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체포왕] - '투캅스'가 '살인의 추억'을 꿈꾸었을 때...

쭈니-1 2011. 5. 9. 11:22

 

 

감독 : 임찬익

주연 : 박중훈, 이선균

개봉 : 2011년 5월 4일

관람 : 2011년 5월 6일

등급 : 15세 이상

 

 

만족스러웠던 [써니]. 그렇다면 [체포왕]은?

 

비록 마지막 부분이 조금 미지근하고 손발이 오글거렸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웠던 [써니]의 관람이 끝나고 1시간 정도의 빈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때서야 저는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기엔 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등포 롯데 백화점 푸드코트에는 사람들이 와글와글하더군요. 결국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저는 구석진 자리에서 눈치를 보며 카레 돈까스를 허겁지겁 먹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을 때 혼자 밥 먹는 사람의 비애입니다.) 

그렇게 밥을 먹었다기 보다는 밥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카레 돈까스를 순식간에 해치운 저는 느긋이 극장 좌석에 앉아 [체포왕]에 대한 기대에 사로잡혔습니다.

다른 역할이 아닌 형사 역할에서는 기본 이상은 해냈던 왕년의 코미디왕 박중훈과, 최근 [쩨쩨한 로맨스]에서 저를 제대로 웃겨줬던 이선균의 조합. [써니]를 보고 많이 웃었는데 박중훈과 이선균의 조합이라면 이 행복한 나만의 휴가날을 완벽하게 마감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체포왕]은 생각만큼 웃기지 않았습니다. 아니, 영화의 초반엔 꽤 웃겼습니다. 능글맞은 마포 경찰서 황재성(박중훈)과 어리버리한 서대문 경찰서 정의찬(이선균)의 대결은 분명 박중훈과 이선균이라는 배우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지며 저를 웃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중반으로 갈수록 점점 힘이 떨어지더니 후반부에서는 갑자기 [살인의 추억]으로 바뀌고 제게 감동을 받으라며 강요를 하더군요. 초반의 코미디가 꽤 좋았기에 갑자기 웃음기가 사라진 이 영화가 더욱 아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스릴러라고 하기엔 그 사건의 전말이 너무 느슨하고, 후반부의 감동을 받기엔 그 의도가 너무 뻔히 보여 힘이 빠졌습니다.

결국 [체포왕]은 또 한 편의 뜨근미지근한 코믹스릴러로 남을 것 같네요. 박중훈과 이선균이라는 몸에 딱 맞는 캐릭터의 옷을 입은 배우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이 영화가 아쉬울 따름입니다.

 

 

'체포왕'을 향해 무한 돌진하는 초반의 전개는 좋았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 영화의 초반은 꽤 신선했고, 많이 웃겼습니다. 특히 어리버리한 서대문 경찰서가 능구렁이 같은 마포 경찰서에 매번 당하며 다 잡았던 범인을 빼앗기는 장면은 제가 기존에 알고 있던 형사물과는 다른 재미를 안겨줬습니다.

그 동안 형사물이라고 한다면 정의감에 불타는 형사들의 활약상이 대부분이었고, 가끔은 [투캅스]처럼 비리 형사들의 웃기는 몸개그를 첨부하여 웃음을 안겨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체포왕]의 형사들은 다릅니다. 일반 회사의 영업 사원들처럼 사건 해결을 할 때마다 점수가 부여되고, 승진을 위해서라면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 형사들은 실적을 위해서 하루 하루를 바쁘게 뛰어 다닙니다.

정의 사회 구현이 아닌 실적 챙기기를 위한 그들의 몸부림은 학벌 위주의 경찰 조직에서 실적 하나만으로 살아남은 황재성과 결혼을 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정의찬의 사정이 교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무조건적인 웃음이 아닌 캐릭터의 비애를 담은 웃음으로 승화되었습니다.

 

특히 마포 발바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마포 경찰서와 서대문 경찰서가 합동 수사본부를 차리며 어색한 동거를 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웃음 포인트를 최대한 살려낸 최고의 설정이었습니다.

먼저 범인에게 수갑을 채우는 자가 승리한다는 약속을 통해 같은 수사본부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수사를 벌여 나가는 마포와 서대문 경찰서의 모습은 무한 경쟁체제 속에 처한 직장인들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것만 같았습니다.       

경찰대학을 나온 정의찬이 나름 과학적인 수사 방법으로 범인을 향한 포위망을 좁혀 나가고,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황재성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날카로운 직감으로 수사를 하는 장면으로 두 캐릭터의 매력을 잘 활용하는 영특함마저 보여줬습니다.

