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레드 라이딩 후드] - 동화의 완벽한 재해석은 이 영화의 힘이다.

쭈니-1 2011. 3. 18. 12:41

 

 

감독 : 캐서린 하드윅

주연 : 아만다 세이프리드, 실로 페르난데즈, 맥스 아이언스, 게리 올드만

개봉 : 2011년 3월 17일

관람 : 2011년 3월 17일

등급 : 15세 이상

 

 

[비스틀리] VS [레드 라이딩 후드]

 

이번 주는 제가 기대하고 있는 영화가 무려 다섯 편이나 개봉하였습니다. 좀 나눠서 개봉해주면 좋을텐데... 너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고 싶은 영화가 한꺼번에 쏟아지니 제 마음도 급해지네요.

하지만 이런 제 마음과는 달리 구피는 이번 일요일인 시어머니의 생신상 준비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늘 영화보러가자!'라며 조르는 제게 시장도 가야하고, 음식도 준비해야한다며 버럭 화를 내는 구피.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철없는 남편인 저는 입이 삐죽 나와서 '시장은 금요일에 가면 되고, 음식은 토요일에 하면 되잖아.'라며 투덜거리는 걸...

결국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듯이 부랴 부랴 시장에 가서 필요한 음식 재료들을 사고, 밤 10시가 넘은 피곤한 시간에 영화를 보러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도 혼자 극장에 가야할 것 같아 체념했던 저는 의외로 구피가 함께 극장에 가줘 신바람이 났죠.

 

만약 저 혼자 극장에 갔다면 당연히 올해 아카데미의 최종 승자인 [킹스 스피치]를 봤을 것입니다. 하지만 황송하게도 구피가 함께 극장에 가줬으니 제 영화 취향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죠.

전 구피가 선택한 영화는 당연히 [비스틀리]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구피는 '잘생긴 배우가 나오는 영화에 대한 기대는 지난 주로 끝났어.'라고 선언하며 [레드 라이딩 후드]가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사실 [비스틀리]와 [레드 라이딩 후드]는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은 영화입니다. 각각 '미녀와 야수', '빨간모자'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을 한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도, 그리고 결국 구피도 [비스틀리]보다 [레드 라이딩 후드]를 선택한 이유는 스토리 전개가 왠지 눈에 훤히 보이는 [비스틀리]와는 달리, [레드 라이딩 후드]는 '빨간모자'를 어떻게 재해석했는지, 그리고 늑대의 정체는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냈기 때문입니다.

 

 

동화 '빨간모자'를 어떻게 로맨틱 호러 판타지 [레드 라이딩 후드]로 바뀌었나?

 

외모 지상 주의에 대한 할리우드 판타지적인 달콤한 성인 동화로 이루어 질 것이 분명해 보이는 [비스틀리]와는 달리 [레드 라이딩 후드]는 도대체 이 영화가 어떻게 원작을 재해석했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레드 라이딩 후드]를 원작의 재해석 부분에 집중하여 영화를 관람하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원작 동화의 이야기부터 알아야 겠죠?

대부분의 고전 동화가 그러하듯이 '빨간모자' 역시 각기 다른 결말을 가진 버전들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빨간모자와 할머니는 결국 늑대에게 잡아 먹히고, 잠이 든 늑대의 배를 사냥꾼이 갈라내어 빨간모자와 할머니를 구하고 늑대의 배에 돌을 채워 넣는 다는 결말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어렸을 적에 동화를 읽으며 빨간모자와 할머니가 늑대에게 잡아 먹히는 부분과 사냥꾼이 늑대의 배를 가르는 부분이 상당히 섬뜩하다고 느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레드 라이딩 후드]는 바로 그러한 동화의 섬뜩한 부분을 완벽하게 살려내고 있습니다.

 

영화는 숲으로 둘러싸인 어느 외딴 마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겉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잦은 늑대의 출현으로 보름달이 뜨면 마을 사람들은 가축을 재물로 바치고 두려워 떱니다.

그러한 마을에서 어린 발레리는 친구인 피터와 토끼 사냥에 여념이 없습니다. 드디어 토끼가 덫에 걸립니다. 하지만 어린 발레리와 피터는 하얀 털이 복실거리는 귀여운 토끼를 죽일 수가 있을까요?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귀여운 어린 소녀 발레리의 눈빛이 섬뜩하게 변하는 것입니다. 결국 토끼를 죽이는 장면은 나오지 않지만 발레리의 눈빛 만으로도 귀여운 토끼의 살육 장면이 눈에 훤히 보이는 듯 했습니다.

[레드 라이딩 후드]는 이렇듯 동화의 섬뜩한 분위기를 잘 살려내고 있습니다. 동화 속 늑대를 '흡혈귀'와 함께 서양 호러 영화의 단골인 '늑대인간'으로 변형시키고, 그 안에 어린 아이에서 소녀로 성장한 발레리(아만다 세이프리드)의 사랑을 주목하며, [트와일라잇]을 잇는 로맨틱 호러 판타지를 완성한 캐서린 하드윅 감독. 그녀는 [트와일라잇]처럼 아름다운 화면과 풋풋한 사랑, 그리고 호러적 분위기로 [레드 라이딩 후드]를 완벽하게 구성해 놓았습니다.

 

 

[레드 라이딩 후드]는 제 2의 [트와일라잇]?

