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분노의 질주 : 언리미티드] - 질주 본능이 조금 늦게 터졌지만...

쭈니-1 2011. 4. 22. 11:08

 

 

감독 : 저스틴 린

주연 : 빈 디젤, 폴 워커, 드웨인 존슨

개봉 : 2011년 4월 20일

관람 : 2011년 4월 21일

등급 : 15세 이상

 

 

충격을 뒤로 하고 극장에 가다.

 

4월 21일 오후에 갑자기 터진 서태지와 이지아의 이혼 소송 사건은 제겐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애초에 서태지의 광팬도 아니었고, 이지아를 별로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14년 간이나 결혼 생활을 숨겼고, 게다가 이지아는 [아테나 : 전쟁의 여신]에서 함께 출연했던 정우성과 버젓이 연인 관계임을 선언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격적인 사건임에는 분명합니다.

갑자기 터진 이 충격적인 연예 가십 기사로 인하여 어제 오후 저희 회사는 시끌벅적했습니다. 여직원들은 수근거리며 서태지와 이지아에 관련된 새로운 정보들을 공유했고, 저 역시 포털 사이트의 기사들을 참고하며 처음으로 연예 가십 포스팅을 올렸으니까요.

하지만 애초에 4월 21일 오후의 제 관심사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14일 이후로 극장 나들이를 하지 못했던 저는 일주일 만에 극장 나들이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중이었고, 그 와중에 서태지와 이지아의 이혼 소송 기사를 본 겁니다.

 

머리가 멍해 졌지만 그렇다고 집에 가서도 서태지와 이지아의 기사를 검색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분노의 질주 : 언리미티드] 한 편만 보기로 했던 계획을 바꿔 [분노의 질주 : 언리미티드]와 [제인 에어] 두 편 연속 보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고, 서태지와 이지아의 사건으로 가득 넘쳐 나던 제 머리를 비우고 [분노의 질주 : 언리미트드]와 [제인 에어]로 채웠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깟 연예인들의 비밀 결혼과 이혼이 뭐가 대수냐고 하시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2005년 2월 저희 곁을 홀연히 떠난 이은주의 자살 소식 이후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은주의 자살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 충격을 빨리 벗어나기 위해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보러 극장에 갔던 기억이 나네요.

 

 

[분노의 질주] 시리즈보다는 빈 디젤에 관심이 있다.

 

그러고보니 [분노의 질주 시리즈]도 꽤 오랫동안 우리의 곁을 지킨 것 같습니다. 1편인 [분노의 질주]가 개봉한 것이 2001년이니 벌써 10년 전 일이네요. 

사실 저는 [분노의 질주]를 그다지 인상 깊게 보지는 못했습니다. 값 비싼 외제 전자제품을 터는 폭주족을 잡기 위해 위장 잠입한 FBI 요원 브라이언(폴 워커)가 오히려 폭주족의 두목인 도미닉(빈 디젤)에게 압도되며 그들에게 동화된다는 내용은 이미 1991년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과 패트릭 스웨이지와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폭풍 속으로]에서 보여준 바가 있기에 [분노의 질주]는 서퍼 강도단을 폭주족으로 바꾼 [폭풍 속으로]의 아류작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디젤의 등장은 꽤 신선했습니다. 그는 [분노의 질주] 외에도 [트리플 X]까지 빅히트시키며 단숨에 할리우드의 새로운 액션 히어로로 등극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빈 디젤은 이상한 행보를 선택합니다. 흥행 성공이 보장된 [분노의 질주], [트리플 X]의 후속작 출연을 거부하고 [디아블로], [리딕 : 헬리온 최후의 빛], [패씨파이어], [바빌론 A. D] 등 새로운 액션 영화에 출연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최악이었습니다. 빈 디젤이 선택한 영화들은 연달아 흥행에 실패를 거두었고, 빈 디젤을 잃은 [분노의 질주]와 [트리플 X] 시리즈 역시 내리막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분노의 질주]의 한 축인 폴 워커가 홀로 고군분투한 [패스트 앤 퓨리어스 2]에 실망한 저는 폴 워커 마저 빠져 버린 [패스트 앤 퓨리어스 : 도쿄 드리프트]는 아예 보지 않았었습니다. 제가 다시 이 시리즈를 보기 시작한 것은 빈 디젤과 폴 워커가 다시 복귀한 [분노의 질주 : 더 오리지널]부터 였음을 감안한다면 저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보다는 빈 디젤에 더 관심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분노의 질주 : 언리미티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빈 디젤의 근육질 액션이 얼마나 속 시원하게 터질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영화를 봤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역시 대 만족이었습니다.

 

 

처음엔 [오션스 일레븐]인줄 알았다.

 

하지만 제가 처음부터 [분노의 질주 : 언리미티드]에 만족했던 것은 아닙니다. 오프닝 장면에서 브라이언이 도미닉을 탈출 시키는 장면은 기대와는 달리 미지근했고, 이후 브라질의 리오로 장소를 옮긴 열차 강도씬은 그나마 '분노의 질주'다웠지만 만족하기엔 약간 부족했습니다.

