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안진우
주연 : 정준호, 공형진, 류현경, 박철, 박상욱
개봉 : 2003년 12월 31일
관람 : 2003년 12월 19일
12월 19일 금요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지루하게 끝없이 펼쳐져있는 회사일속에 파묻혀 퇴근시간은 언제오나 이리저리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시계 바늘은 점차 퇴근 시간인 5시 30분을 향하고 있었고 저는 어떻게하면 오늘도 칼퇴근의 바램을 이루어낼 수 있을지 어설픈 계획을 세우고 있었죠. 상무님이 시키신 2004년도 사업 계획서는 쉽사리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제가 칼퇴근의 바램을 이루는 길은 멀고도 험해 보였던 겁니다. 하지만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랑하는 구피와 제 컴퓨터속에서 기다리고있는 재미있는 영화들때문에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으니...
'오늘은 꼼짝없이 야근을 해야하나보다' 저는 힘없이 체념을 하고 습관처럼 메일을 확인했습니다. 언제나 스팸 메일로 가득차있는 메일이지만 제게 힘을 주는 메일이 아주 가끔 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 눈에 띄인 메일 제목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시사회에 당첨되셨습니다'입니다. 허걱~ 시사회라고??? 그렇담 공짜 영화??? 공짜 영화와 공짜 밥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저는 떨리는 손으로 메일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런데 시사회 날짜가 바로 12월 19일 오후 7시 스카라 극장이었던 겁니다. 스카라 극장이라면 회사에서 그곳까지 무려 1시간이나 걸리는 곳이거늘... 게다가 오후 7시라면 지금 출발을 해도 저녁 식사를 건너뛰어야만 겨우겨우 제 시간에 도착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과연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을런지...
먼저 구피에게 시사회 소식을 알리고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숱한 난관을 헤치고 퇴근을 하는 길뿐이었습니다. 가방을 챙기고 회사 컴퓨터를 끄고 조용히 옷을 챙겨입고 살금살금 빠져나가려는 찰라 '동준이 이리좀 와봐라' 상무님의 그 무시무시한 한마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상무님께 끌려가 간절한 눈빛으로 '오늘은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일찍 퇴근을 해야하는 데요~'라고 애원을 했습니다만 '안돼 너 오늘은 나랑 야근해야돼'을 외치시는 상무님. 하지만 재차 '정말 중요한 약속입니다. 상무님!'을 외치고 토요일엔 기필코 야근을 해서라도 일을 끝내놓겠다는 약속을 한후에야 겨우겨우 퇴근 허락을 받아 냈답니다. (덕분에 토요일에 야근했습니다. T-T)
부랴부랴 약속장소로 향하여 구피를 만나고 거의 뛰다시피 극장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는 햄버거로 간단하게 챙긴후 정각 7시에 극장 좌석에 착석,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저와 구피의 [동해물과 백두산이]의 시사회 관람은 이루어 졌습니다. 휴우~ ^^;
[오버 더 레인보우]로 세련된 멜로적 감각을 보여줬던 안진우 감독의 두번째 영화인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분단의 현실을 코미디로 풀어나간 영화입니다. [쉬리]의 엄청난 성공으로 하나의 유행 장르가 된 남북 영화는 [간첩 리철진]에서부터 시작하여 [휘파람 공주], [남남북녀]에 이르는 동안 간혹 코미디적인 소재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코미디 영화들은 그것이 어설픈 간첩의 좌충우돌 소동기이건, 바람둥이 남한 총각과 새침한 북한 처녀의 새콤달콤 로맨틱 코미디이건간에 남과 북의 분단이라는 어쩔수없는 현실을 안고 살아야하는 우리 관객들에겐 그냥 웃고 넘기는 단순한 코미디가 아닌 뭔가 가슴 한구석에 미묘한 안타까움이 남는 그런 코미디일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물론 [휘파람 공주]와 [남남북녀]는 그런 남과 북의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코미디적인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입시키지 못해서 흥행 실패라는 쓴물을 마셨지만...) [동해물과 백두사이]는 바로 이러한 점을 노린 영화입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가 분단의 현실을 코미디로 풀어나가며 선택한 컨셉은 바로 '걸리버 여행기'입니다. 영화의 포스터에서 그러한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나듯이 이 영화는 남과 북의 문화적 차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림동해(공형진)와 최백두(정준호)의 모험을 소인국의 나라에서 이상한 모험을 하게되는 걸리버의 여행담에 비유를 합니다. 북한 해군이라는 직업으로 인하여 산엄한 경계 근무속에서 살벌한 인생을 살던 동해와 백두가 비키니 수영복이 넘쳐나는 해수욕장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모습은 이 영화가 추구하는 코미디의 방향인겁니다.
