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2011년 영화이야기

[써커 펀치] - 너희가 생각하는 영화의 미래는 무엇이냐?

쭈니-1 2011. 4. 13. 14:47

 

 

감독 : 잭 스나이더

주연 : 에밀리 브라우닝, 에비 코니쉬, 제나 말론, 바네사 허진스, 제이미 정

개봉 : 2011년 4월 7일

관람 : 2011년 4월 12일

등급 : 15세 이상

 

 

영화의 진화론

 

여러분은 미래에는 영화가 어떠한 형태일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저는 늙어 사회 생활에서 은퇴를 하면 죽는 그 순간까지 영화를 보며 노후를 즐길 계획이라 '내가 늙었을 때의 영화는 어떤 형태일까?'라는 생각을 간혹 합니다.

사실 영화만큼 유행에 민감하고 시시각각 진화하는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공식적인 세계 최초의 영화는 1895년 12월에 일반인에게 공개된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이라고 합니다. 약 3분짜리 이 무성영화는 당시 영화를 보던 관객들이 진짜 기차가 극장으로 들어오는 줄 알고 대피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이후 1902년 조르쥬 멜리에스라는 프랑스의 마술사에 의해 최초의 극영화인 '달세계 여행'이 공개됩니다. 최초로 스토리를 지닌 극영화의 형태를 띄었고, 편집 기술이 이용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불과 7년 만에 영화는 한 단계의 진화를 거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1927년 앨런 크로스랜드에 의해 최초의 유성영화인 [재즈 싱어]가 만들어졌고, 1935년에는  루벤 마물리언 감독에 의해서 장편 극영화중 최초로 컬러 영화가 만들어지며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뜬금없이 영화의 역사를 늘어 놓는 이유는 급속도로 진화되고 있는 영화의 역사를 보면 30년 후쯤에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영화가 아닌 새로운 기술력으로인한 새로운 형태의 영화가 분명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를 통해 3D 영화를 미래의 영화라고 밝혔고, 지금까지는 제임스 카메론의 생각에 모두 동조하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최초의 영화가 나오고 고작 7년만에 최초의 극영화가 나왔으며, 최초의 유성영화가 나오고 고작 8년 만에 최초의 컬러 영화가 나왔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3D 영화는 하나의 과정일 뿐 결코 미래 영화의 완성품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3D 영화외에도 미래 영화에 대한 많은 예상과 연구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관객 참여형 영화인 인터렉티브 영화입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국내 관객에겐 선보이지 않았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인터렉티브 영화의 상업화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관객이 스스로 참여하여 영화의 결과에 관여하는 인터렉티브 영화에 의구심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관객이 스스로 참여한다는 면에서 인터렉티브 영화는 온라인 게임과 비슷한 양상을 띄기 때문입니다. 온라인 게임이라는 대중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데 굳이 영화 마저도 온라인 게임처럼 변할 필요가 있을까요?

 

 

영화와 게임의 경계

 

사실 영화와 게임은 전혀 다른 매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반지의 제왕]처럼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게임화 되는 경우도 있고, [레지던트 이블]처럼 성공한 게임이 영화화 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눈 여겨 볼 것은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중에서 흥행에 특출나게 성공한 영화가 극히 드물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스토리 라인의 부실이 문제일 수도 있고, 대부분의 게임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이 소규모 제작비로 만들어 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게임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컴퓨터 앞에서 게임을 하는 것과 사람들이 북적되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니까요. 결국 영화와 게임의 소비자층은 그 경계가 분명 존재하고 있으며, 영화는 꾸준히 그러한 경계를 무너뜨리려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은 그 시도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이죠.

이러한 시점에서 [300], [왓치맨], [가디언의 전설]로 기존 영화와는 다른 차별화된 영화들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줬던 잭 스나이더 감독이 [써커 펀치]를 관객에게 공개했습니다. [써커 펀치]는 비록 게임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제가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영화보다도 게임과 가까운 영화였습니다.

 

제가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흥행에 대실패를 거두고 있는 [써커 펀치]를 굳이 보기 위해 몸부림쳤던 것은 어쩌면 이 영화가 미래형 영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스타일 면에서 분명 잭 스나이더 감독은 기존 영화들과는 다른 면을 보여줬고, 그러한 그의 스타일이 꾸준히 흥행에 성공한다면 기존 영화와는 다른 색다른 의미의 미래 영화가 탄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써커 펀치] 자체는 그러한 제 예상 그대로였습니다. 꾸준히 영화와 게임의 경계를 없애려는 할리우드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써커 펀치]는 보는 내내 내가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인지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게 만들었습니다.

의붓 아버지에 의해 갇힌 정신병원을 탈출하기 위해 4가지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 베이비 돌(에밀리 브라우닝)과 그의 친구들의 모험은 사무라이 액션, 전쟁, 판타지, SF 장르를 넘나들며 지루할 틈이 없는 게임의 현란함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주인공 캐릭터 역시 게임에서 주로 보는 헐벗은 미소녀 캐릭터를 차용한 듯 할 정도로 [써커 펀치]는 하나에서 열까지 게임과 닮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입니다. [300]에 열광했고, [왓치맨], [가디언의 전설]에 찬사를 보냈던 관객들 조차도 [써커 펀치]에 대해서는 혹평 일색입니다. 분명 이전 영화들과 비교해서 스타일은 그대로이고, 볼거리는 오히려 늘어났는데 이러한 관객의 반응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영화가 게임과 달라야 하는 것들.

