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줄리아의 눈] -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담아내지 못했다.

쭈니-1 2011. 4. 7. 13:59

 

 

감독 : 기옘 모랄레스

주연 : 벨렌 루에다, 루이스 호마르, 파블로 데르키

개봉 : 2011년 3월 31일

관람 : 2011년 4월 6일

등급 : 18세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의 공포를 아는가?

 

사람에겐 여러가지 감각이 있다고 합니다. 시각, 촉각, 후각, 청각, 미각...  이렇게 5감각이 기본적인데, 최근엔 특수한 인지기능이라는 6번째 감각이 존재한다고들 하죠. 

하지만 이렇게 여러가지 감각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우리들이 가장 많이 기대는 것은 바로 시각, 눈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은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기본 특성은 바로 시각에 대한 지나친 의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수 많은 사람들이 공포와 혼란에 빠져들 것입니다. 2008년에 개봉했던 [눈먼 자들의 도시]는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공포와 혼란을 그려냈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섬뜩하면서도 공감이 되었던 것이 시각을 잃어 버린다면 어쩌면 사람들이 저런 추악한 본성을 드러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줄리아의 눈]은 바로 시각을 잃고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스릴러 영화입니다. 국내 관객에겐 낯선 스페인 영화이지만 이미 네티즌 사이에선 웰메이드 스릴러로 입소문이 난 상태입니다.

그러한 입소문은 같은 날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인 [베니싱]을 제치고 개봉 첫 주 국내 박스오피스 3위에 오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툭하면 전기가 나갔던 시절, 아무도 없는 집에서 어둠의 공포에 떨었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있는 저 역시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알기에 [줄리아의 눈]을 기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 속에 막상 보게된 [줄리아의 눈]은 제겐 기대이하였습니다. 어쩌면 제 기대감이 너무 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를 제대로 담아내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줄리아의 눈]은 미치광이 살인마와 줄리아(벨렌 루에다)의 쫓고 쫓기는 스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너무 할리우드적이었다고 할 수 있죠. 뭔가 스페인 영화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공포를 기대했는데 막상 낯익은 할리우드식 공포가 펼쳐져 영화를 보는 내내 실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쌍둥이 언니가 죽었다? 도대체 누가? (이후 스포 가득있습니다.)

 

[줄리아의 눈]은 주인공인 줄리아의 쌍둥이 언니인 사라의 죽음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작은 사라의 죽음이 자살이 아닌 누군가의 소행임을 처음부터 밝히는 역할을 합니다. 영화 초반의 긴장감을 이끌 수 있는 장치를 처음부터 오픈해 버린 셈이죠.

사라의 죽음을 자살로 판정한 경찰과는 달리 줄리아는 사라의 죽음에 무언가 의문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줄리아의 주장과는 달리 모든 것이 사라는 자살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이 보입니다.

만약 [줄리아의 눈]이 처음 사라의 죽음 장면에서 어둠 속의 존재를 비춰지 않았다면 그래서 관객들 조차 사라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자세히 알 수가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전 그러한 간단한 장치 만으로도 영화의 초반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라의 의문의 죽음 자체가 마지막 반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굳이 사라의 죽음이 타살임을 밝힌 까닭에 저는 '그럼 범인이 누구지?'라는 한가지 의문점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 여러가지 의문점을 줘서 혼란에 빠뜨릴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셈이죠.

 

[판의 미로 : 오필리아의 세 개의 열쇠]를 감독했고,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을 제작했던 길레르모 델 토로가 제작을 맡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줄리아의 눈]은 이후에도 스스로 긴장감을 늦추는 역할을 자행합니다.

한가지 예로 줄리아의 자상한 남편이며, 사라의 살인범으로 초반부터 강력한 후보로 급부상했던 이삭(루이스 호마르)의 죽음입니다.

물론 이삭이 미끼임은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쉽게 눈치를 챌 수 있지만 그래도 기옘 모랄레스 감독이 이러한 미끼를 너무 빨리 포기한 것은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삭의 실종 이후에 이삭의 죽음을 곧바로 보여주지 않고 영화를 이끌어 나갔다면 이삭에 대한 의문점이 점점 증폭되며 이삭이 미끼임을 알고 있었던 관객조차 혼란스럽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옘 모랄레스 감독은 그러지 않습니다. 마치 '사라를 죽인 범인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라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줄리아의 눈]은 이삭의 죽음 이후 곧바로 이반(파블로 데르키)를 등장시키며 범인 찾기에 몰두하던 제 긴장감을 단번에 김 빠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림자같은 존재가 범인이라며?

