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위험한 상견례] -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로미오와 줄리엣

쭈니-1 2011. 4. 4. 14:33

 

 

감독 : 김진영

주연 : 송새벽, 이시영, 백윤식, 김수미

개봉 : 2011년 3월 31일

관람 : 2011년 4월 3일

등급 : 12세 이상

 

 

[위험한 상견례]를 위험한 분위기 속에서 보다.

 

요즘 구피가 기분이 좋습니다. 지난 겨울, 그토록 갖고 싶어하던 부츠도 사고, 봄 코트도 장만했으며, 제 반대를 무릅쓰고 워킹 머신까지 강행군해서 구입했으니까요.  

물론 제게 조금 미안했는지 제 구두와 여름 샌달, 그리고 메가박스 영화 예매권 10장을 사주는 것 역시 잊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기분이 좋아진 구피를 보며 기회는 이때다 싶어 저는 은근슬쩍 '영화보러 가자'라고 꼬드기고 있답니다. 평소라면 '피곤해서 싫어'라고 외칠 구피지만 요즘은 선뜻 '그래, 가자'라며 앞장서네요.

일요일 저녁, 이렇게 좋은 분위기 속에서 구피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제가 선택한 영화는 [줄리아의 눈]. 구피는 무서워서 싫다며 완강히 거부했지만 좋은 분위기 속에서 살살 달랬더니 의외로 쉽게 넘어오더군요. 하지만 문제는 극장. 서둘러 극장으로 향했지만 영화 시간대가 맞지 않았고, 결국 구피와 저는 꿩 대신 닭이라는 심정으로 [위험한 상견례]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날 [위험한 상견례]를 선택함으로써 하마터면 구피와 저의 좋은 분위기가 위험한 분위기로 넘어갈 뻔 했습니다. 아! 물론 영화가 재미없어서는 아닙니다. [위험한 상견례]는 코미디 영화답게 제 웃음보를 꽤 자주 터트려 주었습니다. 문제는 영화가 아니고 저와 구피 뒤에 앉은 어느 관객의 무개념이었습니다.

 

제가 목동 메가박스와 목동 CGV를 자주 이용하다보니 이 두 멀티플렉스의 장단점이 확연히 드러나더군요. 일단 목동 CGV는 대중교통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뿐입니다. 좌석간 간격이 목동 메가박스에 비해 좁아 뒷 좌석의 관객이 앞 좌석을 발로 차게 만듭니다. 게다가 목동 메가박스에 비해 관객도 많은 편이어서 영화를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관람하려는 분들에겐 최악의 조건을 안겨줍니다. 핸드폰 통화는 기본이고, 영화 상영 도중에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애교입니다.

그 날도 그랬습니다. 일요일 저녁이었고, 요즘 국내 박스오피스 1위인 영화답게 관객이 많더군요. 그래서 저는 뒷좌석의 관객이 제 좌석의 등받이를 발로 건드리는 것은 그냥 참고 넘어가자고 마음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앞 좌석에 사람이 엄연히 앉아 있는데 앞 좌석의 팔걸이에 자신의 발을 올려놓는 무개념 뒷 좌석 관객은 정말 참을 수가 없네요. 기분 좋게 영화를 보러 왔다가 싸움을 하고 갈수는 없어서 영화 중반 이후에 그냥 자리를 옮겨 버렸지만, 자칫 [위험한 상견례]를 위험한 분위기 속에서 감상할 뻔 했습니다.

 

 

심각한 이야기를 농담처럼 꺼내놓다.

 

암튼 무개념 뒷좌석 관객 때문에 짜증은 많이 났지만 [위험한 상견례] 영화 자체는 꽤 괜찮았습니다. 일단 코미디 영화 본연의 임무인 관객을 웃기는 것은 완수를 했으니까요.

[위험한 상견례]의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순정 만화가인 현준(송새벽)과 음대를 나온 순수 처녀 다홍(이시영)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현준은 전라도 남자이고, 다홍은 경상도 여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가 문제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 영화는 지역 감정이 가장 극심했던 1980년대가 배경이며, 집안의 악연까지 얽켜 현준과 다홍을 최악의 상황으로 밀어 넣습니다. 과연 현준과 다홍의 사랑은 이루어질까요?

