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로맨틱 헤븐] - 통 큰 하느님의 통 큰 천국

쭈니-1 2011. 3. 25. 10:47

 

 

감독 : 장진

주연 : 김지원, 김동욱, 김수로, 이순재

개봉 : 2011년 3월 24일

관람 : 2011년 3월 24일

등급 : 12세 이상

 

 

나는 속 좁은 하느님한테 삐친 적이 있다.

 

지난 토요일 웅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더니 학교의 교문 앞에는 뻥튀기를 든 사람들이 어린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더군요. 요즘 워낙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 뭐하는 사람들인지 가까이 가서 보니 교회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뻥튀기를 나눠주며 교회에 나오라고 꼬드기고 있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떡복기도 주고, 과자도 준다며 순진한 아이들에게 열심히 선교(?)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간 제 어린 시절이 생각났었습니다. 간식거리가 귀하던 시절, 저 역시 떡복기를 준다는 어느 아저씨의 말을 혹해서 교회에 쫓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기억으로는 몇 달간 교회에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제 교회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어린 마음에 하느님에게 삐쳤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연은 이러합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교회에서는 무조건 적인 믿음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목사님이 열심히 설교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런 설교는 제게 궁금증만 안겨줬습니다. 저는 목사님에게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럼 이순신 장군님도, 세종대왕님도 하느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지옥에 계신가요?' 제 질문에 목사님은 그렇다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러한 목사님의 대답은 어린 저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 1, 2위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다튀던 시절이죠. 그런데 그렇게 훌륭한 분들이 하느님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옥에 갔다니...

저는 그 날로 교회에 다니는 것을 중지했고, 한동안 속 좁은 하느님을 원망했습니다. 만약 세상 사람들에게 믿음을 원하셨다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을 유럽 쪽에만 보낼 것이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세계 곳곳에도 보내셨어야 할텐데, 그 곳엔 예수님을 보내지도 않으시고 자신을 믿지 않았다고 착한 사람들을 지옥에 보냈다는 것이 화가 났습니다.  

그 여파 때문일까요? 전 아직도 종교를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끔은 '인간을 초월한 신적이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저는 인간을 초월한 신적인 존재가 고작 자신을 믿지 않았다고 사람들을 불구덩이에 빠뜨리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하느님을 믿으면 천국에 가고,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면 저는 그것이야 말로 하느님이 속 좁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제 자신에게 다짐합니다. 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보다 중요한 것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내 자신에 충실한 것이라고. 만약 천국이 있다면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아간 사람들이 가게 되지 않을까요?

 

 

여기 통 큰 하느님이 계시다.

 

새로운 영화가 개봉하는 목요일이 되면 저는 언제나 오늘은 무슨 영화를 볼까 고민하게 됩니다. 이번 주는 특이하게도 사후 세계에 대한 동, 서양의 두 편의 영화가 나란히 개봉하였습니다. 장진 감독의 [로맨틱 헤븐]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히어애프터]입니다.

하지만 두 영화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영화의 분위기는 180도 틀리다고 하네요.

[로맨틱 헤븐]이 예쁜 팬시와도 같은 영화라고 한다면 [히어애프터]는 노장의 철학이 담긴 꽤 어려운 영화라는 것이 네티즌들의 대부분의 평이었습니다.

애초에 제가 보려고 했던 영화는 [히어애프터]였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세상을 향한 통찰력이 더욱 깊어지고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퇴근 시간이 다가와 올 수록 하늘이 흐려지더니 급기야 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서운 바람을 맞으니 갑자기 따끈한 영화가 땡겼습니다. 제가 [히어애프터]를 포기하고 [로맨틱 헤븐]을 선택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 선택은 옳았습니다. [로맨틱 헤븐]은 꽃샘 추위로 움추러든 제 마음을 활짝 피게 할만큼 따뜻한 영화였습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천국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교통사고로 인하여 천국에 간 지욱(김동욱)이 하느님(이순재)에게 묻습니다. 정말 지옥엔 불구덩이가 있고 그러냐고... 그러한 질문에 하느님은 인자하게 웃으시며 대답하십니다. 그런건 없다고... 그래도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한 내가 착한 사람은 천국에 보내고 악한 사람은 지옥에 보낸다면 너무 속 좁은 것이 아니겠냐고... 결국 지옥은 없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순간 저는 '장진 감독이 어린 시절 저와 같은 의문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은 스님이 천국에서 목탁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세상을 창조한 창조주로써의 영화 속 하느님의 마인드가 너무 맘에 들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에겐 이런 천국과 하느님의 묘사가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제 주위에는 하느님을 믿지 않으면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지옥에 간다며 저를 안타깝게 쳐다 보는 지인이 많이 있거든요. 하지만 저는 믿지 않는 다는 이유로 지옥에 보내는 속 좁은 하느님보다 [로맨틱 헤븐] 속의 통 큰 하느님을 더 믿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두려움의 이유는 죽은 이후의 세상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원초적인 두려움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이라는 무시무시한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의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그러한 두려움을 이용하여 세력을 키워나갔던 그들의 방식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맨틱 헤븐]은 그러한 두려움을 따스하게 어루만져줍니다.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렇기에 어머니를 잃은 미미(김지원), 아내를 잃은 민규(김수로),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치성의 눈물은 그렇게 슬프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은 이별이지만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기에, 마지막 그들의 모습에서 미소가 번집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마음이 따스했던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이별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도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으니까요. 자신의 유일한 기댈 언덕이었던 부모님을 떠나 보내고,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를 떠나 보내고, 꿈에서라도 잊지 못했던 첫사랑을 떠나 보내야 했던, 그것은 비단 영화 속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별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니...