 

시력이 악화되어 수술을 받게 된 줄리아. 그녀는 고집을 피워 병원이 아닌 사라의 집에 머물게 되고, 2주간 붕대를 풀 수 없는 사라를 위해 병원에서는 이반이라는 남자 간병인을 보내줍니다.

여기에서 문제점은 이반이 자연스럽게 이삭의 뒤를 잇는다는 점입니다. 이삭은 줄리아의 든든한 보호자이자, 유력한 용의자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역할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결국 이삭의 죽음과 곧바로 그 바통을 이어 받은 이반 역시 자연스럽게 줄리아의 든든한 보호자이자, 유력한 용의자가 됩니다.

기옘 모랄레스 감독은 그렇게 스스로 범인을 명확하게 해놓고도 관객에게 혼란을 주겠다는 일념아래 사라의 이웃집 남자와 의문의 딸을 등장시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런 뻔한 함정에 빠질 관객은 몇 이나 있을까요? 영화의 첫 장면에서 사라를 죽인 범인이 은밀한 존재임을 밝혀 놓고 전혀 은밀하지 못한 이웃집 남자를 등장시켜 '얘가 범인일지도 몰라.'라고 우긴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입니다.

여기에 또 다시 기옘 모랄레스 감독의 순진한 트릭이 제 이반에 대한 제 의심을 확신으로 바꿔줍니다. 바로 이반의 모습을 명확하게 카메라에 담아 내지 않는 것입니다.

 

이반이 처음 등장하고 이반이 범인임이 확실히 밝혀지는 후반부까지 이 영화는 이반의 얼굴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일부러 이반의 둿모습을 잡아 내거나, 이반의 얼굴 아랫 부분을 비추거나, 이반의 얼굴을 흐릿하게 처리하기도 합니다.

글쎄요... 도대체 이러한 카메라 트릭으로 무엇을 감추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이반이 범인이다.'라는 기옘 모랄레스 감독의 처절한 울부짖음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반이 의심스러웠던 저는 이 순진한 트릭으로 확신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반전을 목표로하는 영화들은 그러한 반전을 어떻게 숨기느냐가 중요합니다. 너무 꽁꽁 숨겨두면 오히려 티가 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화들은 반전의 중심이 되는 캐릭터를 마치 중요한 캐릭터가 아닌 것처럼 꾸미며 은근슬쩍 숨기는 트릭을 씁니다.

그런데 [줄리아의 눈]은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반은 영화의 중반부부터 줄리아와 함께 영화를 이끌어 나가는 중요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티 나게 숨기면 '내가 범인이요.'라고 실토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제가 영화 중반부터 긴장감을 잃어 버린 것은 그렇게 범인을 중반부터 들켰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의 두려움이 아닌, 사이코 살인마와의 추격전을 담아 내다.

 

어쩌면 기옘 모랄레스 감독도 [줄리아의 눈]에 담긴 그런 치명적인 약점을 눈치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는 '내가 범인인데 놀랬지?'라는 깜짝 반전 효과보다는 이반과 줄리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에 더 비중을 둡니다.

하지만 그러한 추격전에서도 이 영화의 가장 큰 스릴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담아 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결정적인 순간 줄리아는 시력을 되찾았기 때문입니다.

섬뜩하다고 하기엔 약해보이는 이반과 시력을 되찾은 줄리아의 추격전이 클라이맥스가 되기엔 부족했던 이유입니다. 물론 나중에 줄리아가 다시 시력을 잃게 되지만 그 부분에서는 추격전을 멈췄고, 이반의 어머니이자, 사라 이웃인 맹인 할머니 집에서의 결투가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이 좋은 소재가 왜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줄리아의 공포를 영화에 담아내며 줄리아가 느꼈을 공포감을 관객도 느끼도록 처리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러한 카메라 기법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반전을 숨기는 방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초짜 감독의 미숙한 연출력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길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제작을 맡았던 [오퍼나지 : 비밀의 계단]는 약간 식상한 소재를 가지고도 주인공의 과거와 사라진 아이를 잘 매치시키며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끔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줄리아의 눈]은 좋은 소재를 가지고 제대로 연출력을 발휘하지 못해 김 빠지는 스릴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줄리아의 눈]은 제겐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감도 컸던 영화였습니다.  

 

 

줄리아가 보이지 않는 만큼 관객도 보이지 않았어야 했다.

하지만 난 범인도, 그 수법도 명확하게 보였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내게 심어 주지 못했기에,

이 영화는 다른 할리우드 사이코 스릴러와의 차별화가 느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