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잡담

결혼기념일에 생긴 일.

쭈니-1 2011. 4. 19. 16:30

 

 

내일(4월 20일)은 저와 구피의 아홉번째 결혼 기념일입니다.

2002 한일월드컵의 열기가 채 식기 전인 2002년 9월에 만나 2003년 4월에 초고속으로 결혼하기까지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이렇게 9년 동안 별 탈 없이 잘 살고 있으니 참 다행입니다. ^^;

사실 지금까지 결혼기념일이라고 해서 구피와 특별한 추억을 쌓은 것이 없습니다.

특별한 선물을 준 적도 없고, 여행을 간 적도 없고, 단 둘이 오붓하게 외식 한 기억만 몇 번 있네요.

아무래도 올해 결혼기념일도 그렇게 넘어갈 듯 보입니다.

비자금 조성할 주변머리도 없는 저로써는 구피에게 특별한 선물을 해줄 돈도 없고...

그런데 방금 S카드 회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상담원 : 안녕하세요. 고객님... 결혼기념일 진심으로 축하드리고요, 고객님의 결혼기념일을 위해 저희 S카드에서 특별 이벤트를 준비하였습니다.

쭈니 : (시큰둥한 목소리로...) 뭔대요?

상담원 : 네, 우선 사모님께 멋진 꽃바구니 보내드리고요, 비누로 만든 장미꽃도 선물로 보내드립니다.

쭈니 : (혹시 공짜 선물인가 하는 마음에...) 정말요?

상담원 : 네, 고객님... 그리고 사모님 드리라고 고급 목걸이 세트를 준비했습니다.

쭈니 : 쳇! 관심없습니다.

상담원 : 네, 알겠습니다.

뚜~뚜우~

 

관심없다는 제 한마디에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S카드 상담원.

사실 제가 고급 목걸이 세트에 넘어가지 않았던 이유는 2007년 4월 결혼기념일에도 S카드의 오늘과 똑같은 전화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는 오늘과는 달리 상담원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20만원 상당하는 목걸이 세트를 S카드로 구입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목걸이 세트가 회사로 배달이 오고나니 카드값이 걱정되더군요.

분명 20만원이나 카드를 긁었다고 하면 구피한테 엄청 혼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구피의 의중을 살짝 떠보기로 했습니다.

 

쭈니 : 구피야, 넌 루비가 좋아? 샤파이어가 좋아?

(사실 그날 구입한 것은 루비 목걸이였습니다.)

구피 : (무관심한 목소리로...) 글쎄... 난 둘 다 싫어.

(하지만 우리 눈치 빠른 구피는 갑자기 저를 째려 보는 겁니다.)

구피 : (살기어린 목소리로...) 설마 나한테 선물로 준다며 루비나 사파이어 질러 버린 것은 아니지?

쭈니 : (식은 땀을 흘리며...) 아냐... 그럴리가... 내가 무슨 돈이 있어서... 절대 아냐...

구피 : (조금 누구러진 목소리로...) 그럼 됐고.

 

다음날 저는 S카드에 전화해서 제발 제가 산 목걸이 세트 반품해 달라고 애걸복걸했답니다.

자칫 잘못하면 이혼 당할지도 모른다며 우기고 우겼죠.

S카드에선 해당 업체에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발뺌하더군요.

제 개인정보를 업체에 넘겨줘 절 위기에 빠뜨릴 땐 언제고...

그래서 해당 업체에 다시 전화해서 겨우 겨우 목걸이 세트를 반품했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2007년이면 제가 이직을 준비 중이어서 구피가 돈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한 시기였거든요.

전 그러한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결혼 기념일에 멋진 선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과욕을 부린 것이죠.  

 

내일 아홉번째 결혼기념일에는 과욕을 부리지 않고 딱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선물을 해줘야 겠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대한민국의 가난한 남편분들... 절대 카드 회사의 감언이설에 넘어가지 마세요.

저처럼 아찔한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