일단 컨셉이 잡혀진 이상 이 영화는 거침없이 관객들을 웃음속으로 몰아넣습니다. 뺀질이 병장 동해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속에서도 특유의 뺀질거림으로 관객을 웃기고, 그와는 반대로 엘리트 장교인 백두는 근엄한 표정과 말투로 잔뜩 분위기를 잡은 후 그와 상반되는 행동을 함으로써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시킵니다. 이렇듯 이 영화는 '걸리버 여행기'라는 컨셉속에서 동해와 백두라는 상반된 성격의 캐릭터가 남한 표류라는 똑같은 상황을 대처하는 상반된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그림으로써 코미디라는 장르를 완성시켜 나갑니다.
동해와 백두가 남북 분단의 아픈 현실과 '걸리버 여행기'라는 고전을 접목시킨 색다른 코미디를 완성하는 동안 이 영화의 또다른 스토리의 한축인 안형사(박철)와 박형사(박상욱)는 우리 코미디 영화들의 새로운 트랜드인 화장실 코미디와 욕설 코미디를 선보입니다.
범인을 찾으러 해수욕장에 왔다가 느닷없이 가출한 서장의 딸을 찾으라는 황당한 명령을 하달받은 이 덤 앤 더머 형사 커플은 입을 열때마다 수많은 욕설을 퍼붓고, 행동을 할때마다 더러운 에피소드를 동반함으로써 관객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듭니다.
여기에서 안진우 감독의 기발한 연출력이 발휘됩니다. 만약 안형사와 박형사가 펼치는 저질 코미디가 동해와 백두에게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면 이 영화는 저질 코미디 영화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노련한 안진우 감독은 저질 코미디를 통해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시키면서도 이 저질 코미디가 두 주인공인 동해와 백두와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도록 안형사와 박형사라는 조연 캐릭터에 집중시킴으로써 이 영화를 저질 코미디의 오명에서 벗어나려 합니다.
게다가 반항적이지만 외로움을 잘타는 서장의 딸인 한나라(최현경)를 등장시켜 너무 코미디로만 흘러가는 이 영화에 드라마적인 요소를 적절하게 삽입시키고 동해와 백두, 그리고 안형사와 박형사의 상반된 코미디적 요소들을 마지막에 가서는 적당하게 연결시켜줍니다. 멜로 영화로 기본기를 다진 감독답게 안진우 감독은 꽤 치밀하게 이 영화의 요소요소들을 배치시키고 강약을 조절하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이]가 색다른 코미디적인 상황을 완성한 동안 정준호와 공형진은 낯익은 코믹 연기만 되풀이합니다.
최백두를 연기한 정준호의 코믹 연기는 이미 [두사부일체]와 [가문의 영광]에서부터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입니다. 반듯한 외모와 그에 걸맞는 카리스마로 코미디 연기가 전혀 어울릴것 같지 않은 이 배우는 자신의 그러한 핸디캡을 이용하여 오히려 근엄한 코미디라는 색다른 코믹 연기를 완성합니다. 그러한 그의 근엄한 코믹 연기는 [두사부일체]에게는 의외의 성공을 안겨주었으며, [가문의 영광]에서는 김정은과 더불어 최고의 흥행을 일구어 냈습니다. 그러나 [동해물과 백두산이]에서는 더이상 색다른 코믹 연기가 아닌 낯익은 코믹 연기일 뿐입니다. 그가 엘리트 해군 장교의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남한의 상황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어물쩡거리는 코믹 연기는 [두사부일체]의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하며, 어린 한나라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주는 장면에서는 [가문의 영광]의 그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정준호의 그러한 낯익은 코믹 연기는 관객들에게 낯익은 웃음을 안겨주기는 하지만 [두사부일체]와 [가문의 영광]과 같은 색다른 웃음을 안겨주지 못합니다.
만년 조연 배우로 유명한 공형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주연 배우로 발돋음한 그는 마치 자신의 그 모든것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의욕적으로 영화의 처음 시작에서부터 개인기를 발휘합니다. 하지만 짧은 출연속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그의 코믹 연기는 긴 호흡을 하는 주연을 맡으면서 약간 진부해 집니다. 물론 그의 코믹 연기는 여전히 막강하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그의 코믹 연기를 본 적이 없는 관객의 입장으로써는 그의 코믹 연기가 이전의 조연을 맡은 영화와 비교해서 전혀 달라진 점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됩니다.
결국 정준호와 공형진의 낯익은 코믹 연기는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안정적인 코미디 영화로 만들기는 하지만 색다른 코미디적인 상황에 비해서 전혀 새로움을 발견할 수 없어서 작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안진우 감독의 짜임새있는 연출력과 색다른 상황에 걸맞는 전혀 뜻밖의 인물의 새로운 코믹 연기가 있었으면하는 아쉬움은 어쩌면 배우들이 극도로 한정되어 있는 우리 영화계의 현실에 비추어볼때 너무 과한 욕심일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렇기에 아쉬움은 더욱 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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