 

엉뚱한 상상력의 대가로 데뷔 때부터 주목을 받았던 장진 감독은 이번에 자신의 상상력을 기발함에 의한 쾌감이 아닌 따스함으로 변형시킵니다. 이미 [아들]에서 따스함을 맛뵈기 했던 그는 [로맨틱 헤븐]에서는 아예 작정하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따스하게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밖에 없던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별의 아픔과 슬픔도 장진 감독의 따스함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퀴즈왕]에서 장진 감독의 상상력이 고갈된 것은 아닐까 걱정했던 저는 [로맨틱 헤븐]을 보며 비록 장진 감독이 변하기는 했지만 그의 상상력이 고갈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너무 팬시처럼 어여쁜 화면 덕분에 그의 따스한 상상력이 평가절하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장진 감독이 펼치는 희망의 이야기 덕분에 꽃샘 추위로 썰렁했던 마음이 따스해짐을 느꼈고, 그것만으로도 [로맨틱 헤븐]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장진 사단의 발견

 

마지막으로 젊은 배우들의 풋풋한 매력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흔히들 장진 사단이라고 말들 합니다. 장진 감독의 영화에 자주 출연하는 배우들인데 [로맨틱 헤븐]에서도 장진 사단의 활약은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기존 장진 사단인 이문수, 임원희 등의 활약은 [로맨틱 헤븐]에서 주를 이룬다기 보다는 단순한 우정 출연 정도의 분량 뿐이었습니다. 그 대신 눈에 띄는 것은 새로운 얼굴들이었습니다.

특히 [로맨틱 헤븐]이 개봉하기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오란씨걸 김지원은 신인 배우답지 않게 엉뚱한 매력과 당돌함으로 이 영화를 휘어 잡습니다. 이 영화의 미미라는 캐릭터가 감정이 격한 캐릭터가 아니라서 그녀의 연기력을 평가할 자료가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녀의 매력만큼은 충분히 발휘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젊은 배우 김동욱도 [로맨틱 헤븐]의 재미에 단단히 한 몫을 해냅니다. 이미 [국가대표], [반가운 살인자]를 통해 연기력을 선보였던 그는 이 영화에서도 '엄마', '아내', '소녀', '로맨틱 헤븐' 이렇게 네개로 나누어진 단락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습니다.

분이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심은경의 경우는 이미 [퀴즈왕]에서 장진 사단에 입단한 배우입니다. 그녀는 몸은 젊지만 마음은 늙은 분이 역할을 천연덕스럽게 해냄으로써 장진 사단의 일원으로써 만만치않은 연기력을 과시했습니다.

단, 아내를 잃어 슬픔에 빠진 민규를 연기하는 김수로에게 가끔 코믹 본능(가방을 찾기 위해 미미 어머니 병실의 침대를 들쑤시는 장면 등)이 발휘되어 조금 아쉽기는 했습니다.

[로맨틱 헤븐]은 분명 장진 감독의 새로운 터닝 포인트가 될 영화임에 분명해 보입니다. 자신의 엉뚱한 상상력을 따스함으로 변환시키는 능력까지 지닌 그는 젊고 새로운 배우들로 중무장하여 다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줄 것입니다. 저는 장진 감독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진 감독님.

하느님이 속 좁지 않고 통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셔서...

천국이 그들만의 공간이 아닌 우리 모두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려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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