 

그것은 제가 보기엔 영화는 게임과 달라야 한다는 관객들의 외침입니다. 일부 영화들이 영화의 미래를 게임에서 찾고 있는 것과는 정 반대의 결과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게임과 달라야 하는 영화의 요소는 무엇일까요? 바로 스토리 라인이 그 대표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요즘 온라인 게임들도 정교한 스토리 라인을 지니고 있지만 영화와는 다릅니다. 오히려 복잡한 스토리 라인은 게임을 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는 관객을 끌어 들이지 못합니다. 이미 할리우드는 특수효과만 난무하는 영화들을 쏟아 냈다가 '속 빈 강정같은 블록버스터'라는 비아냥 속에 실패를 경험했었습니다. 그들이 코믹스의 영웅들을 영화화하는데 열을 올리는 이유는 코믹스의 스토리 라인은 이미 검증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써커 펀치]는 게임처럼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추구합니다. 베이비 돌이 의붓 아버지의 폭력과 횡포로 여동생을 잃고 정신병원에 들어오는 과정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닝으로 짧게 지나가 버립니다. 베이비 돌이 정신 병원에서 친구들을 사귀고 탈출을 계획하는 장면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처리된 이 영화는 그녀들이 네가지 아이템을 획득하는 과정에 모든 역량을 집중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은 텅 비어 버립니다. 정신병원은 어느새 클럽으로 변하고 베이비 돌이 춤을 출 때마다 클럽은 판타지의 세계를 다시 변하는 과정을 보며 저는 [써커 펀치]가 아예 스토리 라인 자체를 포기하고 있음을 직감했습니다.

분명 잭 스나이더 감독은 풍성한 볼거리와 화려한 비주얼 만으로 스토리 라인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영화와 게임의 경계가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스토리 라인 때문입니다. 영화는 비싼 관람료를 지불하고 극장 좌석에 앉은 관객들에게 그들이 매혹당할 만한 이야기를 펼쳐 내야 합니다. 하지만 게임을 하는 이들은 매혹적인 이야기를 별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화려한 그래픽과 볼거리, 그리고 즐길거리가 더 중요합니다. 이러한 차이를 영화가 넘지 못한다면 영원히 영화와 게임의 경계는 허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써커 펀치]의 실패는 바로 그러한 것을 의미합니다. 화려한 볼거리만으로는 영화를 보는 관객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관객들은 단순히 화려한 그래픽을 보기 위해 온 것이 아닌 매혹적인 이야기를 보기 위해 온 것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영화의 미래

 

지난 주말에 술에 만취하여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른 저는 구피에게 한동안 자중하라는 말을 들었지만 '[써커 펀치]의 극장 상영이 끝나기 전에 봐야해.'를 외치며 극장으로 가서 영화를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워낙 다른 분들의 악평을 많이 들어서인지 기대치가 낮아져 저는 [써커 펀치]를 꽤 재미있게 봤습니다. 요즘 걸그룹의 쩍벌춤이 논란이던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여전사들을 보며 왜 자꾸 요즘 TV에서 쩍벌춤을 추는 걸그룹이 생각나던지... 뭐 이유야 어찌되었건 저는 므흣하였습니다. (^^;)

게다가 사무라이, 전쟁, 판타지, SF 액션 등 여러 장르를 걸치며 보여주는 화려한 볼거리도 좋았습니다. 처음부터 스토리 라인에 대한 기대를 접고 영화의 영상과 볼거리에 치중했더니 쉴새없이 터지는 만족스러운 볼거리를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과연 영화의 미래는?'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계속 되어온 제 궁금증도 어느 정도 해소되었습니다. 

 

영화의 미래는 볼거리 위주가 아닌 이야기 위주로 진행될 것입니다. [아바타]의 뒤를 이어 나온 3D 영화들이 별다른 소득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3D의 볼거리에 치중했기 때문입니다. [아바타]는 볼거리 외에도 스토리 라인에서도 제 기대감을 채워주었었습니다.

게임을 소재로 하고 있는 영화들이 흥행에 실패하는 이유 역시 스토리의 부재이며, [써커 펀치]의 실패로 앞으로는 할리우드 역시 볼거리 보다는 정교한 스토리 라인에 좀 더 신경을 쓸 것이 분명합니다. 많은 분들이 미래의 영화라고 생각하는 인터렉티브 영화 역시 매혹적인 스토리 라인 없이 관객 참여만 유도한다면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어쩌면 TV 드라마처럼 시리즈에 걸쳐 서서히 스토리 라인을 완성하는 영화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무려 여덟편의 시리즈로 그 끝을 달리고 있는 [해리 포터 시리즈]처럼 매혹적인 이야기를 보기 위해서라면 관객들은 10년이라는 세월도 거뜬히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영화가 담고 있는 상상력과 세계관이 좋아 극장을 찾는 제겐 반가운 일이겠죠. 물론 이것은 제 생각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써커 펀치]를 보며 간접적으로 미래 영화를 체험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최소한 이런 현란한 영화는 아닐 것이라는...

 

 

 [써커 펀치]의 현란한 볼거리는 한번 즐긴 것으로 족하다.

미래에 이런 영화만 넘쳐난다면 노인이 된 난 아마 영화와 이별을 고할 것이다.

이 영화가 영화의 미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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