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이야기들/잡담

핸드폰 분실 후 보낸 하루

쭈니-1 2011. 4. 12. 10:49

 

 

 

지난 토요일 친구들과 함께 열심히 술 퍼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 새벽에 집에 들어와 보니 뭔가 허전하더군요.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구피는 도끼눈을 뜨며 흘겨보고, 핸드폰 약정기간이 아직 1년이나 남은 저는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 전 날의 제 행적을 추적하며 핸드폰을 찾아 다녔지만 결국 찾지 못했고, 핸드폰 대리점에 가서 분실폰 위치 추적 서비스 신청을 하였습니다.

월요일,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SKT 서비스 센터에 연락을 하고 분실폰 위치 추적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토요일에 친구들과 술을 마셨던 곳 위치가 나오더군요.(정확히 나온 것은 아니고 반경 몇 미터, 뭐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회사 업무를 마치고 다시 그 곳에 찾아 갔습니다.

처음에 제가 전화를 하니 주운 핸드폰 없다고 발뺌을 하다가, 제가 위치 추적을 해보니 여기 위치가 정확히 찍혔다고 말하자 (거짓말이었습니다. 정확히 찍히진 않았습니다. -_-) 그때서야 찾아보니 여기 있다고 찾으러 오라고 하더군요.

암튼 그렇게해서 제 핸드폰은 무사히 제 곁으로 돌아왔지만 핸드폰 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니 정말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공중전화의 소중함을 알겠더라.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나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공중전화를 찾는 일이었습니다.

하필 월요일에 회사 춘계 체육대회 장소 섭외를 위해 외근이 있었는데, 핸드폰은 없고, 네비게이션은 자꾸 이상한 곳으로 안내해서 낯선 강촌에서 한참을 헤맸습니다.

결국 무작정 근처 파출소에 들어가 길을 묻고, 전화좀 쓰겠다고 경찰관에게 양해를 구한 끝에야 겨우 약속 장소에 갈 수 있었습니다.

사정은 퇴근 후에도 마찬가지였는데, 제가 핸드폰을 잃어 버린 곳에 전화를 하기 위해 공중 전화를 찾아 헤맸지만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더군요.

결국 근처 지하철 역에 가서야 겨우 공중전화를 찾을 수가 있었고, 그 곳에서 술집에 전화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사람을 앞에두고 거짓말을 하면 얼굴에 금방 티가 나는 편이라서 전화로 위치 추적을 해보니 그곳이 정확히 찍혔다는 거짓말을 해야 했기에 공중전화는 필수였습니다.

생각해보니 핸드폰이 생기고 나서 공중전화는 퇴물 취급을 받으며 점차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더군요. 핸드폰의 편리함에 젖어 있던 저는 미처 그러한 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렇게 핸드폰 없는 하루를 보내고 나니 공중전화가 잊고 지냈던 소중한 옛 친구처럼 보였습니다.

사춘기 시절, 집에서 할 수 없는 전화를 하기 위해 동네 공중전화 박스로 달려가 십원짜리 동전을 잔뜩 바뀌 놓고 친구들과 열심히 수다를 떨었던 추억은 이제 까마득하게 느껴졌고, 공중전화를 오래 사용한다며 싸움이 벌어져 살인까지 일어났다는 충격적인 신문 기사는 옛날옛적의 일로만 느껴집니다.

핸드폰을 찾은 지금 비록 공중전화를 자주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길을 걷다가 공중전화를 보면 무관심한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잠시라도 소중한 옛 추억을 회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주받은 기억력이라면 전화번호책이라도 들고 다니자.

 

저는 제 기억력이 이렇게 엉망인지 몰랐습니다. 물론 제 기억력은 저주받은 기억력이라고 스스로 인정은 하지만 그래도 외우는 전화번호가 단 하나도 없을 줄이야...

강촌에서 춘계 야유회 장소 섭외를 마치고 회사에 복귀하지 않고 집으로 바로 퇴근하기로 결심한 저는 야유회 장소 사장님한테 핸드폰을 잠시 빌렸습니다.

그런데 왠걸... 회사 전화 번호가 기억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제 머릿 속이 고장난 것처럼 0~9까지의 숫자들이 머리 속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더군요. 너무 당혹스러워 빌린 핸드폰을 돌려주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습니다. 결국 회사에는 전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핸드폰을 찾기 위해 나선 다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중전화를 찾은 저는 술집에 전화를 했고, 혼자 가기 좀 그래서 근처 사는 친구를 부르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겁이 좀 많습니다. -_-)

하지만 친구 전화 번호가 아무리 머리를 쥐어 짜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20년지기 친구인데, 학창시절엔 친구집 전화번호 줄줄 외웠었는데, 핸드폰이 나온 이후 핸드폰의 단축 번호로 전화를 거는 것이 익숙해져 나도 모르게 전화번호를 모두 잊어 버린 것입니다.

정말 예전의 커다란 전호번호부 책을 구입해서 핸드폰을 안될 때를 대비하여 가방에 들고 다녀야 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암튼 핸드폰 없이 보낸 제 하루는 그렇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하고 끝이 났습니다.

결국 저는 앞으로는 더이상 소주를 마시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고, 구피는 올해 제가 정말 약속대로 소주를 안마신다면 스마트폰을 사주겠다고 하더군요.

제 핸드폰 약정 기간이 끝나는 내년에 제가 약속대로 소주를 안마신다면 제게도 스마트폰이 생기겠죠.

과연 제게 스마트폰이 생기면 그땐 또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지내게 될까요?

세상은 점점 편리해지는데 그 편리해지는 만큼 많은 것을 잊고 지내고 있다는 것도 느낀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