는 달리 저는 그 덕분에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구피는 회사가고, 웅이도 학교에 가야하니 6일은 온전히 저 만의 휴일인 셈이었던 것입니다.

제 계획은 두 말하면 잔소리죠. 바로 영화 보기였습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 안에 보고 싶은 영화를 최대한 봐야 하기에 저는 계획을 세우고 또 세웠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소스 코드]를 보고, 곧바로 [써니]를 보고,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체포왕]을 보는 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계획이 꼬이고 말았죠. 구피가 출근하면 저도 일어나 씻고 바로 [소스 코드]를 보러 나갈 계획이었는데, 구피가 그만 늦잠을 자는 바람에 저도 덩달아 늦잠을 잔 것입니다. 결국 [소스 코드]는 놓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제겐 [써니]와 [체포왕]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스 코드]는 나중에 시간 내서 보기로 하고, 저는 제 황금 같은 휴일에 한국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기로 결심을 한 것입니다.

극장으로 향하는 제 발걸음은 언제나처럼 설레였습니다. 저를 기다리고 있을 [써니]와 [체포왕]을 생각하며...

그 중 먼저 본 [써니]는 과연 [과속 스캔들]로 데뷔작에서부터 800만 관객 동원이라는 흥행 대박을 냈던 강형철 감독의 영화다웠습니다. 평범한 가정 주부가 된 나미(유호정)가 우연히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옛 친구 춘화(진희경)를 만나게 되고, 춘화를 위해서 예전의 친구들을 찾는다는 내용을 담은 [써니]는 아련한 80년 대의 향수와 풋풋한 추억, 맛깔스러운 웃음이 담겨진 영화였습니다.

여성이 주인공인 만큼 남성 관객보다는 여성 관객에게 더 호응을 얻을 영화로 보이지만 남성 관객이라고 할지라도 부담없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영화입니다.

 

 

막장 드라마보지 말고 영화를 보라.

 

저녁 10시가 되면 구피와 저는 각자의 생활에 돌입합니다. 구피는 TV를 켜고 드라마를 보고, 저는 그런 드라마가 보기 싫어 작은 방에 처박혀 컴퓨터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제가 구피에게 맨날 하는 잔소리는 '도대체 저런 막장 드라마는 왜 보냐?'라는 겁니다. 출생의 비밀은 맨날 나오고, 요즘은 아닌 것 같은데 예전엔 시한부 인생, 또는 기억 상실증이 유행처럼 등장했었습니다. 남편의 바람으로 홀로서기를 하는 여자 앞에는 항상 멋지고 능력있는 남자가 도와주기도 합니다. 저도 가끔 드라마를 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그런 드라마를 볼 때마다 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강형철 감독도 그랬나봅니다. [써니]의 초반에서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어머니의 병실에서 방영해주는 TV 드라마 장면입니다. TV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은 드라마가 출생의 비밀, 시한부 인생으로 전개될 때마다 야유를 보내고 짜증을 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화장실에 갔다가도 드라마의 전개가 궁금해서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뛰쳐 나옵니다.

 

마치 강형철 감독은 초반부터 여성 관객들에게 도발적인 선언을 하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저따위 막장 드라마를 보는 거죠? 차라리 극장으로 오세요. 여러분이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써니]는 여성 관객, 특히 막장 드라마에 푹 빠져 지내는 30대 이상의 여성들을 위한 영화였습니다. 막장 드라마처럼 출생의 비밀은 없지만 그들의 학창 시절을 추억하게 만드는 80년 대 장면들이 펼쳐져 있으며, 달콤한 해피엔딩도 여성 관객들을 유혹합니다.

이 영화가 준비한 학창 시절의 추억들은 '빙글빙글'을 비롯하여 'SUNNY' 등 추억의 노래들로 흥을 돋구고, 함께라면 무서울 것이 없었던 그녀들의 우정과 가슴 설레는 첫사랑의 아련함까지 빠짐없이 빼곡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강형철 감독은 '막장 드라마에 빠진 아줌마 들이여! 극장으로 오라! 그대들이 좋아할만한 영화가 여기에 있다.'라고 당차게 선언하고 있는데, 그의 그러한 호기로운 선언은 제가 보기엔 꽤 성공적으로 보입니다. 평일 오전이라 한가할줄 알았던 극장 안이 여성 관객으로 꽤 채워져 있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현대판 여자의 일생?

 

나미가 과거의 학창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은 분명 흥겹고 풋풋했습니다. 하지만 그와는 반대로 현실은 차갑고 냉정했습니다.

나미는 무관심한 남편과 자신을 무시하는 딸과 함께 사는 평범한 주부이고, 춘화는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으며, 장미(고수희)는 생계를 위해 보험설계사를 하지만 언제나 실적은 꼴등입니다.

진희(홍진희)의 남편은 바람을 피우는 중이고, 금옥(이연경)은 시어머니의 구박을 받으며 시누이의 아기까지 따맡아 키우고 있는 중입니다. 복희(김선경)는 미스 코리아가 되겠다는 어렸을 적의 꿈과는 달리 지금은 몸을 파는 신세가 되어 있습니다.

과거 회상씬에서는 군부 독재에 대항하는 대학생들의 시위마저도 여고생들의 패싸움과 함께 표현하며 '그땐 그랬지'라는 미소를 지어 보였던 이 영화는 현실로 돌아와서는 중년 여성의 모든 기구한 삶을 집약해 놓은 것처럼 나미와 그녀의 친구들의 현실을 표현해냅니다. 

그러한 그녀들의 기구한 인생을 보며 영화를 보는 여성 관객에게 공감을 얻고, 마지막 어메이징한 해피엔딩으로 만족감을 안겨주는 방식을 이 영화는 택하고 있는 것이죠. 여성 관객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한 강형철 감독의 영특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써니]에 대해서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에메이징한 해피엔딩의 경우는 너무 작위적은 느낌이 강했습니다.

마치 드라마에서 이혼 당한 여성이 홀로서기를 할 때 능력있는 연하남이 뒤에서 몰래 도와주는 것처럼, 이 영화의 해피엔딩 역시 그녀들이 스스로 이루어낸 행복한 결말이 아닌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루어낸 행복이라는 점에서 영화를 보는 제겐 현실감이 전혀 없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강혈철 감독이 심혈을 기울인 수지(민효린)의 성인이 된 모습에 대한 반전도 미지근했습니다. 나미가 다른 친구들은 모두 찾지만 수지만은 마지막까지 찾지 못한다는 설정에서 그녀에 대한 슬픈 반전을 기대했는데,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전부 끝날 때까지 기다렸건만 도대체 왜 강형철 감독이 수지의 성인이 된 모습을 그토록 감추려 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써니]를 보기 전, 갖난 아기를 업고 극장에 온 어느 아줌마를 봤습니다. 그 순간 짜증이 팍 났습니다. 십중팔구 그 아기는 영화 도중에 울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예상대로 그 아기는 울었습니다. 하지만 [써니]를 보고나니 그 아줌마가 조금 불쌍하게 여겨졌습니다. 얼마나 영화가 보고 싶었으면... 순간 영화를 보러 가는 저를 부러워하며 억지로 출근하던 구피가 생각났습니다. 일에 지친 구피가 막장 드라마나 보겠다고 쇼파에 널부러지면 억지로라도 극장으로 끌고와 [써니]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써니]는 바로 그런 영화입니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고, 즐겁다.

하지만 추억 뿐만 아니라 현재도 아름답고 즐거웠으면 좋겠다.

이 영화의 어메이징한 해피엔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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