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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 페어런츠 3] - '갓 파더'시대의 종말을 고하다.

쭈니-1 2011. 4. 8. 11:31

 

 

감독 : 폴 웨이츠

주연 : 벤 스틸러, 로버트 드니로, 제시카 알바, 오웬 월슨

개봉 : 2011년 3월 31일

관람 : 2011년 4월 6일

등급 : 15세 이상

 

 

10년 전 그녀의 아버지와 집 앞에서 우연히 만났던 사연 

 

제가 [미트 페어런츠]를 처음 본 것은 2001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구피를 만나기 이전이었고, 예전 여자친구와 한참을 만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우리 두 사람은 결혼 적령기에 접어 들었지만 결혼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제게 직장이 있었지만 그다지 탄탄한 회사도 아니었고, 모아 둔 결혼 자금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녀와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바래다 주다가 집 앞에서 그녀의 아버지와 떡하니 마주친 것입니다. 정말 눈 앞이 깜깜하더군요. 그녀의 아버지는 저를 위 아래로 흝어 보시더니 할 말이 있다며 저를 근처 커피숍으로 데려 가셨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제게 긴 말씀을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저 '내 딸과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는 것이냐?'라고 물으셨고, 제가 '네'라고 대답하자 우선 저희 부모님을 만나봐야 겠다고 약속을 잡자고 하시더군요. 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겐 그 말씀을 거부할 힘이 없었습니다.

 

제가 그녀와 헤어진 것은 어쩌면 그날 그녀의 아버지를 만났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결혼에 대한 별 다른 계획이 없었기에 갑작스러운 진척에 그녀는 혼란스러워 했고, 결국 제게 '너를 좋아하지만 너와 결혼할 자신은 없다'는 말을 남기고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하였습니다.

저와 그녀가 [미트 페어런츠]를 함께 본 것은 그녀의 아버지와 우연히 만나기 며칠 전이었습니다. 아직도 생각납니다. [미트 페어런츠]에 대한 제 영화 이야기는 언젠가 그녀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을 때의 두려움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녀의 부모님이 날 갈아 버리려고 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취지로 글을 썼었습니다. 저 역시 제가 결혼 상대로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글을 쓰게 된 것이죠.(그 당시 영화 이야기는 그녀와 헤어지며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방식은 아니었지만 어찌되었건 그녀의 아버지 때문에 저는 그녀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아! 물론 제 무능력 탓도 있었음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네요. (-_-)  암튼 별 생각없이 블로그 친구이신 소연님과 [미트 페어런츠 3]를 본 후에 까맣게 잊고 있었던 10년 전,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던 그날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구피가 제발 옛날 여자친구 이야기 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또 하고 말았네요. 구피야! 미안... ^^)

 

 

10년 동안 버틴 [미트 페어런츠]의 저력

 

그러고 보니 [미트 페어런츠]가 개봉했던 2001년과 비교해서 참 많은 것이 변해 있습니다. 10년 전 결혼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는 찌질이 총각이었는데 지금은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있으니까요. 엄청난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 동안 [미트 페어런츠]는 어느새 세 번째 영화를 개봉시키며 여전한 저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여전한 [미트 페어런츠]의 저력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 영화의 소재에 관객들이 공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요? 저 역시 10년 전 [미트 페어런츠]를 봤을 때 심하게 공감했었으니까요.  

아마도 부모의 마음을 똑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자식이 더 잘 나 보이고, 소중하고, 그래서 내 자식의 배우자는 부족해 보이는 것이겠죠. 좀 더 잘 난 배우자를 데려오길 바라며 사위감한테, 며느리감한테, 못 마땅한 시선을 보내는 것은 어쩌면 부모의 똑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미트 페어런츠]는 바로 그러한 부모의 마음과 그로 인하여 곤혹을 치르는 사위의 모습을 보여주며 관객들을 공감의 웃음 도가니로 몰아 넣은 것입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영리하기도 해서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점점 가족 구성원을 늘려 나가는 방식을 취합니다.

1편인 [미트 페어런츠]에서는 벤 스틸러와 로버트 드니로의 갈등으로 진행되었던 영화가, 2편인 [미트 페어런츠 2]에서는 그레그(벤 스틸러)의 자유분방한 부모 역에 더스틴 호프만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를 등장시켜 가족 구성원을 확대하고 갈등 구조를 다원화했습니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미트 페어런츠 3]에서는 제시카 알바를 새롭게 투입하여 그레그를 향한 잭(로버트 드니로)의 의심을 부채질합니다.

새롭게 투입되는 캐릭터가 있다면 기존 캐릭터는 퇴장을 해야 하는데 [미트 페어런츠 3]에서는 기존 캐릭터를 고스란히 재등장시킵니다. 그 결과 이 영화엔 벤 스틸러, 로버트 드니로 외에도 1편에서 팸(테리 폴로)의 어릴 적 남자 친구로 그레그와 묘한 긴장관계를 조성했던 케빈(오웬 월슨)이 등장하여 1편과 맞먹는 중요 역할을 해내고, 2편에서 맹활약 했던 더스틴 호프만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역시 얼굴을 내밉니다. 여기에 로라 던과 하비 케이틀까지... 요근래 봤던 그 어떤 영화보다 화려한 캐스팅 라인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결국 [미트 페어런츠]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와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점점 늘어나는 캐릭터와 배우들로 10년이라는 세월을 끄덕없이 버텨낸 것입니다.