 

[레드 라이딩 후드]를 보면서 아무래도 가장 많이 떠오른 영화는 [트와일라잇]입니다. [트와일라잇]은 캐서린 하드윅 감독의 영화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레드 라이딩 후드]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먼저 젊은 남녀의 사랑이 주요 테마라는 점이 그러합니다. [트와일라잇]은 평범한 소녀와 뱀파이어의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트와일라잇]의 속편인 [뉴문]과 [이클립스]에서는 소녀와 뱀파이어, 그리고 늑대인간의 삼각관계까지 그려냅니다.

[레드 라이딩 후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빨간모자'를 재해석한 이 영화의 주요 테마는 역시 사랑입니다. 발레리는 피터(실로 페르난데즈)를 사랑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가난한 피터보다는 부유한 헨리(맥스 아이언스)와 결혼하길 원합니다. [뉴문]과 [이클립스]에서 나온 삼각관계가 형성되는 것이죠.

여기에 [레드 라이딩 후드]는 피터가 늑대인간일 것이라는 단서를 끊임없이 관객에게 제시합니다. 소녀와 뱀파이어의 사랑을 담은 [트와일라잇]처럼 [레드 라이딩 후드]는 소녀와 늑대인간의 사랑을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암시하는 셈입니다.

 

하지만 전 개인적으로 [트와일라잇]보다 [레드 라이딩 후드]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물론 [트와일라잇]의 로버트 패틴슨처럼 여심을 뒤흔들 주인공으로 실로 페르난데즈와 맥스 아이언스는 약간 부족해 보입니다. 따라서 [레드 라이딩 후드]는 여성 관객의 열렬한 환호를 받을 가능성이 많이 낮아 보입니다. 

그러나 섹시한 남자 주인공은 없지만 [레드 라이딩 후드]는 [트와일라잇]에 없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호러 영화 본연의 임무인 긴장감입니다. 로맨틱 영화의 따끈따끈함을 강조했던 [트와일라잇]과는 달리 [레드 라이딩 후드]는 호러 영화에 좀 더 충실합니다.

누가 늑대인간인가? 라는 마지막 반전은 [레드 라이딩 후드]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시켜줍니다. 내 가족, 혹은 사랑하는 연인, 친구가 무시무시한 늑대인간일 수 도 있는 상황을 긴장감으로 잘 연결시킨 셈입니다.

여기에 늑대인간을 잡기 위해 마을에 온 솔로몬 신부(게리 올드만)의 등장은 영화의 긴장감을 후끈 달아오르게 합니다. 늑대인간에게 절친한 친구를 잃었지만 알고보니 자신의 아내가 늑대인간임을 알게된 솔로몬 신부는 자신의 딸들을 위해 아내를 죽이고 딸들에게는 엄마가 늑대인간에게 죽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한 그의 과거는 늑대인간에 대한 혐오와 인간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나고, 누가 늑대인간인지 알수 없는 마을의 상황에서 맹목적인 마녀사냥을 벌입니다. 어쩌면 늑대인간보다 더 위험한 것은 솔로몬 신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빨간모자'의 완벽한 재해석은 이 영화의 힘이다.

 

영화 상영시간 내내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며 영화를 감상했던 저는 영화 중간 중간에 동화 '빨간모자'의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하게 재해석한 부분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레드 라이딩 후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발레리가 꿈을 꾸는 장면인데, 동화에서 가장 섬뜩한 하일라이트인 '할머니 눈은 왜 그렇게 커요? 할머니 귀는 왜 그렇게 커요? 할머니 이빨은 왜 그렇게 커요?' 부분이 나옵니다. 동화의 부분을 이런 식으로 영화로 옮겨 놓았을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에 그 놀라움은 더욱 컸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사냥꾼이 늑대의 배를 갈라 돌을 채워 놓는 동화의 장면까지도 [레드 라이딩 후드]는 재현해 냄으로써 캐서린 하드윅 감독이 얼마나 동화의 재현과 재구성에 신경을 썼는지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 동화를 재구성한 영화들의 경우는 동화의 전체적인 틀만 가져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레드 라이딩 후드]는 동화의 세세한 장면까지도 영화적으로 재구성하는 여성 감독 특유의 꼼꼼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레드 라이딩 후드]는 그 외에도 장점이 꽤 많습니다. 그 중 주인공인 발레리 역을 맡은 아만다 세이프리드의 매력도 빼놓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커다란 눈망울로 자신의 사랑을 위해 당당한 소녀역을 해낸 그녀는 더이상 [맘마미아], [레터스 투 줄리엣]의 사랑에 목마른 가녀린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도 꽤 정교했습니다. 구피는 영화의 중반에 늑대의 정체를 눈치챘다고 했지만 저는 미처 늑대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캐서린 하드윅 감독은 늑대로 의심되는 여러 인물들 풀어 넣음으로써 마지막 반전을 꽤 잘 숨겨놓은 것입니다. 게다가 늑대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에서는 '이건 억지야!'가 아닌, '아!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고개 끄덕거림까지 획득했습니다.

캐서린 하드윅 감독이 [트와일라잇]에서도 선보였던 아름다운 화면은 [레드 라이딩 후드]에서도 유효합니다. 특히 발레리의 빨간 후드와 새하얀 눈이 대비되는 장면은 강렬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안겨주는데 [렛미인]에서 보여줬던 순수함과 섬뜩함을 연상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레드 라이딩 후드]를 보고 집으로 가는 길에 발레리의 빨간 후드와 새하얀 눈, 그리고 늑대의 짙은 검정색이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렸습니다. 이런 식의 동화 재해석이라면 전 언제든지 환영하겠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내려온 이야기는,

그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다양한 재미를 가지고 있다.

[레드 라이딩 후드]는 그러한 재미를 잘 이끌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