이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지역감정이라는 우리 나라의 가장 부끄러운 상황을 코미디 영화의 소재로 이용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도 차마 지역감정을 건드리는 영화가 드문 상황이었는데 [위험한 상견례]는 과감하게 그 부분은 건드린 것이죠.

영, 호남의 갈등... 솔직히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대립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고, 군사정권 시절 군부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일부러 지역 감정을 조장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이 무엇이건 이 좁은 땅에서 전라도, 경상도 편을 가르며 대립각을 세운 다는 것 자체가 정말 창피한 일이죠.

 

[위험한 상견례]는 바로 그러한 창피한 현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창피한 현실을 최대한 우스꽝스럽게 표현했다는 점입니다. 정면으로 돌파하긴 너무 부담스러운 소재이니 우회 돌파를 선택한 것입니다.

'전라도 인간은 무조건 안돼!'라고 외치는 경상도 아버지 영광(백윤식)과 경상도 여자를 안 겪어봐서 모른다며 현준을 막아서는 전라도 아버지 세동(김응수)의 과장된 모습은 지역감정이라는 심각한 소재로 오히려 관객의 웃음을 자아냅니다.

여기에 서울 남자인 척하며 다홍의 집에 인사를 하러간 현준의 상황은 송새벽의 어눌한 연기와 그로인한 코미디적 상황으로 시종일관 관객을 웃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지역 감정은 꽤 진솔하게 드러납니다.

가끔 아주 심각한 이야기를 꺼낼 때 농담처럼 꺼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를 농담처럼 할 때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진심이 받아들여지느냐에 있습니다. 상대방도 농담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실패한 것이고, 상대방이 그 말의 진심을 알아챈다면 그것만큼 좋은 대화법도 없을 것입니다. 심각한 이야기를 심각하게 해봤자 자칫 분위기가 썰렁해지거나,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으니까요.

[위험한 상견례]는 심각한 소재를 농담처럼 관객 앞에 풀어놓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제겐 그 농담같은 이야기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성공한 셈입니다.

 

 

의외의 주인공 그리고 80년대 문화의 향기

 

지역 감정이라는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현실을 꽤 성공적으로 코미디의 소재로 승화시킨 [위험한 상견례]는 기본적으로 로맨스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웃기기만 해선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준과 다홍의 새콤달콤한 러브 스토리도 함께 풀어나가야 하는 셈입니다.

여기에서도 [위험한 상견례]는 색다른 선택을 합니다. 기존의 로맨틱 코미디가 선남선녀들의 경합장이었다면 [위험한 상견례]는 오히려 그런 것들과 거리를 둡니다. 그 이유는 소재가 지역감정이다보니 주인공이 사투리를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잘 생긴 남녀 주인공이 사투리를 쓰며 아름다운 연애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이니 아예 주인공 자체를 바꿔 버린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주연을 맡은 송새벽과 이시영은 솔직히 주연보다는 조연에 더욱 잘 어울리는 배우입니다. 송새벽의 어눌한 말투와 이시영의 약간 엉뚱한 매력은 기존의 전형화된 로맨틱 코미디와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차이가 이 영화를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서울말을 흉내내야 하는 전라도 청년의 어눌함은 송새벽의 트레이드 마크인 아눌한 말투와 일치했고, 엉뚱한 경상도 처녀는 아마추어 권투 대회를 우승한 이시영의 엉뚱한 매력과 일치했습니다. 

 

솔직히 송새벽과 이시영의 어눌하고 엉뚱한 매력은 조금 촌스럽다는 느낌도 줍니다. 그런데 영악한 이 영화는 그러한 촌스러움 마저도 이용합니다. 바로 80년대 감수성을 이용해서 말이죠.