범인을 쫓는 다이나믹한 카메라 워킹도 형사물다운 스릴을 안겨 줬고, 서로 이기겠다는 이기심으로 다 잡았던 범인을 놓치는 장면은 조금 뻔했지만 매끄러운 후반 전개를 위한 교두보도 마련해 줬습니다. 이제 황재성과 정의찬이 서로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며 멋지게 범인을 잡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투캅스'가 '살인의 추억'을 꿈꾸다.

 

하지만 합동 수사본부가 해체되고 황재성과 정의찬이 좌천되며 갑자기 영화의 분위기는 급반전되기 시작합니다.

분명 황재성과 정의찬이 좌천되는 장면까지는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설정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황재성과 정의찬은 의기투합하게 되고 서로 힘을 합쳐 마포 발바리를 검거한다는 스토리 전개로 진행될 것이라는 것은 사실 영화 초반부터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스토리 전개가 아닌 영화의 분위기입니다.

초반 서로 상반된 캐릭터로 저를 웃겼던 [체포왕]은 중반 이후부터는 웃음끼를 싹 벗겨내 버립니다. 물론 '슬픈 코미디'라는 이상한 장르의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정도로 우리 코미디 영화들은 후반부에 갈수록 웃음보다는 눈물에 집착하는 경향이 짙긴 하지만 [체포왕]은 그 정도가 조금 심했습니다. 너무 일찍 웃음을 버렸고, 너무 오래 눈물과 감동을 쥐어 짜냈던 것입니다.

 

[체포왕]의 소재가 된 범죄가 성폭행 사건인 것도 이 영화의 중반 이후의 분위기 반전에 한 몫을 해냈습니다. 다른 사건도 아닌, 피해자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기는 성폭행 사건을 웃음 코드로만 이용하는 것에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체포왕]의 분위기 반전은 너무 뜬금이 없습니다. 실적 제일주의로 살아가던 황재성이 갑자기 성폭행 사건의 심각성을 깨닫고 개과천선하는 과정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편이고, 성폭행의 아픔 때문에 앞으로 나서길 꺼려 했던 피해자들이 영화의 후반부에 하나, 둘씩 모이는 장면은 감독의 의도는 알겠지만 조금 낯간지러웠습니다.

결국 [체포왕]이 되고 싶었던 것은 [투캅스]가 아닌 [살인의 추억]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이 되고 싶었다면 초반부터 좀 더 진지하게 나갔어야 하고, [투캅스]가 되고 싶었다면 후반의 감동 코드를 조금 느슨하게 풀었어야 합니다.

 

 

영화 속 경찰들만 몰랐던 마포 발바리 

 

사실 코믹 형사물을 표방한 [체포왕]에서 사건의 짜임새를 기대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이 영화의 범인은 너무 쉽게 노출되었습니다.

마포와 서대문 일대에서만 수십건의 성폭행 사건을 자행하고, 피해자의 알몸 동영상을 찍어 피해자가 신고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하고, 진공 청소기로 흔적을 모두 지우는 치밀함을 보여줬던 마포 발바리. 하지만 영화는 마포 발바리의 치밀함을 강조했지만 정작 영화를 보던 저는 마포 발바리의 정체를 너무 쉽게 밝혀 냈습니다. 만약 마포 발바리가 실제 존재하는 범죄자라면 경찰이 범인 검거에 그렇게 힘들어 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검거하기 가장 힘든 범죄는 묻지마 범죄입니다. 피해자들 사이에 아무런 공통점도 없고, 그야말로 랜덤하게 마구잡이로 피해자를 골라 범행을 하는 범인을 검거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마포 발바리는 그런 묻지마 범죄자가 아닙니다. 경찰이 조금만 피해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내려 했다면 쉽게 찾을 수 있었을 것이며, 마포 발바리 역시 그러한 피해자들의 공통점 안에서 범죄를 저질렀으니 그가 아무리 증거를 없애는 치밀함을 보였다고 해도 그는 이미 자신을 최대한 노출시킨 것입니다. 

영화 속의 형사들만 몰랐던 마포 발바리의 정체는 코미디를 표방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스릴러 영화인 [체포왕]을 더욱 미지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범인이 누구인가?'라는 스릴러의 기본 공식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공공의 적]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체포왕]은 [투캅스]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살인의 추억]을 꿈꾸고 있었고, 그러면서 스스로 의도하지 않았던 [공공의 적]과 비슷하게 되어 버린... 그야말로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영화가 되어 버렸습니다. 

 

 

무언가의 '왕'이 되려면 한가지라도 꾸준히 잘해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살짝 건드리기만 한다면 결코 '왕'이 될 수 없다.

결국 [체포왕]은 '코미디왕'도, '감동왕'도, '스릴러왕'도 될 수 없는 아쉬운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