중반부는 오히려 상당히 당혹스러웠는데 매끈한 자동차들이 펼치는 아찔한 속도감을 기대했던 저는 갑자기 [오션스 일레븐]과 같은 범죄 스릴러로 진행되는 이 영화의 중반부가 지루하게만 느껴졌습니다.

[분노의 질주 : 언리미티드]의 감독을 맡은 저스틴 린 감독은 폴 워커와 빈 디젤이 없는 [패스트 앤 퓨리어스 : 도쿄 드리프트]를 통해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 인연을 맺었고, [분노의 질주 : 더 오리지널]을 통해 다시금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되살린 공로를 인정 받아 [분노의 질주 : 언리미티드]의 메가폰을 맡은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는 [분노의 질주 : 언리미티드]는 이전의 시리즈와는 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나봅니다. 그래서 화끈한 액션 보다는 브라질의 마약왕 레이어스의 검은 돈을 터는 정교한 계획을 위주로 영화를 진행시킵니다.

 

몸으로 떼우던 전과는 달리 머리를 써야 하는 이 정교한 계획을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인 새로운 멤버들이 합류를 하고 그들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경찰서에 보관된 레이어스의 돈을 훔치기 작전을 수행합니다. 분명 이러한 전개는 [분노의 질주] 시리즈보다는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에 더 잘 어울립니다.

하지만 [분노의 질주 : 언리미티드]는 결코 [오션스 일레븐]이 될 수가 없습니다. 빈 디젤에게 조지 클루니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원했던 것은 똑똑한 빈 디젤이 아닌 몸짱, 액션짱, 스피드짱 빈 디젤이기 때문입니다.

조지 클루니가 되려고 몸부림치는 빈 디젤의 모습의 당혹감을 느꼈던 [분노의 질주 : 언리미티드]에서 그나마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도미닉과 브라이언을 쫓는 FBI 요원 홉스(드웨인 존스)와 [분노의 질주 : 더 오리지널]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레티(미셸 로드리게즈)의 뒤를 이어 섹시하면서 위험적인 매력을 발산한 지젤 뿐이었습니다.

특히 홉스와 도미닉이 맞서는 장면은 화면 가득 근육이 터질 것 같은 묵직한 액션 쾌감을 안겨 주더군요. 그리고 바로 그 장면부터 [분노의 질주 : 언리미티드]는 [오션스 일레븐] 식의 전개를 버리고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질주 본능, 파괴 본능, 그래 이것을 보기 위해 난 극장에 왔다.

 

영화의 중반에 길거리 레이싱을 하는 장면이 통째로 삭제된 것을 보며 저는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길거리 레이싱 장면이 삭제되고 그 자리를 대신한 장면들이 레이어스의 돈을 훔치기 위해 머리를 짜내는 도미닉 일당의 모습이었기에 제 좌절감은 더욱 심했습니다.

그런데 저스틴 린 감독은 그런 제 좌절감을 알고 있는 듯 후반부에 드디어 [분노의 질주]와 어울리는 클라이맥스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만약 후반부의 장면이 없었다면 이 영화에 대한 제 리뷰는 실망감으로 가득찬 리뷰가 되었을 것입니다.

애초에 도미닉의 방식은 머리를 짜내고 정교한 작전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 영화의 후반부처럼 탱크처럼 밀고 들어가 때리고 부수며 몸으로 떼우는 것이죠. 그리고 그러한 도미닉의 방식은 역시 짜릿한 쾌감을 안겨줬습니다.

 

자동차에 레이어스의 거대한 금고를 매달고 리오 시내를 질주하는 장면은 2시간 가량 [오션스 일레븐]인척 하는 도미닉의 모습을 꾹 참고 지켜본 보람을 충분히 느끼게 해줍니다. 

영화를 보며 저는 마치 극장 화면 바깥으로 달려 들 것 같은 육중한 금고를 나도 모르게 움찔하며 피하고 있었습니다. 

한바탕 때리고 부수는 이 영화의 질주 본능은 비로서 '내가 왜 [분노의 질주]인지 알았지?'라고 관객에게 강하게 어필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장담하건대 최근 제가 봤던 그 어떤 액션씬보다 가장 짜릿한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후반의 스토리 라인이 너무 단순한 것이 흠이지만 애초에 제가 이 영화에 기대했던 것이 정교한 스토리 라인이 아닌 시원시원한 액션 쾌감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러한 단순한 스토리 라인은 단점이 되지 못합니다. 빈 디젤과 함께 라면 저 역시 앞으로도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극장에서 놓치지 않아야 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을 위한 한가지 Tip을 드리자면 영화가 끝나도 바로 일어나지 않고 조금 기다려주세요. 스포라 밝힐 수는 없지만 [분노의 질주]의 다음 편을 위한 깜짝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미닉이 도미닉 답지 않게 오션인 척하는 순간 나는 '이건 아닌데...'라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도미닉이 도미닉답게 돌아오는 그 순간 아드레날린이 폭발하는 액션 쾌감이 터졌다.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