 

 

내 가정을 내가 이끈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합니다. 애초에 [미트 페어런츠]는 어떤 남자가 예비 장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는 이야기입니다.

1편에서는 그레그가 예비 장인인 잭을 만나러 가서 온갖 사건을 겪게 되고, 2편에서는 보수적인 잭 부부와 자유분방한 버니(더스틴 호프만) 부부가 그레그와 팸의 결혼을 위해 상견례를 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됩니다. 이미 그레그와 팸은 결혼을 했고, 쌍둥이까지 둔 아빠, 엄마가 되었습니다. 결혼하기 전이야 예비 장인이 두렵지만 일단 결혼하고 난 다음에는 그레그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잭에게 휘둘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미트 페어런츠 3]는 결혼하기 위한 그레그의 고군분투에서 새로운 스토리 라인으로 수정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물론 그레그와 앤디(제시카 알바)의 불륜을 의심하는 잭을 통해서 여전히 사위와 장인의 갈등 구조의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든 부족한 법이죠. 그래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라는 다소 묵직한 주제입니다.

 

이 영화에서 주로 패러디하는 것이 [대부]입니다. 돈 꼴레오네 집안의 흥망성쇠를 다루었던 [대부]에는 '갓 파더'라는 존재가 등장합니다. '갓 파더'의 영향력은 막강하여 아무도 그에게 맞설 수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배신으로 간주되어 처절한 응징을 받게 되죠. 그 대신 '갓 파더'는 자신의 가족을 지킬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지게 됩니다.

잭은 그레그에게 자신의 집안을 이끌 '갓 파커'가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레그에게 집안을 이끌 막중한 책임과 권력을 물려 주겠다는 것을 뜻하죠. 그로 인하여 그레그는 드디어 자신이 잭에게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어깨에 힘을 주고 가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기 시작합니다.

흔히들 우리는 가장이라는 말을 씁니다. 예전에는 그러한 가장의 힘은 절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아무리 가장이라고 해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만 가족들을 이끌려고 하면 가족들의 반발을 사게 되는 것이고, 그러한 반발에 의해 가장은 소외되고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얼마나 희생했는데...'라는 생각에 배신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레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쌍둥이 아이들을 비싼 사립 학교에 보내기 위해 무리해서 투잡에 뛰어 들고 그로 인하여 앤디와의 불륜을 의심받게 됩니다. 가장의 책임감 때문에 잘 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일이 꼬이게 되자 그는 무기력감과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과연 누구의 탓일까요?

 

 

'갓 파더'의 시대는 갔다.

 

잭에게 '갓 파커'라는 칭호를 듣고 어깨에 힘을 팍팍 주던 그레그. 그럴때마다 [대부]의 테마 음악이 흘러 나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압니다. 그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가부장제로 가정을 이끌던 유교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가장의 절대적인 권한을 강조하는 가부장제는 현대에 이르러 더 이상의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가장 혼자 돈을 벌어 가정을 이끌 수 있는 가정이 몇 안되기 때문입니다.

가부장제에서 여자는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의 양육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옛날 옛적의 일입니다. 저 역시 구피와 함께 맞벌이를 합니다. 결국 가족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가장의 막중한 책임을 저 혼자가 아닌 구피와 함께 지고 있는 것이죠.

무조건 부모의 말에 순종하던 아이들 역시 예전과는 달리지고 있습니다. 웅이도 자신의 생각이 뚜렷한데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뭘 입고 싶은지 정확하게 알고 구피와 제게 요구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잭의 방식인 '갓 파더'의 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한 셈입니다. 이 영화의 갈등 구조는 이미 폐기처분된 잭의 가족에 대한 방식을 받아들인 그레그의 잘못에 의해 촉발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잭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 버니와  로즈(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방식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분방한 사고방식을 지닌 그들은 그레그를 다소 자유롭게 키워 냈으며, 그 후에도 자식들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생활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의 남자들의 경우는 가부장제에 얽매인 분들이 많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내 모든 것을 희생합니다. 며칠 전에 회사 직원과 술자리에서 어느 분이 그러더군요. 내 자식들은 나의 미래라고. 그러니 지금 모든 것을 자식들을 위해서 쏟아 부어야 한다고... 그 분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자식들이 결혼한 후, 그땐 무엇을 할 거냐고? 노후 대책을 위해서 은퇴 후 즐길 수 있는 자신에게 알맞은 취미 생활을 하나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갓 파더'의 시대가 지나버린 요즘, 아직도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 아래 취미 하나 없이 매일 일하고 돈을 버는 그 분의 모습이 조금 안쓰럽게 느껴졌습니다.

솔직히 [미트 페어런츠 3]는 엄청나게 늘어난 출연진과는 별도록 영화적 재미는 [미트 페어런츠]에 비해 떨어집니다. 하지만 '갓 파더'의 시대는 종말이 왔고, 가정을 이끄는 것은 가장 혼자가 아닌 가정 구성원 모두와 함께라며 성숙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래서 전 이 영화가 좋았습니다.

 

 

나를 지켜봐야 하는 것은 무서운 장인도, 회사 사장도 아니다.

진정 나를 지켜봐야 하는 것은 바로 내 자신이다.

내 자신 스스로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라면...

가족에게도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