이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80년대 명곡들인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조하문의 '이 밤을 다시한번', 박남정의 '널 그리며' 등은 최근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위대한 탄생'으로 인하여 재조명 받고 있는 8, 90년대 명곡의 인기를 이어갑니다. 영화를 보며 낯익은 노래들을 흥얼거리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특별 출연한 박남정의 무대 역시 반가웠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박남정은 10대의 우상이었죠. 그의 춤을 따라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구피는 박남정의 무대 장면에서 자신도 모르게 박수를 칠 뻔했다고 하네요. 

82년 개막된 프로야구의 열기를 이용한 것도 영리했습니다. 구도 부산이 연고지인 롯데 자이언츠와 최강 해태 타이거즈의 라이벌전을 무대로 영호남의 지역 감정을 교묘하게 대비시켰으며, 때마침 영화의 개봉 시기가 2011년 프로야구 개막 시기와 겹쳐진다는 점 역시 이용한 것입니다.

요즘은 컴퓨터 화면으로 보는 웹툰이 대세이지만 당시만 해도 책으로 된 순정 만화는 꽤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현준의 직업을 순정 만화 작가로 설정한 것과 [쩨쩨한 로맨스]에서도 선보였던 만화를 이용한 화면의 재구성 역시 신선했습니다.

이렇듯 [위험한 상견례]는 흔해보이는 코미디 영화이지만 지역감정이라는 민감한 소재와 송새벽, 이시영을 이용한 독특함, 그리고 80년대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영리함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저를 흐뭇하게 했습니다.

 

 

우리 이제 부끄러운 유산은 후세에 남겨주지 말자.

 

분명 [위험한 상견례]를 꽤 즐길만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입니다. 최근 보았던 임창정, 김규리 주연의 [사랑이 무서워]의 썰렁함에 실망해야 했던 저로써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실컷 웃은 셈입니다.

특히 코믹 지존 김수미의 활약은 대단했습니다. 등장 자체로 관객을 웃기는 그녀의 포스는 역시 코믹 대모답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하지만 우리는 [위험한 상견례]를 보고 웃고만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이 영화는 지역감정을 농담처럼 꺼내 들었지만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 농담 속에 담겨진 진심을 눈치채야 합니다. 왜냐하면 [위험한 상견례]를 보며 그냥 웃어 넘기기엔 지역감정이라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너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가끔 인터넷 댓글을 보다가 전라도를 비하하는 댓글을 보게 됩니다. 주로 네이버 댓글에서 자주 발견하게 되는데 제게 블로그를 시작하며 네이버가 아닌 다음을 선택한 이유는 그렇게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이들과 같은 포털 사이트를 사용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저는 네이버에 들어가 뉴스 기사를 읽지만 댓글은 잘 읽지 않습니다. 읽을 때마다 기분이 나쁘고,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현실이 창피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정말 정치 알바인지, 아니면 철 없는 어린 악플러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직도 지역 감정에 사로잡힌 노망난 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이유없는 악의를 가진 그들이 정말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험한 상견례]는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분명 지역 감정에 휩싸여 원수 사이가 된 전라도와 경상도의 남녀가 만나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이루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우리나라에서마 가능하다는 특수성이 정말 창피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 우린 단일 민족의 국가라고 배웠습니다. 물론 요즘은 세계화에 발 맞춰 우리나라에도 다문화 가정이 늘어나고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는 이상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인 것입니다.

그것을 영남과 호남으로 나누고 서로 헐 뜯고 싸운다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 본다면 참 우스운 짓거리일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저 조그만 나라에서 서로를 헐뜯고 싸우는 것을 보며 비웃겠죠. 

비록 [위험한 상견례]를 보며 하하호호 실컷 웃었지만 '전라도 남자면 어떻냐?'라며 울부짖는 현준의 외침마저 웃고 남어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 영화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엔 지역감정이 다른 형태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다시는 이렇게 부끄러운 우리나라만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생겨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어린 아이들에게 이따위 지역감정을 물려줄 수는 없으니까요. 

 

 

얼마나 많은 지역 감정에 의한 선입견들이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을까?

이런 부끄러운 일이 우리 다음 세대에선 절대 일어나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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