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브래드 앤더슨
주연 : 헤이든 크리스텐슨, 존 레귀자모, 탠디 뉴튼
2011년 첫 미스터리 재난 스릴러라며?
1587년 영국의 첫 번째 식민지였던 노스 캐롤라이나 해변 로어노크 섬에서 모든 주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람들은 수색에 나섰지만 그들이 찾아낸 것은 누군가 낚서처럼 쓴 '크로아톤'이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자 뿐이었습니다. 결국 수색에 나섰던 사람들은 마을 주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 '크로아톤' 인디언들과 마을을 떠난 것으로 추정하였지만 그 사건의 진실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베니싱]은 바로 420여년 전에 일어난 이 미스터리한 실종 사건을 토대로한 영화입니다. 갑작스러운 대정전이후 도시의 사람들이 모두 사라지고, 자신을 지켜주는 빛 덕분에 가까스로 살아 남은 주인공들은 정체 불명의 어둠으로부터 위협을 받습니다.
제가 [베니싱]을 이번 주의 기대작 1순위로 꼽은 이유는 바로 이러한 소재의 참신성 때문입니다. 워낙에 재난,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실제 일어났던 미스터리한 사건을 토대로 하였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으며, 어둠의 공격이라는 초현실적인 위험도 흥미진진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나니 딱 그 뿐이었습니다. [머시니스트]라는 꽤 독특한 스릴러 영화를 만들었던 브래드 앤더슨 감독은 이 참신한 소재의 영화를 어떻게 이끌고 나가야 할지 몰라서 스토리 전개를 이리저리 엉망으로 끌고 나가다가 결국 마무리 짓지 못하고 서둘러 끝내버린 것은 아닐지 의심이 될 정도였습니다.
어둠의 실체는 무엇인가?
[베니싱]의 시작은 꽤 흥미진진했습니다. 어둠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공포스러웠고, 주인공들이 자가발전소 덕분에 유일게 빛이 살아남은 술집에 모인다는 설정도 괜찮았습니다. 이제 영화는 이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주인공들의 활약만 남은 셈입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어둠의 실체를 밝히고 그와 더불어 1587년 로어노크 사건에 대한 영화적 상상력이 가득 묻어나는 해답을 제시한다면 금상첨화겠죠.
하지만 [베니싱]은 사람들을 사라지게 하는 어둠의 실체를 밝히는데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영사 기사인 폴(존 레귀자모)이 1587년 로어노크 섬의 주민 실종 사건을 이야기하고, 뉴스 리포터인 루크(헤이든 크리스텐슨)는 시카고에 가면 무언가 해답이 있을 것처럼 행동하지만 그것으로 끝입니다. 주인공들은 어둠에 쫓겨 다니다가 하나둘씩 다른 사람들처럼 사라지고 맙니다.
영화의 스릴도 상당히 단순한 편인데 빛을 얻으려는 주인공들과 서서히 다가오는 어둠... 이러한 장면이 계속 무한 반복됩니다. 상황이 그러하니 영화를 보며 장르적 재미를 느끼기에도 상당히 부족합니다.
브래드 앤더슨 감독의 연출력도 상당히 투박한데, 플래쉬백으로 루크, 로즈마리(탠디 뉴튼), 폴이 대정전 당시 겪었던 며칠 전의 과거를 보여주는 장면은 '왜 저걸 보여주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전혀 필요 없어 보입니다. 결정적인 순간 엄마를 부르짖으며 교회로 들어가는 제임스의 모습은 영화를 보다가 짜증이 확 밀려나올 정도입니다. 루크의 바램대로 시카고에 가면 이 어처구니없는 미스터리한 사건의 실마리가 조금이라도 밝혀질까 기대했는데 제임스의 행동으로 모든 것이 무산되어 버렸으니 말입니다.
열린 결말? 다 좋은데 영화에 무언가라도 채워 놓아야 하는것은 아닌가?
나 혼자 영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궁금해서 다른 분들의 리뷰를 샅샅히 찾아서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스토리 전개를 완벽하게 이해하신 분은 별로 없어 보이네요.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한 후레쉬를 사용하는 의문의 여자아이를 보여주며 에너지를 너무 낭비하는 사람들에 대한 친환경적 경고라고 하는데, 고작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하는 후레쉬 하나로 이러한 이 영화의 주제를 생각해내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분들은 종교적으로 이 영화의 스토리 라인을 풀어나가기도 했는데, 글쎄요... 개인적으로는 그것도 너무 확대해석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니 J. J. 에이브럼스의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그가 제작한 [클로버필드]에서도 주인공들은 정체 불명의 괴물에게 쫓겨 다니다가 끝납니다. 괴물의 정체 따위는 밝혀지지 않죠. J. J. 에이브럼스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연출한 블럭버스터 영화 [미션 임파서블 3]에서는 관객들에게 '토끼발'이라는 미끼를 던져주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토끼발'의 정체를 밝히지 않은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J J. 에이브럼스의 방식은 꽤 기발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클로버필드]의 괴물의 존재라던가, [미션 임파서블 3]의 '토끼발'의 정체에 대해서 관객 스스로 해석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니싱]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무언가 관객 스스로 해석하기엔 이 영화에는 빈 공간의 여백이 너무 많습니다. 열린 결말도 좋지만 어느 정도 스토리를 전개시키고, 정체를 살짝이라도 드러내 관객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빈 백지 위에 그저 쫓기는 주인공과 쫓는 어둠 하나만 그려놓고 나머지는 관객 스스로 알아서 생각하라고 내버려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이 영화의 여백은 열린 결말이 아닌 허무함만 안겨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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