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짧은영화평/2011년 아짧평

[내 이름은 칸] - 종교보다 사람이 먼저이다.

쭈니-1 2011. 4. 5. 10:07

 

 

감독 : 카란 조하르

주연 : 샤루 칸, 까졸

 

 

웬 인도영화?

 

 

제가 여러번 밝혀 듯이 저는 영화 편식이 심한 편입니다. 낯선 영화를 굳이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제 취향의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세상엔 보고 싶은 영화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끔 많은 분들이 추천한 영화의 경우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분명 제 취향의 영화는 아닐지라도 많은 분들의 추천을 받은 만큼 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내 이름은 칸]이 그랬습니다. 인도영화라면 폴란 데비라는 인도 여성이 온갖 학대를 받다가 결국 여성 혁명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1994년작 [밴디트 퀸]이 제 기억 속에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내 이름은 칸]은 인도영화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 취향의 영화가 아닌 것으로 치부되었고, 제 관심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네티즌 사이에선 [내 이름은 칸]은 이미 명작으로 칭송을 받고 있고, 제 블로그를 찾는 분들 중에서도 [내 이름은 칸]과 [세 얼간이]를 추천하는 분들이 많았고, 결국 저는 '그렇게 명작이야?'라는 의구심과 함께 [내 이름은 칸]을 보기에 이르렀습니다.

 

인도판 포레스트 검프? 아니 그보다 위대하다.

 

[내 이름은 칸]은 천재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으로 인해 발달 장애를 앓고 있는 리즈완 칸(샤루 칸)의 이야기입니다. 리즈완 칸은 어머니에게 많은 것을 배우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동생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고 그곳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아름다운 이혼녀 만디라(까졸)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됩니다. 행복한 삶을 살던 그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덮쳐 온 것은 911테러였습니다.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미국인들에게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서 만디라의 아들이 죽음을 당합니다. 이제 리즈완은 미국 대통령에게 '내 이름은 칸입니다.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긴 여정에 오릅니다.

대강의 줄거리만 놓고 본다면 이건 완전히 [포레스트 검프]의 인도판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수한 바보의 여정을 통해 미국의 근대사를 아우렀던 [포레스트 검프]와는 달리 [내 이름은 칸]은 좀 더 심각한 이야기를 꺼내 놓습니다. 바로 종교 문제입니다.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세계 각지의 종교 분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어찌보면 911 테러 역시 종교 분쟁의 하나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리즈완은 바로 그러한 케케묵은 종교 문제에 대해서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해답을 내놓은 것입니다.

 

종교보다 사람이 먼저이다.

 

종교는 어쩌면 인간의 나약함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맹수들의 틈에서 살아 남아야 했던 나약한 인간들은 자신을 지켜줄 그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숭배했고, 인류 문화가 발달하며 그러한 숭배 의식은 점점 종교로 발달한 것이죠.

이제 인간은 스스로 만류의 영장이라 칭하며 지구상의 그 어떤 동, 식물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그러한 인간도 결국 극복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요즘 종교가 사후 세계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 때문이겠죠. 이렇듯 인간의 나약함,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끌어 앉으며 시작한 종교는 영적인 안식에 머물지 않고 권력을 거머쥐며 여러 분쟁을 일으키기 시작합니다.

사실 특정 종교를 믿지 않는 저로써는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만약 이 세상을 창조한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세계 곳곳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약한 인간들 앞에 나타나셨을 것이고, 그것은 서로 다른 종교로 이루어 지지 않았을까요?(절대신이라면 그 정도의 스케일은 있으셨을 듯)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종교를 믿느냐가 아니라 인간 그 자체인 것입니다. 리즈완의 어머니가 그에게 '이 세상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을 뿐이다.'라는 가르침은 종교를 통해 사람을 보지 말고 사람 그 자체를 보라는 것이죠. 

 

종교를 아우르는 순수의 힘

 

[내 이름은 칸]이 감동스러운 것은 바로 그러한 것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리즈완은 이슬람교도이지만 그가 사랑하는 아내인 만디라는 힌두교도입니다. 리즈완의 여정 속에서 그에게 결정적인 도움을 주고 받는 조지아주의 작은 마을 사람들은 개신교 신자입니다. 그들은 서로 종교는 다르지만 모두 같은 사람이고, 리즈완은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을 쳐다봅니다.

'이슬람교 = 과격한 테러 단체'라는 공식이 서방 세계에 은근히 퍼져 있는 상황에서 리즈완의 그러한 순수한 마음은 지금 인류가 처해있는 온갖 분쟁의 해결책입니다. 하지만 모두들 그러한 것을 알고 있지만 서로를 향한 분노에 휩싸여 당연한 해결책을 외면하는 것이죠.

결국 리즈완이 만나는 미국 대통령이 부시가 아닌 오바마인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아버지에 이어 걸프 전쟁을 일으키며 이슬람과 극단적인 분쟁을 촉발시킨 부시가 아닌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오바마에 이 영화는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며 '칸'이라는 성 때문에 죽음을 당해야 했던 만디라의 아들 사건에 가슴이 아팠고, 리즈완의 그 순수함에 웃으며, 울었습니다. 만약 이 영화를 보고 '이슬람교 = 과격한 테러 단체'라는 선입견이 조금이나마 벗어났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 영화는 굉장한 힘을 발휘한 영화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